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EO 인터뷰

김영세라는 인물의 존재감을 어떻게 설명할까.

이름 자체가 글로벌 브랜드이자, 혁신과 창조의 아이콘인 그는 사실 설명 자체가 불필요하다. 다만 한 가지, ‘디자인이란 남을 사랑하는 것이다(Design is loving others)’라는 가치관을 평생 실천해온 그가 ‘사람’에 대한 애정 어린 마음으로 청춘들을 위한 인생 디자이너로 나섰다.
김영세 이노디자인 대표, 혁신의 아이콘에서 인생 디자이너로
인터뷰 약속이 잡힌 후 설레는 마음을 주체할 수 없었다. 그가 빌 게이츠마저 디자인계의 지도자, 디자인 구루라고 칭송하는 세계적인 산업디자이너이기 때문만은 아니었다.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창조 세포가 펄떡펄떡 살아 숨 쉬고 있는 것 같은 남다른 존재감 때문이었다. 그와의 만남에서 받게 될 기분 좋은 자극과 에너지에 대한 기대감이 컸다고나 할까. 하고 싶은 일을 열정적으로 하며 늘 설레는 삶을 살고 있는 김영세 이노디자인 대표는 그처럼 이름만으로도 자극이 되는 존재다.

우리나라에 산업디자이너라는 호칭조차 없던 1970년대 디자인 공부에 뛰어들어 온몸으로 미래를 개척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존경받아 마땅하지만, 내놓을 때마다 센세이션을 일으킨 수많은 작품들과 숱한 수상 실적, 그리고 세계가 주목하고 있는 글로벌 리더라는 점은 그를 더욱 빛나게 한다.

레인콤의 MP3 아이리버, 동양매직의 ‘이츠 매직(It’s Magic)’ 가전기기 시리즈, ‘가로 본능’으로 유명한 삼성 애니콜, 태평양화학 슬라이드 팩트 등 산업 전 분야를 아우르는 화제작은 이미 많은 이들이 알고 있는 바. 디자인계의 아카데미상이라 불리는 미국의 IDEA(International Design Excellence Awards) 금·은·동상을 모두 휩쓰는 기록을 남겼고, 독일의 iF 디자인 어워드(International Forum Design Awards)와 레드닷(reddot), 일본의 굿 디자인 어워드(Good Design Award) 등 세계적 권위의 상을 받았다. 이제는 산업디자인을 넘어 브랜드 이미지와 공간 디자인 등 다양한 영역에 도전하며 ‘창의’로 일관된 삶을 살고 있다.

디자인을 할 때도 늘 사람을 중심에 두고, 사람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임한다는 김 대표는 ‘사람’에 대한 생각 또한 창조적이다. 최근 미래의 새로운 인재상을 정의한 저서 ‘퍼플피플’을 내놓고 청춘들을 위한 인생 디자이너로 나선 그를 판교 테크노밸리에 위치한 신사옥에서 만났다. ‘세계적인 디자인 그룹인 이노디자인의 사옥은 어떤 모습일까’ 하는 기대감은 실제와 마주한 순간 감탄으로 바뀌었다.


김영세 대표는…

서울대 산업디자인과를 졸업한 후 미국 일리노이대에서 석사 학위를 취득, 같은 대학에서 산업디자인과 교수로 재직했다. 1986년 실리콘밸리에 한국인 최초로 디자인 기업인 이노디자인을 설립, 1999년 한국 스튜디오를 개설했다. 현재는 한국의 서울과 대전, 미국의 팔로알토, 중국의 베이징에 스튜디오를 두고 있다. ‘12억짜리 냅킨 한 장’, ‘이노베이터’, ‘이매지너’ 등 다양한 저서가 있으며, 2012년 10월 문화체육관광부로부터 옥관문화훈장을 받았다.
김영세 이노디자인 대표, 혁신의 아이콘에서 인생 디자이너로
신인류 ‘퍼플피플’을 정의하다

신사옥에 대해 궁금했는데 역시 기대를 저버리지 않네요.

“제가 전체 스케치를 했고, 입구 쪽의 각 벽들은 각각 디자이너들이 만든 작품이에요. 2012년 초부터 인테리어를 시작해서 9월 초에 입주했죠. 사실 판교 테크노밸리로의 이전은 5년 전에 계획한 거예요. 여기가 한국의 실리콘밸리를 넘어 아시아의 대표성을 띠게 될 거라고 생각해 디자인센터는 반드시 필요하다 싶었거든요. 잘 보시면 알겠지만 이곳에도 여기저기 퍼플 컬러가 굉장히 많이 사용됐어요.”

