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디터 노트]아버지를 위한 변명
[한경 머니=한용섭 편집장] 어쩌다 수제 초콜릿 하나 맛보라고 건네받습니다. 그러면 그 이후 제 행동은 이렇습니다. 우선 휴대전화로 사진을 찍어 딸에게 예고를 합니다. “아빠가 맛있는 초콜릿 하나 가져갈게”라고. 그리고 행여 초콜릿이 녹을까 봐 포장지로 다시 곱게 싼 뒤 퇴근할 때 사람들의 숲을 헤치고 집으로 달려갑니다.

대수롭지 않다는 듯 무심히 초콜릿을 딸에게 건네고, 살짝 초콜릿을 베어 문 딸을 곁눈질로 지켜보며 침을 꼴깍 삼킵니다. 다소 유난스러운 아버지의 행동처럼 보이지만 정도의 차이지 모든 아버지의 마음이 비슷하지 않을까요. 단지 표현 방법이 어색하고 서툴다는 것이 문제죠.

결혼 전에 사진을 배운 적이 있습니다. 한겨레신문 선임 사진기자인 강재훈 선생님에게요. 당시 첫 수업 때 봤던 슬라이드 사진은 지금까지도 잔잔한 감동으로 남아 있습니다. 토목공학자인 고(故) 전몽각 선생이 자신의 딸 윤미를 담은 사진집 <윤미네집>이었습니다. 딸이 태어나서부터 시집가기 전까지 소소한 일상들을 곁에서 담아낸 사랑스러운 사진들이었죠.

잘은 모르지만 고 전몽각 선생도 속에 있는 감정을 겉으로 잘 드러내지 않던 그 시절의 가장이었을 겁니다. 또 당시는 가족들과 함께 변변한 외식이나 여행을 생각도 못해 봤겠죠. 성공한 사회 리더로서 가족들에게 많은 시간을 할애하지 못해 미안했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사진에 담기지는 않았지만 카메라 렌즈 뒤에서 사랑스러운 딸의 모습을 찍고 있을 아버지의 모습은 있는 그대로 제 마음에 투영됐습니다.

저도 사진을 배운 뒤 가족들을 열심히 카메라에 담고 있습니다. 비록 변변한 가족사진 한 장 남기지는 못했어도 가족들의 눈망울에는 카메라를 들고 서 있는 제 모습이 맺혀 있지 않았을까요. 가족만큼 포근한 위로가 또 있을까 생각합니다. 저에겐 일상이라는 사막에 숨어 있는 오아시스 같은 존재죠. 다만 제가 투박하고 소극적인 감정 표현밖에 할 줄 모르는 이유는 아버지의 아버지, 또 그 아버지에게서 전이된 다소 못난 유전자 탓이라고 핑계를 대봅니다.

한경 머니는 2월호 빅 스토리 주제로 ‘달콤 기호학 초콜릿’을 잡았습니다. 누군가에겐 단순한 디저트일 뿐이지만 이를 건네받은 사람에게는 사랑과 위로의 정표가 될 수 있는 초콜릿. 1974년 국내에 첫선을 보인 초코파이가 한국과 중국은 각각 정(情)과 인(仁), 베트남에서는 현지어로 정(情)을 뜻하는 ‘띤(tinh)’이라는 이름을 달고 팔리는 것도 초콜릿 하면 연상되는 상징성을 잘 보여주는 것이겠죠.

초콜릿을 먹으면 기분이 좋아지는 데는 다 이유가 있다고 합니다. 초콜릿에 함유돼 있는 페닐에틸아민은 도파민을 분비시켜 마치 사랑에 빠졌을 때 느낌처럼 맥박을 뛰게 하고, 초콜릿은 오피오이드라는 물질의 생성을 자극하는데 이를 통해 고통이 덜해지며 기분이 좋아지는 느낌이 들게 된다고 하니 이만큼 좋은 위로의 디저트는 없을 듯도 싶네요.

더불어 이런 생각도 해봅니다. 저를 포함한 이 시대의 아버지들. 달콤한 전성기를 구가하든, 씁쓸한 좌절을 겪고 있든 가족을 위해 앞만 보고 달려온 아버지들에게도 달달한 위로가 필요하지 않을까요. 달콤 쌉싸래한 초콜릿을 입 속에서 천천히 녹여 먹으세요. 이제는 당신도 누군가에게서 위로를 받을 시기가 됐기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