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 마녀는 충분히 아름다운 사람이었습니다. 백설 공주와 비교하지만 않았다면 말이죠. 스스로를 사랑하기 위해 다시 한 번 생각해 볼 동화, 바로 ‘백설 공주’입니다.
일러스트 민아원
일러스트 민아원
“눈이 내리는 겨울 날, 눈처럼 하얀 공주가 태어났다. 왕과 왕비는 공주의 이름을 ‘백설’이라 지었다. 왕비가 갑자기 병으로 죽은 후, 왕은 새 왕비를 들였다. 새 왕비는 아름다웠지만, 사실 마녀였다. 아름다움에 집착했던 새 왕비는 매일같이 마법 거울에게 ‘세상에서 누가 제일 예쁘니?’ 하고 물었는데, 그때마다 거울은 ‘백설 공주’라고 대답했다. 화가 난 새 왕비는 사냥꾼에게 공주를 죽이라고 했다. 다행히도 사냥꾼은 공주를 살려 주었고, 공주는 숲 속의 일곱 난쟁이와 함께 살게 되었다. 이후 새 왕비는 공주가 살아 있는 것을 알고, 공주를 찾아가 독이 든 사과를 먹였다. 공주는 결국 그 자리에서 쓰러졌고, 일을 다녀온 난쟁이들은 큰 슬픔에 빠진다. 그 후 공주를 유리관에 넣어두었는데, 지나가는 왕자가 백설 공주에게 반해 입을 맞췄다. 그 순간 목에 걸렸던 사과가 빠지면서 백설 공주는 눈을 뜨고, 왕자님과 행복하게 살았다.”


우리가 좋아하는 동화 ‘백설 공주’의 내용입니다. 이번에 제가 이야기할 인물은 백설 공주가 아니라 바로 아름다움에 집착했던 마녀예요.

동화 속 마녀는 누구보다 아름다워지고 싶었던 사람입니다. 그녀는 최고가 되기 위해 백설 공주를 없애기로 마음먹습니다. 우선, 그 행동이 좋다, 나쁘다를 생각하기에 앞서 이렇게 가정해 보죠. 만약 마녀가 백설 공주를 죽이는 데 성공했더라면, 마녀는 정말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사람이 될 수 있었을까요? 글쎄요. 백설 공주가 죽었다고 꼭 마녀가 최고가 될 거란 보장이 있을까요?

세상에서 제일 예쁜 사람이 되기 위해선 2가지 방법이 있는 것 같아요. 마녀처럼 자신보다 예쁜 사람들을 없애거나, 아니면 스스로가 세상 누구보다 예쁘다고 믿는 것이죠. 다른 점이 있다면, 전자는 결국 세상에서 가장 예쁜 사람이 돼도 스스로를 사랑할 수 없는 반면, 후자는 세상에서 가장 예쁜 사람이 되지 못해도 스스로를 사랑할 수 있다는 점입니다.

JTBC의 ‘비정상회담’이라는 프로그램 보시나요? 그 프로그램을 보면 안건의 마지막은 늘 이런 질문으로 끝맺습니다. “~하는 나, 비정상일까요?” 그러면 패널들은 각자의 생각에 따라 질문자를 조심스레 판정합니다. ‘마녀사냥’이라는 프로그램은 어떤가요? 일명 썸을 타는 당사자들이 자신들의 이야기를 들려주며 또 묻습니다. “이거, 그린라이트인가요?” 정작 당사자들도 쉽게 내리지 못하는 결정을 우리는 이야기로만 전해 듣고 그린라이트인지 아닌지 결정해 주죠. 다시 동화로 돌아와서 마녀의 이야기를 해 볼까요? 누구보다도 자신의 아름다움을 잘 알고 있어야 하는 당사자가 거울에게 묻습니다. “거울아, 거울아, 세상에서 누가 제일 예쁘니?” 우리는 자신의 문제를 남들에게 묻습니다. 나의 잘잘못을, 나의 가능성을, 혹은 나의 아름다움을 말입니다. 어쩌면 우리도 모르는 사이, 우리 마음속의 이야기보다 잘 알지도 못하는 사람들의 이야기에 더 귀 기울였던 건 아닐까요?

자신이 얼마나 아름다운지에 대해 남들에게 묻지 마세요. 이 세상에 나보다 나를 잘 아는 사람은 없습니다. 나를 사랑해 주세요.


기획 이윤경 기자│글 김남규(‘아는 동화 모르는 이야기’ 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