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영 자질의 삼성, 윤리경영의 LG. 한경 머니의 2016년 오너리스크 평가(10월 4~7일)에서 부문별 평가 점수만 놓고 보면 두 기업의 색깔은 이처럼 선명하게 갈린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은 수익 창출 측면에서 몰표를 받으며 리더십을 인정받았다면, 구본무 LG그룹 회장은 장기간 그룹을 안정적으로 이끌어 온 소유구조의 투명성과 책임경영에 좀 더 초점이 맞춰져 고득점을 받은 것이다.
이재용 부회장의 경영 자질은 시장에서 서서히 인정을 받고 있는 분위기다. 지난 10월 4일 여론조사 전문기관 리얼미터가 실시한 월간 10대 그룹 총수 선호도 조사(표본오차 95%, 신뢰수준 ±3.0%포인트)에서 이재용 부회장은 19.6%의 선호도를 보이며 1년 전 조사 때와 같이 1위를 지켰다.
반면 구본무 LG그룹 회장은 온화의 리더십이 강점이다. 이번 평가에서 지배구조의 투명성과 책임성, 윤리경영 평가에서 모두 1위에 오른 대목은 내부 갈등 없이 조직을 단단하게 키워 온 그의 ‘뚝심경영’의 진가를 대변한다.
반면 최근 경영난을 겪고 있는 한진해운의 구조조정 과정에서 우유부단한 행보로 실망감을 준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은 경영 전문성과 자질 평가에서 최악의 낙제점을 받았고, 형제간 경영권 분쟁과 경영비리 의혹 수사로 만신창이가 된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은 지배구조의 투명성과 책임성 평가에서 가장 낮은 평가를 받았다. ◆삼성, 경영 전문성 1위, 한진은 낙제점
삼성은 경영 전문성과 자질 평가 항목에서 유일하게 평점 4점대(5점 환산 4.29점)를 넘었다. 세부적으로 비전 제시(4.05점), 위기관리 능력(4.25점), 수익 창출 능력(4.56점)에서 4점대 이상의 평점을 기록하며, 경영 전문성 부문만 놓고 봤을 때 다른 기업들과 확실한 차별을 이뤘다.
사실 삼성전자의 2분기 실적이 나올 때까지만 해도 수익성에서는 경쟁자 없는 질주를 즐기기에 충분했다. 2분기 4조3200억 원의 영업이익을 기록하며 2014년 2분기 이후 최고 실적을 보여준 것.
하지만 야심차게 시장에 내놓은 갤럭시 노트7의 발화 사고가 터지며 제품 단종이라는 극약처방을 내놓자 시장은 술렁거리기 시작했다. 앞서 진행한 리콜 등의 여파로 2조 원 가까운 수익 감소가 예상됐기 때문이다. 더구나 지난 10월 10일 서울지방국세청이 2011년 이후 5년 만에 정기 세무조사를 시작하며, 불안 심리를 더욱 자극하고 있다.
일부에서는 과거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이 휴대전화 애니콜에서 불량 문제가 발생하자 15만 대를 불태웠던 일화를 상기시키며, 전격적인 갤럭시 노트7 단종 결정이 중장기적으로는 이재용식 위기관리 경영의 시험무대가 될 것으로 보고 있다.
임시주주총회를 통해 사내이사로 선임된 이재용 부회장이 본격적인 책임경영을 펼치며 삼성그룹의 지배구조 개편 또한 급물살을 타지 않겠느냐는 분석이다.
지난해 8월 특별사면으로 경영에 복귀한 최태원 SK그룹 회장은 지난 2년 7개월간의 경영 공백을 메우려는 듯 최근 거침없는 경영 행보를 보여주고 있다. 이를 반영하듯 SK그룹은 경영 전문성 부문에서 2위(5점 만점 환산 3.79점)에 오르며 상당한 약진을 이뤄냈다.
SK그룹은 최 회장이 복귀한 지난해 그룹 당기순이익 13조6080억 원을 기록하며 사상 최대 실적을 냈다. 또 재계 순위에서도 LG를 제치고 3위에 오르는 등 ‘오너의 귀환’ 효과를 톡톡히 누렸다.
