스카이다이빙 마니아 박정진
[한경 머니 = 김수정 기자]때로는 장비가 취미의 전부가 될 수 있다. 스카이다이빙이 그렇다. 한순간의 실수도 용납되지 않지만 철저한 장비 체크와 본인의 의지만 있다면 이 세상 모든 번뇌로부터 벗어날 수 있는 완벽한 자유의 맛을 느낄 수 있다. 박정진(43) 한국주택 대표이사가 스카이다이빙에 중독된 이유다. 사진 서범세 기자·박정진 제공 6월의 태양이 작열하던 토요일 오전 9시, 경기 하남시 미사리 조정경기장 부근에서 이륙을 준비 중인 헬리콥터 프로펠러 소리가 잔디밭을 달구었다. 잔디밭 위에는 머리부터 발끝까지 스카이다이빙 장비로 무장을 마친 대여섯 명의 남성들이 헬리콥터 안으로 들어가기 시작했다. 사람이 그득 찬 헬기가 이륙을 시작하더니 불과 10여분 만에 지상에서 3km나 멀리 떠올랐다.구름 하나 없는 파란 하늘에 검은 점 같은 헬리콥터만 보이더니 이내 하나둘씩 사람들이 헬기 밖으로 쏟아져 나오기 시작했다. 그리고 약 3분간의 고공낙하가 시작된다. 이 순간만큼은 이 세상 모든 짐은 다 내려놓은 듯 완전한 자유를 만끽할 수 있다. “스카이다이빙을 하는 동안은 온 정신을 이것에만 집중하니까 그간 일로 쌓였던 스트레스는 다 잊게 돼요. 고소공포증이 있는 분들도 전혀 문제가 되지 않아요. 사람이 공포를 느끼는 높이감을 훨씬 넘어서기 때문이죠.”
3년 전 스카이다이빙에 입문해 누적 다이빙 수만 벌써 1000여 회가 넘는 한국스카이다이빙협회장 박정진 한국주택 대표이사가 스카이다이빙의 뛰어든 계기는 스트레스 때문이었다.
“예전 회사가 부도가 나면서 현재 회사를 차린 지 얼마 안 됐을 때였어요. 사업 초기니까 힘든 일이 많았죠. 그러던 중에 평소 알고 지내던 개그맨 김병만 형의 권유로 별 뜻 없이 스카이다이빙을 하게 됐어요. 사실 처음에는 저도 무서워서 오롯이 즐기지 못했는데 한 100회 이상 다이빙을 하고나서는 거의 중독처럼 빠져들었죠.”
자유 즐기기 위한 필수조건 ‘장비’
스카이다이빙은 그야말로 장비의 역할이 전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관련 장비가 중요한 취미다. 장비에 작은 흠집이나 오작동이라도 될 경우, 곧바로 생명의 위협으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다 보니 스카이다이빙을 하는 내내 안전에 대한 고도의 집중력이 필요할 수밖에 없다.
한국의 민간 스카이다이빙은 1964년 시작됐다. 현재 국내에서 스카이다이빙을 즐길 수 있는 곳은 경기 하남시 미사리 조정경기장뿐이다. 스카이다이빙을 체험하려면 서울스카이다이빙학교, 스카이다이빙아카데미, 코리아스카이다이빙, 스카이어드벤처에 미리 연락해 일정을 잡으면 된다. 체험 낙하엔 50만~70만 원 정도 비용이 든다. 촬영을 할 경우 경비가 추가된다. 장비를 갖추고 혼자 다이빙이 가능한 사람이라면 12만 원으로 다이빙을 할 수 있다.
“우리나라는 스카이다이빙 연륜에 비해 여전히 관련 시설이 열악해요. 상설 드롭존(drop zone)이 없다 보니 매번 이렇게 헬기를 빌려야 하죠. 따라서 비용이 많이 발생해요. 반면, 미국에선 2만5000원만 지불하면 다이빙이 가능하거든요. 그 점이 좀 아쉬워요.” 실제로 박 대표는 개그맨 김병만이 소속돼 있는 국가대표 스카이다이빙팀 레드학스(Red Hawks)의 팀원이다. 따라서 중요한 국내외 대회를 앞두고는 하루에 12회에서 많게는 15회까지 훈련을 할 수 있는 상설 드롭존이 필요하다는 것. 여기에 초기 스카이다이빙 장비 마련을 하기 위해서 적잖은 비용이 들어가는 것도 사실이다.
“장비 비용이 만만치 않죠. 대부분 미국에서 사 오거나 해외 직구를 통해 구입하는 편이에요. 낙하산 하나만 해도 1000만 원은 훌쩍 넘습니다. 특히, 저 같은 경우는 연습을 계속 해야 하기 때문에 한 번 하강하고 낙하산 접고 정리하는 시간 20분을 줄이기 위해서 여분의 낙하산을 하나 더 구매한 상태예요. 의상도 다 구비하려면 100만 원 정도는 들죠. 카메라도 1000만 원 정도 하고요. 그래도 한번 스카이다이빙 맛에 빠지면 충분히 투자할 가치를 느낄 거예요.”
