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무 어긴 부모·배우자, 상속 금지하는 미국
[한경 머니 기고= 김상훈 법무법인(유한) 바른 변호사]상속인들도 지켜야 할 의무가 있다. 자녀나 피상속인 배우자를 유기하는 등 그 의무를 위반했다면 상속권에 제동이 걸리게 된다.

부모가 자녀를 자신의 자녀라고 공개적으로 인정하지 않거나 그 자녀를 부양하지 않는 것처럼, 부모가 부모로서의 의무를 위반한 경우에는 자녀로부터 상속을 받지 못하게 하는 것이 전통적인 법 감정에 부합한다.

미국 뉴욕 주에서는 자녀가 미성년인 동안에 그 자녀를 유기한 부모는 그 자녀로부터 상속을 받을 수 없도록 하고 있다. 그리고 미국 통일상속법(UPC)은 부모가 자녀를 자신의 자녀로 공개적으로 인정하거나 그 자녀를 부양하지 않았다면 그 자녀로부터 상속받는 것을 금지하고 있다.

뉴욕 주에서는 생존배우자가 피상속인을 유기하거나 부양을 거절한 경우에 배우자로서의 상속권을 주장할 수 없도록 하고 있다. 부부가 이혼을 하면 서로에 대해 더 이상 배우자가 아니기 때문에 배우자로서 상속을 받을 수 없다.

이혼이 아니라 별거의 경우에는 2가지로 나누어 보아야 한다. 단순히 부부 간의 ‘별거 약정(separation agreements)’에 의해 별거를 하는 경우에는 그 약정의 내용상 명백히 상속권을 포기하는 것이 아닌 한 상속권이 유지된다.

그러나 법원의 결정에 의해 별거하는 경우, 그중에서도 피상속인이 생존배우자를 상대로 ‘별거 결정(a final decree of separation)’을 얻어낸 경우에는 생존배우자는 피상속인으로부터 상속을 받을 수 없다. 반면 생존배우자가 피상속인을 상대로 별거 결정을 얻어낸 경우에는 상속권이 유지된다.

◆채권·세금 부담 피하려 포기제도 활용

포기(disclaimer)라 함은 무유언상속법, 유언, 신탁을 통한 상속, 유증, 증여받기를 거절하거나 생명보험금 등 기타 재산의 무상이전 받기를 거절하는 것을 의미한다. 포기는 주로 포기자의 채권자로부터의 청구 또는 조세 부담을 피하기 위해서 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보통법(Common law)에서는 피상속인이 유언 없이 사망하면 상속재산은 법률에 의해 상속인에게 당연히 승계된다. 상속인은 소유권이 자신에게 이전되는 것을 막을 수 없다. 이 경우 상속인이 상속을 거절하면 소유권은 일단 상속인에게 승계된 후 차순위 상속인에게 이전된다. 따라서 상속인이 상속을 포기하더라도 상속인은 무유언상속분을 받은 것처럼 취급되고 포기에 의해 상속재산을 취득하게 되는 사람에게 증여세가 발생한다.

그러나 피상속인이 유언을 남기고 사망한 경우에는 이와 달리 취급된다. 생전증여이든 유언이든, 증여는 수증자의 승낙을 요구한다. 수증자는 증여를 거절할 수 있으므로 소유권이 자신에게 이전되는 것을 막을 수 있다. 따라서 수증자가 유증받기를 포기하면 증여세가 발생하지 않는다.

이러한 무유언상속과 유증 사이의 차이를 없애기 위해 포기에 관한 거의 모든 주법들은 포기자가 피상속인보다 먼저 사망한 것으로 취급한다. 그리하여 상속재산은 포기자에게 승계되지 않고 포기자의 바로 다음 순위자에게 곧장 이전된다.

일반적으로 포기의 효력은 증여한 때로 소급한다. 포기자는 결코 증여를 받은 일이 없게 되기 때문에 포기자의 채권자나 증여세의 위험으로부터 안전하다. 이와 같이 상속인은 자신의 채권자로부터 상속재산을 보호하고 세금의 부담을 피하기 위해 포기제도를 활용한다. 이러한 의미에서 포기는 상속결격사유 중 유일하게 상속인을 위한 제도라고 할 수 있다.

포기에 관해서는 주마다 다양한 규정을 두고 있는데, 1999년에 ‘재산상 이익의 포기에 관한 통일법(Uniform Disclaimer of Property Interests Act)’이 제정돼 포기에 관한 나침반 역할을 하고 있다. 이 법률은 2002년에 UPC 이하로 통합되면서 포기에 관한 UPC의 규정을 대체했다.

파산 상태에 있는 자가 채권자들에 대해 정당한 고려 없이 자신의 재산을 다른 사람에게 이전시키는 것은 채권자들의 이익을 침해하는 것으로 채권자들에 의해 무효화될 수 있다. 그러나 상속인이 상속을 포기함으로써 자신의 채권자들이 상속재산으로부터 만족을 얻지 못하게 하는 행위는 일반적으로 허용되고 있다.

즉, 현재 미국의 지배적인 견해에 따르면, 수익자는 채권자로부터 집행당하는 것을 막기 위해 자신이 받을 이익을 포기할 수 있다. 그것이 바로 포기제도의 존재 이유이며, 법리상으로도 상속인은 상속을 포기함으로써 소급적으로 상속재산을 받은 적이 없는 것이 되기 때문에 채권자를 해할 수도 없는 것이 된다(에센 vs 길모어·네브래스카 주 대법원 2000년, 오파츠의 유산 사건·노스다코타 주 대법원 1996년).

그러나 주법에 따라 포기가 유효할지라도 포기자의 채권자들 중에는 포기된 상속재산에 대해 최우선적으로 권리를 행사할 수 있는 경우가 있다. 그러한 대표적인 예가 바로 연방세의 부담이다. ‘드라이 vs 미국 연방 사건(미국 연방대법원, 1999년)’에서 이르마 드릴라 드라이(Irma Deliah Drye)는 유언 없이 23만3000달러을 남기고 사망했는데, 그녀의 유일한 상속인은 아들인 론 에프 드라이 주니어(Rohn F. Drye Jr)뿐이었다. 그런데 드라이 주니어는 당시 32만5000달러에 달하는 연방세를 연체하고 있었다. 드라이 주니어는 어머니의 상속재산에 대한 그의 권리를 포기했고, 주법에 따르면 상속재산은 드라이 주니어의 딸인 테레사(Theresa)에게 넘어가게 돼 있었다.

이에 대해 연방대법원은 연방세는 어디까지나 연방법의 문제라고 하면서 “채무자가 상속을 포기한다 하더라도 채무자에게 속하는 모든 재산 및 재산적 권리에 결부돼 있는 연방세의 ‘우선특권(lien: 채무자의 재산에서 우선적으로 변제를 받을 수 있는 채권자의 권리)’을 무산시킬 수 없다. 채무자에 의해 포기된 이익은 연방세의 우선특권에 종속된 상태로 남아 있는 것이다”라고 판결했다. 한편 포기로부터 채권자의 권리를 보호하기 위해 매사추세츠, 플로리다 등 일부 주에서는 파산자가 상속을 포기하는 것을 명시적으로 금지하고 있다.
김상훈 법무법인(유한) 바른 변호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