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선화 한국가족기업연구소 대표

창업 1세대들은 강력한 오너십을 바탕으로 회사를 키웠다. 하지만 가업승계기에는 이런 강력한 오너십이 오히려 독이 될 수도 있다.


창업 35년째로 가업승계를 준비하고 있는 오 회장은 60대 후반의 나이에도 불구하고 한창 회사를 일구던 40~50대 때만큼 스케줄을 소화하고 있다. 체력이 예전 같지 않아 일을 줄이고 좀 더 여유 있는 삶을 즐기고 싶지만, ‘내가 없으면 회사가 안 돌아간다’는 생각에 일을 줄일 수가 없다. 더구나 최근 회사의 성장세가 정체돼 ‘내가 없으면 지금의 상태가 더 악화될 것이다’라는 생각이 지배적이다. 오 회장의 걱정은 500명이 넘는 임직원이 있지만, 회사 일을 자신의 일같이 책임지고 철저하게 해줄 사람이 없다는 것이다.

올해 창업 30주년을 맞는 한 중소기업의 최 회장도 비슷한 상황이다. 이 회사는 지난 10년간 고속 성장을 해왔는데 최근 회사가 어려워져 비상경영체제에 돌입했다. 최 회장의 두 아들이 회사에 들어와 승계를 준비하고 있지만, 자녀들을 포함해 모든 간부들이 자신의 지시가 있어야만 움직인다며 불만을 토로했다.

앞서 소개한 두 회사는 여러 가지 공통점이 있다. 첫째는 창업자의 열정으로 기업을 30년 이상 안정적으로 성장, 발전시켜 왔다는 것이다. 둘째는 자녀에게 가업승계를 진행하고 있다는 것이며, 셋째는 창업자가 아직도 현업에서 왕성하게 일하고 있다는 것이다. 표면적인 현상만 본다면 두 기업 모두 높이 평가 받을 만하다. 그런데 기업의 영속성 측면에서 본다면 어떨까. 오 회장이나 최 회장 모두 자신들의 기업이 다음 세대에서도 지속적으로 성장, 발전할 것이라는 믿음은 약하다. 그 이유는 자신들을 대신할 만한 사람이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강력한 오너십은 자칫 보신주의 불러
그렇다면 직원들의 입장은 어떨까. 두 회사의 직원들은 오히려 회사의 의사결정 구조나 조직 구조에 불만이 많다. 간부들의 가장 큰 불만은 회장이 자신들에게 어떠한 권한도 부여하지 않고 모든 일을 지시만 한다는 것이다. 권한이 없으니 자율성이 떨어질 수밖에 없고, 모두 일상적인 업무에만 매달리고 있다. 그리고 회장의 지시가 있을 때는 그 문제를 해결하는 데만 급급한 상황이다. 그런데 직원들은 오히려 자신의 상사나 관리자들이 무책임하다고 불만을 표시한다. 임원이나 부서장 등의 간부들이 책임질 만한 결정은 회피하거나 미룬다는 것이다. 관리자들도 이미 직원들의 불만을 잘 알고 있지만, 자신들에게 의사결정 권한이 없으니 별다른 해결책이 없다.

그러다 보니 두 기업은 회장이 지시하는 것만 잘하면 된다는 보신주의 문화가 팽배해 있다. 외부 환경이 하루가 다르게 변하고 있어 전 임직원이 마음을 모아 한 방향으로 치열하게 매진해도 어려운 상황에 직원들의 마음이 모두 제각각인 것이다.

만일 모든 의사결정의 중심이 되고 있는 회장의 갑작스러운 유고가 생긴다면 어떤 일이 일어날까. 예상대로 회사는 혼란의 상태가 되고 성장보다는 쇠퇴의 길을 걸을 가능성이 훨씬 높을 것이다.

