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 여성, 性·인권 왜곡… 가치 재발견돼야”
Hot People [한경 머니 = 배현정 기자 | 사진 이승재 기자] 한국 사회에서 장애 여성으로 살아간다는 것은? 김효진 장애여성네트워크 대표는 “가정과 사회에서 정체성을 부정당하는 ‘장애 여성의 가치’가 재발견돼야 한다”고 말한다.

장애 여성은 곧잘 무성적(無性的) 존재로 여겨진다. 여성의 범주에서 제외되곤 한다. 김효진 장애여성네트워크 대표가 지난해 12월 세계인권선언 69주년을 기념해 열린 ‘2017 대한민국 인권상’ 국민포장을 수상했다. 장애와 여성이라는 다중 차별 해소를 위해 법률 제·개정, 교육 운동 등에 앞장서 온 공로다.

김 대표는 “기쁘면서도 착잡하다”는 말로 수상 소감을 대신했다. “장애 여성과 관련한 활동은 정말 열심히 했어요. 그런데 장애 여성들의 삶 전반에 눈에 띄는 변화가 많지 않네요. 그런 차원에서는 착잡하죠.” 장애 여성의 인권에 대한 우리 사회의 낮은 관심이 다시 환기되는 계기가 되길 원한다.

‘性’이 사라진, 장애 여성의 일생

김 대표는 위로 내리 딸만 넷에다 막내로 아들이 하나뿐인 딸 부잣집 셋째였다. 다른 딸들과 달리 그녀는 세 살 때 앓은 소아마비로 장애가 있다. 엄마가 어쩌다 새 옷을 사오는 날이면, 이상하게 옷 보따리에 그녀의 몸에 맞는 것은 없었다. 어느 날, 엄마의 넋두리를 우연히 훔쳐 듣고서야 비로소 알게 됐다. “몸도 성치 않은 애한테 예쁜 옷을 입히면 뭐하겠어요?” 그녀는 예쁘게 꾸며줄 필요가 없는 딸이었던 것이다.

“이담에 커서 엄마, 아빠랑 살자.” 어려서부터 수도 없이 이런 말을 듣다 보니, 나중에 커서 어떤 사람을 만나 살아야겠다는 꿈을 꾸기도 어려웠다. 언니들과 여동생이 언제나 “이 다음에 시집가면…”이라는 말을 들었던 것과는 달랐다. 막연히 ‘난 결혼할 수 없겠구나’ 하고 생각했다.

마흔 살이 넘어 어렵게 결혼을 결심하고, 가족들에게 이야기를 꺼냈건만 반응은 차가웠다. “나는 네가 결혼하지 않길 바랐다.” 엄마는 그녀의 결혼 준비 기간 체중이 크게 줄어들 정도로 속앓이를 했다. “내 존재(여성성)가 부정당한 것 같아 서글펐습니다.”

어떤 이들은 “꼭 결혼을 해야 하나?”라고 묻기도 한다. 하지만 굳이 결혼의 필요성을 느끼지 않아 안 하는 것과 처음부터 결혼을 못하는 존재로 길러지는 것은 하늘과 땅의 차이다. 현재 김 대표는 비슷한 장애가 있는 배우자 사이에 중학생인 아들을 뒀다.

“결혼생활이 행복하냐고요? 금기를 깼다는 만족감이 큽니다. 안 해봤으면 억울했을 겁니다.”

가슴 아픈 건, 오늘날 장애 여아에 대한 사회의 인식도 별반 다르지 않다는 것. 장애인의 교육 등 삶의 수준이 높아지고 있다지만, 유독 장애 여성에 대한 인식은 과거에 갇혀 있는 듯하다.

“요즘 젊은 세대들의 자아정체성은 꽤 높잖아요. 하지만 장애 여아들은 아닌 것 같아요. 장애 여아들의 정체성이 부정되면서 양육되는 건 과거와 크게 차이가 없습니다.”