최근 내놓으신 책 ‘퍼플피플’이 화제입니다. 책에서는 퍼플피플에 대해 ‘모두 자기 인생의 주인공이며 열정을 쏟을 수 있는 일을 만들고 일과 삶의 균형을 추구해 자유를 만끽할 줄 아는 사람’이라고 정의하셨던데요. ‘퍼플’의 상징성은 어떻게 나온 건가요.

“제가 퍼플에 감염된 지 한 2년 정도 됐어요. 세계적으로 지금껏 일하는 사람들은 생산직 근로자인 블루칼라와 사무직 근로자인 화이트칼라로만 나뉘었잖아요. 그런데 애플의 스티브 잡스, 페이스북의 마크 저커버그 등 실리콘밸리의 기적을 보여준 혁신가들의 이야기가 한창 회자될 때 그런 생각이 들었어요.

‘저 사람들은 흰색도 아니고 블루도 아니다. 나도 역시 그렇다. 그럼 우린 어떤 컬러지?’ 그때 떠오른 색이 퍼플이었어요. ‘퍼플’은 한국말로는 보라색에 가까운데 오래전부터 고귀함의 상징으로 여겨졌죠. 현대사회에서 인간의 고귀한 창의적 활동을 규정할 컬러로 퍼플만한 게 있을까 싶었어요. 여기에는 ‘퍼플카우’의 리마커블함이나 ‘퍼플오션’의 독창성을 가미한 차별화 개념도 포함돼 있죠.”



지난 2년간 트위터를 통해 젊은 층들과 소통한 결과물이라고 들었어요.

“퍼플피플을 책으로 펴내야겠다는 생각은 2년 전에 했어요. 팔로어가 오늘 날짜로 9만5400명쯤 되는데 저에게 굉장히 소중한 10만 명이죠. 대부분 2030세대로 디자인이나 창의적인 일에 관심이 아주 많은 ‘퍼플피플’ 같은 사람들이에요. 책을 내면서 제 목표는 퍼플피플 100만 명 만들기 프로젝트였어요. 그게 곧 우리나라가 잘되는 방법이거든요.

지금까지와 달리 일에 대한 생각 자체를 바꿔야 합니다. 퍼플피플의 핵심은 어떤 일을 하느냐가 아니라 어떻게 하느냐의 차이예요. 직업이 창의적인지 아닌지는 중요한 게 아니죠. 그냥 일이 아니라 ‘내 일’이라고 생각하면 ‘내일(future)’이 생기는 겁니다. 일을 하면서도 즐거울 수 있다고 생각하는 순간 일은 일이 아니죠.”

김 대표님이야말로 대표적인 ‘퍼플피플’ 아닌가요.

“제가 생각하는 퍼플피플의 조건이 몇 가지 있어요. 내 인생의 주인일 것, 열정을 쏟을 수 있는 일을 만들 것, 일과 삶의 균형을 추구해 자유를 만끽할 것, 나만의 브랜드를 가질 것, 언제나 다음 날 아침이 설레며 기다려질 것 등입니다. 그러니 저도 퍼플피플이죠. 저는 대학 때부터 그랬던 것 같아요. 친구들이 ‘나중에 이런 일을 하고 싶다’고 말하면 ‘왜 지금은 안 되지?’ 하고 반문하곤 했거든요.”
아무리 기발한 아이디어로 대단한 기술이 개발되더라도 인간의 상상력을 대신할 수 있는 건 없을 겁니다. 그러니 이제는 교육도 바뀌고 비즈니스 모델도 바뀌고 고정관념도 바뀌어야 해요.
아무리 기발한 아이디어로 대단한 기술이 개발되더라도 인간의 상상력을 대신할 수 있는 건 없을 겁니다. 그러니 이제는 교육도 바뀌고 비즈니스 모델도 바뀌고 고정관념도 바뀌어야 해요.
창의 시대, 상상력이라는 자신감

김 대표님을 롤 모델로 삼은 친구들이 많을 거예요.

“그 오래전 TV로 방영된 ‘성공시대’나 제 책들을 보고 산업디자인을 알게 돼 그 꿈에 도전하고 있다는 학생들이 많아요. 그러다 보니 제가 마음이 급해요. 산업의 리더로서 더 키워야 한다는 생각이 강하죠. 우리나라에서 디자인을 전공한 사람 수가 전 세계 2위라는 설이 있을 정도로 디자인에 대한 생각은 달라졌는데 산업이 그만큼 크질 못했죠.

그런데 이젠 디자인이 미래 먹거리인 시대가 됐잖아요. 다행인 건 지금이 우리나라에서 디자인을 꽃피우기에 최적의 타이밍이라는 점이에요. 한류 등으로 인해 K(Korea) 문화가 하나의 코드가 됐고, 전 세계에서 한국이 조명을 받기 시작했죠. 싸이의 ‘강남스타일’이 유튜브 동영상 조회 수 1위를 했다는 등 기적 같은 일들이 벌어지고 있잖아요.

