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제웅 랑세스코리아 대표

화학업계 경력 30년! 요리 경력은 40년?

고제웅 랑세스(Lanxess)코리아 대표가 이야기하는 ‘요리’와 ‘화학’의 일심동체론(一心同體論).
[LIFE BALANCE] 삶을 담아내는 요리, 삶을 요리하는 화학
“커피를 하루 두세 잔 정도 마시는 건 좋은데 너무 많이 마시면 칼슘을 빼앗길 수도 있어요.”

인터뷰 현장에서 만난 고제웅 랑세스코리아 대표의 입에서 나온 첫마디다. 고 대표는 ‘요리’에 대해 둘째가라면 서러울 애호가다. 특수화학 기업을 이끄는 대표답게 모든 음식을 화학물질과 연관시켜 이야기를 풀어나간다. 그의 머릿속에서 차곡차곡 정돈된 요리의 기원과 특징, 레시피 이야기를 듣다 보면 ‘세상의 모든 이야기가 음식으로 통하는 것은 아닐까’하고 느껴질 정도다.

랑세스는 타이어의 주재료인 고성능 합성고무와 하이테크 플라스틱을 만드는 독일 최대의 특수화학 기업이다. 자동차 타이어, 엔진 등 이동성(mobility) 제품의 주재료 공급원으로 매년 88억만 유로(약 13조5000억 원)의 매출을 올리고 있다.

고 대표는 랑세스가 분리 상장하기 이전인 1981년 바이엘그룹 화학부서에 입사해 이 분야에서만 30년 넘게 경력을 쌓아온 특수화학 분야의 베테랑이다. 2005년 바이엘그룹에서 랑세스가 독립 법인으로 상장하면서 랑세스코리아의 최고경영자(CEO)를 맡아 지금까지 운영해오고 있다.

독일계 기업의 한국 지사에서 일하다 보니 출장이 잦은 것은 당연지사. 고 대표는 “출장을 자주 다니며 해외 음식을 접한 것 역시 하나의 자산이 됐다”고 말했다. “한 나라를 이해하기 위해선 그 나라의 음식을 잘 알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젊었을 때는 출장 스케줄에 일부러 주말을 넣고, 업무가 끝나면 그 나라를 여행하면서 음식을 맛보기도 했죠. 그러다 보니 아직도 독일어보다는 요리가 더 익숙하네요.(웃음)”

바쁜 일상 속에서도 고 대표는 틈틈이 요리를 즐긴다. 주말이면 가족들을 위해 부엌으로 향한다. 평소엔 마늘과 소금으로만 간을 한 심플한 ‘알리오 올리오’를 즐겨 만든다. 특별한 날 하는 요리는 일식 ‘도미찜’이다. “가족 중에 생일이 있으면 도미를 한 마리 잡아요. 생선 살을 떠서 베보자기로 싼 뒤 냉장고에 7~8시간 숙성시키면 어떻게 요리를 해도 맛있거든요. 기름이 많은 도미 머리 부분은 일본식 간장으로 찜을 하면 한국인들 입맛에도 잘 맞죠.”

지인들과 떠난 캠핑에서도, 직원들과 함께하는 워크숍에서도 솜씨를 발휘한다. 메뉴는 그때그때 다르다. 심지어 마늘과 파를 넣지 않은 칼국수도 그의 손을 거치면 제법 그럴듯한 작품이 된다. “요리할 때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이 즐거운 기분으로 한다는 거예요. 좋은 사람들과 함께 먹을 요리를 만든다는 생각이 저를 기쁘게 합니다.”
[LIFE BALANCE] 삶을 담아내는 요리, 삶을 요리하는 화학
요리도 화학도 성공 비결은 균형

요리를 따로 배운 적은 없다. 하지만 요리에 대한 호기심은 어릴 적부터 유별났다. “고등학교 때 등반을 갔는데 코펠에 만든 밥이 설익었더라고요. 설익은 밥을 뒤집어서 다시 지어볼까? 그런 식으로 시행착오를 거치면서 요리를 배웠죠.” 신문 기사를 볼 때도 요리에 대한 내용이 나오면 한 번 더 눈이 간다는 그는 “이제는 어떤 요리라도 한 번 맛보면 대강의 레시피를 파악하는 능력이 생긴 것 같다”며 미소 지었다.

