맞벌이 자녀를 대신해 손자, 손녀를 돌보는 ‘황혼육아족’이 늘면서 할아버지, 할머니가 손주 앞으로 가입하는 이른바 ‘손주 사랑’ 보험이 인기몰이 중이다. 이 상품들은 조부모가 사망한 이후 손주들에게 보험금을 줄 수 있도록 설계됐다. 자신의 노후를 챙기는 동시에 손자, 손녀의 미래까지 준비하고, 잘 활용하면 절세 효과도 볼 수 있다는 점에서 노년층의 호응을 얻고 있다. ­­­­
[INSURANCE] ‘손주 사랑’보험이  인기를 끄는 까닭
지난해 5월 교보생명이 내놓은 ‘교보 손주사랑보험’을 시작으로 ‘손주 사랑’을 테마로 한 보험 상품의 출시가 잇따르고 있다. ‘교보 손주사랑보험’은 매월 4만~5만 원 안팎의 보험료를 10년간 내면 조부모 사망 후 10년 동안 손자, 손녀가 매년 생일에 100만 원의 축하금을 받거나 20년간 50만 원씩 총 1000만 원을 받을 수 있다. 더불어 조부모의 자필이 담긴 사랑의 카드를 발송하는 ‘가족사랑 메신저 서비스’는 손주와 조부모 사이에 사랑의 메신저 역할을 한다.

‘사랑과 추억’이라는 정서적 가치를 상품화한 ‘교보 손주사랑보험’은 출시 이후 1년간 2만5000여 명이 가입하며 화제를 불러 모았다. 사후에도 손자, 손녀에게 매년 생일 축하금을 전달해 조부모의 내리사랑을 기억하게 해준다는 스토리텔링 마케팅이 주효했던 것으로 업계에서는 분석하고 있다.

교보생명 관계자는 “맞벌이 자녀를 대신해 손주를 돌보는 황혼육아족이 늘어나면서 손주에 대한 조부모의 사랑이 더욱 애틋해졌다”며 “시간이 지나도 손주들에게 할아버지, 할머니를 추억할 수 있도록 해준다는 점에서 조부모들이 주목하고 있다”고 말했다.

지방에 거주하는 실버세대와의 접점이 많은 NH농협생명 역시 내리사랑 보험을 출시해 좋은 반응을 얻고 있다.

‘내리사랑NH종신보험’은 조부모 사망 시 손주에게 내리사랑 자금을 분할, 지급하는 상품이다. 매월 2만~3만 원대의 저렴한 보험료(총 지급 금액 1000만 원 기준)로 가입할 수 있으며, 조부모 사망 후 최초 도래하는 지급일로부터 매년 100만 원씩 10년 또는 50만 원씩 20년 동안 손주에게 지급된다. 손주에게 남기고 싶은 메시지를 보험 증권에 입력하고, 추억이 담긴 기념일을 내리사랑 자금 지급일로 지정할 수 있어 조부모의 애틋한 마음을 오랫동안 후손에게 전달할 수 있다. 보험료 납입 면제 혜택도 있다. 보험료 납입 기간 중 피보험자가 장해분류표 중 동일한 재해 또는 재해 이외의 동일한 원인으로 여러 신체 부위의 장해지급률을 더해 50% 이상인 장해 상태가 됐을 경우 차회 이후의 보험료 납입을 면제해준다. 가입 나이는 45세부터 최고 80세까지이며, 가입 한도는 최저 1000만 원으로, 500만 원 단위로 가입할 수 있다.

삼성생명이 최근 출시한 ‘내리사랑 연금보험’은 ‘손주사랑보험’에서 한 발 더 나아가 국내 최초로 세대연생 종신연금 기능을 더했다. 이 상품은 연금보험 한 건으로 조부모의 노후 자금과 손자녀의 필요 자금을 동시에 준비할 수 있다. 세대연생 종신연금이란 조부모와 손자, 손녀 중에서 한 명씩을 피보험자로 지정해 그중 1명이라도 살아있을 때까지 연금을 수령하는 형태다. 가령 할아버지가 손자를 피보험자로 지정해 놓으면 본인 사망 이후 연금이 손자에게 자동 승계돼 일종의 유산상속이 되는 것이다.

