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훈 한미글로벌 회장의 ‘건축 기행 그리고 인생’(10)

핀란드 템펠리아우키오 교회(Temppeliaukio Church)
필자는 핀란드에서 가볼 만한 곳으로 주저 없이 템펠리아우키오 교회를 손에 꼽고 싶다. 헬싱키 중앙역에서 도보로 15분 거리에 위치한 이 교회는 도심 한가운데 솟아 있던 단단한 화강암 바위동산을 파서 교회로 만든 독특한 건축물이다. 주위를 둘러싼 자연과 어우러지는 모습이 마치 암석지대에 살아 있는 생명체처럼 보인다. ‘암석교회’로 잘 알려진 템펠리아우키오 교회는 전 세계에서 ‘죽기 전에 꼭 가봐야 할 건축물’ 리스트에 빠지지 않고 오르는 것만으로 그 매력을 짐작할 수 있다.
180개 창문으로 햇빛이 쏟아지는 템펠리아우키오 교회 내부 모습. 가히 빛의 소리가 들리는 교회라고 할 만하다.
180개 창문으로 햇빛이 쏟아지는 템펠리아우키오 교회 내부 모습. 가히 빛의 소리가 들리는 교회라고 할 만하다.
지난 6월 말, 필자가 핀란드를 방문했을 때 가장 관심 있게 봤던 건축물이 템펠리아우키오 교회였다. 주거용 건물들에 둘러싸인 이 건축물은 우리나라로 치면 자그마한 동네 교회에 불과하다. 그럼에도 템펠리아우키오 교회가 세계적인 관광지로 주목받는 건, 바로 ‘바위산 위’가 아닌 ‘바위산 속’에 세워졌다는 기발함 때문이다. 1961년 공모전에 당선돼 이 건축의 설계를 맡은 건축가 겸 가구 디자이너 티모 수오말라이넨(Timo Suomalainen)과 투오모 수오말라이넨(Tuomo Suomalainen) 형제는 도심 한가운데 화강석 바위동산의 일부를 다이너마이트로 발파한 후, 암석을 쪼아내 공간을 만들고 그 위를 원형 돔과 전면이 유리창으로 덮여서 자연광이 잘 들어올 수 있는 교회 건물을 설계했다. ‘암석교회’는 말 그대로 자연친화적인 핀란드의 랜드마크다.


180개 창문 통해 예배당으로 쏟아지는 햇빛 ‘장관’
템펠리아우키오 교회는 바위산 입구까지 도달해서도 이곳이 교회임을 쉽게 알아채지 못한다. 교회 이름도, 그 흔한 종탑도 없다. 철골로 만들어진 조각품 같은 자그마한 십자가만이 이곳이 교회라는 사실을 말해준다. 혹자는 돌무덤 같아 보인다고 할 정도로 입구는 으스스한 분위기를 풍긴다. 하지만 교회 로비를 거쳐 교회당의 문을 열고 실내로 들어서는 순간 상황은 반전된다. 어수룩한 교회 외관을 보고는 상상조차 할 수 없던 풍경이 눈앞에 펼쳐진다. 화강암 벽과 천장의 웅장한 광경, 그리고 180개의 유리창을 통해 햇빛이 비추는 모습은 그야말로 환상적이다. 파란 하늘빛은 천장의 유리판을 뚫고 그대로 바닥까지 쏟아져 내린다. 교회를 찾은 사람들은 햇빛을 받으며 기도하는데, 이러한 환경은 예배당 안에 들어온 사람들이 종교적 의식에 더욱 집중할 수 있도록 만들어준다.

교회의 실내 디자인도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중세 교회와 차이가 있다. 화려한 조각상이나 스테인드글라스 등을 일체 사용하지 않고, 천연 암석이 그대로 노출된 벽과 노출 콘크리트만으로 심플하게 마감했다. 건물의 외벽 공사를 따로 하지 않은 덕분에 시공사는 공사 기간을 단축하고 예산도 아낄 수 있었다고 하니 일석이조가 아닌가. 암석을 파내어 교회를 만들면서 자연 상태 그대로 남겨두었던 암석이 내부를 장식하고 있는데, 이 암석 사이로 물이 비치고 벽에서는 이끼가 자라기도 한다. 이 공간이 땅속에서 솟은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이는 핀란드의 국교인 루터교가 강조하는 교리인 검소함이라는 원칙에 철저히 따른 것이다. 군더더기 없이 깔끔한 템펠리아우키오 교회는 자연친화적이고 미니멀리즘을 표방한 핀란드 디자인 철학을 가장 잘 반영한 건축물이 아닐까 싶다.

