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무실 창밖으로 헐벗은 나무들이 보인다. 한여름 무성했던 나뭇잎을 떠나보낸 저 나무를 보니 올 한 해도 열심히 보냈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문득 평생을 몸담아온 금융, 특히 지금 적을 두고 있는 보험업이 저 나무에 차곡히 쌓인 나이테와 같다는 생각이 든다.

겨울 추위에 맞서 옷을 벗은 나무의 모습은 당장 위기 속의 우리 금융과 닮았다. 새로운 바람이 부는 변혁의 시기에는 자신의 모든 것을 버릴 수 있을 정도의 혁신과 참고 버티는 내성이 요구된다. 요사이 마음속으로 기본으로 돌아가자는 나만의 구호, ‘Back to the Basic’을 자주 읊조린다.

금융업의 기본은 고객을 위한 질 높은 자산관리에 있다. 급속한 고령화와 저성장의 경제 구조는 한국 사회를 연금화 사회로 접어들게 했다. 미래를 위해 준비하는 오늘의 연금은 내일의 큰 힘이 된다. 이런 시대적 흐름에 기민하게 대응해야 한다. 그럴수록 보험의 역할이 중요하다. 연금을 중심으로 장기 자산관리를 추구하는 보험은 금융 산업 내에서 그 비중이 점점 커지고 있다. 가계경제를 책임지는 보험은 나무를 든든하게 지탱하는 뿌리와 같다.

깊게 뿌리박힌 나무에 물과 양분이 되는 것은 자산 운용 능력이다. 금융사의 본질은 결국 자산 운용이다. 고객이 맡긴 돈을 어떻게 운용해서 돌려주는지가 관건이다. 좋은 자산은 유동성, 수익성, 성장성 등 세 가지 조건을 충족시켜야 한다. 이 점에 맞춰 큰 책임과 방향성을 갖고 평생을 일해 왔다. 장기적인 자산 운용 관점에서, 특히 연금이 녹아 있는 보험으로 저성장·저금리 시대를 준비할 수 있다. 올 한 해는 이것을 전달하느라 많은 힘을 쏟았다.

계절이 바뀌면 나무는 다시 옷을 갈아입는다. 시대의 변화에 따른 글로벌화와 모바일화는 이제 숙명이다. 따라가야 하는 게 아니라 선도해야 한다고 마음가짐을 다시 했다. 전자화폐가 나오는가 하면 카카오톡으로 그 자리에서 돈을 송금하고 주식을 거래하기도 한다. 연금자산은 글로벌 분산이 공식이 된 지 오래이고, 보험 역시 나날이 온라인 채널의 역할이 커지고 있다.

이럴수록 가장 중요한 것은 역시 신뢰다. 천년의 노송은 시간이 흘러도 꿋꿋이 그 자리에 버티며 보는 이들에게 이정표가 되듯, 우리 금융회사도 고객에게 길이 되고 방향이 되고 희망이 돼야 한다. 고객과 회사는 계약으로 맺어진 관계를 넘어서 이제 서로를 믿고 한 길을 가는 동맹관계다. 2015년에는 ‘고객 동맹’이란 말을 더 많이 쓸 작정이다.

봄은 그냥 오지 않는다. 대지의 양분을 끌어모으기 위해 힘차게 요동치는 뿌리 밑바닥에서부터 자신의 몸보다 두 배 이상이나 되는 똥들을 둥글게 말아 열심히 끌고 가는 쇠똥구리까지, 모두 인고하며 준비했기에 새순이 싹트는 법이다. 새봄을 기다리며 착실히 겨울을 나는 나무의 모습에서 무성한 잎을 자랑할 다음의 신록(新綠)을 기대해본다. 내년도 초록빛 가득할지어다.


최현만 미래에셋 수석부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