‘내리사랑 연금보험’은 과거 보험사들이 보통 45세 이상부터 연금을 지급해오던 것과 달리 45세 미만의 연금사망률을 적용했다. 따라서 조부모가 연금을 받다가 사망하더라도 손주가 연금을 기존보다 오랜 기간 동안 받을 수 있다. 손주의 연금액은 조부모 연금액의 20%, 50%, 70%, 100% 중 맞춤형으로 선택할 수 있다.

연금 수령 형식은 ▲사망할 때까지 받는 종신연금형 ▲일정 기간까지 연금을 받는 확정기간형 ▲이자만 연금 형태로 받다가 손자나 자녀에게 원금을 물려줄 수 있는 상속형금형 등 세 가지다. 또 연금 개시 시점에 교육 자금 등 긴급 자금이 필요하면 적립액의 50%까지 중도 인출이 가능하며, 일시적으로 연금 수령을 중지했다가 필요할 때 다시 받을 수 있는 연금 수령 일시중지 기능도 있다.


보험료 저렴하고 피보험자 설정 제약 없어
이러한 ‘손주 사랑’ 보험은 보험료가 비교적 저렴한 데다 계약자와 피보험자 설정에 제약이 없는 등 가입 문턱이 낮아 인기를 끌고 있다고 업계 관계자는 설명했다. 조우영 삼성생명 차장은 “손주뿐 아니라 자녀도 피보험자로 설정할 수 있어 며느리한테는 작게나마 제사비용을 보태주고 싶어 하는 60~70대의 가입이 잇따르고 있다”고 전했다.

지난 9월 추석을 맞아 4세, 6세인 손녀들과 5세 외손자 앞으로 각각 월 5만 원짜리 손주 사랑 보험을 든 오현자(63) 씨는 “내 손으로 키운 손주들이 나를 오랫동안 기억해주었으면 하는 바람으로 가입하게 됐다”며 “종신 보험이 있지만 손주 사랑 보험 상품의 보험료가 비싸지 않아 부담 없이 납부하기로 했다”고 말했다.

이처럼 조부모가 부모를 거치지 않고 곧바로 손자, 손녀에게 재산을 물려주는 이른바 ‘세대생략증여’는 잘 활용하면 절세효과도 볼 수 있다. 김영준 삼성증권 세무전문위원은 세대생략증여는 일반증여에 비해 30% 할증 세금이 붙지만, 조부모가 부모에게 물려준 뒤 부모가 다시 손주에게 증여해서 이중으로 세금을 내는 것에 비하면 40%가량 세금을 줄일 수 있다고 말한다. 김 위원은 “자녀에게 사전증여를 했다가 10년 내에 사망하면 상속 재산에 합산돼 세금을 더 낼 수 있지만, 손자에게 직접 주면 상속인이 아니어서 상속세 합산 기간이 5년으로 줄어들어 유리하다”며 “뒤늦게 상속세를 줄여보려는 어르신 고객들이 관심을 많이 보이는 이유”라고 전했다.

일각에서는 이러한 보험 상품들이 손주를 향한 조부모의 애틋한 마음을 노린 보험사의 상술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기존의 종신보험을 포장만 달리했다는 것. 이기욱 금융소비자연맹 보험국장은 “손주사랑 보험들은 결국 조부모 사망 보험금을 시기만 달리해 손주에게 지급하는 상품”이라며 “보험 시장이 포화상태이다 보니 이름만 바꿔 신상품인 것처럼 내놓는 상품들이 많은데, 이벤트 상품일수록 수명이 짧고 보험 해약률이 높다는 점을 고려해 신중하게 가입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이윤경 기자 ramji@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