첼리스트 양성원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모든 예술이 고뇌의 산물이라는 사실을 모르지는 않았지만, 모두가 칭송하는 이 중견의 연주자가 걸어왔고 걸어가고 있는 길엔 예상보다 훨씬 더 깊은 고뇌의 순간들이 있었다. ‘음표 뒤 음색이 들려오는 순간’과 ‘첼로를 잊어버리는 궁극의 목표’에 대해 논하던 그는 삶이 곧 첼로였고, 음악이었다. 첼리스트 양성원을 알게 된다면, 분명 그의 음악이 다르게 들릴 게다.
[BREAK FOR MUSIC] 첼로가 사라지는 순간, 나는 음악이 된다
언젠가 만난 한 연주자가 그런 말을 했다. 이름만 들어도 신뢰가 가는 사람이고 싶다고. 그처럼 ‘믿고 보는’ 연주자가 된다는 건 분명 쉽지 않은 일이지만, 여기에 하나 더 양성원은 기대 혹은 설렘을 갖게 하는 연주자다. 연주 자체가 주는 감동을 넘어서, 오늘은 또 어떤 새로움이 있을까, 어떤 즐거움과 자극을 받게 될까 생각하니 본격적인 무대가 시작되기 전 기다림도 무대의 연장선이 된다.

그를 만나던 날도 그랬다. 피아니스트 엔리코 파체와 함께 선보인 ‘브람스, 슈만 첼로와 피아노를 위한 작품 전곡’ 출시 소식에 일단 기대 충만, 아쉽게도 CD를 플레이시켜보지 못한 채 그를 만나러 갔지만, 그래서 더욱 마음속은 호기심으로 가득 차 있었다. 결과적으로 텍스트로 먼저 전해들은 음악들은 오디오에서 흘러나올 선율을 재촉했고, 귀로 들은 음악은 다시 눈앞에 어떤 장면들을 펼쳐놓았다. 앨범에 동반 수록된 연주 여행 다큐멘터리를 보지 않아도 수없이 다른 배경에서 연주를 하는 수많은 장면들이 신을 바꿔가며 떠오르니, 얼마 전 작고도 큰 흥행으로 화제가 됐던 영화 ‘비긴 어게인’이 오버랩 되기도 했다.


스스로를 잊고 브람스와 슈만을 불러내다
양성원은 설명이 딱히 필요 없는 국내 대표 첼리스트다. 걸어온 발자취로도 음악적 결과물로도 구구절절 이야기한다는 것 자체가 실례. 그래도 굵직한 행보에 대해 설명하자면, 2005년 바흐 무반주 첼로 모음곡 전곡 음반을 냈고 2007년 한국 첼리스트 최초로 베토벤 소나타 전곡 음반을 발매하고 무려 4시간 동안 이어진 베토벤 첼로 소나타 전곡 연주를 했으며, 이후에도 드보르자크를 섭렵했다. 바이올리니스트 올리비에 샤를리에, 피아니스트 엠마누엘 슈트로세와 의기투합해 트리오 ‘오원’을 결성, 세계를 무대로 활동 중이고, 현재 연세대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다.

이런 ‘네임 밸류’로야 앨범이든 공연이든 주목을 끄는 게 당연하겠지만, 사실 그의 행보에는 플러스알파가 있다. 그를 논할 때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단어, 바로 ‘도전’ 때문이다. 어느 정도 정상의 궤도에 오른 이가 끊임없이 자기 혁신을 한다는 건 쉬운 일이 아닐 터. 그래서 누군가의 말처럼 ‘탐험가’라는 표현이 더 어울리는지도 모르겠다. 헌데 알고 보면 그의 ‘탐험’은 노력의 산물이 아니라 버라이어티한 관심의 산물이다. 그날의 대화도 며칠 후 진행될 인문학 강의로 시작해 와인 이야기로 끝났는데, 그의 삶에서 음악과 전혀 무관한 것이란 없었다.


