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ney & Team KB국민은행 신탁부
[한경 머니 = 한용섭 기자] 저금리·저성장 국면이 지속되면서 ‘묻지마 식 투자’는 힘을 잃고, 안정적인 자산관리(WM)를 바라는 고객의 니즈는 더욱 다양해지고 있다. 정형화된 상품 틀에서 벗어나 고객 맞춤형 신탁 상품을 잇달아 출시한 KB국민은행 신탁부의 ‘무한도전’이 의미 있게 보이는 이유다.‘믿고 맡긴다’는 뜻의 신탁(信託). 고객이 금융사를 방문해 계약을 맺고 금전이나 부동산 등 재산을 위탁하면 이를 관리해주는 서비스가 바로 신탁이다. 지금까지 은행권의 신탁 상품은 주로 자산가들의 대기성 자금을 운용해 수익을 내주는 금전신탁이 주류를 이뤘다.
하지만 자산가들은 저금리 상황에서 고수익을 기대하기보다는 맞춤형 자산관리 쪽으로 시선을 돌리기 시작했고, 신탁계약을 통해 다양한 상품을 만들고 이를 통해 맞춤형 종합자산관리 서비스를 받을 수 있는 신탁의 매력이 부각된 것도 이 때문이다.
최근 KB금융그룹은 자산관리 중심의 유니버설뱅킹(universal banking)으로 재편하겠다며 의욕을 불태우고 있다. 이를 위해 WM그룹 조직을 재편하고, 지난 10월에는 ‘KB 부동산&상속/증여센터’를 오픈했다. 여기에 더해 신탁 부문에서 시장점유율(MS) 27.1%로 수년간 부동의 1위를 차지하고 있는 신탁부도 2015년 1월 상품개발팀을 신설하는 등 전열을 가다듬었다.
특히 신탁부는 WM 고객들의 가장 큰 니즈 중 하나인 상속·증여 난제를 풀어내기 위해 고객들의 다양한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있다.
◆금융권 최초 성년후견신탁 내놔
나이는 점점 들어가는데 자식들에 대한 유산 상속은 어떻게 해야 하나요? 가족처럼 키우고 있는 반려동물은 내가 죽으면 누가 키워주지요? 은퇴 시기는 점점 다가오는데 저금리 상황에서 안정적인 투자처는 없을까요?
이는 KB국민은행의 신탁부 직원들이 은행 창구에 마련된 상품을 단순히 안내하는 대신 고객들이 갖고 있는 고민들을 함께 공유하며 직접 상품 개발까지 해보자는 생각을 한 이유들이다.
사실 미국, 일본, 호주 등 선진국에서는 신탁업이 종합자산관리 서비스로 각광을 받은 지 오래다. 다양한 자산관리 서비스를 구현할 수 있는 신탁 상품이 고령화와 초저금리 시대의 대안으로 떠오르고 있는 것.
공승찬 신탁부 상품개발팀장은 “국내의 경우 증권사나 자산운용사의 상품을 가지고 와서 신탁을 씌워서 판매를 하는데 은행 자체적으로 신상품에 대한 고민을 계속했다”며 “고객들의 니즈가 워낙 다양해지다 보니 고령화 등 우리나라 인구구조 변화, 반려동물의 증가 등 일상생활에서 일어날 수 있는 것들에 대해 고객 리서치를 진행하고 직원들의 아이디어 구상 등을 통해 상품화를 하게 됐다”고 소개했다.
우선 WM 고객 상당수가 자식세대에 대한 증여 고민이 많다는 점을 착안해 지난 8월 선보인 상품이 바로 ‘KB골든라이프 스마트 증여신탁’이다. 증여신탁은 부모 명의로 일시에 목돈을 맡기면 자산이 국공채나 지방채 등 신용도가 우수한 채권으로 운용되면서 자녀 명의 계좌로 6개월에 한 번씩 원금과 이자가 납입되는 상품이다.
