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나스 요나손 ‘창문 넘어 도망친 100세 노인’

오늘도 전전긍긍했던 하루였나요. 사는 게 뜻대로 되지 않아‘될 대로 되라’하며 방임하며 살다가 내일은 다시 아등바등 매달리길 반복하는 랜덤 인생은 나만의 것이 아닐 테지요. 고슴도치 끌어안고 부지하듯 사는 나날로 점철된 우리에게 한 남자가 다가와 넌지시 말합니다. “세상만사는 그 자체일 뿐이고 앞으로 뭔 일이 일어나도 그뿐일세. 그런데 혹시 슈납스(스웨덴의 소주) 한 잔 할 수 있을까?

목 좀 축이며 얘기하고 싶은데 말이야.” 2014년 국내 서점가를 강타한 베스트셀러, 41개 외국어로 번역돼 유럽에서만 500만 부 이상 팔려 일약 세계적 유명 작가가 된 ‘창문 넘어 도망친 100세 노인’의 저자 요나스 요나손이 바로 그입니다.
[BOOK WE ATTEND] “내 행복의 비결은 ‘세상만사, 이래도 흥 저래도 흥!’”
저물어가는 2014년 한 해를 뒤돌아보니 수없이 새겨진 칼자국으로 가득한 도마처럼 상처만 마음속에 남아 있다면 100세 노인 알란 칼손을 만나보시라. 2009년 처음 출간된 이래 41개 언어로 번역된 ‘창문 넘어 도망친 100세 노인’은 프랑스 120만 부, 영국 120만 부, 독일 400만 부 등 전 세계에서 800만 부 이상 판매됐다. 지난해에는 동명의 영화로 제작돼 스웨덴 박스오피스 1위에 올랐고, 국내에서는 올해 6월 개봉해 소설과 함께 선풍적인 인기를 얻었다. 지난 8월까지 예스24 종합 베스트셀러 5주 연속 1위를 차지하기도 했다. 북유럽 문학 열풍의 도화선 역할을 한 작품이라는 점과 함께 전직 기자이자 기업 대표를 지낸 이력을 지닌 작가의 늦깎이 데뷔작인 것 또한 이색적. 세계적인 베스트셀러임을 설명하는 판매부수 수치나 ‘최고의 작품’이라고 평하는 유력 매체들의 평만으로 ‘요나손 신드롬’을 설명하긴 쉽지 않다.

고맙게도 책장이 술술 넘어가는 페이지터너 소설의 전형이다. 무엇보다 작가 요나스 요나손은 이 책 한 권으로 소설 속 플롯을 비비 꼬면서도 그만의 화려한 입담으로 성찬을 차려내는 스토리텔러임을 증명했다. 기상천외한 상황 전개와 유머로 무장한 소설 심연에는 삶을 바라보는 낙천과 여유가 깔려 있다. 여기에 더해 황당무계한 소동으로 얽힌 이야기의 전개 안에는 군데군데 작가 요나손식의 ‘행복’이 보물찾기처럼 숨겨져 있으니, 100세가 넘어도 팔팔한 영혼을 지닌 할아버지의 비척거리는 발걸음을 정신없이 따라갈 수밖에.


요나손 가라사대, 갈등과 다툼은 유머로 풀어라
책 제목만 보면 노인의 모험을 다룬 내용일 것 같지만 요양원을 빠져나온 ‘알란 칼손’이라는 노인의 혼란에 빠진 인생을 블랙 유머로 다룬 작품이다. 이 책의 얼개를 간단히 소개하자면 스웨덴의 작은 마을 양로원에서 100세 생일날 슬리퍼 바람으로 창문을 넘어 탈출한 영감은 ‘이제 그만 죽어야지’라고 생각하는 대신 인생 제2막을 즐기기로 결심한다. 버스터미널에서 우연찮게 갱단의 돈 가방을 슬쩍하고 도피 도중 친구들을 사귀면서 이들과 함께 로드무비를 떠나게 된다. 100세 노인 일행과 그들을 쫓는 갱단, 그리고 그 뒤로 또다시 그들의 자취를 따라가는 경찰. 보통의 추격전과 달리 도망치는 쪽이 여유롭기 그지없는 이 술래잡기는 늘 독자의 예상을 뒤엎어 신선한 재미를 준다. 노인이 도피 과정에서 겪는 모험과 쌍을 이루는 소설의 다른 한 축은 그가 살아온 100년의 이야기로 세계사의 중대한 순간마다 끼어들어 알란 칼손의 모험과 철학을 엿볼 수 있다.

