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festyle Design] 자원봉사와 NPO
[한경 머니 = 지철원 트러스톤자산운용 연금포럼 연구위원]

일반적으로 자원봉사(volunteer)는 무보수를 원칙으로 하는 경우가 대부분인 데 비해 비영리조직(NPO) 활동은 약간의 보수를 받는 경우를 포함한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다. 자신의 능력이면 적정 급여가 400만 원인데 200만 원만 받고 일을 한다면 그 차액인 200만 원만큼은 기부하겠다는 의미가 된다. 무보수인 자원봉사로는 지속적인 사회 기여 활동을 기대하기 힘든 데 비해 NPO는 수준 높은 지원자들이 장기간 활동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한다.

근래 미국에서는 비영리조직(Non-Profit Organization, NPO)의 사회적 지위도 높아져 정부, 민간과 더불어 제3의 경제주체로 인식되고 있다. 이러다 보니 정년퇴직자뿐만 아니라 젊은이들의 NPO 진출도 늘고 있다. 이웃나라 일본에서도 정부의 실패, 인구의 고령화, 정보혁명 등의 영향으로 NPO에 대한 관심이 점점 커지고 있다.

NPO가 관심을 끌게 된 배경으로 고령화를 빼놓을 수 없다. 통계청 장기 추계에 따르면 1960년생 쥐띠 중 2~3명 중 1명꼴로 88세를 넘길 것으로 보인다. 그야말로 인생 100세 시대를 눈앞에 두고 있는 것이다. 노후 대책이라고 하면 우선 재산을 많이 쌓아 놓는 것을 생각하기 쉽다. 하지만 조금만 깊이 생각해보면 돈 말고도 중요한 것이 여럿 있다. 먼저 건강이다. 100세까지 살면서 병석에 누워 지내야 한다면 그보다 불행한 일은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건강 못지않게 중요한 것은 일거리다.

간과하기 쉬우나 은퇴 후 무슨 일을 하면서 살아가느냐 하는 문제는 돈이나 건강 못지않게 중요하다. 60세에 퇴직해 현재 한국인의 기대수명인 82.4세까지만 산다고 해도 22.4년이다. 자는 시간, 먹는 시간, 화장실 가는 시간 등을 다 빼더라도 하루에 11시간가량이 남게 된다. 매일 11시간씩 22.4년이면 약 9만 시간이 된다. 우리나라 직장인의 연평균 근로시간이 2092시간임을 고려하면 정년 후에 현역 43년만큼의 시간이 남아 있는 셈이다.

100세까지 생존한다면 무려 77년 세월에 해당하는 시간이다. 아무것도 하지 않고 지내기엔 끔찍한 세월임에 틀림없다. 정년 후 생활 대책이 미흡하다고 생각될 때는 체면을 버리고 생활비를 충당할 수 있는 일자리를 구하는 것이 옳다. 하지만 생활비를 크게 걱정 안 해도 되는 처지라면 봉사활동을 통해 현역 시절 찾지 못했던 인생의 의미를 후반 인생에서 실현하는 길을 선택할 수도 있다. NPO 활동은 그 한 방편이 될 수도 있다.

의료·복지·교육 등 다양한 NPO 사업
미국 로스앤젤레스(LA)에 기반을 둔 더웰미션(The Well Mission)이라는 노숙자구호단체는 1999년에 한국인 여성 목회자가 중심이 돼 설립됐다. 1990년대부터 크게 늘어난 노숙자들에게 식사와 생필품 등을 제공하면서 그들이 자립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일을 하고 있다. 지역 기업이나 유력 인사들을 찾아가 기부금이나 물품 등을 기부 받기도 하고 노숙자들에게 직접 도시락을 전달하는 일도 한다.

봉사자들의 경험에 의하면, 처음에는 노숙자들을 대하는 게 겁나기도 하고 불결하게 느껴지지만 시간이 지나면 그들과 스스럼없이 어깨동무를 할 정도로 친숙해진다. 일본은 1995년 발생한 고베 대지진의 피해 복구 활동을 계기로 NPO의 중요성을 인식하기 시작했다. 정부가 미처 하지 못하는 구호활동을 자발적인 NPO 활동으로 메꿀 수 있었던 것이다.

급기야 1998년 NPO법(특정 비영리활동 촉진법)을 제정해 NPO의 설립을 촉진하는 데 상당수의 퇴직자들이 여기에서 자원봉사활동을 하게 된다. 퇴직 후 노인복지사 자격증을 딴 후 개호 관련 NPO에서 새로운 도전을 하는 경우도 있지만, 경력을 살려 투자교육 NPO에서 재무상담사로 일하는 증권업계 출신 시니어도 있다.

미국의 경우 현재 NPO에 근무하고 있는 인구가 전 취업인구의 10%에 이른다고 한다. 200만 개 정도의 NPO가 있으며 절반이 의료·복지 관련, 30% 정도는 각종 교육 관련, 나머지 20%는 기타 다양한 사업을 하고 있다. 일본의 경우에는 그 비율이 4% 정도에 지나지 않지만 앞으로 급속하게 늘어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NPO 활동을 할 때 적당히 일해도 성과에 대한 평가를 받는 일은 전혀 없다고 생각하면 큰 오산이다. 비영리단체인 뉴욕시니어재단(New York Foundation for Senior Citizens)은 뉴욕의 시니어가 가정 및 지역사회에서 건강하고 안전하게 생산적이고 품위 있는 삶을 즐길 수 있도록 돕는 목적으로 1968년 설립됐다.

뉴욕 주 고령화 관련 부서, 주지사, 뉴욕주의회, 뉴욕시의회 등으로부터 활동에 필요한 자금이 나오는데 연간 비용편익분석을 통해 자체적 활동이 간호 시설과 노숙자 보호 시설에 입소하는 비율을 낮춤으로써 뉴욕시와 뉴욕 주의 예산을 절감했다는 것을 입증해야만 계속 지원을 받을 수 있다. 기업이 최고의 경영 목표를 이익 추구에 두면서도 사회공헌 등을 외면할 수 없는 것처럼 NPO도 최근 사회공헌을 우선순위에 두면서 고용 창출과 이익 확보를 추구하는 방향으로 진화하고 있다.

우리나라도 앞으로 선진 외국처럼 NPO 설립 움직임이 활발하게 일어날 것이다. 문제는 NPO 활동도 현역 시절부터 차근차근 계획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이다. 노인 하나가 죽으면 도서관 하나가 불타는 것과 같다는 아프리카 속담이 있다. 현역 시절에 쌓은 경험과 지식을 사회에 환원하는 NPO 활동을 통해 기나긴 후반 인생을 가치 있게 보낼 방안을 고민해보면 어떨까.

지철원 트러스톤자산운용 연금포럼 연구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