삼성과 함께 재계 투톱으로 불리는 현대자동차는 경영 전문성 부문에서 3.75점(5점 만점 환산)을 거두며 3위에 올랐다. 올해 79세인 정몽구 현대자동차그룹 회장은 최근 석 달 새 러시아, 체코, 슬로바키아, 북미, 중국 등을 잇달아 방문하는 등 빡빡한 일정을 소화하며, 글로벌 공략에 공을 기울이고 있다. 노조와의 갈등, 실적 악화 등 난제들을 풀기 위해 적극적인 해외 공략으로 통해 답을 구하고 있는 것이다.
경영 전문성 부문에서 4위와 5위를 차지한 곳은 아모레퍼시픽(서경배, 3.63점)과 신세계그룹(정용진, 3.59점)이다. 아모레퍼시픽은 K뷰티의 선두주자로 지난해 이 부문 2위에 오른 바 있으나 최근 가습기 살균제 성분의 치약 파동을 겪으며 숨을 고르고 있는 상태다. 신세계는 기존 백화점 매출 회복과 면세점의 초기 실적 부진 회복, 스타필드 하남 등 새로운 콘셉트의 융합형 전문점의 성공적 안착 등으로 3분기에 3981억 원의 매출액을 기록할 것으로 보고 있다. 이는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17.8% 늘어난 수치다.
이에 반해 한진그룹은 한진해운 등 계열사 구조조정 한파와 노조와의 갈등을 겪으며 경영 전문성 부문에서 낙제점 수준인 2.12점을 받아 조사 대상 기업 40곳 중 최하위를 기록했다. 조양호 회장이 경영 정상화에 매진하기 위해 평창 동계올림픽조직위원장 자리까지 내놓고 두문불출하고 있지만 기업이 떠안고 있는 부채 부담이 상당하다.
경제개혁연구소에 따르면 2014년 말 기준 한진그룹 전체의 연결부채비율은 863.3%, 연결이자보상배율은 0.71%다. 이자보상배율은 기업의 채무 상환 능력을 나타내는 지표인데 보통 1 이상이면 빚을 갚을 능력이 있는 반면 1 미만이면 잠재적 부실기업으로 본다.
한진그룹에 이어 심각한 경영난으로 인해 경영 정상화 과정을 겪고 있는 한진중공업(조남호, 2.23점), 동국제강(장세주, 2.45점), 현대그룹(현정은, 2.46점), 동부그룹(김준기, 2.51점) 등의 기업이 경영 전문성 부문에서 밑바닥 점수를 받아 체면을 구겼다. ◆인화의 LG, 불화의 롯데
LG는 지배구조의 투명성과 책임성 평가 부문에서 3.81점으로 가장 높은 평점을 받았다. 이는 지난해 1위 당시 평점(3.70점)보다 상향된 점수다.
세부적으로 ‘소유구조의 투명성과 책임경영’에서 3.97점을 받았으며, ‘이사회 구성과 의사결정 구조’(3.75점)와 ‘내부거래의 투명성과 공정성’(3.71점)에서도 높은 점수를 기록했다.
LG의 모태가 되는 기업은 1947년 창업한 락희화학공업사로, 고(故) 구인회 창업주의 1세대 동생 5명(철회, 정회, 대회, 평회, 두회)과 처가인 허씨 일가가 힘을 합쳐 기업을 일궜다. 이후 LG, GS, LS 등으로 이어지는 범LG가는 ‘인화(人和)’를 토대로 튼실한 기업경영 문화를 정착시켜 오고 있다.
국내 대기업들이 형제와 부모 간 크고 작은 경영권 분쟁으로 오너리스크의 불씨를 남기고 있는 것과 달리 70년간 형제간에 화목하게 기업을 일군 대목은 국내 기업지배구조의 모범으로 불리고 있다.
LG의 뒤를 이어서는 SK그룹(최태원 회장, 3.35점), GS그룹(허창수 회장, 3.32점) 등이 지배구조의 투명성을 인정받았다.
반면 롯데그룹은 이번 평가에서 ‘불화의 아이콘’이 됐다. 롯데는 지배구조의 투명과 책임성 평가에서 2.19점을 얻으며 가장 낮은 점수를 얻었는데 지난해부터 이어져 온 형제간 경영권 다툼과 검찰 조사까지 받은 총수일가의 부당이익 의혹이 크게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검찰은 지난 10월 19일 4개월여간 시끌벅적하게 진행했던 롯데그룹에 대한 비리 수사를 마무리하고, 신동빈 회장 등 총수일가 5명을 탈세 및 배임 혐의로 재판에 넘겼다. 결국 오너 구속이라는 최악의 시나리오는 피했지만, 지루한 법정 공방을 통해 유·무죄 여부를 가려야 될 것으로 보인다.