여기서 머무를 게 아니라 산업적으로 트랜스퍼 하는 게 중요하죠. 국가 수익 모델을 창출해야 하는데 그게 바로 디자인이 아닐까 생각해요. 더구나 우리는 유럽의 디자인 강국들보다 앞선 기술력을 갖고 있거든요. 그 기술 베이스에 산업디자인의 능력을 플러스알파(+α) 하면 굉장한 일이 벌어질 거예요.”

이제는 정말 창의력이 화두인 시대가 됐죠.

“제가 2011년에 대한민국 무역 1조 달러 기념 조형물을 의뢰받아 재능 기부로 코엑스 앞에 설치를 했어요. 1조를 뜻하는 동그라미 12개를 형상화한 작품인데 한국인의 열정으로 만들어낸 1조 달러 달성이라는 게 정말 감동스럽더군요.

그런데 6.25전쟁 직후 잿더미뿐이었던 한국에서 경제 강국이 된 것이 산업 시대가 이루어낸 결과물이라면 앞으로는 창의 시대로 바뀌어야 합니다. 다니엘 핑크가 쓴 책 ‘새로운 미래가 온다’에 보면 미국의 경우 330만 명의 사무직 일자리가 앞으로 15년 내에 사라질 것이라는 한 리서치 결과를 인용한 부분이 나와요.

몇 년 전에 그 내용을 봤을 때 깜짝 놀란 한편 마음에 와 닿더군요. 지금 많은 이들이 스스로 질문을 던져봐야 해요. 내가 하고 있는 일이 과연 10년, 15년 후에도 있을 것인가 하고 말이죠. 컴퓨터나 디지털이 대신할 수 있는 일이 급속히 생길 겁니다. 기업은 10배 성장해도 사람을 10분의 1로 줄여야 하는 시대가 오는 거죠. 세상은 우리가 경험할 수 없는 속도로 바뀌고 있어요.”

그래서 어떤 때는 놀라운 발전 속도가 무섭다는 생각도 들어요.

“무섭죠. 일찍이 간디가 ‘이 세상에 있어서는 안 되는 6가지’에 대해 이야기하며 그중 하나로 ‘인성 없는 과학’을 들었는데 그게 맞아들어 가고 있어요. 기술의 힘이 사람을 밀어내는 세상이 오고 있는 거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의 자신감은 상상력이 있다는 겁니다.

아무리 기발한 아이디어로 대단한 기술이 개발되더라도 인간의 상상력을 대신할 수 있는 건 없을 겁니다. 그 상상력을 이용해 부가가치를 창조할 수 있죠. 저는 그런 사람들을 이매지너(imaginer: 상상력으로 가치를 생산하는 사람)라고 부릅니다. 그러니 이제는 교육도 바뀌고 비즈니스 모델도 바뀌고 고정관념도 바뀌어야 해요.”

창의력이나 상상력이란 타고나는 DNA가 아닐까, 그런 생각도 사실 들거든요.

“현대적 개념의 창의성은 과거 피카소 시대의 그것과 달라요. 그 시대에는 외부로부터의 정보가 한정적이었을 테니 순전히 자기 안의 창의력이 대부분이었겠지만, 지금은 상황이 다르죠. 혼자서 꺼내놓을 수 있는 아이디어가 고갈된다 해도 밖에서 오는 아이디어가 너무 많은 겁니다. 그러니 천재적인 창의력만을 기대했다간 오히려 망할 수 있어요.

손정의 소프트뱅크 회장이 좌뇌와 우뇌보다 중요한 게 ‘외뇌(外腦)’라고 했어요. 바깥에서 들어오는 이야기가 창의의 원천이란 뜻이죠. 다시 말하면 타고난 재주가 아니라 자기가 하는 일에 대한, 세상에 대한 호기심과 사람들에 대한 관심이 창의에 대한 드라이브인 셈입니다.”

김 대표님을 상징하는 단어가 바로 ‘창의’와 ‘혁신’, ‘호기심’ 등등이 아닐까 싶어요.

“한 가지 확실한 건 저는 굉장히 열심히 한다는 사실이에요. 열정적인 사람들이 꼭 이기는 데는 이유가 있어요. 열정적인 사람은 그렇지 않은 사람보다 노력을 더하거든요. 열정이 많으면 눈높이는 계속 올라갈 수밖에 없으니까요. 그런데 그 간발의 차이가 바로 승부를 결정합니다.

저만의 경쟁력이 있다면 그건 열정이고, 그 또한 사랑을 기반으로 한 거지요. 자기가 하는 일을 미친 듯이 좋아하는 사람이 해내는 결과는 그렇지 않은 사람의 그것보다 훨씬 더 특별한 겁니다. 이 열정의 힘은 창의적, 문화적인 일에만 국한되는 건 아니고 비즈니스 현장에서도 승패를 좌우하죠.”

