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년 고집 ‘착한 손맛’, 사람을 품다
[인터뷰]박효순 나루가온 에프앤씨 회장

[머니=이윤경 객원기자 ]나루가온은 대종손 며느리의 손맛이 4대째 이어져 내려오는 식품 기업이다. 종갓집에서 귀하게 만들던 전통 음식의 맛과 정신이 나루가온에 오롯이 담겼다.
불혹에 한식당을 열어 20년 만에 매출 100억 원대 기업으로 키우고, 나아가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실천하고 있는 박효순 나루가온 에프앤씨 회장을 만났다.

가온은 한자로 ‘집 가(家)’, ‘따뜻할 온(溫)’을 사용해 ‘집처럼 따뜻한 음식’을 의미한다. 박효순 나루가온 에프앤씨 회장의 집안은 경기도 이천에서 유명한 대종가였다.

1년에 20번이 넘는 제사를 지내다 보니, 365일 내내 집 안에 음식 냄새가 그득했다. 대종손 며느리였던 할머니와 어머니가 정성껏 만든 음식을 가족, 손님들과 맛있게 나눠 먹던 추억이 박 회장의 기억 저편에 자리한다.

한국전쟁 직후 박 회장의 할머니는 국밥집을 운영했다. 먹고살기 어려웠던 시절, 할머니의 종갓집 따뜻한 손맛은 환란을 겪는 사람들을 치유했다. 할머니의 솜씨는 대중의 입맛을 사로잡아 국밥집은 소문난 맛집이 됐다. 그의 고모 또한 1980년대 초 서울 용산구 삼각지에 멸치국수집을 열어 엄청난 성공을 거두었다.

“전통 음식을 만들던 노하우를 비즈니스로 훌륭하게 연결시킨 셈이었죠. 할머니와 고모께서는 장사 수완이 좋으셨어요. 당시 사람들이 멸치국수를 먹겠다고 끝도 보이지 않는 줄을 서곤 했거든요. 그걸 보며 사람들이 좋아해주는 우리 가문의 음식 맛을 오래도록 이어가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죠.”

두 딸을 키우던 주부였던 그는 마흔에 본격적으로 팔소매를 걷어붙였다. 잠룡처럼 웅크리고 있었지만 그에게 음식 사업은 언젠가는 해야 하는 숙명과도 같은 것이었다. 10년 가까이 다양한 분야의 외식 경영을 배운 뒤 주 종목인 한식으로 본격적인 사업을 시작한 것이 2008년이다.
100년 고집 ‘착한 손맛’, 사람을 품다
◆할머니의 전통 손맛으로, 3대가 꾸린 한식 전문점

나루터를 끼고 있는 서울 광진구 광장동에 한식 전문점을 오픈하며 ‘나루가온’이라 이름을 붙였다. 곰국시, 떡국, 만두, 한우우거지곰탕, 불고기, 보쌈 등을 메뉴로 정하고 그 옛날 집에서 만들던 손맛 그대로 구현해냈다. 할머니의 전통 손맛을 어머니와 함께 만들었으니 엄연한 ‘가업’이었다.

“아이들을 다 키우고 난 뒤 ‘뭔가를 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어 벌인 일이었지만 경영은 또 다른 영역이라 막막했어요. 전통 음식으로 사람들에게 행복을 주자는 각오와 뚝심 하나로 일어섰죠. 저렴하게 매입해 놓은 땅이 있었는데, 다행히도 여기에서 음식점을 시작할 수 있었습니다. 월세가 절약되니 식재료에 더 집중할 수 있었어요.”

나루가온은 개업 초기부터 성업했다. 아버지와 어머니가 힘을 보탰다. 아버지는 기계를 들여와 더 쫄깃쫄깃한 식감의 떡과 면을 뽑았고, 어머니는 하루에 800개씩 만두를 빚었다. 동시에 주방의 청결과 음식 맛이 조금이라도 변하는지 끊임없이 감시했다.

규모가 커지고 제조공장이 필요해지면서 2010년 나루가온 에프앤씨라는 법인을 설립했다. 전병이나 만두는 퀄리티가 높다는 소문이 나면서 주문이 쇄도했다. 나루가온 에프앤씨는 직영매장의 식자재 제조 납품 및 유통을 책임지는 컨트롤타워 역할을 하고 있다.

“손맛, 장맛을 표준화하기가 어디 쉽나요. 그럴수록 더더욱 원칙을 분명하게 세웠죠. 영양가와 맛 위주로 든든한 한 끼를 만들자. 한식이 터부시되고 비록 시장이 작더라도 꾸준히 찾아오는 단골들에게 팔자고요. 어릴 때 먹던 맛을 기억하는 고객들은 빠짐없이 찾아오지요.”

그는 “사골국물에 저렴한 진액을 타거나 재료 용량을 줄이면 마진을 많이 남길 수 있지만 돈을 버는 것만큼이나 집안의 100년 손맛을 지키는 일이 중요하기에 맛이 변질되는 걸 가장 경계한다”며 “딸들에게도 이 꼬장꼬장한 자존심을 물려주고 싶다”고 말했다.

나루가온 에프앤씨는 2013년 경기 남양주로 공장을 확장 이전하며 시즈닝, 소스류, 냉동만두 등 식자재 제조 및 납품 환경을 크게 개선했다. 그 덕분에 이듬해 현대백화점에 직영점을 내고 현대백화점 PB상품(자체개발상품)도 함께 만들게 됐다. 박 회장이 총괄하고 있는 한식당 ‘광장동 가온’, ‘나루가온 에프앤씨’, 현대백화점 입점 브랜드 ‘리원’은 꾸준히 수익이 늘어 지난해 연 100억 원 매출을 올렸다.