바흐 무반주 첼로 모음곡, 베토벤 첼로 소나타 전곡 때도 그랬지만, 이번 앨범도 발매되자마자 화제입니다.
“슈만의 세 곡 전곡과 브람스의 두 곡 전곡을 CD 2장에 담았는데, 두 사람은 두 말할 필요가 없는 낭만파의 대표 기둥들이죠. 사실 슈만과 브람스는 오래전부터 연주해왔고 언젠가는 몸에 배겠지 했는데 작년에 공연을 다니면서 그런 느낌을 받아 내놓게 됐어요. 그 ‘때’에 대한 판단이란 절대로 ‘머리’로 한 게 아닙니다. 씨를 뿌린 지 오래됐고 계속 공연을 통해 가꾸는 과정이 있었고, 그 과정에서 뿌리가 깊이 내리게 되면 음표 뒤의 음색들이 들리는 순간이 오는 거지요. 어떤 면에선 조금 러프하기도 하고, 때론 불안감에서 오는 격렬함, 강렬함도 있는데 그 모든 걸 고스란히 담았어요. 브람스와 슈만의 혼이 담겨 시적이고도 현실적이고, 현실적이고도 친근한 표현이 되길 바라는 마음으로요.”


주변 분들의 반응은 어떤가요.
“들어본 분들은 엄청 살아 있다는 평들을 많이 해요. 어떤 땐 그야말로 활이 현에 부딪치는 소리까지 들리고, 또 피아노가 첼로보다 훨씬 큰 악기임에도 불구하고 굳이 그 밸런스를 일부러 맞추지 않고 첼로와 피아노 소리 그대로 고스란히 담았기 때문에 살아 있다는 느낌을 받는 것 같아요. 실제로 숨 쉬는 소리까지 다 담겨져 있을 정도죠.”


음원뿐만 아니라 연주 투어 당시의 다큐멘터리 DVD가 포함돼 있다는 게 이전 앨범들과는 다릅니다. 의도하신 바가 있었나요.
“음원만 들린다면 아마 다른 세상의 것들을 보는 것처럼 멀게 느낄 수 있겠지만, 녹음하는 과정과 순간순간이 담겨 있다면 아마 훨씬 더 가깝게 느껴지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했어요. 그런 의도로 프랑스 샤토 페스티벌에서 서울, 전남 여수 등으로 연주 투어를 다닐 때 아예 카메라맨이 동행을 했죠.”


브람스와 슈만을 한 음반에 담은 이유가 있나요.
“슈만이 브람스의 스승이었고, 슈만 사후 부인인 클라라 슈만 옆을 지켰던 브람스도 그렇고 두 사람은 역사적으로 떼놓을 수 없는 관계죠. 그런데 사실 안으로 들어가면 굉장히 대조적인 사람이었어요. 브람스는 어느 누구보다 완벽한 작곡가라 곡 하나를 몇 년에 걸쳐 섬세하게 작업한 사람이었고, 슈만은 정반대였죠. 본인의 불안과 절망감, 심리적 고통 등을 음악에 표현하고자 했으니까요. 이 두 대조적인 음악이 고스란히 남았으면 하는 바람에서 하게 됐어요. 브람스는 30대 초반과 50대에 각 한 곡씩 남겼는데 재밌는 게 30대엔 노련미와 성숙미가 느껴지고 50대 중반엔 젊음의 에너지가 느껴지죠. 그러고 보면 자기 안에 없는 걸 추구했다고 봐야 할 것 같아요. 슈만의 곡은 지금 와서 더 이해하기가 쉬워졌어요. 불과 2~3년 전부터 슈만을 연주하며 즐길 수 있게 됐죠. 브람스 첼로 소나타 두 곡만 하기는 너무 아쉬워서 슈만의 세 곡을 다 담았어요.”


