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월 27일, 정부는 ‘안정적이고 여유로운 노후 생활 보장을 위한 사적연금 활성화 대책(이하 사적연금 활성화 대책)’을 발표했다. 노후 소득 보장에 충분치 못한 공적연금을 보완하기 위해서는 퇴직연금 등 사적연금의 역할을 확대할 필요가 있었기 때문이다. 사적연금이라는 타이틀을 달고 있지만 핵심은 퇴직연금이다. 이런 과제들이 계획대로 실행된다면 퇴직연금 시장에 많은 영향을 초래할 것임은 분명해 보인다. 앞으로 퇴직연금 시장에서 전개될 가능성이 높은 4가지 테마를 중심으로 퇴직연금 시장의 향후 10년을 예측해봤다.


사적연금 활성화 대책에는 4개 분야에 15개의 굵직굵직한 과제들이 포함돼 있으며, 세부적으로 따지면 더 많다(표 참조). 그동안 각 부처에서 사적연금 활성화를 위해 검토한 과제들이 총망라돼 있다고 보면 된다.

첫째, 퇴직연금 시장은 양적인 측면에서 급속한 팽창기를 맞이할 것으로 보인다. 단계적인 퇴직연금 도입의 의무화, 30인 이하 사업장에 대한 정부의 재정 지원, 근속 기간 1년 미만 근로자의 퇴직급여 적용에다 이미 예정돼 있는 자영업자의 퇴직연금 가입 허용 등의 정책들이 맞물리면서 퇴직연금 시장은 향후 10년간 제2의 황금기를 맞이할 전망이다. 특히 2016년부터 기업 규모별 단계적으로 퇴직연금 도입을 의무화해 2022년에는 전면적으로 의무화하기로 한 사적연금 활성화 대책은 퇴직연금 시장 팽창에 핵심 역할을 수행할 것으로 보인다.


1950년대 미국 연금팽창기의 재연
이번 대책이 실행되면 우리나라에서도 1950년대 미국의 연금팽창(pension drive)에 버금가는 현상이 전개될 것으로 보인다. 미국에서는 제2차 세계대전 기간 동안에 실시된 임금통제 정책의 영향으로 부가급여(fringe benefit) 형태로 제공되는 퇴직연금 시장이 급성장하기 시작했다. 이런 현상은 역사적 호황기라는 1950년대에도 이어져 미국을 대표하는 기업을 중심으로 퇴직연금 도입이 유행했다. 이를 미국에서는 펜션 드라이브(pension drive)라고 부르는데, 이는 숫자상으로도 증명된다. 퇴직연금 가입자 수는 1950년 980만 명에서 1960년에는 2120만 명으로 10년 동안 약 2.2배 늘어났으며, 사기업에 종사하는 임금 근로자의 퇴직연금 가입률은 같은 기간 동안 22.5%에서 42.4%로 증가한 것이다. 적립금은 121억 달러에서 520억 달러로 급증했다. 약 70년이 지난 시점에 이런 현상이 우리나라에서도 전개될 것이라는 점을 상상하면 가슴이 벅차다. 이뿐이 아니다. 30인 이하 사업장에 대한 재정 지원과 근속 기간 1년 미만 근로자에 대한 퇴직급여 적용, 자영업자의 퇴직연금 가입 허용 등은 그동안 퇴직연금의 사각지대로 여겨온 계층에게 퇴직연금의 혜택이 확산된다는 점에서 질적으로도 한 단계 도약할 수 있는 좋은 계기라 하겠다.

둘째, 퇴직연금 시장의 중심이 확정급여(DB)형에서 확정기여(DC)형으로 이동할 것으로 예상된다. 2014년 6월 말 현재 DB형의 적립 금액은 약 60조5000억 원으로 전체 퇴직연금 시장의 69.1%를 차지하고 있다. DC형(약 19조 원)과 개인형퇴직연금계좌(IRP·약 8조 원)가 21.8%와 9.1%로 그 뒤를 잇고 있다. 1년 전과 비교하면 DB형의 점유율은 71.3%에서 2.2%포인트 줄어든 반면에서 DC형의 점유율은 19.7%에서 2.1%포인트, IRP의 점유율은 9.0%에서 0.1%포인트 늘었다. 이번 대책은 이런 흐름에 강력한 에너지를 제공할 것으로 전망된다. 퇴직연금 의무화 적용 대상이 되는 140여만 개의 기업 중 DB형 선호도가 높은 300인 이상 대기업의 수는 0.1%도 안 되는 672개에 불과하다. 의무화의 혜택이 DC형에 집중될 가능성이 높다는 뜻이다.

