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경아의 가드닝 스케줄_8월 이야기

하늘이 열린 듯 쏟아지는 비와 뜨거운 열기, 거기에 간간히 찾아오는 거센 태풍까지. 식물에게 8월은 힘들고 가혹한 시기다. 이 힘겨운 여름을 잘 보내고 내년을 기약하기 위한 방법 몇 가지.
칸나, 생강, 분꽃이 이뤄 내는 열대식물 화단은 8월이 최고조다.
칸나, 생강, 분꽃이 이뤄 내는 열대식물 화단은 8월이 최고조다.
태양을 한 바퀴 도는 지구의 시간인 1년 동안 우리는 기온이 극한으로 떨어지는 한겨울과 뜨겁게 달구어지는 한여름 사이에서 50도가 넘는 온도 차를 이겨낸다. 어찌 생각해 보면 한 해를 별 탈 없이 잘 보냈다는 것만으로도 우리 스스로에게 위로를 해 줘야 할 지경이다. 그런데 이런 위로와 인사는 우리뿐만 아니라 이 땅에서 우리와 더불어 살고 있는 식물들에게도 똑같이 해 줄 일이다. 특히 폭염과 폭우가 잦은 8월, 감내할 일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식물은 이 마지막 절정을 어떻게 보내느냐에 따라 내년을 기약할 수도 있고,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


힘겨운 식물들 돕기
같은 장소에서도 유난히 병충해 공격을 많이 받는 식물이 있다. 일단 병충해를 입은 식물은 이웃에 있는 식물로까지 번지는 일을 막기 위해 신속한 조치가 필요하다. 극단적인 방법은 살충제를 뿌려 주는 것이지만 이미 알려진 대로 부작용이 너무 많다. 우선 병든 부분은 과감하게 잘라 내고 그다음 다른 식물에 비해 왜 유독 이 식물이 병충해를 극복하지 못했는지 환경을 살펴야 한다.
[Garden & Human] 정원이 뜨겁다! 지쳐 가는 식물
자칫 수확의 시기를 놓치면 한 해 열매를  전부 잃게 되는 일이 생기기 때문에 사전 계획이 필요하다.
자칫 수확의 시기를 놓치면 한 해 열매를 전부 잃게 되는 일이 생기기 때문에 사전 계획이 필요하다.
식물은 움직일 수 없는 대신 자신의 몸을 화학적으로 변화시켜 병충해를 퇴치하는 뛰어난 방어 능력을 지니고 있다. 이것이 작동하지 않았다는 것은 식물이 건강하지 않았다는 증거다. 살펴보면 영양, 빛, 물 이 3대 요소 중 무엇인가가 결핍돼 있다는 것을 발견하게 된다. 영양분 부족이 짐작된다면 땅을 다시 일궈 영양분을 공급해 주고, 빛이 부족하다면 그늘을 제거해 주고, 물이 부족하다면 인공적으로라도 당분간 공급해 주는 것이 필요하다. 결론적으로 식물을 지킬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은 병충해 자체를 소멸시키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이겨 낼 수 있도록 건강함을 되찾게 하는 일이다. 신기한 것은 올해 그렇게 맥없이 병충해로 죽어 갔던 식물일지라도 내년 봄 강인함으로 다시 싹을 틔우기도 한다는 점이다. 약해 보이지만 이 지구의 어떤 생명체보다 강한 식물이기에 가능한 일이기도 하다.


