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준 경방 사장의 ‘The Classic’ 에필로그

지난 1년간 ‘더 클래식’을 연재하면서 필자는 참으로 행복했다. 그토록 좋아하는 클래식 음악을 누군가와 나눈다는 것도 그랬지만, 음악과 관련된 내 지난 삶들을 정리하고 추억하는 기회였다는 점에서 특별하고도 고마운 시간이었다. 특히 음악을 매개로 남다른 ‘관계’였던 아버지에 대해서 많은 생각을 할 수 있었다. 연재를 끝내면서, 필자의 이야기를 하기로 한 건 그래서다. 내 삶을 변화시키고 지대한 영향을 끼쳤던 음악들, 그리고 그 음악과 관계된 사람들 이야기로 에필로그를 전한다.
석사를 마친 후 군입대 전 여동생과 함께 미국 브라운대를 방문하신 아버지와 함께.
석사를 마친 후 군입대 전 여동생과 함께 미국 브라운대를 방문하신 아버지와 함께.
연재 시작 첫 회에서 이야기했던 것처럼 필자에게 음악은 그냥 삶 자체였다. 음악을 직업 삼아 하는 사람도 아니고, 기업 하는 사람 입에서 나올 말은 아니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기업 경영을 하기 전이나 후나 음악이 삶에 끼친 영향은 거의 절대적이었다. 사실 필자뿐만 아니라 요즘 대부분의 최고경영자(CEO)들은 경영이나 경제보다 ‘문화적 코드’에 더욱 열광한다. 비즈니스의 속성을 알고 보면 충분히 이해가는 부분이다. 오픈 마인드의 자세, 풍부한 정서, 타인의 감성을 읽을 줄 아는 능력까지 갖추고 있어야 성공적인 비즈니스가 가능한 법이니까. 그렇게 문화는 단순히 감성에 영향을 끼치는 것을 넘어 인생 자체를 바꿔놓기도 한다. 그처럼 단언할 수 있는 건, 대표적인 사례가 바로 여기 있기 때문이다.


음악으로 이어진 특별함만큼
골이 깊어진 부자관계

음악이 필자의 삶에 이토록 깊숙이 관여하게 된 데는 클래식을 너무나 사랑하셨던 아버지의 영향이 크다. 자연스레 아버지에 대한 필자의 기억에도 그 배경에 늘 클래식 음악이 있다. 그렇게 음악은 아버지와 아들을 연결해주는 매개체가 돼주었다. 중학교 시절부터 아버지와 함께 음악회를 다니면서 우리는 음악의 감동을 함께 나누는 가장 좋은 친구였다. 음악 외에도 공통점이 많았던 우리는 친구들이 모두 부러워하는 부자 관계이기도 했다. 필자의 친한 친구들을 집으로 불러 내 피아노 반주에 맞춰 오페라를 불러주시던 아버지의 모습이 지금도 생생하다. 그 시절엔 세상의 모든 아버지들이 다 그런 줄 알았을 정도로, 다정다감한 아버지는 일상이었다.

그 시절엔 잘 몰랐지만 대학 이후 혼자 음악회를 다니기 시작하면서 음악의 감동을 함께 나눌 수 있는 존재의 가치는 더욱 크게 다가왔다. 그나마 ‘고대 음악 감상실’ 동아리 친구 및 선후배들과는 동행했지만, 정작 좋은 공연이란 공연을 다 볼 수 있는 기회가 허락됐던 미국 유학 중에는 늘 혼자였다. 음악회가 끝난 후 벅차오르는 감동을 누군가와 나누고 싶은 마음이 간절할 때면 쓸쓸함은 더했다. 어떤 때는 혹여나 같이 갈 사람이 있을까 싶어, 빠듯한 주머니 사정에도 불구하고 티켓 두 장을 끊어두었다가 결국에는 혼자 가게 된 일도 있었다. 절친인 SK 최재원 부회장에게 탱글우드 페스티벌에 같이 가자고 했다가 “내가 네 애인이냐”며 괜한 핀잔만 들었던 기억도 있다. 그 시절엔 아버지의 존재감도 위로가 되지 못했다. 아니 위로는커녕 오히려 반감의 대상이었다.
서울 혜화동 자택에서 필자의 반주에 맞춰 노래하시기 전 아버지 모습.
서울 혜화동 자택에서 필자의 반주에 맞춰 노래하시기 전 아버지 모습.
음악을 비롯한 공통의 코드로 특별한 부자 관계였던 우리는 아이러니하게도 서로에 대한 깊은 신뢰와 내밀한 소통 때문이었는지, 더 크게 부딪치고 더 많이 상처를 주곤 했다. 대학에 입학하면서 본질적으로 부모로부터 독립적이고자 했던 다 큰 남자의 의지로 혼자 음악회를 다녔다면, 미국 유학생활을 하면서는 깊은 감정의 골 때문에 의도적으로 아버지를 배제한 채 혼자가 됐다. 극단적으로 사이가 나빠진 건 두 가지 이유 때문이었다. 하나는 아버지가 필자의 생활에 너무 깊이 개입하고 간섭하는 게 문제였다. 어릴 때부터 많은 걸 함께하고 나눈 사이였으니 습관이 된 탓도 있었겠지만, 그렇게 이해하고 넘어가기에는 정도가 심하게 느껴졌다. 대표적으로 진로 문제가 그랬는데, 아버지 또한 필자와 마찬가지로 화학을 전공했던 탓에 심지어 학교에 제출하는 페이퍼부터 시험에 이르기까지 깊게 개입하는 것이었다. 아버지 입장에서는 분명 독립적인 삶을 살고자 하는 아들의 마음을 충분히 이해한다고 생각하셨겠지만, 한번 어긋나기 시작하니 옳고 그름을 떠나 아버지의 뜻이라면 그저 싫기만 했다. 그리고 또 한 번, 필자의 결혼 문제로 서로 날을 세우게 되면서 관계는 회복하기 어려운 지경에까지 이르렀다.