자폐 장애인의 경우 결혼 비율이 거의 제로에 가깝다고 한다. 과연 그것이 자폐 장애인들 스스로 선택의 결과일까? 김 대표는 “장애 아동 보호라는 명목으로, 선택 없는 삶으로 키워진 것은 아닐까”라고 반문했다.

차별투성이인 장애인의 삶 가운데도 ‘성(性)’ 인권은 특히 왜곡된 분야 중 하나다. 올바른 성 인식 및 성 교육이 절실하다. “장애 여성에 대한 성폭력은 일반 여성과 비교할 수 없이 높습니다. 안타깝게도 장애인 피해자도 많지만 장애인 가해자도 많아요. 올바르게 교육 받지 못하고, 무조건 억제만 해서 건강하게 해소하는 방법을 모르는 것이죠.”

김 대표가 이끄는 장애여성네트워크는 장애 여성이 스스로의 삶의 주체가 되도록 재발견하는 것이 목표다. 장애 여성의 인권 교육과 성 교육을 위한 교재를 개발하고, 장애인들이 자기 목소리를 낼 수 있도록 지원하는 조력가를 양성해 파견하는 사업을 펼치고 있다.

“차별을 조금씩이라도 개선하기 위해서는 당사자들이 용기를 내서 사회를 향해 얘기하는 것이 첫걸음입니다. 그래야 많은 이들이 공감하고, 변화를 끌어내기 위한 노력이 시작될 수 있습니다.” 김 대표는 “향후 장애 여성의 인권 교육과 성 교육을 지원하는 ‘성인권진흥원’이 설립돼야 한다”고 말했다.

장애와 여성이라는 차별의 굴레

김 대표는 대학교와 대학원 시절, 줄곧 수석을 놓치지 않았다. 공부를 열심히 해야 자립할 수 있다는 믿음 때문이었다. 그러나 ‘여성’과 ‘장애’ 차별의 굴레 속에서 취업의 문턱은 상상 이상이었다. 그녀는 오랫동안 고배를 마시고 또 마셨다. 10여 년 동안 아르바이트 생활을 견딘 끝에야 남들이 부러워하는 공무원이 될 수 있었다. 하지만 4년 만에 안정된 자리를 박차고 나왔다. 장애운동에 눈을 떴기 때문이다.

“한 장애인 단체를 통해 장애인권이라는 개념을 알게 됐어요. 그때서야 단순히 ‘성차별’로는 제대로 해소되지 않던 의문이 풀렸어요. 제 삶에서 안개가 걷히는 것 같았어요.”

지난해 국가인권위가 공개한 ‘2016 연간보고서’를 살펴보면, 연간 차별 행위 진정사건 2407건 중 장애 관련 진정 건이 1638건(68.05%)으로 가장 많은 것으로 나타났다. 점진적으로 복지 선진국을 향해 나아가고 있지만, 장애인에 대한 인권 존중은 여전히 갈 길이 멀다는 것을 보여준다.

김 대표는 1999년 장애운동에 뛰어든 후 20년 동안 장애 여성의 인권 향상을 위한 운동에 매진해 왔다. “인권은 사람을 사람답게 보는 데서 출발하죠. 부분적인 복지가 확대돼도 인권이 증진되기는 어려워요. 각성이 있어야죠. 복지가 최소한의 삶을 위한 처방이라면, 인권은 인간에 대한 시각을 바꾸는 각고의 노력이 뒷받침돼야 합니다.”

김효진 대표는…
단국대 국어국문학과를 졸업하고 같은 대학원에서 아동문학을 전공했다. <국토연구원> 출판팀에서 월간지 편집자로 일하던 중 장애운동을 시작해 현재까지 인권운동을 하고 있다. 계간 <보이스 편집장>, <장애인권센터> 이사를 거쳐 현재는 장애여성네트워크와 활짝미래연대 대표로 활동 중이다. 집필 도서로는 <오늘도 난, 외출한다>, <엄마는 무엇으로 사는가>, <모든 몸은 평등하다>, 장편 동화로는 <깡이의 꽃밭>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