연못의 관리
연못의 물 관리는 8월이 되면 정점을 찍는다. 날이 뜨거워지면 물의 온도가 올라가고 이 틈에 각종 잡초가 기승을 부린다. 우리는 단순히 물이 초록으로 변했다고 생각하지만 이 초록이 바로 물에 사는 잡초 혹은 미생물의 존재라고 생각하면 된다. 되도록이면 물이 초록으로 변하지 않게 지속적으로 물의 온도를 낮추고 영양분이 과해지지 않도록 깨끗이 해 줘야 한다. 아예 깨끗한 새 물로 바꿀 수 없다면 지속적으로 그물망을 이용해 초록의 잡초를 떠내는 것도 좋다. 또 수생잡초가 물 위를 덮게 되면 물고기를 포함한 생명체에게 산소를 공급할 수 없게 된다. 이를 방지하기 위해서는 물의 표면에 산소가 만들어질 수 있도록 분수를 뿜어 주는 등 물살의 움직임을 만드는 것이 좋은 방법이다.
8월의 정원에도 잊지 말고 잡초 제거와 꽃대를 잘라 주는 데드 헤딩이 이뤄져야 한다.
8월의 정원에도 잊지 말고 잡초 제거와 꽃대를 잘라 주는 데드 헤딩이 이뤄져야 한다.
열매, 씨앗의 수확
8월은 열대 곡물인 옥수수와 고구마의 수확을 앞둔 시점이다. 정원에서는 적절한 수확 시기를 놓치면 큰 낭패를 보게 된다. 수확을 앞둔 2주 전쯤 수확할 날을 잡아 놓고 기상을 체크하며 그 시기를 조절하는 요령이 필요하다. 또 씨앗을 받을 식물들도 시기를 놓쳐 난감할 때가 많은데 가장 좋은 방법은 보관하고 싶은 씨앗의 리스트를 적는 것이다. 거기에 맞춰 씨앗 담을 종이봉투를 준비하고 씨앗의 이름을 적어 둔다. 식물을 찾아 씨앗을 받는 것이 무작정 씨를 받으러 가는 것보다 훨씬 더 효율적이다.
여름에 절정인 싱그런 갈대 정원의 모습.
여름에 절정인 싱그런 갈대 정원의 모습.
휴가의 계절
8월은 상순, 중순, 하순 세 기간으로 날씨가 확연히 달라진다. 무조건 덥고 찌는 것이 아니라 상순에는 맹렬해지지만 이미 중순부터는 바닷물의 온도가 차가워져 해수욕의 시기가 끝난다. 이 변화는 공기의 온도로도 분명해져 이미 중순부터는 아침저녁으로 가을이 찾아온다는 것을 알게 된다. 따라서 8월은 가을 준비를 시작하는 시기이기도 하면서 더위가 최고점을 찍게 되는 휴가철이기도 하다.

특히, 베란다에서 식물을 키우는 사람들에게 휴가는 큰 부담이 아닐 수 없다. 하루에 한 번씩은 잊지 말아야 할 물주기를 짧게는 며칠, 길게는 보름 정도 멈추는 일은 화분에서 크는 식물에게는 치명적이기 때문이다. 이럴 때는 어느 정도 대비와 응급조치가 필요하다. 우선 장기간집을 비울 예정이라면 화분 밑에 더 큰 양동이를 받쳐 준 뒤, 양동이에 물을 채워 놓는다. 이렇게 되면 화분 속의 뿌리가 양동이의 물을 빨아들여 스스로 물을 공급한다. 다른 방법으로는 옆에 물 양동이를 놓아두고 수건의 한쪽 끝은 물 양동이에 담그고 나머지 한쪽은 화분의 흙에 놓아둔다. 이렇게 되면 물의 삼투압 현상에 의해 수건을 통해 양동이의 물이 화분의 흙을 적셔 물 부족 현상을 막아 준다. 그러나 이런 조치도 취하지 못한 채 집을 비워야 했다면, 돌아와 보니 식물이 이미 말라 가는 중이라면 한 번쯤은 응급조치를 취해 보는 것도 좋다. 화분을 아예 물속에 빠뜨려 하루 정도 놔두면 그중 일부는 생명을 되찾기도 한다.


힘겨움의 끝자락에 얻어지는 탐스러운 열매
햇볕이 좋아야 식물이 잘 자란다는 일반 상식과 달리 식들도 뜨거운 햇볕 속에 잎이 타 들어가고 지나친 수분 증발로 생과 사를 넘나든다. 그러나 이 힘들고 가혹한 시기를 보내고 나면 탐스러운 열매가 맺혀 있음을 알게 된다. 그래서 빛나는 열매를 이 여름의 끝자락에 만나게 됐을 때 무심히 지나치지 말고 그 힘겨움을 극복한 식물과 우리에게 잘했다는 인사 한 마디쯤은 건네 줄 일이 아닌가 싶다!



가든 디자이너 오경아는…
사람과 자연이 조화를 이루는 정원 문화를 꿈꾸며 정원 관련 전문 집필과 정원 설계를 함께 하고 있다. ‘오 가든스(Oh Gardens)’의 대표이며, 현재 속초에서 ‘오경아의 정원학교’를 운영 중이다. 저서로는 ‘정원의 발견’, ‘낯선 정원에서 엄마를 만나다’, ‘영국
정원 산책’, ‘소박한 정원’, ‘가든 디자인의 발견’ 등이 있다.


오경아 가든 디자이너·작가 | 사진 임종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