그래서 요즘엔 ‘창의 경영’이란 단어도 화두입니다.

“실제로 최고경영자(CEO)들이 저에게 창의 경영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 직원들이 몰입하게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에 대해 컨설팅을 받으러 와요. CEO는 직원들이 무엇을 원하는가, 어떻게 하면 일을 즐길 수 있는가를 고민해야 해요. 그렇지 않으면 인재 탈출이 시작될 겁니다. 그것도 회사에 꼭 필요한 가장 중요한 인재들부터 말이죠.”
김영세 이노디자인 대표, 혁신의 아이콘에서 인생 디자이너로
이노디자인 그룹 산하 100개 회사가 꿈

실리콘밸리에 한국인 최초로 디자인기업 이노디자인을 설립한 게 1986년이니 25년이 넘었습니다. 감회가 남다르실 것 같아요.

“2011년이 25주년이었는데 사실 그렇게 긴 시간이 흘렀다는 걸 알고 깜짝 놀랐어요. 사람으로 치면 한창 일할 시기의 청년이 된 거죠. 앞으로도 할 일이 많고 가야 할 길이 멀었어요. (리셉션 데스크 뒤 회사명이 쓰인 벽을 가리키며) 여기 회사명을 왜 구석에 써놓은 줄 아세요. 이 벽을 다 이노디자인 그룹 산하 회사명으로 채울 거거든요. 한 100개쯤 되려나. 그래도 5000개를 만들겠다고 했던 손정의 회장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에요.(웃음)”

국내에서의 성과는 어땠나요.

“이노디자인이 한국에 들어온 게 1999년이에요. 10년이 훌쩍 넘었죠. 사실 최근에 ‘이노디자인이 조용하다’고 느끼는 분들이 많을 텐데 그간의 전략 개발을 바탕으로 새로운 분야에 도전을 많이 하고 있어요. 이노디자인이 제품 디자인으로 많이 알려졌고 여전히 그쪽이 메인이긴 하지만 그보다는 서비스 디자인, 공간 디자인 쪽에 매진하자는 방침이죠.

그뿐만 아니라 ‘디자인 엔젤’의 역할도 많이 해왔어요. ‘디자인 엔젤’도 제가 만들어낸 말인데 엔젤 투자(보통 돈 있는 개인들이 모여서 투자 클럽을 결성하고 새로 창업하는 회사에 미래의 가능성만 보고 투자하는 것)처럼 디자인을 투자해 창업자를 키우는 역할을 말해요. 지금까지 정보기술(IT), 플랫폼 비즈니스, 문화, 유통 마케팅 등 다양한 분야에 걸쳐 6개 회사에 투자했죠.”

2013년 계획이 있다면요.

“올해는 이노디자인의 ‘러닝 포인트’가 될 거예요. 2011년 말에 제가 트위터에 ‘2012년은 나와 이노디자인의 터닝포인트다’라고 올렸었는데 실제로도 그렇게 됐죠. 사옥 이전도 그렇고 많은 걸 새롭게 만드는 한 해였어요. 그중엔 국립중앙박물관의 무빙 뮤지엄 작업도 있어요. 지하철 이촌역에서부터 국립중앙박물관으로 이어지는 길이 255m의 지하 무빙워크를 활용한 건데 제가 디자인을 맡았죠.

양쪽 벽은 물론 천장까지 하면 총 1km에 달하는 대규모 작업이었어요. 한국을 대표하는 박물관이니만큼 입구에서부터 태극기를 느낄 수 있도록 하면서 몇십 년 후에도 멋있는 공간이 되도록 시간을 초월한 디자인에 주력했죠. 이처럼 2012년은 이노디자인의 제2의 창업 같은 의미가 있었어요. 그러니 2013년엔 더 달려야 하지 않겠어요. 지금 추진 중인 프로젝트가 하나 있는데 융합연구소 아이랩(iLAB)을 이노디자인 산하 조직으로 만들 겁니다. 디자인이 중심이 돼 관련 전문가들과 함께 컬래버레이션(협업)을 할 수 있는 연구소인 셈이죠.”

그나저나 생물학적 나이와 상관없이 김 대표님이 늘 젊음을 유지하는 비결이 궁금해요.

“음, 민망한 질문을 받았으니 ‘청춘이란 인생의 어떤 기간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마음의 상태다’라고 말한 사무엘 울만의 시 한 구절을 인용해 답하는 수밖에 없네요.(웃음) 내 마음의 상태는 내 물리적인 나이보다 젊은 거죠. 얼굴 표정이나 말하는 내용이나 다 생각에서 나오는 거니까요. 제가 외모 나이는 40~50대지만 생각 나이는 10대거든요.”



박진영 기자 bluepjy@kbizweek.com 사진 이승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