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은 젊음의 표상이었다. 특히 배낭여행은 청춘의 상징처럼 여겨졌다. 어느 순간부터
4060세대와 배낭여행의 매치가 어색하지 않다. 몇 해 전부터 부는 중년 해외 배낭여행 열풍 때문이다. 여행업계도 늘어난 중년 배낭족들을 잡기 바쁘다.
[Special Trend] 해외 자유여행 1세대, 다시 배낭을 메다
K그룹 임원인 고명주(54) 씨는 늦깎이 배낭족이다. 2013년 난생 처음으로 영국, 프랑스, 이탈리아 3개국을 자유여행으로 다녀온 뒤 그 감동을 잊지 못한다. 손수 비행기 표를 예매하고 지도를 찾으며 목적지에 이르는 여정은 살아 있음을 느끼게 해 주었다. 올해는 그동안 뒷바라지하느라 고생한 아내와 함께 못다 본 유럽을 둘러볼 계획이다.

배낭 메고 전 세계로 여행을 떠나는 중장년층이 늘고 있다. 과거 중장년들의 주된 여행 방식이 단체로 버스를 타고 가이드의 안내에 따라 움직이는 패키지여행이었다면, 지금은 스스로 여행의 전 과정을 계획하고 이를 즐기는 자유여행이 트렌드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한국관광공사가 지난해 말 발표한 ‘2014 해외여행 트렌드 조사 보고서’를 보면 개별 자유여행(40.4%)이 숙소와 항공권만 정해진 에어텔 여행(12.5%)과 패키지여행(37.5%)보다 앞섰다. 40대 이상 해외여행객도 증가했다. 2013년 출국자 수가 2009년과 비교해 40대는 40.7%, 50대는 42% 늘었는데, 이들 가운데 패키지 상품을 선택하지 않은 비율은 40대 44.8%, 50대 25.3%였다. 4050세대 해외여행객 10명 가운데 3.5명꼴로 자유여행을 즐긴 셈이다.

배낭여행 전문 여행사 내일투어에 따르면 전체 배낭여행 고객의 10~20%가 40대 이상 중장년층이다. 박종규 내일투어 해외영업부 대리는 “불과 5년 전만 해도 배낭여행 상품을 찾는 중장년층은 손에 꼽힐 정도였지만, 2~3년 전부터 수요가 본격적으로 늘기 시작해 올해는 봄부터 예약이 전년 동기 대비 50% 이상 늘었다”며 “이들은 바가지 쇼핑, 강제 옵션투어, 팁 요구로 인해 패키지여행 상품에 실망감을 느끼던 차에 중년 해외 배낭여행을 다룬 TV 프로그램을 보고 자극을 받은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자유여행을 떠나는 중년층의 연령대는 40~60대가 주를 이룬다. 1990년대 청년기를 보낸 지금 40대는 해외여행 1세대로, 대학 시절 배낭여행을 해 본 경험이 한두 번씩 있다. 50~60대도 잦은 해외 출장 등으로 외국 여행에 거부감이 없는 것이 특징이다. “한 살이라도 젊고 건강할 때 나도 자유롭게 배낭여행을 떠나고 싶다”고 털어놓는 고객들이 많다는 게 박 대리의 설명이다.


홀로 떠나는 중년 남성, ‘모녀’ 배낭족도 다수
중년 배낭족들의 면면을 보면 기업 최고경영자(CEO)나 임원, 교수, 공무원이 많고 모녀 혹은 부녀, 모자가 함께 여행을 가기도 한다. 시기는 조금씩 다른데, 직장인의 여름휴가 기간이 집중된 7~8월에는 가족 단위 배낭족이나 혼자 떠나는 중년 남성의 예약 건수가 많은 반면, 봄·가을에는 중년 여성들이 주로 여행에 나선다. 가장 선호하는 지역은 영국, 프랑스, 이탈리아로 이어지는 서유럽 투어. 기간은 보통 1~2주, 길게는 3주 정도로 잡는다. 서유럽을 몇 번 경험한 사람들은 그리스나 스페인, 크로아티아, 체코 등 지중해와 동유럽으로 간다.

여행지 선정은 특히 미디어의 영향을 많이 받는 것으로 보인다. 인터파크투어가 지난해 2013년 대비 방문객 수가 급증한 여행지를 조사한 결과, tvN ‘꽃보다 누나’의 배경이 된 크로아티아의 두브로브니크가 308%로 가장 높은 증가율을 보였다. ‘꽃보다 할배’의 여행지였던 대만 또한 꾸준히 인기가 있는 곳. 가오슝 방문객은 261%, 타이베이 방문객도 201% 증가했다. 그 밖에 일본 오키나와, 베트남 다낭, ‘꽃보다’ 시리즈에 등장했던 페루, 라오스 등도 새롭게 떠오르는 여행지다.

중년들의 배낭여행 수요가 늘면서, 여행사에서는 자유여행과 가이드 투어가 결합된 형태의 ‘세미 배낭여행’ 상품을 잇달아 내놓고 있다. 인솔자가 있지만, 여행지 내에서 길거리 공연을 감상하거나 맛집을 찾아가는 등 원하는 방식으로 여행을 즐길 수 있어, 준비 시간이 부족하거나 혼자 배낭여행의 전 과정을 계획하는 것이 어려운 중년들 사이에서 인기다. 여행 일정을 세우는 것만 대행하거나 ‘꽃보다 할배’에서처럼 짐꾼이 배낭여행에 동행해 길 찾기, 언어 문제 등을 해결해 주는 여행 상품도 있다.

‘꽃할배 따라가기’를 슬로건으로 내건 맘모스 여행사의 김동욱 대표는 “젊은 친구들이 비용 절감에 배낭여행의 목적을 둔다면 중년들은 얼마나 경험을 많이 할 수 있느냐에 방점을 찍는다”며 “세미 배낭여행은 자유여행에 비해 1.5배가량 비싸기는 해도 여러 수고로움을 덜 수 있어 상대적으로 여행에 집중할 수 있기 때문에 많은 중년들이 애용하고 있다”고 전했다.


이윤경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