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ssue & focus]금융권, 세금 리스크에 울컥
사상 최저금리와 경기 침체, 중국 증시 추락 등으로 가뜩이나 힘이 빠져 있는 금융권이 당국의 세금 폭탄 세례에 휘청거리고 있다.

‘울고 싶다’는 말이 정확할까? 올해 금융권은 실적 부진이라는 짐을 털어 내기도 전에 막대한 세금 폭탄이 예고되고 있어 울상이다. 보험업계의 대장주 삼성생명에서부터 금융지주 체제에서 벗어나 은행으로서 홀로서기를 하고 있는 우리은행, 손해보험업계 3위 동부화재 등 다수의 금융사들이 세무조사를 받았거나 진행 중이며, 막대한 세금 추징이 이뤄질 경우 실적 압박도 상당할 것으로 관측되고 있다.

금융감독원이 밝힌 올해 2분기 중 국내 은행의 순이익은 2조2000억 원이다. 특히 2분기 중 순이자마진(NIM)은 1.58%로 금감원이 관련 데이터를 집계한 2003년 이후 분기별로 가장 낮다.
보험업계는 표면적으로 실적이 나쁘지 않지만 안에서 곪고 있는 것이 문제다.

지난해 생명보험사의 운용자산 이익률은 4.5%로 보험부채(보험적립금) 적립이율 5%보다 낮게 나타났는데 이는 금리차(差)로 인한 역마진 상태라는 것을 보여 준다. 증권업계는 중국 증시의 추락으로 쇼크 상태다. 단기간 달콤한 호황을 누렸던 증권업계는 상반기에 내놓았던 장밋빛 증시 전망을 대폭 수정하는 등 안절부절 못하는 모습이다. 이 같은 악조건 속에 ‘엎친 데 덮친 격’인 세금 리스크는 갈 길 바쁜 금융사들의 발목을 잡고 있다.

삼성생명, 1000억 원 과세 예고
삼성생명은 지난해 12월부터 올해 6월 말까지 약 180일간 서울지방국세청 조사1국으로부터 세무조사를 받았다. 통상 4~5년 주기로 이뤄지는 정기 세무조사의 성격이 짙지만 통상적인 기간보다 다소 긴 180일간 조사가 이뤄진 점이나, 약 1000억 원 규모의 과세 예고 통지가 이뤄졌다고 알려진 점은 예사롭지 않다.

삼성생명은 삼성그룹 재편 과정에서 핵심적인 역할을 수행하는 계열사다. 삼성그룹은 그동안 복잡하게 얽혀 있던 순환출자 고리를 단순화해 삼성물산→삼성생명→삼성전자로 이어지는 틀을 만들고 있다. 이 과정에서 비금융 계열사가 보유한 금융 계열사 지분이 삼성생명으로 흘러 들어간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또한 기업이 인수·합병(M&A)과 분할 등의 과정을 거치게 되면 그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세금 이슈가 발생한다는 것은 업계의 통설이다. 삼성그룹이 체제 전환을 위해 대규모 합병과 매각, 기업 분할을 진행한 가운데 이 같은 자금 흐름의 중간 지점에 있는 삼성생명에 대한 세무조사를 업계에서 주의 깊게 보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손보업계 3위 동부화재는 지난 6월부터 세무조사를 받고 있다. 4개월여에 걸쳐 진행되는 세무조사에서 유동성 위기를 겪고 있는 동부그룹의 계열사를 포함한 특수관계인들과의 자금 지원을 포함한 내부거래의 적정성 여부와 대리점 및 해외 지점과의 거래 등이 조사 대상에 포함될 것으로 예측되고 있다.

보험업계는 2013년에 한화생명과 교보생명 등 11개 보험사에 대해 대대적인 세무조사가 이뤄지며 홍역을 치른 바 있다. 업계에 따르면 당시 한화생명은 약 936억 원, 교보생명은 약 303억 원의 세금을 추징당했다.

우리은행은 지난 7월부터 서울지방국세청 조사1국으로부터 세무조사를 받고 있다. 2011년 세무조사를 받은 뒤 정기 세무조사를 받는 것인데 ‘까마귀 날자 배 떨어진다’고 세무조사 시점이 참 난감하다.

