럭셔리카의 정의는 뭘까. 단지 비싸기 때문일까. 아니면 단지 성능이 좋기 때문일까. 럭셔리카로 인정받는 자동차들의 역사를 통해 우리는 럭셔리카의 진정한 의미를 알 수 있다.
[Luxury & Super Car] 럭셔리카의 역사 벤츠에서 페라리까지
오늘날 럭셔리카와 슈퍼카는 마케팅 용어로서 그 궤를 달리하고 있다. 우선 럭셔리카는 이름에서도 알 수 있듯 ‘고급스러움’이 생명이다. 탑승자를 어떻게 하면 우아하게 이동시킬 수 있을지가 관건이다. 따라서 독창적인 디자인, 좋은 소재, 조용하지만 강력한 동력계 등을 필수적으로 갖추고 있다.

반면 슈퍼카는 오로지 달리는 데 초점을 맞추고 있다고 할 수 있다. 힘이 넘치는 동력계, 정교한 핸들링, 도로를 움켜쥐는 접지력, 흔들림 없는 코너링은 ‘누구보다 빨리’라는 인간 본성을 만족시키는 일과 무관치 않다. 그런 관점에서 개발하는 것이 바로 슈퍼카다.

하지만 럭셔리카와 슈퍼카는 뿌리가 같다. 즉, 현재의 럭셔리카를 살펴보면 대부분은 슈퍼카처럼 잘 달리며, 슈퍼카 역시 대부분은 고급스럽다. 이는 자동차 시대의 초창기에 어떤 사람들이 자동차를 소비하고 있었는지를 생각해 본다면 당연한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런 전통이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는 것.

1885년 카를 벤츠(우리가 알고 있는 메르세데스-벤츠의 창시자다)가 최초의 자동차를 발명한 이후, 자동차 메이커들은 가장 부유한 소비자를 위해 가장 뛰어난 작품을 만들었다. 부유층 역시 신뢰성이 낮은 차는 원하지 않았고, 전통적인 마차보다 더 훌륭한 탈 것을 원했다.
당시 소비자들이 제품의 신뢰성을 가늠 짓는 방법은 바로 자동차 경주를 통한 경쟁이었다. 속도와 내구성을 따지는 일에 자동차 경주보다 좋은 것이 없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따라서 메이커들은 장거리 경주나 힐 클라임(언덕을 오르는 시간을 경쟁하는 경기) 경주, 서킷 경주를 통해 자동차의 성능 등을 판단했으며, 유럽과 미국에서 모터스포츠가 횡행하게 된다.
[Luxury & Super Car] 럭셔리카의 역사 벤츠에서 페라리까지
자동차를 소유한 부유층 역시 기꺼이 대회에 참가했다. 그들은 자신의 차를 유희가 아닌 자부심으로 여겼고, 좋은 성적을 거둔 차는 당대 최고의 차로 꼽혔다. 또 다른 부유층은 그 차를 사기 위해 지갑을 열었다. 그래서 현재에도 럭셔리카, 또는 슈퍼카를 논하려면 그들의 모터스포츠 역사를 먼저 들여다봐야 하는 게 공식이다. 이때 두각을 나타낸 회사들이 현재까지도 럭셔리카의 대표주자로 여겨진다. 이 중에서도 롤스로이스는 가장 고급스러운 차를 만드는 브랜드다. 지난해 우리나라에서는 45대가 팔려 나갔는데, 이 중 28대는 1907년 2만4000km의 장거리를 완주해 유명세를 탄 실버 고스트에서 이름을 따온 고급 세단 고스트(국내 판매 시작가 4억1000만 원)다. 다음은 기본가 4억 원의 레이스라는 럭셔리 GT(그란투리스모, 장거리를 고속으로 이동하는 일에 최적화된 고급차)로 총 12대가 판매됐다. 이 차는 가장 강력한 롤스로이스라는 별칭이 유명하다.

W12 6.6리터 트윈터보 엔진이 최고 624마력을 뿜어낸다. 팬텀 쿠페가 460마력, 고스트가 570마력이라는 점을 떠올린다면 레이스가 얼마나 달리기에 능숙한지를 알 수 있다. 애초부터 고성능을 지향한 덕분에 엔진회전 1500rpm에서 최대 81.7kg·m의 강력한 토크가 발생한다. 이에 따라 2톤이 넘는 무게에도 불구하고, 4.6초 만에 시속 100km를 돌파한다.

