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명은 150~250년 정도인데 평균 200년 정도로 본다. 20년 정도 자라면 나무껍질의 코르크층을 벗겨내도 나무의 생장에는 지장을 주지 않는다. 한 번 코르크를 채취할 때 약 25kg 정도를 채취한다. 코르크층은 시간이 지나면 다시 재생되는데 약 9~12년 정도가 지나면 다시 채취할 수 있다. 평균 수명 200년을 기준으로 최대 20회 정도 코르크 채취가 가능하다.
코르크는 기계 채취가 불가능하다. 온전히 사람의 손으로 해야 하며 작은 손도끼만으로 코르크 채취 작업을 진행하는데 보통 숙련된 사람 5명 정도가 협업해야 할 정도로 고난이도의 작업이다. 이는 나무의 생장에 지장을 주지 않으면서 코르크층을 벗겨내야 하는 고도의 기술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유럽 전체에서 생산되는 코르크는 연간 약 30만 톤인데, 금액으로 15억 유로(2조2000억 원) 정도 된다. 코르크는 와인 병마개 이외에도 단열재, 부표, 낚시찌, 방수 재료, 기구의 공기주머니 마개, 권총의 탄약통 마개 등 다양한 용도로 사용된다. 와인 병마개로 사용되는 것은 부피로는 약 15%의 비중을 차지하지만, 금액으로는 66%에 해당한다. 그만큼 코르크를 이용해서 만드는 물건 중에는 와인 병마개가 가장 부가가치가 높다.
동 페리뇽 신부가 처음 시도한 코르크 마개
코르크 마개로 와인 병을 막기 이전에는 주로 나무로 만든 마개에 헝겊을 씌우고 여기에 올리브오일을 묻혔다. 그런데 헝겊은 밀봉이 어려워 여러 문제점이 생겼다. 처음으로 코르크를 와인 병마개로 사용한 사람은 동 페리뇽(Dom Perignon) 신부라는 설이 유력하다. 동 페리뇽 신부는 샹파뉴(Champagne) 지방의 오빌레에 있는 성 베드로 사원에서 포도원 관리와 와인 제조를 담당하던 인물이다.
우연히 저장해놓은 샴페인의 병마개가 튀어 달아나 와인이 솟구쳐 오르는 것을 보고 이를 해결하기 위해 연구를 거듭하다가, 스페인 수사들이 코르크 마개로 물통을 틀어막는 데서 힌트를 얻어 코르크를 와인 병마개로 사용하게 됐다고 한다. 이를 계기로 와인의 보관과 숙성은 비약적으로 발전했는데 이전에 비해 올리브오일이 와인에 섞이지도 않고, 밀봉도 가능해졌기 때문이다.
코르크는 코르크나무의 겉껍질과 속껍질 사이에 자리한 두꺼운 조직으로 가볍고, 탄력이 우수하며, 액체나 기체가 통과하기 어려운 구조를 가지고 있다. 코르크는 탁월한 신축성과 내구성을 가지고 있는데 거의 2분의 1까지 부피를 줄여 압축할 수 있다. 코르크 이외에 대부분의 소재는 장시간 압축 상태에 두면 탄력이 사라져서 원상태로 돌아오지 않지만 코르크는 장시간 압축시킨 상태로 보관해도 탄력이 거의 사라지지 않고 유지되는 특성이 있다. 이와 같은 이유로 와인 병마개로서 30년 이상 와인 병을 밀봉할 수 있는 것이다.
투자 대상이 되는 고급 와인의 경우 30년이 아니라 100년 이상 보관된 경우도 있는데 이때는 30~50년 주기로 코르크 마개를 새것으로 교체하고 와인 라벨에는 빈티지 연도 이외에 리코르크 연도를 표기해주게 돼 있다. 이 경우 와인 병에 자연 증발된 만큼 동일한 와인으로 보충해주고 코르크를 막게 된다. 이제까지 개발된 밀봉 방법 중에 코르크 마개만큼 믿음직한 방법도 없는 것 같다.
부족한 코르크 마개의 현실적인 대안, 스크루 캡
이런 코르크도 단점이 있다. 나무에서 벗겨낸 코르크 조직은 6개월 정도 자연 상태에서 말린 후 끓는 물에서 1시간 30분 정도 삶아내고 다시 3주간 말려서 와인 병마개로 거듭난다. 그런데 코르크의 소독 과정에 사용하는 염소 성분이 극미량 잔류해 있다가 와인과 접촉하면서 상호작용을 일으켜 TCA(trichloani-sole)라는 물질을 만드는 경우가 종종 발생한다. 이 물질이 코르크 마개에 곰팡이를 형성하게 되면 극소량으로도 와인의 향을 치명적으로 파괴하게 되는데, 이를 두고 ‘코르크화됐다’, 또는 ‘부쇼네를 일으켰다’라고 표현한다. 쉽게 말해서 와인이 상했다는 것인데 이와 같은 문제로 와이너리와 코르크업체 사이에 송사가 발생하기도 한다.