우리은행은 CJ그룹의 불법 자금 거래 흐름을 보고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당국으로부터 과태료를 부과받은 바 있는데 이후 세무조사가 진행되며 재벌 그룹의 비자금 조성 의혹을 들여다보기 위한 세무조사가 아니냐는 뒷말까지 무성한 상황이다. 더구나 우리은행은 올해 4전 5기로 민영화를 재추진하고 있어 4개월여에 걸친 조사 이후 고액의 세금 추징이 이뤄질 경우 실적 및 주가 등에 타격을 받을 것이 불가피해 보인다.

해외용역비 과다 VS 국제기준 부합
지난 2월부터 5월까지 진행된 세무조사를 통해 190억 원의 세금을 추징당한 한국씨티은행은 여진에 시달리고 있다. 국세청은 한국씨티은행에서 2011년부터 2014년까지 해외용역비 중 850억 원을 과다 계상했다고 봤는데 사실 이는 2011년 세무조사에서도 지적됐던 상황이다. 당시 금감원은 한국 및 미국 과세당국 간 상호 합의에 따른 최종 결정이 있을 때까지 지급을 유예하고, 이미 지급된 금액에 대해서는 회수 방안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며 ‘경영유의’ 제재를 내렸는데 4년이 지났어도 해결책을 마련치 못한 것이다.

한국씨티은행 측은 “경영자문료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기준에 의해 지급하는 것으로 쟁점 사안은 당국이 해결해야 할 문제”라는 기존 입장을 고수하고 있어, 세무당국과의 마찰은 당분간 지속될 전망이다.

신한은행은 지난 5월 뜻하지 않게 해외발 세금 폭탄을 맞았다. 인도 당국이 신한은행 인도지점에 50크로(1crore=1000만 루피, 87억 원 상당)에 달하는 세금을 통보받은 것인데, 2009년 이후 미납된 서비스 세금과 이자 명분이라고 한다. 신한은행 인도지점이 지난해 거둔 순익이 129억 원인 점을 고려하면 약 69%에 해당하는 금액을 세금으로 토해 낼 판이다.

증권업계도 세금 리스크에 시달리고 있다. 교보증권은 지난 5월 서울지방국세청 조사4국으로부터 세무조사를 받게 됐는데 2013년 세무조사를 받은 이후 불과 2년 만에 고강도 조사를 받게 돼 당황해하고 있다. 특히 조사4국은 검찰의 중수부와 같은 역할을 하는 ‘별동대’로 기업들의 비리나 탈세 등의 혐의에 대한 제보 또는 자체 분석을 토대로 조사에 나서는 부서라 이목을 집중시키고 있다.

지난해 미래에셋증권, 한국투자증권, 대신증권, KDB대우증권, 삼성증권, 현대증권 등 대형 증권사들이 줄줄이 세무조사를 받아 가뜩이나 실적 악화에 허덕이는 증권가에 찬바람을 불게 한 바 있다. 이번에는 세무조사는 아니지만 증권사의 세금 리스크가 그대로 자산운용업계로 옮겨 붙어 관심을 끌고 있다. 자산운용업계에 따르면 현재 30개 자산운용사가 운용하는 158개 부동산 펀드에 대해 1200억 원이 넘는 취득세가 추징돼 이에 반발한 업계와 지방자치단체 간 수백 건의 소송전이 펼쳐지고 있다.

정부는 부동산 펀드가 주택 경기 활성화에 기여한다는 이유로 2001년부터 2009년까지 부동산 취득세(4.6%)의 절반을 감해 주었는데, 세수 부족에 시달리던 지자체들이 부동산 매입 뒤 펀드를 등록하는 것은 자본시장법과 조세특례법상 감면 규정에 어긋난다고 주장하며 5년 치 감면분에 대한 추징에 나서며 불꽃 튀는 소송전이 발생했다.

업계는 세금 폭탄을 맞은 뒤 취득세 환수금 납부 재원을 마련하기 위해 사상 처음으로 금융위원회에 긴급 자금 차입을 요청하는 등 지자체와의 소송전에 배수진을 치는 분위기다.

한용섭 기자 poem1970@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