벤틀리 역시 모터스포츠와 함께 브랜드 역사를 시작한다. 1912년 탄생한 벤틀리는 당초 자동차 제조사가 아닌 프랑스 차를 영국에 수입해 판매하는 회사였다. 그러나 설립자 월터 벤틀리는 수입해 온 차를 튜닝해 자동차 경주에 참여했으며, 출전 대회에서 좋은 성적을 거두자 본격적인 자동차 제작에 나서게 된다. 이후 벤틀리의 첫 페이지를 장식한 3리터라는 차는 1921년 성능 시험과 홍보를 위해 자동차 경주에 나가, 당시 모터스포츠계를 주름잡던 작고 가벼운 부가티와 달리 웅장한 디자인을 내세웠다. 3리터는 각종 대회에서의 연속 우승으로 주가를 올렸다. 모터스포츠로 시작한 벤틀리가 2014년 다시 모터스포츠에 뛰어들기 위해 만든 차가 컨티넨탈 GT3다. 역대 벤틀리 중 가장 빠르다고 알려진 컨티넨탈 GT 스피드를 토대로 만들어졌으며, 지난해 10월 GT 아시아 시리즈에서 성공적인 데뷔전을 치렀다. 레이스에 적합하도록 컨티넨탈 GT 스피드에 비해 무게를 무려 1000kg 이상 덜어냈고, V8 4.0리터 트윈터보 엔진으로 600마력의 힘을 낸다.


속도 경쟁이 빚어낸 놀라운 성장
이 차를 기반으로 벤틀리는 일반도로용 차를 새로 만들었는데, 이름은 컨티넨탈 GT3-R다. 기능을 따르는 스타일링이 특징으로, 성능은 GT3에 미치지 못하지만 580마력, 71.4kg·m의 출력과 토크는 여전히 강력하다. 무엇보다 GT-R가 특별한 이유는 전 세계 300대만을 판매한다는 점이다. 우리나라에는 6대를 배정한 동시에 3억8000만 원의 가격이 내걸렸다. 너무도 당연(?)하게 모두 판매됐고, 이 중 2대는 주인에게 올해 전해졌다.

부가티가 롤스로이스와 벤틀리의 뒤쪽에 소개된다는 걸 안다면 어쩌면 서운해할지도 모르겠다. 그 정도로 모터스포츠와 럭셔리카의 역사에서 부가티가 차지하는 상징성은 작지 않다. 지금은 초고속의 슈퍼카를 만드는 브랜드다. 1909년 이탈리아 태생의 프랑스 엔지니어 에토레 부가티가 설립했다. 벤틀리와 롤스로이스를 능가할 정도로 독보적인 최고급 차를 생산했지만 지나치게 비싸다는 비판도 상당했기 때문에 수차례 회사가 없어지는 질곡의 세월을 보냈다. 현재는 벤틀리와 함께 폭스바겐그룹의 산하에 있다.
[Luxury & Super Car] 럭셔리카의 역사 벤츠에서 페라리까지
부가티가 1939년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내구레이스 르망24에 출전해 우승한 일이 있다. 이때 드라이버의 이름은 피에르 베이론이었는데, 2005년 이 드라이버의 이름을 딴 부가티 베이론이 탄생했다. 출시 당시 폭스바겐의 V형 8기통 엔진을 연달아 만든 W16 8.0리터 엔진을 장착했다. 베이론을 상징하는 숫자인 1001마력의 출력을 자랑하며, 최대 토크는 127kg·m을 낸다. 최고 시속 407km, 시속 100km 도달 시간 2.5초다.

부가티 베이론의 파생 모델 중에서 베이론 슈퍼 스포트는 세계에서도 유래를 찾을 수 없는 성능을 지닌 차로 알려져 있다. W16 엔진에 4개의 터보차저와 인터쿨러를 갖춰 1001마력을 뛰어넘는 1200마력을 달성했다. 토크 또한 152.6kg·m으로 크게 늘었다. 이 차는 최고 속도는 시속 415km로, 세상에서 빠른 차라는 기네스북 기록을 갖고 있다. 출시 당시 무려 165만 유로라는 가격이 매겨졌는데, 국내 가격은 세금 등을 감안해 60억 원 이상으로 여겨졌다. 가격이 가격인지라 한국에서는 단 한 명만이 구매한 것으로 알려졌다.