750여 석의 예배당 의자는 절제된 보랏빛으로 엄숙미를 강조한다. 목사가 설교하는 제단 또한 화강암을 잘라 만들어 소박하다. 화강암의 색깔이 빨강, 보라, 회색으로 구성돼 있는데 실내의 컬러 디자인도 이러한 돌 색깔에 맞춰서 디자인됐다. 거친 암석 벽면이 배경으로 고스란히 드러나 있고, 제대 역시 녹색과 흰색, 나무색으로만 구성됐다. 불규칙한 돌 표면의 아름다움이 돋보이도록 일반적으로 사용되는 장식도 모두 생략했다. 지름 24m의 둥근 천장도 아주 특이하다. 천장은 뛰어난 음향 효과를 위해 22km에 달하는 동판 띠(copper strip)로 시공됐다. 이 교회는 설계 시부터 음향 전문가와 지휘자가 건축 설계에 적극적으로 참여했다. 결과적으로 뛰어난 음향 효과를 갖춘 건물 덕분에 이 교회에서는 지금도 음악회가 매년 200회 정도 열리고 있다. 그 사실을 알고 보면 한쪽 벽면에 붙어 있는 3100개의 파이프가 내장된 4단 오르간조차 예사롭지 않다.


40년 역사 불구, ‘죽기 전 반드시 가봐야 할 건축물’ 꼽혀
템펠리아우키오 교회는 1961년 공모전에서 당선된 건축가 겸 가구 디자이너 티모와 투오모 수오말라이넨 형제가 설계를 맡아 1968년 2월 공사에 착수했다. 7년이라는 꽤 긴 시간 동안 프로젝트가 표류한 셈이다. 이 과정에서 예산 등의 이유로 디자인도 수정되고 규모도 축소됐다. 수오말라이넨 형제 가운데 동생은 핀란드 국방성에 근무한 이력이 있어 지하요새에 익숙했다고 한다. 추측하건대, 바위산 속에 교회를 만들겠다는 아이디어도 그때의 경험에서 나온 것이 아닌가 싶다. 이 교회는 1969년 완공되기까지 우여곡절도 많았다. 당초 설계안에 호의적이었던 여론은 얼마 지나지 않아 악화됐다. 특히 종교단체와 학생단체의 반발이 심했다. ‘지하 벙커가 왠 말이냐’, ‘악마의 소굴 같다’는 비판도 받았다. 그런 연유로 착공 시까지 7년여가 소요됐다.

준공 후 1971년도까지 10만여 명이 이 교회를 방문했고, 지금은 연간 50만 명 정도가 찾는 명소가 됐다. 교회는 결혼식장, 장례식장, 콘서트장 등으로 두루 이용되고 있다. 핀란드의 랜드마크로 유명세를 타면서 전 세계 관광객들도 몰려오고 있다. 핀란드 정부는 2004년 이 교회를 역사적으로 보존 가치가 있는 건물로 지정했다. ‘암석교회’라는 별칭으로 더 유명한 템펠리아우키오 교회는 세계의 유명 건축 잡지, 뮤지엄 잡지에 200회 넘게 소개되며 ‘죽기 전에 반드시 가봐야 할 건축물’로 손꼽히고 있다. 수천 년의 역사를 지닌 유명한 중세 교회들을 제치고 기껏해야 40년 된 교회가 이같이 후한 평가를 받는다는 것은 실로 놀랍다.
템펠리아우키오 교회 전경. 아파트 밀집지역의 바위동산에 위치하고 있다.
템펠리아우키오 교회 전경. 아파트 밀집지역의 바위동산에 위치하고 있다.
건축물은 그것을 설계한 건축가의 가치관과 방향성이 그 무엇보다 중요한데, 템펠리아우키오는 바위 속에 교회를 짓겠다는 참신한 방향성, 그리고 자연과 인공의 조화라는 가치관이 제대로 반영됐기에 위대한 성공을 거둘 수 있었던 것이 아닐까.

핀란드를 비롯한 대부분의 북유럽 국가들은 건축이나 디자인에 상당한 가치를 부여한다. 우리나라와 달리 건축가들 역시 엄청난 존경을 받는 사회적 분위기가 만연하다. 스칸디나비안 모더니즘의 시초로 불리는 핀란드 건축가 알바 알토(Alvar Aalto)는 현재 통용되고 있는 핀란드 화폐에 얼굴이 새겨질 만큼 국민적 사랑을 받고 있다.

개인적으로, 건축가가 암석교회를 만들겠다는 파격적인 발상을 내놓았다는 것도 대단하지만, 이렇듯 획기적인 설계를 수용한 발주자 역시 훌륭하다고 생각한다. 호주 시드니 오페라 하우스의 사례에서 볼 수 있듯, 위대한 건축물은 건립 과정에서 수많은 반대에 부딪히는 등 시행착오를 겪기 마련이다. 일반 대중들이 근시안적으로 미래의 가능성을 내다보지 못할 때 건축가나 지도자가 비전을 가지고 비판과 반대를 뛰어넘는 리더십을 선보일 때 비로소 역사에 길이 남을 건축물이 존재할 수 있는 것이다. 또 한 가지, 템펠리아우키오 교회는 지역사회에 개방해 누구나 문화 공간으로 이용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는 점에서 일면 부럽기도 하다. 이곳보다 규모가 몇십 배나 크면서도 일반 대중에게 폐쇄적인 우리나라 일부 교회들에게도 시사점을 주고 있다.


정리 이윤경 기자 ramji@hankyung.com│사진 김종훈 회장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