과연 이러한 문제는 어디에서 비롯된 것일까. 창업자들은 직원들을 탓하지만 실제로 이는 창업자의 경영 방식에서 비롯된 것이다. 그런데 이러한 문제가 앞서 소개한 두 회사에만 해당되는 것은 아니다. 1970~1980년대에 창업해 승계를 앞두고 있거나 진행하고 있는 많은 중소·중견기업들이 비슷한 상황에 놓여 있다. 30년 이상 생존한 기업들을 보면, 거의 대부분 창업 초기부터 경영자가 선두에 서서 모든 일을 지시하고 명령을 해왔기에 성공할 수 있었다. 창업자의 수많은 의사결정을 통한 성공과 실패의 경험이 축적돼 현재의 회사가 만들어진 것이다. 중소기업의 경우 회사 내에 창업자보다 더 많이 아는 사람도 없고, 책임 있는 의사결정을 할 만큼 역량이 되는 사람도 거의 없다. 그래서 위임이 잘 이루어지지 않고, 창업자의 원맨 경영이 기업문화로 굳어져, 결국 창업자가 없으면 안 되는 회사가 되는 것이다. 실제 많은 회사들이 직원들에게 일정한 권한과 책임을 부여하기보다는 창업자가 사소한 일까지 직접 지시하고 의사결정을 하는 방식으로 운영되고 있다. 이 때문에 임직원들이 시키는 일만 잘하면 된다는 수동적인 자세로 일하는 것이 어찌 보면 당연하다. 하지만 기업이 일정 규모 이상으로 성장하면 더 이상 원맨 체제로는 사업을 성공적으로 승계할 수 없다. 임직원들에게 업무를 위임하고 교육해서 신뢰할 수 있는 인재로 키우지 못한다면, 어쩌면 평생 일군 기업을 자신의 대에서 문 닫아야 할지도 모른다. 그러면 해결책은 무엇인가.
[FAMILY BUSINESS CONSULTING] 후계자에게 위험을 떠넘기지 않는 경영 체질 만들기
원맨 경영에서 업무 분산 경영으로 가야 장수
기업의 라이프사이클 이론에 따르면, 기업은 창업한 후 확장기, 성장기, 성숙기를 거쳐 쇠퇴기를 맞는 것이 보편적이다. 승계를 준비하는 기업들은 대부분 창업 후 20~30년이 지나 성숙기에 도달해 있는 기업들이다. 기업의 라이프사이클로 본다면 성장이 정체되고 쇠퇴기를 맞는 시점이다. 그런데 이 시기 어떤 기업은 제2의 성장을 통해 중소기업에서 중견기업으로, 중견기업에서 대기업으로 변신하기도 한다. 그렇다면 어떤 기업이 쇠퇴기를 맞고 어떤 기업은 제2의 성장기를 맞게 될까. 연구에 따르면 두 집단의 기업들은 각자 공통적인 특징이 있다. 성숙기에서 쇠퇴기에 이르는 기업들의 공통적인 특징은 첫째, 수익이 정체되거나 감소돼 유동성에 영향을 받아 신규 투자가 어렵다. 둘째, 원맨 경영이 주를 이룬다. 즉, 회사의 전문적인 매니지먼트 시스템이 없고, 기업 경영은 창업자 개인의 능력에만 의존한다. 셋째, 변화에 대한 저항이 강하다. 그래서 결국 우유부단한 태도와 행동 기피로 기업을 매도하거나 붕괴로 이어지는 것이다.

반면, 재도약하는 기업은 이와 다르다. 그들의 공통적인 특징은 전문적 관리 시스템이 구축돼 있을 뿐만 아니라 강하지만 유연한 기업문화가 구축돼 있다. 전문적인 관리 시스템이란 오너 중심의 비체계적인 업무 관행이 체계적으로 변화하는 것을 의미한다. 즉, 회사의 비전과 미션을 토대로 전략적인 계획과 목표를 수립하고, 최고경영자(CEO)에 의한 원맨 경영 조직을 개선해서 업무 분산 경영으로 전환해야 한다. 그리고 공정한 평가를 기반으로 한 인사와 보상 시스템을 통해 직원들에게 동기부여를 하고 열정과 창의력을 끌어내는 것이다.

기업이 대를 이어 성공하려면, 사장의 지시와 명령으로 임직원이 움직이는 것이 아니라 임직원이 창의적으로 연구하고, 지혜를 짜내도록 창업자 세대가 앞장서서 내부적인 개혁을 추진해야 한다. 결국, 승계 시기와 맞물린 기업의 성숙기를 어떻게 대처하느냐에 따라 재도약의 기회가 될 수도 있고 쇠퇴기를 맞고 문을 닫게 될 수도 있다. 그러므로 성공적인 승계를 위해서는 창업자가 직접 후계자에게 위험을 떠넘기지 않는 전문적인 경영 체질을 만들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