TCA 오염 확률은 3~5%에 이른다. 하지만 일반 소비자들은 이를 잘 모르고 지나가는 경우도 많다. 어쨌든 TCA에 의한 오염 확률이 생각보다 심각하므로 레스토랑에서는 코르크 마개를 오픈해서 테이스팅을 한 후 손님이 와인에서 ‘코르크 냄새가 난다’거나, ‘부쇼네를 일으켰다’라고 주장하는 경우 관례적으로 다른 와인으로 바꾸어준다.
TCA 오염에 대한 화학적 원인이 규명된 것은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염소 계통의 물질이 원인이라는 것이 밝혀지면서 소독 과정에서 염소 성분이 들어간 소독제를 사용하지 않는 것은 물론이고, 코르크나무에 사용하는 농약 성분 중에도 염소 성분을 사용하지 않도록 엄격히 통제하고 있다. 그뿐만 아니라 와인 보관시설에서도 염소 성분을 사용하지 않도록 억제하는 추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보관 시 발생하는 산패문제, 그리고 코르크 조직 자체의 물성 불량으로 와인이 누출되는 문제 등은 해결할 수 없어 최근 호주를 중심으로 아예 코르크를 사용하지 않고, 스크루 캡(screw cap)으로 대체하는 와이너리가 늘어나고 있다.
물리적으로 스크루 캡이 밀봉도가 훨씬 높아 안전한 와인 보관이 가능하다. 하지만 코르크마개 산업을 유지하고 있는 많은 업자들이 코르크 마개는 오랜 기간 사용해오면서 장점과 단점이 충분히 드러나 대체가 가능하지만, 스크루 캡은 사용하기 시작한 지 20여 년밖에 안 돼 정말로 고급 와인의 장기 보관에 적합한지 확인되지 않았다며 그 품질을 폄하하고 있다. 사실 와인을 보관할 때 뉘어서 보관하고, 습도를 유지해야 하며, 어두운 곳에 보관해야 한다는 것은 와인 보관을 위해서라기보다는 건강한 코르크 마개의 수명 유지를 위해 필요한 조건들이다. 스크루 캡을 사용한 와인은 뉘어서 보관할 필요도 없고, 저장 시에 습도를 높여서 보관할 필요도 없다. 다시 말하면 스크루 캡의 사용이 보편화된다면 코르크 마개 산업만이 아니라 와인 저장시설을 유지하기 위한 산업도 상당부분 필요 없어지게 될지 모른다.
이런 산업 간의 알력뿐만 아니라 와인 소비자의 입장에서도 코르크 마개를 스크루 캡으로 바꾸는 것은 적잖이 망설여진다. 로맨틱한 식사의 상징인 와인은 로맨틱한 만큼 세밀한 주의가 필요하다. 보관 시 주의점뿐만 아니라 와인 병을 오픈한 후 이어지는 일련의 과정들 즉, 호일을 벗겨내고, 신중하게 와인 오프너의 스크루를 코르크 마개에 돌려 넣고, 이를 다시 세심하게 뽑아내서 호스트에게 전달하고, 호스트는 이 뽑아낸 코르크 마개를 면밀하게 검토하고, 조금 따라주는 와인을 테이스팅한 후에 와인 서빙을 지시하게 되는 이 신성한 의식이 갑자기 테이블에서 사라지게 되는 것을 결코 바라지 않는 듯하다.
스크루 캡은 너무 밀봉도가 높아 와인 숙성에 오히려 방해가 된다고 주장하는 이들도 있다. 하지만 뉘어서 보관하는 와인 병에 코르크를 통해서 산소가 극미량 투과해 와인이 숙성된다고 생각하는 것은 와인의 숙성 과정에 대한 오해에서 비롯된 것이다. 숙성에 필요한 극미량의 산소는 이미 코르크 마개를 닫는 순간 와인 병 안에 들어와 있다.
아무리 무수아황산가스를 주입해 산소를 밀어낸다고 하더라도 완전하게 산소를 제거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숙성은 코르크 마개를 통해 들어온 극미량의 산소에 의해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시간에 의해 와인을 구성하는 조직 성분이 서서히 파괴되고 새로운 반응을 거치면서 진행되는 것이다. 이 과정에 반드시 산소가 필요한 것은 아니다.
어차피 와인 생산에 비해 코르크 마개는 턱없이 부족하다. 이를 대체할 방안으로 재생 코르크나 고무마개 등이 사용되는데 온전한 코르크 마개에 비해 그 품질이 턱없이 떨어진다. 이런 현실을 감안하면 아마도 스크루 캡이 코르크 마개의 가장 좋은 대안이 아닐까.
김재현 하나은행 WM센터 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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