요리에 대한 열정은 대를 타고 이어졌다. 고 대표의 아들은 호주 요리학교에서 전문적으로 요리를 배운 유학파 요리사. 현재 강남의 한 유러피언 레스토랑에서 헤드 셰프로 근무 중이다. 요리사의 길을 택한 아들 이야기가 나오니 그의 표정이 진지해진다.

“명성 있는 요리사 분들을 보니 거의 도 닦는 수준으로 요리를 하더군요. 소믈리에들도 큰 대회를 앞두고는 포도주 맛을 제대로 느끼기 위해 일주일 동안 마늘이 들어간 음식을 금한다고 하고요.” 힘든 길인 걸 알기에 처음엔 반대했지만 요리사가 되고 싶다는 아들의 고집을 꺾지 못했다. 지금은 아들의 길을 묵묵히 응원하고 있다.

“세월이 지날수록 한국 음식이 제일 맛있다는 걸 알겠습니다.” 인터뷰가 중반을 향해 갈 때쯤 그는 한국 음식 예찬론을 꺼냈다. 예전엔 이런저런 조리도구들을 사들이기도 하고, 각종 소스를 넣어 화려한 요리를 즐겼지만 어느 순간 모든 것이 ‘과유불급(過猶不及)’의 원리 속에서 움직이고 있다는 걸 깨달았다는 것.

“김치찌개를 자글자글 끓이다 보면 어느 순간 깊은 곳에서 올라온 듯한 맛이 납니다. 찌개를 푹 끓이면 염도가 올라가서 본연의 맛이 강해지는 것이죠. 이 맛은 시간의 힘으로 만들어지는 것이지 다른 재료를 더한다고 만들어지는 건 아닙니다.”

그런 점에서 요리와 화학은 닮은 부분이 많다고 고 대표는 말했다. “김치찌개를 끓일 때 아무리 좋은 고춧가루라도 많이 넣으면 맵죠? 화학도 마찬가지입니다. 어떤 화학제품을 만들든 가장 중요한 건 균형입니다.”

최근 한국의 타이어와 자동차 산업의 화두는 친환경 이동성(green mobility)을 위한 자동차 경량화다. 랑세스 역시 안전하고 기능적이면서도 환경을 해치지 않는 화학제품 개발과 공급에 주력하고 있다.

대표적인 제품이 타이어의 내구성과 접지력은 높이면서 회전 저항은 낮추는 ‘고성능 합성고무’. 타이어의 세 가지 기능에 균형을 맞춰주는 ‘첨단 고무’ 개발로 자동차 연비 향상과 이산화탄소 감축에 기여할 수 있게 됐다. 이 모든 것이 ‘균형과 조화’를 중시하는 정신에서 나왔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고 대표가 이끈 랑세스코리아는 2007년 설립 당시 자본규모 1000억으로 시작해 매년 두 자릿수 성장을 지속해왔다. 지난해 3500억 원 매출을 기록했고 남은 임기 중엔 5000억 원 이상 매출 달성을 목표로 하고 있다. 본사인 랑세스 역시 지난 2012년 9월 독일 DAX30(독일 증권거래소에 상장된 상위 30개 기업들의 종합주가지수)에 이름을 올렸고, 지난해 가장 우수한 실적을 낸 5개 기업 리스트에도 오르는 등 승승장구하고 있다.

그는 사회의 큰 화두인 ‘친환경’에 맞춰 랑세스의 제품 개발 과정 역시 친환경적으로 혁신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내부적으로 혁신 기구를 따로 두고 이산화탄소 배출을 줄이기 위한 공정 개선에 투자하고 있다는 것. “요리가 맛있으려면 조리 과정이 좋아야 하듯 친환경 제품을 제대로 만들려면 공정도 친환경적이어야 한다”는 생각에서다.

“요리는 삶을 풍요롭게 하죠. 화학도 문명사회에 없어서는 안 될 요소입니다. 요리처럼 삶을 풍요롭게 하는 화학제품들을 만드는 기업으로서 랑세스가 앞으로 세상에 기여할 수 있는 부분이 더 많아질 거라고 기대합니다.”


고제웅 대표는…
1956년생
인하대 화학공학과 졸업
1981년 바이엘코리아 유기화학 사업부 입사
1996년 독일 레버쿠젠 유기화학 사업부 근무
2004년 바이엘코리아 랑세스 사업부 책임자
2005년~랑세스코리아 CEO


김보람 기자 bramvo@kbizweek.com

사진 이승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