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식을 애물단지라고 한다. 배우자와 더불어 내 인생의 대부분을 함께 하는, 애증이 교차하는 대상이다. 은퇴를 계획할 때에도 자녀 문제로 종종 딜레마에 빠지게 된다. 자녀에게 ‘머니 애프터서비스(AS)’, 언제까지 해야 할까.
[Lifestyle Design] 다 큰 자녀 AS 언제까지?
자녀로 인해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기쁨을 누리기도 하지만 수많은 갈등을 겪기도 한다. 그뿐만 아니다. 자녀의 탄생과 더불어 들어가기 시작하는 비용은 유치원에서 상급 학교로 진학할 때마다 점점 더 늘어나기만 한다. 자녀가 대학을 졸업할 때까지 등록금을 대는 일도 세상 모든 부모가 다 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하물며 해외로 유학 보내고 박사 학위를 딸 때까지 지원했다면 부모로서 할 일은 다한 것이다. 여기까지만 해도 우리는 ‘자녀 지원’이라는 측면에서 세계 어느 나라의 부모와 비교해도 뒤지지 않는다. 그런데 어디 졸업하고 취직하면 끝난 것이던가. 우리는 자녀가 결혼할 때 상대편 집안과의 문제로 크게 골머리를 앓고 심지어 결혼 이후에도 지속적으로 자녀에게 ‘애프터서비스’를 해야 할지도 모른다. 최근에는 젖먹이 손주를 돌보는 것과 영어 유치원 학비를 대는 것도 조부모의 몫이 됐다.

이렇게 끝없이 자녀를 지원하다 보면 정작 내 인생을 제대로 계획하기는 불가능해진다. 세상 어느 부모가 자녀에 대한 사랑이 덜 하겠는가. 우리가 이렇게 유난스러운 근본적인 이유는 자녀의 인생과 나의 인생을 동일시하려는 경향 때문인 듯하다. 그래서 내가 이루지 못한 꿈을 자녀가 실현하기를 바라기도 한다. 그러나 냉정하게 생각해 보자. 자녀는 자녀의 인생이 있고 나에겐 나의 인생이 있는 것이다. 이 사이에 냉정하게 선을 긋지 않으면 나도 자녀도 제대로 되지 않는다. 한없이 지원받는 자녀는 그것을 고마워하는 것이 아니라 당연한 것으로 여기게 된다. 부모와 다른 가치관과 목표를 가진 자녀는 부모와 갈등을 일으킬 수밖에 없다.


‘쓰죽회’가 유행인 까닭
최근 우리 사회의 고민거리 중 하나가 대책 없는 장수다. 인간 수명에 대한 여러 연구 결과를 종합해 보면 지금 40~60세 사이 중년의 평균 생존 기간은 100세에 이를 것 같다. 50세 이후를 ‘여생’이 아닌 ‘인생 2막’이라고 말하는 것도 무리가 아니다. 지금까지 살아온 만큼 살아갈 날이 남았기 때문이다. 자식 뒷바라지하느라 계획을 세우지 못하고 흘려보낼 기간이 결코 아닌 것이다. 짧은 세월이 아니기에 먼저 내가 먹고 살 것을 챙기는 게 문제다. 크레디트스위스(CS)의 2014년 연례 보고서에 의하면 순자산 8억6000만 원이면 세계 상위 1%의 부자에 들어간다. 그러나 이 정도의 재산을 보유하고 있어도 우리 사회의 눈높이로는 평범한 노후를 지낼 수 있을 뿐이다. 내 앞가림도 쉽지 않다는 걸 인식해야 한다.

노후를 행복하게 지내기 위해 가장 중요한 요건 중 하나가 사회적 관계다. 그중에 가장 중요한 것은 부부 관계, 다음은 자식과의 관계가 된다. 우스갯소리를 섞어 말하면, 부부의 관계에는 대화가 필요하고 자식과의 관계에는 돈이 필요하다.

2007년 정재기 숭실대 교수가 부모의 소득과 자녀 접촉 빈도의 상관관계를 조사한 연구 결과를 발표했다. 상관관계가 클수록 돈 때문에 부모를 찾는다는 논리가 성립된다. 우리는 전통적으로 부모에게 마음을 다해 효도해야 한다는 생각을 갖고 있고 이에 대해 은근히 자부심을 가지고 있다. 과연 우리나라는 이 상관관계가 높을까? 낮을까? 답은 예상과 달리 ‘대단히 높다’다. 조사 대상국인 세계 27개국 가운데서 한국인이 부모의 소득이 낮을수록 자녀들의 발길이 줄어드는 경향이 가장 뚜렷하다는 충격적인 결과다. 효도에 대한 개념이 희박할 것 같은 프랑스, 영국, 미국 등 서구인들은 오히려 부모의 소득과 접촉 횟수 사이에 상관관계가 전혀 없었다. 노후에 자녀의 얼굴을 자주 보고 싶거든 내 생활비를 충분히 확보해 놓으시라.

또 장수의 시대에는 재산을 물려줄 때쯤 되면 자식도 노인이 돼 있다. 실제로 이웃 일본에서는 노인이 노인에게 상속하는 ‘노노(老老)상속’이 문제가 되고 있다. 이는 가정뿐 아니라 사회와 경제의 활력을 떨어뜨리는 요인이 되고 있다. 자녀와의 잦은 교감을 통해 서로 간에 오해가 싹틀 여지를 없애야 한다. 평생을 내심 바라며 산 자식이 예상과 달리 상속을 받지 못하게 되면 큰 충격을 받는다. 당연히 물려받을 것으로 생각했기에 준비도 돼 있지 않다. 이것이 어떤 문제를 야기할지는 쉽게 예상할 수 있다. 자녀가 도전할 수 있는 힘이 있는 시기에 적당히 증여하는 것이 옳을지 모른다. 물려줄 것이 있다면 미리 증여하고 나머지는 철저하게 나와 배우자를 위해 쓰겠다는 인식의 변화가 일어나야 한다.

모든 세금 중 상속세율이 가장 높은 이유가 무엇인지 생각해 보라. 내가 열심히 일해 모은 재산은 내 대에서 다 쓰고 가라는 뜻이다. 하물며 요즘 ‘쓰죽회’가 유행이라지 않은가. 내가 모은 재산을 ‘다 쓰고 죽는 모임’이라는 뜻이다. 재산을 자식에게 다 주면 굶어 죽고 조금씩 주면 등쌀에 쪼여서 죽고, 안 주면 맞아 죽는단다. 어차피 죽을 거 잘 쓰고 맞아 죽는 것이 가장 좋지 않겠나. 말은 쉽지만 실제로 행하지 못하는 것이 문제다. 사람은 속마음과 겉마음이 다른 법이다. 이것도 알아두자. 자식들도 40여 년 동안 부모를 모시고 살다 나중에 재산 물려받는 것보다 각자 알아서 사는 것을 훨씬 더 선호한다는 것을.

기획 이윤경 기자 | 글 지철원 트러스톤연금포럼 연구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