책을 손에 쥐고 포복절도하다가도 삶을 관조하면서도 희망을 놓지 않는 주인공 알란 칼손이 문득 부러워지기 시작하는 순간 독자들은 작가 요나손에게 매료된다. 갈 길 몰라 길 위에서 방황하는 많은 한국 독자들이 그의 책에 열광하고 있다고 한국에 한번쯤 오지 않겠냐고 물었다. 그는 자신이 키우는 닭들 때문에 어렵다며 난색을 표했다. 그러면서 덧붙였다. 깜빡 잊고 닭장 문을 열고 외출하는 날에는 어김없이 자신의 머릿속에서 알란 칼손이 말을 건다나? ‘여우가 닭들을 잡아먹어도 이제 와서 어쩌겠나. 이왕 이렇게 된 거 잊으라고.’

스웨덴의 고틀란드 섬에서 일곱 살 난 아들과 여러 마리의 닭들과 함께 살고 있는 작가 요나손과 이메일로 인터뷰를 진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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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창문 넘어 도망친 100세 노인’과 후속작 ‘셈을 할 줄 아는 까막눈이 여자’까지 세계적으로 뜨거운 반응을 얻고 있다. 기분이 어떤가.
“사실 처음 ‘창문 넘어 도망친 100세 노인’ 원고를 마무리하고 출판사 여섯 곳에 원고를 보냈다. 다섯 곳에서 거절했고 한 출판사에서 황당한 답이 왔다. ‘절반쯤 읽었다. 출판하고 싶다.’ 나는 이렇게 답장했다. ‘절반만 출간하자는 겁니까? 아니면 전부를 다 내겠다는 거요?’ 출판사와 계약을 한 뒤에도 3000부 정도 팔리면 좋겠다고 생각했는데, 지금도 이 모든 게 믿기지 않는다.”


47세 늦깎이 소설가가 된 이야기가 궁금하다.
“대학 졸업 후 기자로 15년간 일했다. 그 뒤에는 미디어 컨설팅회사를 시작했고, 회사는 2명의 직원으로 시작해 몇 년 만에 100명까지 늘었다. 회사는 아주 빠르게 성장했다. 사실, 너무 빨랐다. 그리고 난 병을 얻었다. 등에 큰 수술을 두 번이나 받았다. 어느 날 한 스포츠 스타와 인터뷰에 대해 의논하기 위해 취한 연락이 불발되자, 내 심장은 미친 듯이 뛰기 시작했고, 나는 심장마비가 오고 있음을 직감했다. 의사가 스트레스 때문에 죽을 수도 있다고 했다. 의사는 내가 회복하려면 몇 개월이 걸릴 거라고 했다. 실제로는 몇 년이 걸렸다. 그래서 회사를 팔았다. 그러고 나니 마침내 내가 늘 믿었던 것처럼 작가가 될 준비가 돼 있었다. 삶을 바꿔야겠다고 생각했다. 보다 조용한 삶이 필요했고, 회사를 팔아 치운 뒤 스위스로 가 치료의 일환으로 글을 쓰기 시작했다. 나도 알란처럼 그렇게 창문 넘어 도망친 거다.”