스카이다이빙을 오롯이 혼자 하기 위해서는 속성자유강하(Accelerated Free Fall, AFF) 교육과정 이수와 A라이선스가 필요하다. AFF과정은 AFF 교관들에 의해 초보자를 가장 밀도 있고 효율적으로 단시간 내에 전문 스카이다이버로 만들어주는 교육으로 세계적으로 가장 널리 활용되는 교육 방식이다. 총 25회 교육과정으로 구성됐는데 교육은 단계별로 카테고리(category) A부터 카테고리 H의 단계로 구성돼 있으며 최초 카테고리 A부터 몇 단계는 고도 1만 피트 이상에서 교관 2명이 교육생을 보조해 강하를 실시하고, 카테고리 D단계부터는 교관 한 명이 교육생을 보조해 교육을 실시하게 된다.
이 과정을 모두 이수하면 혼자서 스카이다이빙을 할 수 있는 A라이선스라는 자격이 주어진다. 통상 A라이선스 기준인 25회를 채우기 위해서는 국내에서는 적어도 2~4개월 이상 소요되지만, 미국 등 외국에서는 항시 스카이다이빙이 가능하므로 약 10일이면 A라이선스 취득이 가능하다고.
“교육과정을 다 이수하고도 처음 혼자 뛰어내렸을 때가 정말 무서웠죠. 과연 내가 안정된 자세를 유지하면서 하늘에서 내려올 수 있을까 싶었어요. 행여나 중간에 빙글빙글 돌거나 앞으로 꼬꾸라져서 낙하산을 못 피면 어쩌나 엄청 걱정했어요. 착륙지를 잘 찾을 수 있을지도 두려웠죠. 다행히 첫 낙하치곤 무사히 잘 도착했습니다.”
실제로 스카이다이빙은 철저한 장비 정비와 매뉴얼대로 동작을 실행하면 일반 사람들이 우려할 만큼 위험한 일은 거의 일어나지 않는다고 한다. 특히, 초보자들의 경우, 낙하산이 랜딩 시 브레이크가 따로 필요 없을 정도로 크기 때문에(상급자로 올라갈수록 낙하산 크기가 줄어든다) 낙하산으로 인한 사고는 희박하다. 되레 사고의 주원인은 랜딩 때 잘못된 자세나 실수로 발생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라고 한다.
“사실 스카이다이빙을 하면서 안 좋은 기억 중 하나가 병만이 형이 지난해 미국 전지훈련에서 사고를 크게 당한 일이었어요. 그때 함께 하늘에서 뛰어내려서 랜딩을 하고 있었는데 형이 크게 다쳤거든요. 자칫 형이 죽었을 수도 있다고 생각하면 지금도 마음 한편이 서늘해요. 저 역시 랜딩 시 풀에 다리가 걸려서 부러진 적이 있고요. 그만큼 스카이다이빙을 할 때 대개 장비로 인한 사고는 거의 없고, 랜딩 사고가 많다고 보셔도 무방해요. 단, 장비 검사는 완벽해야겠죠.”
그렇다면 박 대표에게 장비는 어떤 의미일까. “절대적인 거죠. 사실 어떻게 보면 스카이다이빙은 오롯이 장비 하나 믿고 내 몸을 던지는 거잖아요. 따라서 장비가 곧 생명줄이죠. 항상 장비 착용 전은 물론, 비행기 탑승 전, 다이빙 전 최소 3번 이상은 확인을 하죠. 착용 후에도 조금이라도 장비에 이상이 느껴지면 다이빙을 포기하고 비행기에 남아야 해요. 또한 보통 뛸 때 낙하산을 2개 정도 구비하고 뛰는데요, 하나는 제 손으로 포장하고, 또 하나의 보조 낙하산은 리거라는 낙하산 정비사가 꼭 포장을 해주죠. 6개월에 한 번씩 점검도 필수고요.” [왼쪽 위 낙하산, 시계방향으로 카메라, 고도계]
상에도 변화가 있었다고 강조했다. 기회가 된다면 남미에 있는 블루홀(blue holes)이라는 바닷속으로 스카이다이빙을 하는 것이 목표라고.
“가끔 저는 이런 생각을 해요. 저희 회사의 직원이 100여 명가량 있는데 사실 그중 제가 제일 일을 많이 안 하거든요. 그런데 돈은 제가 제일 많이 벌죠(웃음). 곰곰이 그 이유를 생각해봤는데 스트레스를 그만큼 많이 받는 대가라고나 할까요. 매일매일 일에 치여 살다가 스카이다이빙을 할 때면 확실히 환기되는 저를 느껴요. 그래서 저는 저희 직원들에게도 꼭 스카이다이빙이 아니더라도 주말에 스쿠버다이빙이나 탁구 등 뭐라도 꼭 자신을 위해 즐기라고 권해요. 다들 힘들 게 사는데 이런 재미라도 있어야 행복하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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