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자들을 열광케 하는 그들만의 콘텐츠_여덟 번째

흡사 다큐멘터리를 보는 것 같은 드라마 한 편이 있다. 리얼하다 못해 냉혹한 직장생활의 현실을 일깨워주는 드라마 ‘미생’이 바로 그것. 각자 처한 상황에 따라 이 드라마는 다르게 읽히겠지만, 누구나 있을 수밖에 없는 직장생활 혹은 사회생활의 애환을 살포시 안아준다는 건 같다. 말단의 신입사원이든, 그 시절을 다 겪은 최고경영자(CEO)든.
[MEN`S CONTENTS] 남자의 애환을 보듬는 직장 리얼리티, 드라마 ‘미생’
10년 전만 해도 케이블 채널은 결코 지상파 방송의 상대가 되질 못했다. 그러나 권불십년(權不十年)이라더니 요즘은 케이블 채널에서 만든 프로그램이 동시간대 지상파를 꺾는 일이 새삼스럽지도 않을 만큼 자주 벌어진다. 시청률 비교를 떠나 세간에 회자되는 빈도만 봐도 케이블 태생의 콘텐츠가 더욱 잦은 편. 드라마 ‘미생’도 그중 하나다.

한 가지 특이한 것은 지금까지 상식처럼 통용되던 성공 코드로는 이 드라마의 흥행 이유를 찾을 수 없다는 점이다. ‘응답하라’ 시리즈처럼 뭔가 특이한 구석도 없고 ‘슈퍼스타 K’처럼 상업적인 사용 가치도 별로 없다. 인물들끼리 막장으로 엮어놓지도 않았고 톱스타가 캐스팅된 것도 아니다. 물론 100만 부 이상 팔린 원작이 든든한 뒷배가 돼주기는 하나 웹툰과 선을 긋고자 함인지 원작에 녹아 있던 남다른 요소(특히 바둑의 색채)마저도 드라마 영상으로 탈바꿈하면서 새하얗게 지워버렸다. 그런데도 재밌다. 시청률 또한 상승세다. 왜 그럴까.

필자는 그 이유를 ‘오 과장’이라는 인물에서 찾는다. 엄밀히 따지자면 오 과장은 ‘미생’의 주연이 아니다. 주인공은 ‘장그래’라는 조금 특이한 이름을 지닌 젊은이. 원작에서도 그렇고 드라마에서도 그가 관찰자이자 극을 이끌어 나가는 화자다. 이야기 역시 프로 바둑기사를 준비하던 그가 꿈을 접고 취업 일선에 나서면서 시작된다. 한마디로 ‘미생’은 남들과는 전혀 다른 스펙과 성장 배경을 지닌 청년의 ‘고군분투 회사 적응기’인 셈.

반면 오 과장은 보조적인 인물이다. 주인공의 상사 중 한 명일 뿐이며 극중 벌어지는 모든 사건들과 얽히는 장그래와 달리 그는 사건으로부터도 한 발짝씩 비켜서 있다. 제목이 시사하는 의미로 비추어 봐도 오 과장은 다른 테두리 속에 있다. 즉, 미생이 아닌 ‘완생’에 가까운 인물. 이 때문에 그는 이미 회사가 어떤 곳인지, 회사원은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지를 터득했다. 그래서 그의 대사는 마치 달관한 자의 일침으로 들린다.

그런데 ‘귤이 회수를 건너면 탱자가 된다’고 했던가. 여느 드라마 같으면 기교뿐인 대사로 들렸을 말들이 오 과장의 입을 거치면 신기하게도 큰형의 진심어린 충고처럼 와 닿는다. 그가 던지는 한마디가 많은 것을 생각하게끔 만드는 것이다. 다시 말해 울림, 그것이 바로 아무런 흥행 코드를 가지지 못한 드라마 ‘미생’의 유일한 무기라고 할 수 있다.


잃어버린 ‘진짜’ 상사의 모습
오 과장에 대한 설명을 좀 더 곁들이자면 그는 특별할 게 없는 인물이다. 과장이라는 직급이 말해주듯 탁월한 능력도 없고 출세가도를 달리지도 않는다. 세 아이를 둔 평범한 가장이고 만성피로와 숙취에 시달리며 고집불통 캐릭터에 섣부른 오해와 편견도 잦다. 흔히 말하는 리더의 덕목은 탑재하지 못한 그저 그런 직장인에 불과하다.

그러나 그가 결코 찌질하게 보이지 않는 건 정직하기 때문이다. 편견에 사로잡혀 있다가도 진실을 마주할 때면 솔직하게 양심을 따른다. 물론 그 역시 임원에게 성과로 평가받는 중간관리자인 탓에 부하직원들을 다그치지만 선택의 순간엔 유불리를 따지기보다 언제나 상식을 따른다. 어디 그뿐인가? 걸핏하면 ‘우리’를 강조한다. 우리 팀, 우리 실적, 심지어 부하직원도 ‘우리 애’라고 부르는데 그 어감이 CEO가 쓰는 ‘우리’와는 심적으로 느끼는 거리가 사뭇 다르다. 후방에서 지도를 보며 돌격 지시를 내리는 장군이 CEO라면 오 과장은 함께 참호전을 벌이며 부상당한 병사를 업고 뛰는 소대장 같아서다.

많은 사람들이 이 드라마를 보며 마치 다큐멘터리를 보는 것 같다고들 한다. 드라마의 상투적 어법 대신 리얼리티에 치중한 탓일 게다. 필자 역시 이 드라마를 볼 때마다 사회 초년생의 비애(아무것도 모르는데 정작 아무도 알려주지 않는 냉혹함)와 다시금 마주하곤 한다. 뭐랄까, 빛바랜 옛 사진을 꺼내 보는 기분?

필자에게도 오 과장 같은 선배가 있다. 그에게 안부전화를 걸어봐야겠다. 잊을 만하면 전화한다고 분명 타박할 테지만 그의 걸걸한 목소리가 그리워지는 날이다.


김상명 시나리오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