또 다른 도전이었던 셈인데, 개인적으로는 어떤 의미로 남습니까.
“더 파고들 수 없을 만큼 모든 음악적 요소를 다 시도하고 핵심만 건진 작업이었어요. 그런 면에서 하나의 이상을 추구했다는 만족감이 있죠. 완벽을 추구한다는 건 어떤 의미로 허탈할 수 있지만, 이상을 추구하는 건 아름다울 수 있다고 생각해요. 한국과 이탈리아, 프랑스에서 연주하는 과정에서 많은 변화가 있었고 그러면서 음악은 좀 더 투명해졌고 첼로를 떠나게 해주었죠. 첼로를 떠난다는 건 제 자신을 잊고 브람스와 슈만을 더 살리는 거예요. 궁극의 목표죠.”


첼로와 싸워온 시간들, 여전히 현재 진행형
첼로와 한 몸이 되는 걸 넘어서 첼로를 떠난 상태라니, 그렇게 첼리스트는 사라지고 그는 음악 안으로 녹아들었다. 경지에 이른 것처럼 보이는데도 그는 자신의 레코딩은 죽어도 듣지 못한다고 했다. 이상을 추구하는 과정은 분명 아름답지만, 이상에 대한 갈망 때문에 늘 아쉬움이 많고 그게 먼저 들리기 때문이라고. 7세 때 첼로를 잡기 시작해 이제 쉰을 바라보는 나이가 됐는데도 그는 그렇게 여전히 음악가로서 성장 중이다.


언젠가 “나의 전성기는 50대부터다”라고 했던 말이 기억납니다.
“그 생각엔 변함이 없어요. 50대 후반, 60대 초반이 전성기라면 좋지 않을까 생각하죠. 제가 생각하는 감동을 주는 연주는 사람을 통해 소리가 나오는 삶이에요. 소리를 내는 것 자체로 잘한다는 느낌을 줄 수는 있겠지만, 몇 년 후까지 감동을 줄 수 있는 연주는 아닐 것 같아요. 저는 매일 아침 일어나 줄을 맞췄을 때 제게도 ‘그날’이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죠.”


파블로 카잘스처럼 말인가요(첼로의 거장 카잘스는 영혼의 울림이라는 칭송을 받으며, 100세 가까운 나이에도 연주 계획을 세우며 무대 위에서 긴 시간을 보냈다).
“다른 연주자의 첼로 레코딩을 거의 안 듣는데 유일하게 카잘스의 음반은 들어요. 인류의 소리가 담긴 레코딩이라는 게 그의 연주에서 나오기 때문이에요. 그런 연주라야 질리지 않고, 그 때문에 지금도 여전히 베스트셀러죠.”


그간의 결과물로도 충분히 자부심을 가질 만하지 않나요.
“절대요. 아직도 저는 앞길을 가느라 바빠요. 레코딩은 하나의 챕터를 닫는 거예요. 베토벤 전곡을 했을 땐 그걸로 한 챕터가 닫힌 거고, 브람스도 마찬가지죠. 다만 바흐는 많이 변화된 상태에서 연주하기 때문에 계속하기는 하는데, 대부분은 레코딩을 한 다음엔 거의 듣지 않아요. 거기에 자꾸 얽매이게 되기 때문이에요. 지구가 도는 이상 ‘그땐 그랬었지’ 하는 타임머신, 즉 기록을 담으려고 노력하는 것 같아요. 물론 시간이 지나 또 한 번 베토벤을 할 수도 있겠지만, 그땐 이전의 베토벤과 완전히 다른 베토벤이 가능할 때의 얘기인 거죠.”


브람스처럼 완벽주의신가요.
“그렇다고도 할 수 있겠지만 자유를 추구한다는 게 더 정확할 거예요. 분명한 프레임이 있기 전엔 그 안에 자유로운 방황이 있다고 생각해요. 또 아티스틱 프레임 안에서 충분히 다 표현하면 자유를 찾게 되죠. 많은 이들이 자유롭다고 할 때가 있는데, 그건 곡을 완벽하게 이해하는 순간 시작되는 겁니다.”


