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문현 펀드온라인코리아 대표이사

차문현 대표는 펀드온라인코리아 출범 이후 지난 1년 한시도 편한 날이 없었다.

조직 정비, 펀드 슈퍼마켓 오픈 등 어느 것 하나 수월한 게 없었다. 마음대로 일이 풀리지 않을 때, 차 대표는 언제나처럼 한강변을 거닐었다. 시간이 허락하는 대로 강변을 걷다 보면 머리가 맑아지고 꼬였던 매듭이 하나둘씩 풀리기 시작했다.
[LIFE BALANCE] “걷기는 가장 좋은 자신과의 대화법”
차문현 펀드온라인코리아 대표가 걷기를 시작한 건 지금부터 6년 전이다. 혼자만의 시간을 갖기 위해 걷기를 택한 것은 ‘클리나멘(clinamen)’이라는 말을 접한 다음부터다. 클리나멘은 고대 그리스 철학자 에피쿠로스에 의해 전파된 말로, 주어진 관성적 운동에서 벗어나려는 힘의 성분 혹은 경향을 말한다.

예를 들어 인공위성이 궤도를 이탈해 우주에 진입하기 위해서는 기존의 속도와 시선, 동선 등에서 새로운 접근이 필요하다는 뜻이다. 속도를 줄이고 시선을 바꾸고 방향을 달리하는 변화가 있어야 비로소 중력의 대기권을 뚫고 우주로 나아갈 수 있다.

인생도 마찬가지다. 앞만 보고 숨 가쁘게 달려가지만 가끔은 느리게 걷는 느림보 철학이 필요하다. 앞만 보고 달려왔다면 가끔은 옆도 보고 뒤도 보는 시선의 변화가 필요한 것이다. 늘 가던 길만 고집할 것이 아니라 평소에 가지 않던 길을 가보는 지혜가 필요하다. 차 대표는 그런 이유로 걷기를 시작해 지금은 걷기 전도사가 됐다.


걷는다는 게 어찌 보면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보일 수도 있습니다. 걷기의 매력은 무엇입니까.
“하루하루 바쁘게 살다 보면 혼자만의 시간이 절실합니다. 저는 저녁 약속이 없거나 취소되면 사무실에서 집까지 4시간가량을 걷습니다. 길을 걷다 보면 그동안 잊고 살았던 소중한 것들을 볼 수 있습니다. 길 위에는 그동안 너무 바빠서 잊고 살았던 소중한 것들이 숨어 있거든요. 길가에 피어 있는 꽃들을 보면서 찬찬히 살아가는 삶의 아름다움을 배우고, 한강을 붉게 물들이는 일몰을 보면서 내 인생도 저렇게 아름답게 마무리되면 좋겠다고 생각하곤 합니다. 그러다가 문득 누군가의 얼굴이 떠오르면 미안한 마음이 들어서 전화를 걸어 사과를 하기도 하고, 오늘의 그 결정이 과연 최선이었는지 끊임없이 자문해보기도 합니다.”


말씀이 굉장히 감성적으로 들립니다.
“무언가를 일부러 생각하지 않아도 자연의 풍경이, 계절의 변화가, 그리고 갑자기 불어오는 바람이 머릿속에서 필요한 생각을 꺼내줍니다. 때로는 아무리 고민해도 풀리지 않던 문제의 해답이 갑자기 떠오르기도 합니다. 아직 가보지 않은 길을 걸어가겠다는 용기를 얻기도 하고요. 또 걷다 보면 머리와 마음이 한결 비워지는 느낌도 받습니다. 비워야지 새로운 것을 채울 수 있지 않겠습니까. 빈공간이 있어야 다시 공부를 통해 채울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걷는 시간은 저에게 비움의 시간이기도 합니다. 이렇듯 아무도 없는 나만의 비밀 공간에서 혼자만의 시간을 즐길 수 있다는 점이 걷기의 가장 큰 장점인 것 같습니다.”


오랫동안 걷다 보면 뜻하지 않은 일을 겪기도 할 것 같은데요. 혹시 걷기와 관련된 특별한 에피소드가 있다면 소개를 부탁드립니다.
“특별할 건 없습니다. 다만 걷는 과정이 한편의 드라마처럼 스토리가 있습니다. 걸을 때마다 느끼는 감정의 파노라마가 한편으로는 재미있습니다. 처음에는 ‘공기가 맑다’, ‘상쾌하다’라고 느끼다가 꽉 짜인 일정에서의 해방감을 느끼게 됩니다. 그런 후엔 주변 경치를 하나하나 살피게 되죠. 길가에 핀 예쁜 꽃이라든지 아름다운 저녁노을을 보며 감탄을 합니다. 그다음에는 주변의 목소리가 들립니다. 지나가는 연인들이 나누는 이야기가 즐겁게 들립니다. 그렇게 걷다 보면 어느덧 몸에서 땀이 나면서 상쾌한 기분이 듭니다. 그러다가 슬슬 다리가 아프고 배가 고파지고, 집에 가까워지면서 아내가 생각납니다. 나를 기다리는 가족을 생각하다 보면 새삼 가족의 소중함을 느끼게 됩니다.”


함께 걸어도 좋을 듯한데요. 같이 걸으시지는 않나요.
“같이 걷지는 않고 가끔 제가 사는 동네에 다다를 무렵 아내에게 전화를 겁니다. 그러면 아내가 과일 등으로 가벼운 도시락을 싸서 마중을 나옵니다. 강변에 앉아 도시락을 먹으며 아내와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행복이란 게 이런 것이 아닌가 하는 마음이 듭니다. 저에게는 최고의 힐링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아내와의 즐거운 저녁 데이트 역시 걷기가 가져다준 행복인 것 같습니다.”