30대 초반인 두 딸도 박 회장을 적극 돕고 있다. 첫째 딸은 공장에서 원자재 사업을, 둘째 딸은 회사 회계 등 업무를 분담하며 경영인으로 성장해 가고 있다. ‘왕회장’인 어머니와 두 딸 등 3대가 함께해주니 든든하기도 하지만 한편으론 엄마가 아닌 경영인으로서 아이들을 가르치고 혼내는 일이 참 어려웠다. 하루에도 수십 번 냉정과 열정을 오가며 내린 결론이 ‘술에 술 탄 듯 물에 물 탄 듯’ 하면 안 되겠다는 것. 일터에선 철저하게 최고경영자(CEO)로 분해 칼날을 휘두른다.

“3대가 한자리에 모이면 조잘조잘 아이디어가 끊이질 않습니다. 세대 간에 갈등이 생길 땐 대체로 가장 어른인 어머니의 뜻에 따릅니다. 그러면 일이 잘못되지 않지요. 딸들도 하나같이 손끝이 야무지고 음식을 잘해요. 출산한 지 얼마 안 돼 지금은 잠깐 쉬고 있지만 딸들과 함께 가업을 이어나간다는 사실이 참 자랑스러워요.”(웃음)

◆피해자 지원은 내 운명, 가맹사업으로 자립 돕고파

박 회장이 음식 못잖게 애정을 쏟는 영역이 피해자 지원이다. 그는 2011년 3월 국내 최초의 피해자 지원 민간기구 코바(KOVA, 한국피해자지원협회)를 창립해 주목을 받았다. 민간자격 인증을 받은 피해상담사 양성 과정을 운영, 매년 범죄 피해자 200~300명에게 상담과 금전적 지원을 해 오고 있다. 코바는 현재 전문 변호사, 의사, 사업가, 교수진 등 100여 명의 순수 민간인들이 참여해 피해자들에게 의료·법률 지원, 생활비 지원, 등록금 면제 등 일상에 필요한 다양한 도움을 준다.

십수 년 전, 동부지방검찰청 피해자지원센터에서 민·형사 조정위원으로 활동하며 많은 범죄피해 여성과 장애인들을 도운 것이 시작이었다. 당시 그는 국내에서 가장 많은 형사조정 건수를 달성해 검찰총장상과 동부지방법원의 행정처장상을 수상할 정도로 조정위원 일을 잘 소화했다.

그때 알게 된 피해자들의 실상은 참담했다. 개인적으로 상담해 온 한 아동 성폭행 살인사건의 피해자 엄마는 딸을 잃은 충격에 휩싸였고,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보조금으로 받은 수천만 원을 사기로 날렸다. 남편은 알코올중독에 빠지는 등 끝없는 고통을 겪는 모습을 옆에서 지켜봤다. 피해자 가정의 아이는 마음의 상처를 제때 치유하지 못해 범죄의 가해자로 변하거나 좌절로 삶을 포기하는 등 2차 피해도 막심했다.

박 회장은 전문가들과 함께 민간 기구를 창설해 정신적, 금전적 지원을 했지만 한계가 있음을 느꼈다. 그들이 스스로 일어설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이 절실했다. 그는 그 해답을 프랜차이즈 사업에서 찾았다. 무상으로 나루가온 가맹점을 열 수 있게 지원해주는 것이었다.

“피해자들을 가난에서 벗어나게 해주고 싶고, 그럴 수 있는 방법은 자립을 이끌어주는 길밖에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어떨 땐 사업이 너무 힘들어서 내려놓고 싶다가도 이 사명을 떠올리면 포기할 수가 없어요. 그 첫 대상이 10년 전 안양 초등생 유괴 살해 사건의 피해자인 혜진이 엄마가 될 거예요. 1호 탄생을 위해 철저히 준비하고 있습니다.”

가업이 이어져야 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박 회장은 나루가온이 ‘숙명’이라면, 코바는 ‘운명’이라고 말했다. 선조들의 손맛으로 의미 있는 일을 할 수 있게 됐으니 할머니의 정신을 이어나가는 셈이다.

지난해 나루가온 에프앤씨는 명동성당과 삼성동 코엑스 스타필드 내 신규 직영점을 오픈했다. 중국과 베트남에서도 가맹사업 러브콜이 이어지는 등 불경기 속에서도 승승장구하고 있다. 한식업계가 위축되는 가운데서도 제대로 만든 전통 우리 음식의 수요는 갈수록 늘고 있는 것이다.

“제 비전은 두 가지예요. 저희 집안의 손맛을 후대에 계속 남기는 일과 가맹사업을 통해 피해자를 지원하며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실천하는 겁니다. ‘착한 손맛’을 딸들이 계속 이어가준다면 더할 나위 없겠죠.”(웃음)
100년 고집 ‘착한 손맛’, 사람을 품다
박효순 회장은…
1960년생으로 경기대 외식조리학과 졸업하고, 현재 세종대 MBA 재학 중이다.
2010년 나루가온 에프앤씨를 창업하여 현재 광장동가온, 나루가온 에프앤씨 대표이사로 재직 중이다.
서울 동부지방법원 민사 조정위원 및 서울동부지방검찰청 형사 심의위원 및 형사 조정위원으로 활동하고 있으며, 한국피해자지원협회 수석부회장도 맡고 있다.

이윤경 객원기자 | 사진 이승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