최근 공기업을 중심으로 높아지고 있는 DC형에 대한 선호도와 DB형 급여 수준의 인하를 수반하는 임금피크제가 정년 연장에 대한 대책으로 확산되리라는 점을 감안하면, 대기업의 DB형 짝사랑이 저물 날도 머지않아 보인다. 아직까지 퇴직연금을 도입하지 않은 거대 공기업들은 기존 대기업과 달리 DC형 도입을 검토하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정년 연장을 앞두고 많은 대기업들은 임금피크제 도입을 서두르고 있다. 퇴직연금의 의무화와 최근 기업의 움직임은 향후 10년 내에 DB형의 점유율을 50% 이하로 떨어뜨리는 강력한 동력으로 작용할 게 확실하다.


퇴직연금, 보관 대신 운용의 시대 도래
셋째, 적립금 운용의 패러다임이 보관에서 운용으로 바뀔 것으로 보인다. 2014년 6월 말 현재 전체 퇴직연금 적립금에서 원리금보장형 상품이 차지하는 비중은 92.6%(약 81조 원)나 된다. 반면에 실적배당형 상품의 비중은 6.0%(약 5조3000억 원)에 불과하다. 한마디로 말해 대부분의 퇴직연금 적립금이 안전한 금고에 보관돼 있는 것이다. 앞으로는 이런 경향에도 변화가 불가피해 보인다. 초저금리 시대를 맞아 원리금보장형 상품의 금리도 2%대 중반으로 떨어지고 있다. 자사 상품 편입이 원천적으로 불가능해지면 시중금리보다 높은 이자를 제공해오던 원리금보장형 상품의 혜택도 줄어들 수밖에 없다. DB형의 원리금보장형 상품 편애 현상에 균열이 발생할 것으로 보인다. 사외적립비율이 100%로 상향되고, 적립금의 규모가 커지면 DB형의 재정 상태에 대한 기업의 관심이 늘어날 것이다. 원가에 민감한 기업의 속성이 퇴직연금에도 적용될 것이다. 이렇게 되면 원리금이 보장된다고 해서 안전한 것이 아니라 부채증가율 이상으로 수익률을 내는 것이 DB형의 안전한 운영이라는 인식이 확산될 것이다. DC형의 경우, 위험자산 편입 한도가 40%에서 70%로 확대되는 것과 DC형 비중의 증가 현상이 맞물리면서 더 많은 퇴직급여가 실적배당형 상품으로 운용될 것이다. 실적배당형 상품을 활용하고 있는 DC형 가입자의 30~40% 정도는 위험자산 편입 한도가 40%인 상품에 가입한 것으로 추정된다. 규제의 장벽이 허물어지면 더 높아진 장벽으로 빠르게 이동할 사람들이 적지 않다는 뜻이다. DB형과 DC형 양쪽에 불고 있는 바람은 분명 원리금보장형 상품보다는 실적배당형 상품에 우호적이다. 우리나라 퇴직연금 시장에서 보관의 시대는 저물고 운용의 시대가 도래하고 있음을 알리는 바람이다.
[PENSION PLAN] 4가지 테마로 보는 퇴직연금의 향후 10년
넷째, 퇴직연금 운영에 대한 이해관계자의 태도가 저관여에서 고관여로 바뀔 것이다. 퇴직연금 도입 여부와 유형의 선택, 사업자 선정 등 퇴직연금 도입 전후에는 활발하게 노사협의를 벌이다가도 이것이 끝나고 나면 노사 모두 ‘열중쉬어’ 자세를 취하는 게 지금까지의 모습이었다. 심지어 자신이 가입한 퇴직연금이 DB형인지 DC형인지도 모르는 가입자가 부지기수다. 하지만 앞으로는 이런 방관자적 자세가 적극적 참여로 변할 것으로 보인다. 계약형 퇴직연금에는 투자위원회와 투자원칙보고서(IPS)가 의무화되고, 새로이 기금형 퇴직연금 도입이 허용됐기 때문이다. 계약형의 투자위원회와 기금형의 기금운용위원회는 노사와 외부 전문가가 함께 참여하는 방향으로 제도 설계의 기본 틀이 설정돼 있다. 노사와 외부 전문가가 함께 머리를 맞대고 효율적인 퇴직연금 운영을 위해 애쓰는 모습이 떠오른다. 하지만 이 과정에는 많은 갈등 요소가 존재한다. 적립금 운용 방법과 사업자 선택 등을 둘러싸고 노사 간에 첨예한 이해 대립이 표면화될 수 있다. 이러한 갈등을 제대로 제어하지 못하면 예상치 못한 상황이 전개될 수도 있다. 이해관계자들 간의 원활한 커뮤니케이션과 갈등의 조정에 퇴직연금의 미래가 달려 있다고 보는 이유다.


손성동 미래에셋은퇴연구소 연구실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