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환위기로 실의에 빠진 국민이 1998년 박세리 선수의 US여자오픈 우승으로 위로와 용기를 얻는 것을 보고 골프에 대한 인식을 달리했다는 강금원 회장. 그는 2001년 충북 충주시 앙성면에 있는 회원제 18홀 규모의 골프장을 인수해 시그너스CC로 개명했다.
[In and Out] 시그너스CC, 쉬워 보이지만 결코 쉽지 않은 코스
국내 400여 개가 넘는 골프장 이름을 다 알기는 어렵지만 서울, 경기에서 골프를 즐기는 골퍼라면 수도권 인근 골프장들의 이름이 낯설진 않을 것이다. 하지만 개장한 지 16년이 지난 시그너스CC(대표이사 김영란)는 선뜻 귀에 익숙하지가 않다. 거리가 멀어서일까. 행정구역상 충주시에 속하지만 여주IC에서 20여 분 남짓이다. 그런데 지난달 초 고(故) 노무현 전 대통령의 후견인이었던 강금원 창신섬유 회장의 죽음이 알려지면서 시그너스CC는 세간에 회자됐다.

외환위기로 실의에 빠진 국민이 1998년 박세리 선수의 US여자오픈 우승으로 위로와 용기를 얻는 것을 보고 골프에 대한 인식을 달리했다는 강 회장. 그는 2001년 충북 충주시 앙성면에 있는 회원제 18홀 규모의 남강CC를 인수해 시그너스CC로 개명했다.

인수 후 코스 조경을 새롭게 하고 다소 무리가 있다고 지적됐던 곳을 보수해 새로운 코스로 변화시켰다. 2005년에는 9홀을 추가해 현재 섬유 원단의 이름을 딴 실크(9홀·3160m), 라미(9홀·3380m), 코튼(9홀·3011m) 등 27홀로 운영되고 있다.

“보이지 않는 곳에서 하는 열정과 노력은 언젠가 모두의 기억에 남는다”는 말을 자주 했던 강 회장은 골프장 경영에서도 그랬다. 그래서 16년이 지난 골프장이지만 외부에 알려지는 것보다 내실을 기해 회원들의 권익을 보호하고 골프장을 찾는 고객들에게 정성을 다하는 것에 역점을 두었다.

또한 친환경을 우선시 한 강 회장은 농약 사용을 줄이기 위해 오리를 풀어 풍뎅이를 잡았고 코스 곳곳에 사과, 배, 채소 등을 심어 라운드를 즐기는 고객들의 마음을 풍요롭게 만들고 봉지에 담아 갈 수 있게 했다.

코스가 주는 분위기는 남한강이 내려다보이는 편안하고 아늑한 분위기다. 오래된 골프장답게 나무들과 바위 곳곳에 있는 꽃나무들이 세월을 말해 준다. 요즘 들어서는 골프장처럼 위협적이거나 그린이 난해하지도 않다. 그렇다고 재미없는 건 아니다.

시그너스CC 티 박스는 매홀 골퍼에게 ‘직접 갈 것인가 아니면 끊어 갈 것인가’를 묻는다. 만만해 보이지만 호락호락하지 않은 코스는 막상 라운드에 들어가면 클럽 선택에 신중을 기해야 하고 토끼보다는 거북이 마인드가 스코어를 줄이는 데 도움이 된다.

한편 강 회장과 노 전 대통령의 관계를 말해 주듯 코스 입구 화단에는 기념식수가 서 있고 라미 코스 7번 홀 20m 높이의 폭포 아래에는 폭포 준공을 축하하는 노 전 대통령의 기념석이 서있다. 퇴임 후 골프장을 찾은 노 전 대통령은 실크 코스 첫 홀 티샷에서 연속해 3개 아웃 오브 바운드(OB)를 냈다.

그때 강 회장이 “‘잘 맞으실 때까지 치십시오’라고 하자 ‘기다리시는 분들이 많으니 OB 티로 가겠다’면서 ‘갤러리가 많아서 그런 것’”이라고 멋쩍게 웃으며 농담을 했다.

이제 강 회장이 그렇게 애착을 갖고 일구었던 시그너스CC는 고인의 뒤를 이어 강석무 이사가 이끌게 됐다. 강 이사는 선친이 내실을 기해 만들어 놓은 골프장을 이제는 대내외적으로 인지도를 높이고 선친의 유지에 어긋남 없이 새로운 시스템을 도입하며 창의적 아이디어를 개발해 고객들이 부담 없이 즐겨 찾는 골프장으로 만들어 나갈 계획이다.


이승재 기자 fotoleesj@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