성공한 기업인에서 작가가 된 건 결국 건강 때문이었다는 건데, 그럼 당신에게 글쓰기란 무엇인가.
“나 스스로 항상 작가였다고 생각해 왔다. 그래서 데뷔작을 쓰는 데도 47년이 걸렸다고 말한다. 할아버지와 어머니는 언제나 이야기를 들려주셨고 그중 절반이 허풍이었다. 생각해보면 그분들이 내 글쓰기의 원천이 된 것 같다. 이야기를 지어내는 것과 사람들을 웃기는 게 그들과 나에겐 중요한 일과였으니까. 내가 펜을 드는 이유도 간단하다. 나는 그저 글 쓰는 게 재미있다. 또 내가 가정 문제(그는 이혼하고 혼자 아들을 키우는 싱글 대디다)로, 건강 문제로 힘들고 스스로 정체성을 못 느낄 때 글쓰기를 통해 그 트라우마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소설 ‘창문 넘어 도망친 100세 노인’ 속 알란 칼손은 어떠한 순간에도 냉정을 잃지 않고 걱정될 정도로 긍정적이다. 당신의 삶에 대한 철학이 투영된 것인지 궁금하다.
“알란은 내가 지금보다 훨씬 어렸을 때의 모습을 좀 닮았다. 그 엄청난 낙관주의 말이다. 지금은 아주 달라졌지만. 일을 엄청나게 하고 결혼생활에 문제가 생기면서 알란의 모습이 점차 사라진 것 같다. 내가 만든 이 알란 칼손 캐릭터는 내가 미친 듯이 일할 때 집에 돌아와 글을 쓰면서 만들었다. 나의 현실과는 완전히 동떨어진 어떤 남자를 만들었다. 어떻게 보면 모순으로 가득 찬 캐릭터다. 그에게는 도덕이란 찾아볼 수 없고 정치적 바보이기도 하다. 그러나 한편 알란은 우리와 같다. 우리는 그를 좋아하고, 또 그를 부러워한다. 나도 어느 정도는 그를 부러워했다. 그가 가진 ‘걱정이라곤 없는’ 태도 때문에…. 이런 식의 현명함은 기차를 놓치건 말건 걱정할 이유가 없다는 것을 안다. 걱정과 상관없이 기차를 놓치거나 혹은 제대로 탈 테니까 말이다.”


많은 독자들이 알란 칼손을 자신의 아바타처럼 생각했다. ‘그러거나 말거나’ 하는 태도 말이다.
“요즘 내가 기분이 안 좋거나 뭔가를 걱정할 때면 알란이 나타난다. 내가 스트레스를 받으면 그가 말한다. ‘이봐, 그렇게 나쁘진 않을 거야.’ 좀 웃긴 일인데, 나는 그를 ‘알란’이라고 부르고 그는 나를 ‘요나손 씨’라고 부른다. 내가 일 때문에 집에서 멀리 떨어져, 닭장 문을 제대로 닫았는지 걱정하고 있으면 알란이 이렇게 묻는다. ‘요나손 씨, 당신이 닭장 문을 깜빡하고 안 닫았을 때 생길 수 있는 가장 나쁜 일은 뭘까?’ 그럼 내가 대답한다. ‘여우가 와서 닭들을 잡아가겠지.’ 그가 말한다. ‘그래, 근데 지금 닭장으로부터 멀리 떨어져 있고, 할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잖아. 그렇지?’ ‘맞아.’ ‘그럼 걱정하지 마. 쓸데없어.’”