특히 증여신탁은 매년 자녀에게 지급되는 원금과 이자를 10% 할인해 재산가액을 계산하기 때문에 10년간 계약을 유지할 경우 40% 이상 증여세 절감 효과가 있다. 바로 미래에 정기적으로 발생할 현금흐름에 할인율을 적용해 현재 가치로 평가하는 정기금 평가 효과 때문이다.
금융권 최초로 지난 10월 선보인 ‘KB 성년후견제도 지원신탁’은 고객들이 치매 발병 시 가족들이 지게 될 부담을 걱정하는 모습을 보며 지난해 말부터 연구·개발에 돌입해 탄생한 상품이다.
신탁부는 우선 고령층의 미래 불안요소에는 어떤 것들이 있는지에 대한 검토부터 시작했다. 자료 조사를 통해 65세 이상 전체 노인인구 중 경도인지장애자(치매는 아니지만 정상인보다 다소 인지 상태가 떨어진 상태로 6년 내 약 80%가 치매로 전환)가 현재 192만 명, 2030년에는 352만 명으로 급증한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KB 성년후견제도 지원신탁’은 고객이 인지 상태가 양호할 때 향후 치매 발병 등의 후견이 필요할 것을 대비해 맺는 신탁계약이다. 이를 통해 금전을 맡기면 추후 치매 발병 등의 사유로 후견이 개시되면 후견인이 치매 치료 및 요양 자금을 은행으로부터 정기적으로 지급받아 고객을 위해 사용하게 된다.
KB국민은행은 지난 8월부터 은행 고객이 영업점에 치매 관련 상담을 신청하면 은행 소속 변호사 등을 통해 성년후견제도 이용에 관해 상담을 받을 수 있는 ‘KB골든라이프 치매안심 상담 서비스’도 함께 시행하고 있다.
같은 달에 국내 최초로 내놓은 ‘KB 펫신탁’ 상품은 신탁부 직원들의 아이디어 회의에서 탄생했다. 2014년 말 일본의 최대 신탁은행인 미쓰이스미토모신탁은행 등 4곳을 직접 방문해 반려동물과 관련된 신탁 상품을 둘러본 경험이 큰 도움이 됐다는 게 신탁부 직원들의 전언. 때마침 정부에서 발표한 신산업에 반려동물이 선정됐다는 소식은 촉매제가 됐다.
이후 영업점 직원들이 참여하는 신탁 영업자문단 회의를 통해 고객 사후 반려동물의 보호·관리라는 콘셉트로 구체화됐고, 이를 바탕으로 상품 구조가 설계됐다. 이 과정에서 아직 고객 저변이 부족해 상품성에 의문을 제기하는 목소리도 나왔지만, 고령화 사회의 메가트렌드에 선제적으로 대응하자는 데 직원들의 의지가 모아졌다.
이렇게 탄생한 ‘KB 펫신탁’은 고객이 은행에 자금을 맡기고 본인 사후에 반려동물을 돌봐줄 새로운 부양자를 미리 지정하면, 은행은 고객 사망 후 반려동물의 보호·관리에 필요한 자금을 반려동물 부양자에게 일시에 지급하는 신탁 상품이다.
반려동물이 막대한 유산을 상속받는 미국이나 독일과는 달리 우리나라는 살아 있는 사람만이 재산권을 향유할 수 있기 때문에 반려동물 부양자를 신탁의 수익자로 정했다. 아직까지 ‘KB 펫신탁’의 대상 반려동물은 동물보호법상 동물 등록이 가능한 개(犬)와 고양이로 한정돼 있다.