대학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계시고, 연주 일정도 굉장히 많습니다. 두 가지를 균형 있게 하는 일이 어려울 것 같은데요.
“아직까진 그 두 가지를 소화하는 데 무리가 없는데 다만 학생들에게 미안하긴 해요. 연주 스케줄이 미리 나오다 보니 연주 일정에 맞춰 강의 일정이 바뀌기도 하니까요. 그래도 지난 20년간 단 한 번도 휴강을 해본 적이 없어요. 연주 스케줄 때문에 강의를 빼야 하는 상황이 생기면 늘 미리 수업을 하거든요. 강의 스케줄에도 엄격한 건 제 나름대로 지켜야 할 것들을 지키고, 흔들리지 않기 위해 노력하는 차원이기도 해요.”
[BREAK FOR MUSIC] 첼로가 사라지는 순간, 나는 음악이 된다
어렸을 때 피아노가 싫어서 첼로를 시작하셨다죠. 바이올리니스트인 아버지(양해엽)와 형(양성식)의 영향도 있었겠죠.
“분명 피아노에 매력을 느끼지 못했던 선천적인 이유가 있었겠죠. 첼로는 몸에 훨씬 가깝게 울림이 있었고, 제가 소리를 낸다는 느낌이 있었는데 그에 비해 피아노는 뭐랄까 굉장히 이성적인 악기처럼 생각됐어요. 첼로와 한 몸이 돼 연주를 하다 보면 마음의 울림과 첼로의 움직임이 맞춰지는 순간이 있거든요. 그럴 때면 진짜 희열을 느끼죠.”


이제 점점 그런 희열의 순간이 많아져야 하지 않아요.
“그럴 줄 알았는데 속았죠. 대학 때부터 많은 꿈을 갖고 이 직업을 추구했지만, 아마 지금 이 시기에까지 이 정도로 연습을 많이 했어야 한다는 걸 일찍이 알았더라면 다른 직업을 택했을지도 몰라요. 첼로와 싸워야 하는 시간이 많아요. 이상도 점점 높아지고 그만큼 연습도 점점 더 많이 해야 하죠. 그간 여러 번 첼로를 그만두려고 했는데 안 되더군요. 운명처럼 2, 3일 지나면 다시 첼로 케이스를 열게 되고, 그러다 여기까지 왔어요. 육체적인 고생도 있지만 감성적, 정서적으로 수반돼야 하는데 그게 잘 안 될 때는 엄청난 허무감과 큰 슬픔마저 느낍니다. 그런데 실은 한 작가의 작품과 감성을 표현하는 데 있어 실패할 때가 자주 있어요. 그때의 마음고생은 겪어본 사람이 아니면 이해할 수 없죠. 다시 일어날 힘이 없으면 지속하기가 굉장히 어려운 직업이에요.”


다시 일어날 힘을 어디서 받으시나요.
“아주 천천히 초인간적으로 바흐의 무반주 첼로 곡을 연주합니다. 완전히 초석부터 다시 깐다고나 할까요. 아주 오래전부터 갖고 있던 버릇인데, 그렇게 연주할 때가 자주 있어요. 잊어버릴 용기가 있어야 하는데….”


‘위대한 기업은 다 어디로 갔을까’의 저자 짐 콜린스는 위대한 기업이 몰락하는 5단계를 설명하며, 첫 단계로 ‘조금씩 싹트는 자만심’을 이야기했다. 첼리스트 양성원을 만난 이후 그런 생각을 하게 된 건 “음악가의 삶은 오르막길 아니면 내리막길”이라던 그의 멘트 때문이었다. 어딘지 쓸쓸함이 묻어나는 얘기였지만, 이토록 끊임없이 노력하는 음악가에게 오르막의 끝은 아직 멀어만 보였다.


박진영 기자 bluepjy@hankyung.com | 사진 이승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