시종일관 엉뚱한 에피소드로 세계사를 관통하고 익살스러운 이야기로 가득하지만 소설이 주는 메시지는 여운이 길다.
“‘창문 넘어 도망친 100세 노인’은 제목을 먼저 써두고 소설을 쓰기 시작했다. 주인공에 대한 설정도 딱히 없었다. 작품을 모두 쓰고 나니 주인공들이 그 모양이 됐더라. 독자에게 작품을 통해 메시지를 줘야 한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그래도 독자들에게 어떤 희망을 주고 싶었던 것은 사실이다. 20세기는 전쟁, 갈등, 살상 등으로 얼룩진 최악의 세기였다. 모든 것을 흑백으로만 보지 말고 중간색으로 볼 필요가 있다. 갈등을 끝내는 데는 유머가 최고다. 그리고 알란 칼손이라면 이렇게 덧붙이겠지. ‘거기에 보드카 한 병도!’”


당신이 좋아하는 작가나 작품이 궁금하다.
“내가 좋아하는 소설은 야로슬라프 하셰크의 ‘병사 슈베이크’다. 체코 작가로 알베르 카뮈와 어깨를 나란히 하는 작가인데 그도 나처럼 언론인이이자 작가였다. 파트리크 쥐스킨트의 ‘향수’도 좋아한다. 알다시피 이 소설의 주인공으로 말하자면 좀 이상한 사람이다. 난 이런 캐릭터에 끌리는 편이다. 그리고 가르시아 마르케스의 걸작 ‘백 년 동안의 고독’도 물론 좋아한다. 라틴아메리카의 ‘마술적 리얼리즘’은 정말 매력적이다.”


글 쓰는 시간 외에 일상생활은 어떻게 보내는지 궁금하다.
“아이가 학교에 가 있는 오전 9시부터 오후 3시까지 대개 글을 쓰고 나머지 시간은 아이와 집에서 닭, 고양이와 함께 보낸다. 현재 내게 가장 중요한 건 아들이다. 가족이 생기니 성공보다 더 중요한 것을 알게 됐다. 나에겐 책을 많이 파는 것보다 내 아들을 제대로 키우는 게 훨씬 더 중요하다. 여가 시간에는 영화를 좋아해 자주 본다. 내가 제일 좋아하는 영화는 ‘블루스 브러더스’다. 오페라를 듣는 것도 좋아한다. 또 나는 스포츠 경기를 시청하는 것도 좋아한다. 내가 제일 좋아하는 축구 선수는 현재 파리 생제르맹에서 뛰는 스웨덴 선수 즐라탄 이브라히모비치다. 또 나는 로저 페더러나 비외른 보리 같은 유명 테니스 선수도 좋아하는데, 그들과 술 한 잔 하면 소원이 없겠다. 언제든 쏠 준비가 돼 있는데….”


100세 할아버지에 열광하는 수많은 한국 독자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나.
“먼저 감사하다는 말을 전하고 싶다. 처음 내 책이 다른 나라의 언어로 출간된다는 사실이 신기하기도 했고 걱정되기도 했다. 그런데 내 책의 유머를 좋아하다니 요나스 요나손식 유머가 한국식 유머라는 뜻 아닌가. 아직도 내 사인을 기다리는 한국어판 책들이 거실에 쌓여 있는 것을 보면서 생각한다. ‘이렇게 많은 수의 독자들이 내 책을 읽다니 한마디로 환상적이다’라고.”


소설의 앞머리에 막 요양원을 빠져나온 알란 칼손이 야트막한 돌담에 가로막혀 주저하는 이야기가 나온다. 이 돌담 저편에 버스터미널이 있다. 그는 아주 오래전 ‘정말이지 장난 아니게 힘들었던’ 히말라야 산맥을 넘은 때를 떠올린다. 순간 돌담의 크기가 최소한의 크기로 줄어든 것처럼 느껴지더니 알란 칼손은 덜거덕거리는 소리를 내는 무릎을 끌고 담을 넘는다. 그렇게 그의 뒤죽박죽 100세 기념 여행기가 시작된다. 알란 칼손이 지금 우리에게 외치는 소리가 들리는 것 같다. 당신 나이와 빌어먹을 무릎 걱정일랑 돌담 뒤에 버려두고 떠나라고!


이지혜 프리랜서│사진 열린책들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