구동록 신탁부 과장은 “60대 후반의 한 고객은 자녀가 모두 해외에 거주 중인데 본인에게 무슨 일이 생길 경우 홀로 남겨질 가족 같은 반려견이 항상 걱정이었다”며 “결국 상속 설계를 통해 펫신탁에 가입한 후 신탁부로 감사의 마음을 전해 왔는데 그동안의 고생을 잊을 만큼 큰 힘을 얻을 수 있었다”고 전했다. ◆라이프 사이클 따른 신탁상품 추가 출시
KB국민은행은 지난 7월 말 기준으로 은행권 최초로 개인 고객 3000만 명을 돌파했다. 결국 이러한 토대가 고객의 다양한 니즈에 민감하게 반응한 원동력이 된 셈이다.
국내 금전신탁 분야에서 부동의 1위를 지켜온 저력은 그만큼 상품 개발 능력을 보유했다는 방증이기도 하다. 현재 은행의 신탁 상품은 연금신탁이나 금전신탁이 주류를 이루는데 주로 증권사나 자산운용사의 상장지수펀드(ETF), 부동산 자산유동화증권(ABS) 등의 상품을 가져와 신탁 상품으로 만들어 운영하는 식이다.
KB국민은행의 경우 시중은행 중 신탁수수료의 비중이 가장 높은데, 지난해 1조1564억 원의 수수료 이익 중 약 21%(2413억 원)를 신탁수수료로 벌어들였을 정도다.
KB국민은행이 지난 10월 말 은행권 최초로 상장지수채권(ETN)을 투자할 수 있는 ‘ETN 신탁’을 내놓을 수 있었던 것도 수년간 ETF 등을 운영해 온 노하우를 믿었기 때문이다. ETN 신탁은 ETF로 상품화하지 못했던 해외 주식, 채권, 원자재 등 다양한 지수를 상품화할 수 있는 특징이 있다. 단, 주식 수가 적기 때문에 변동성 관리에 어려움을 겪을 수 있다.
공승찬 팀장은 “아무래도 KB국민은행이 시중은행 중 영업 네트워크가 가장 넓고 고객층도 다양하다 보니까 고객의 요구사항에 대해 발 빠르게 대응해 신탁 상품을 개발할 수 있었던 것 같다”며 “다른 시중은행의 경우 ETF도 활성화되지 못한 곳이 상당수인데 ETN 신탁을 출시할 수 있었던 것은 그동안 다양한 노하우를 축적하며 자신감을 얻었기 때문이다”라고 밝혔다.
조민희 부동산/채권팀장은 “신탁부가 다양한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 및 유동화 업무를 수행해 축적한 경험은 고객의 부동산 자산 관리에 큰 도움이 될 것으로 판단된다”며 “특히 국내 자산가의 자산이 부동산에 집중돼 있는 현실에서 부동산 관리가 상속 설계의 핵심이 될 수 있다”고 강조했다.
고객 니즈를 한발 앞서 신탁 상품으로 현실화시키기 위한 퍼스트 무버(first mover)로서의 도전은 현재 진행형이다. 이미 상품개발팀에 대한 인력 보강이 이뤄졌으며, 로스쿨 출신의 최미진 변호사 등 전문 인력에 대한 수혈도 과감히 이뤄졌다. 목표는 분명하다. 신탁 상품을 종합적인 자산관리의 핵심 툴(tool)로 키워내는 것이다.
상품 개발에 따른 각종 규제와 법체계 개선은 퍼스트 무버의 숙명이다. 신탁부의 최미진 변호사는 “고객들은 정형화된 상품이 아닌 종합적인 자산관리를 원하는데 사실 법률적인 부분이 그걸 따라가지 못할 때가 많다”며 “법률적인 규제나 제도를 바꾸는 역할도 함께 해 나갈 것이다”라고 말했다.
내년에 내놓을 신상품에 대해서는 다소 말을 아꼈지만 방향은 분명했다. 구동록 과장은 “내년에도 우량한 해외 자산을 포함하는 신탁투자 상품에 대한 고민과 함께 고객의 라이프사이클에서 꼭 필요한 신탁 상품들을 추가적으로 내놓을 예정이다”라고 귀띔했다. 한용섭 기자 poem1970@hankyung.com | 사진 서범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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