앞서 신격호 총괄회장을 두고 신동빈 회장과 신동주 전 일본 롯데홀딩스 부회장 간에 치열하게 벌어졌던 경영권 분쟁 관련 소송도 여전히 진행 중이다.
일본에서는 “신 전 부회장의 광윤사 장악 과정이 불합리하다”며 신동빈 회장이 광윤사를 상대로 한 주총 결의사항 취소청구소송이 진행 중이며, 신 전 부회장 측에서는 신 회장의 중국 투자 등 경영 실패로 인해 회사에 끼친 손실에 대한 수조 원대의 민사소송 등을 준비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롯데에 이어 한진(2.37점), 중흥건설(정창선 회장, 2.59점), 현대(2.63점), 태광
(이호진 전 회장, 2.66점) 등이 소유구조의 투명성과 책임경영, 내부거래의 투명성과 공정성 등에서 낮은 점수를 받으며 불명예를 얻었다. ◆LG, 준법경영 1위…한진, 주주 보호 꼴지
LG가 지배주주의 준법경영과 기업의 사회적 책임(CSR) 등을 평가하는 윤리경영 부문에서 평점 3.77점을 받으며 1위를 차지했다. 특히 세부 준법경영 항목에서 최고점인 3.93점을 받았다.
사실 준법경영은 구본무 회장이 2013년 신년사에서 기업경영의 화두로 제시한 키워드다. LG는 <부정청탁 및 금품 등 수수의 금지에 관한 법률>(일명 김영란법)으로 인해 경조사비에 한도를 두기 이전인 2013년에 이미 협력 회사로부터 일절의 경조금을 받지 않도록 하고 있다.
또 LG는 국가와 사회정의를 위해 자신을 희생한 의인에게 기업이 사회적 책임으로 보답해야 한다는 구본무 회장의 뜻을 반영해 지난해부터 ‘LG의인상’을 제정해 수여해 오고 있다. 지난 3월에는 아파트 화재현장에서 어린이를 구한 이재덕 씨 등 4명에게 ‘LG의인상’이 수여됐다.
삼성그룹은 윤리경영 평가에서 평점 3.56점으로 2위를 기록했다. 세부 CSR 항목에서는 오히려 LG(3.68점)보다 앞선 3.75점을 얻었다.
소상공인연합회에서 지난 3월 전국 2만여 명의 소상공인을 대상으로 진행한 동반성장대기업 상생지수 설문조사에서는 윤리경영 실천이 가장 잘된 기업으로 LG(30%)가, 사회적 책임 실천이 잘된 기업에는 삼성(29%)이 각각 1위에 선정돼 눈길을 끌었다.
이어 현대자동차(3.50점)와 SK(3.48점), 한화(3.34점)도 고른 평점을 얻으며, 윤리경영이 우수한 기업으로 손꼽혔다.
한진은 주주와 채권자 보호 등이 취약한 기업에 선정됐다. 한진은 준법경영(2.53점), 주주와 채권자 보호(2.24점), CSR(2.49점)에서 모두 낮은 점수를 기록했는데, 특히 주주 보호에서는 전체 평가 기업 중 최하위를 기록했다.
현재 계열사인 한진해운의 유동성 문제를 해결해야 하는 한진그룹은 기하급수적으로 높아지는 부채비율에 넋을 놓고 있는 상황이다.
업계에 따르면 대한항공의 올 상반기 말 기준 부채비율은 1082%로 2015년 말보다 무려 215%포인트가 증가한 상태다.
이 밖에 현재 채권단과의 자율협약을 통해 경영 정상화를 진행 중인 한진중공업(조남호 회장)과 그룹 총수인 이호진 전 회장이 1400억 원대 비자금 횡령 문제로 기소돼 징역 4년 6개월에 벌금 10억 원을 선고받으며 경영 일선에서 물러난 태광그룹이 준법경영 등에서 최악의 점수를 받으며 오점을 남겼다.
한용섭 기자 poem1970@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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