걷기처럼 경영에도 단계가 있을 텐데요. 차 대표님은 유리자산운용부터 우리자산운용, 펀드온라인코리아까지 최고경영자(CEO)만 10년을 하셨습니다. 걷기와 경영의 공통점이라면 어떤 것을 들 수 있을까요.
“마이크로소프트(MS)의 창업자 빌 게이츠는 1년에 2번 인적이 없는 호숫가 통나무집을 찾아가 2주 동안 생각에 몰입한다고 합니다. 아무도 없는 곳에 틀어박혀 회사의 전략을 세우기도 하고 새로운 아이디어도 정리한다는 겁니다. 그의 놀라운 아이디어는 통나무집에서 탄생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그는 이 시간을 ‘생각 주간(Thinking week)’이라고 부르는 데, MS 직원들이 필수적으로 따라야 하는 공식적인 제도이기도 합니다. 투자의 귀재로 불리는 워런 버핏도 자신의 성공 비결을 ‘1년에 50주 생각하고 2주일 일한다’고 말한 바 있습니다. 제게는 걷기가 ‘생각 주간’인 셈입니다.”


경영뿐 아니라 모든 일이 그런 듯합니다.
“그렇죠. 저에게 있어 걷기는 생각하는 시간이자 행동입니다. 경영에서 중요한 게 생각하는 것입니다. 온종일 ‘바쁘다 바빠’만 외치며 일하는 사람은 결코 성공할 수 없습니다. 당장은 남들보다 많은 결과물을 생산할 수 있겠지만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탁월한 결과는 이끌어낼 수 없습니다. 위대한 성공을 일군 리더와 기업은 일의 속도가 아니라 방향을 생각하는 통찰의 시간을 전략적으로 구축했다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이를 통해 결정적 실수와 판단 착오를 방지하고 더 높은 성과에 몰입할 기회를 가질 수 있습니다. 성공적인 경영을 위해서는 항상 뛰기보다는 자주 걷는 여유가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LIFE BALANCE] “걷기는 가장 좋은 자신과의 대화법”
최근에는 걷기를 통해 어떤 교훈을 얻으셨나요.
“걸어가다가 이런 저런 풍경을 보면서 여러 생각을 하곤 합니다. 요즘 한강에는 새들이 참 많습니다. 새들이 무리지어 날아다니는 모습을 보면서 함께 어우러져 사는 삶에 대해 생각해봅니다. 특히나 철새들이 브이(V)자 모양으로 멋있게 날아가는 모습을 보면 새들의 지혜에 대해 다시 한 번 감동합니다. 본래 V자형으로 비행을 하면 에너지를 30%까지 아낄 수 있다고 합니다. 그리고 제일 힘센 새가 리더로서 맨 앞에서 비행을 하는데 그러다가 힘들면 교대한다고 합니다. 또 울음소리를 내는데 이는 지치지 않도록 서로를 격려하는 일종의 구호라고 합니다. 요즘같이 개인주의가 강한 세상에서 새들의 모습은 적지 않은 교훈을 줍니다. 이들 철새와 같은 팀워크가 무엇보다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함께 나갈 수 있도록 서로 응원해주고 상대방을 배려해주는 마음이 그 어느 때보다도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어떤 이들에게 걷기를 권하고 싶으세요.
“성공을 위해 앞만 보고 달리는 후배들에게 걷기를 권하고 싶습니다. 성공은 실패만큼 위험하다는 말이 있습니다. 성공한 사람은 교만해지기 쉽고, 아무리 자기를 억눌러도 겸손해지기가 어렵습니다. 한두 번의 성공이 앞으로도 계속될 것처럼 생각하고 초심을 잃어버리기가 쉽습니다. ‘나는 옳고 너는 틀리다’라고 생각하니까 성공하면 내가 잘해서라고 생각하고 실패하면 남에게 책임을 돌리기 쉽습니다. 스스로 반성할 줄 모르니까 자신에게 어떤 문제가 있는지도 알지 못하고 무엇을 고칠 생각도 하지 못합니다. 자기 자신을 영영 잊어버리는 것입니다. 자동차도 과속하면 엔진에 무리가 오듯이 우리 삶도 너무 성공만을 향해 달리면 몸과 마음에 무리가 옵니다. 반성이라는 브레이크를 통해 잘 살고 있는지, 빠른 속도에 중독돼서 놓쳐버린 것은 없는지 살아온 길을 되돌아보는 여유가 필요합니다.”


앞만 보고 달리는 현대인들에게 하시고 싶은 말이 있을 듯한데요.
“우리가 살아갈 앞으로의 세상은 지금까지와는 다릅니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자신과 대화를 나눌 수 있는 생각의 시간입니다. 급변하는 시대에는 ‘남다른 생각’을 가진 사람만이 성공할 수 있습니다. 성공이란 남보다 빨리 달려간다고, 좋은 학벌과 좋은 스펙을 가졌다고 잡히는 게 아닙니다. 내가 무엇을 좋아하는지, 어떨 때 가장 행복을 느끼는지를 알아야 자신이 진정으로 원하는 성공을 잡을 수 있습니다. 이를 위해 자신과 대화를 나눌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이 바로 걷기라고 생각합니다. 걸으면서 자신에 대해 생각해보고 자신만의 행복을 찾으시길 바랍니다.”


신규섭 기자 wawoo@hankyung.com│사진 서범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