애스턴마틴이 두각을 나타낸 모터스포츠 대회는 1914년 영국 버킹엄셔 애스턴 클린턴에서 열린 힐 클라임 경기였다. 다만 제1차 세계대전으로 양산까지는 이어지지 않았다. 1921년 맞춤형 4기통 1.5리터 엔진의 스포츠카를 제작, 서킷에서 무적이라는 명성을 쌓아갔다. 그런 애스턴마틴에 있어 DB 시리즈는 애스턴마틴의 간판스타다. 1950년대 르망을 주름잡았으며, 다수의 모터스포츠 대회에서 족적을 남겼다. 1964년 출시된 DB5는 영화 ‘007’ 속 제임스 본드의 차로도 유명한데, 2010년 경매에 등장해 260만 파운드(현 환율로 45억 원)에 낙찰되기도 했다. DB9은 현재 진행형의 전설이다. V12 6.0리터 엔진은 최고 512마력을 발생하고, 최대 63.24kg·m의 토크를 낸다. 시속 100km에 이르는 시간은 단 4.6초다. 국내 판매 가격은 2억9500만 원.

DB9이 간판이라면 밴티지는 애스턴마틴 최고속의 지위를 갖고 있다. 2005년 V8 밴티지가 포르쉐 911의 대항마로 대두됐으며, 역시 르망에서 두각을 나타냈다. V12 밴티지 GT 또한 2009년 독일 뉘르부르크링 24 내구레이스에서 처녀 출전에 우승을 차지했다. V12 밴티지 S는 영국의 고결함 위에 최신 스포츠카의 균형, 정밀도와 제어력에 질주 본능을 접목한 차로 명성이 자자하다. 엔진의 최고 출력은 573마력, 최고 시속은 329.9km에 이른다. 오로지 달리기만을 위한 경량 스포츠카로 가격은 2억3500만~2억5900만 원이다.


최고 출력 963마력 슈퍼카 등장
최초의 페라리 125S는 1946년 등장, 1948년 이탈리아 밀레 밀리아와 타르가 플로리오에서 우승했다. 이듬해인 1949년에는 르망 24에서도 우승했다. 1952년과 53년은 페라리가 포뮬러원(F1) 전설의 첫 페이지를 쓴 해로 기억된다. 이후 60년간 페라리는 거의 모든 자동차 경주의 트로피를 쓸어 담았다.

가장 유명한 페라리는 창립 60주년을 기념해 제작한 엔초 페라리다. 창업자의 이름에서 제품명을 따왔으며, 60주년 기념 모델이라는 이유에서 F60이라는 코드네임이 붙어 있다. 2002년 파리 모터쇼를 통해 소개된 이 차는 당초 349대만을 제작, 생산이 시작이 되기도 전에 모두 매진되는 놀라운 결과를 냈다. 이후 50대를 추가로 만들었고, 2005년 1대를 더해 400대로 한정했다. 이 마지막 1대는 당시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에 헌납됐고, 교황은 2004년 인도네시아 쓰나미 피해자를 위해 경매에 붙였다. 경매 낙찰가는 95만 유로(현 환율로 11억8000만 원)였다.

엔초 페라리의 계보를 잇는 차는 라 페라리다. ‘The Ferrari’라는 뜻의 이탈리아어다. V12 6.0리터 자연흡기 엔진을 장착, 최고 출력 800마력, 최대 토크 71.4kg·m의 힘을 자랑한다. 여기에 F1에서 사용하는 첨단 기술인 하이 커스 시스템을 조합해 전기모터가 163마력을 더한다. 이를 통한 시스템 총 출력은 963마력이다. 라 페라리는 전 세계 499대만을 생산하는데, 실체를 드러낸 2013년 제네바 모터쇼 직후 1000여 명의 계약자가 몰려 들었다. 한국에서도 1대가 배정돼 판매된 것으로 알려졌다. 가격은 14억 원 이상이며, 누가 구매했는지는 철저히 비밀에 부쳐졌다.

아직 쟁쟁한 브랜드와 차가 즐비하다. 양산 스포츠카로서는 세계 최고 수준의 성능을 가졌다고 여겨지는 포르쉐, 자동차의 역사를 연 메르세데스-벤츠와 고성능 디비전 AMG, 역동성 하나로 세계를 제패한 BMW와 M-테크니크 등이 그들이다. 이미 소개한 브랜드와 소개하지 못한 이들은 130여 년 자동차 역사 속에서 새로운 기계 문명을 개척하고, 현대 대중문화와 영감을 주고받았다. 최신 정밀기계공학과 산업디자인이 융합됐으며, 아름다움과 힘, 우아함과 스포티함도 갖췄다.


박진우 오토타임즈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