그렇게 몇 해를 지낸 후 미국에서 박사 학위 논문을 쓰고 있던 어느 날, 서울에 있는 어머니에게 한 통의 전화가 걸려 왔다. 당시 60대 중후반의 나이였던 아버지는 웬만하면 장기 여행이나 출장을 다니시지 않을 때였는데, 조만간 미국 출장길에 오른다는 연락이었다. 아버지와 필자 사이에서 마음고생이 심했던 어머니는 아버지를 한번 만나볼 것을 부탁했지만, 이틀 후 뉴욕에 도착한 아버지의 전화를 받고 또 별 말 아닌 대화에도 화부터 내고 말았다. 그리고 바로 다음 날, 아버지는 또다시 전화를 걸어 “준아, 너 리골레토 좋아하잖아”라고 말문을 여셨다. ‘리골레토’는 우리 부자에게 상징적인 의미가 있었다. 아버지와 필자가 공통으로 좋아하는 오페라 몇 편 중 하나이기도 했고, 항상 아버지와 함께 봤던 오페라였다. 그리고 아버지는 리골레토에 나오는 ‘여자의 마음’이라는 노래를 참 즐겨 부르시곤 했다. 하지만 그 당시 필자의 대답은 “박사 논문을 쓰느라 바쁘다”는 싸늘한 말 한 마디였다. 이후 한국으로 돌아와 회사 경영에 참여하게 된 후에도 아버지와의 관계는 예전처럼 되지 못했다. 화해랄 것도 없이 그저 서로 불편했던 시절의 이야기는 꺼내지 않은 채 지냈다고나 할까.


유품함에서 발견된
오래된 티켓 한 장의 강력한 메시지

오랜 세월 잊고 있었던 아버지에 대한 마음을 다시 깨닫게 된 건,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어느 날 동생이 내민 하나의 상자 속에서 발견된 유품 때문이었다. 필자와 관련된 유품을 모아놓은 상자 안에는 필자가 아버지에게 보낸 편지들, 아버지가 필자에게 보냈던 편지들의 복사본, 그리고 학생시절부터 보았던 음악회의 프로그램과 티켓들이 잘 정리돼 있었다. 별 감정 없이 그것들을 꺼내보던 필자는, 그러나 한 장의 티켓을 발견하곤 울컥했다. 뉴욕 메트로폴리탄 오페라 공연 티켓 두 장이었는데, 한 장은 찢어져 있고 한 장은 새 것 그대로였다. 아들을 보러 핑계 삼았던 출장길에 “너, 리골레토 좋아하잖아”라는 말로 에둘러 함께 가자고 했던 바로 그 공연 티켓. 대체 이런 건 왜 갖고 계셨던 걸까 화가 났지만, 그 화는 정작 내 자신을 향한 것이었다. 누군가와 함께 음악회에 가고 싶어 두 장을 샀다가 결국 혼자 갔던 쓸쓸한 기억이 있었던 터라 당시 아버지 마음이 어땠을지 절절히 이해되면서 ‘내가 정말 잘못했구나’라는 깊은 후회를 하게 됐다. 음악을 매개로 아들과 삶을 나누었던 아버지는 그렇게 돌아가신 후에도 음악회 티켓 한 장으로 강한 메시지를 던져주고 있었다.
유학 당시 아들을 보기 위해 브라운대에 찾아오신 아버지.
유학 당시 아들을 보기 위해 브라운대에 찾아오신 아버지.
아버지의 영향력만큼은 아니었지만, 수많은 연주자들과 지휘자들은 각각 조금씩 다른 크기와 감동으로 필자의 삶을 풍성하게 하고 변화시켰다. 그중에서도 손에 꼽는 몇 사람이 있으니 그 첫째는 카를로스 클라이버다. 베토벤 교향곡 4번과 7번을 연주했던 그때의 무대는 20년이 지난 지금도 순간순간이 생생하게 기억날 정도다. 다이내믹함과 섬세함을 동시에 갖춘 클라이버는 원래도 좋아하는 음악가였지만, 그날 그 연주를 본 건 필자에게 엄청난 행운이었다. 제임스 러바인이 지휘하는 모차르트의 오페라, 세르지오 오자와 지휘로 연주된 브람스 심포니, 레오나르도 번슈타인이 죽기 바로 몇 년 전 뉴욕 필하모닉과 함께 연주한 차이콥스키의 곡들도 내 삶의 잊을 수 없는 한 장면으로 새겨져 있다.

독자 여러분과 함께한 클래식 이야기는 이것으로 끝이지만, 필자는 앞으로도 어김없이 많은 사람들과 클래식 음악의 감동을 나누는 삶을 살아갈 것이다. 음악과 더불어 한 개인의 삶이 얼마나 풍부해질 수 있는지가 이미 내 스스로의 경험으로 증명됐으니 망설일 이유가 없음이다.


정리 박진영 기자 bluepj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