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적으로 대규모 건설사업은 경제위기를 불러온 경우가 많았다. 중국의 만리장성과 미국의 엠파이어스테이트 빌딩, 두바이의 부르즈 할리파 타워 등이 대표적인 경우다. 현재 중국의 과도한 사회간접자본(SOC) 투자는 역사의 교훈을 되돌아보게 한다.

중국의 지도자 마오쩌둥(毛澤東)이 한 말 중에 ‘부도장성 비호한(不倒長城 非好漢)’이라는 말이 있다. ‘만리장성에 가본 사람만이 사나이’라는 뜻인데 아마도 중국인의 자존심 한구석에 만리장성이 큰 의미로 자리 잡고 있음을 보여주는 언급이 아닌가 한다.

만리장성은 서쪽의 자위관에서 동쪽의 산해관에 이르는 총연장 6000여 km의 거대한 성곽 건축물이다. 일반적으로 만리장성은 진시황 때 만들어졌다고 알려졌지만 실은 춘추시대부터 이미 일부 성벽이 축조돼 왔으며 진시황 때 들어서 흉노족의 침입을 방어하기 위해 기존의 성벽을 연결하고 필요한 부분은 새롭게 쌓은 것이다. 그러한 성벽들이 15세기 명나라에 이르러서는 대대적으로 일종의 리노베이션에 들어가게 됐고 이 과정을 거쳐 오늘날의 만리장성이 완성됐다.

만리장성은 중국 역사에 있어서 대단한 자부심으로 보이지만 그 역사적 배경이 정주민족인 한족에게는 수치일 수도 있다. 만리장성에 정성을 쏟고 또 중요시했던 시기는 중국의 역대 왕조 중 한족이 지배했던 진, 한, 송, 명 시절이다. 반면에 이민족이 지배했던 수, 당, 원, 청 시절에는 북방 이민족과의 방어에 대한 수요가 상대적으로 적어 만리장성의 의미는 축소됐다.



초고층 빌딩 건설과 경제위기의 기막힌 연관성

시기를 막론하고 성벽과 궁궐의 축조에 많은 비용과 인력, 노력을 투입한 왕조는 여기에 자체 에너지를 너무 소비한 나머지 외부 침입이나 내부 갈등으로 쇠퇴하거나 멸망하는 경우가 많았다. 그러한 현상은 지금도 비슷한 양상으로 나타난다. 최근 금융위기를 겪고 있는 여러 국가들을 보면 과거와 흥미로운 연관성을 찾을 수 있다.

지난 100년간 건축사에서 어느 한 나라에서 가장 높은 건물이 지어진 시기에는 전반적인 경제 및 금융위기가 발생했다. 몇 가지 사례를 살펴보면 흥미로운 점을 발견하게 된다. 1930년 전후에 건설됐던 미국의 크라이슬러 빌딩이나 엠파이어스테이트 빌딩은 당시 미국에서 상징적인 3대 고층 건물로 손꼽혔고 공교롭게 완공 직후 미국은 대공황이라는 큰 위기를 겪게 됐다. 1970년 초반에는 지금은 9·11 테러로 무너져 버린 뉴욕 맨해튼의 쌍둥이 빌딩과 시카고의 시어즈 타워(Sears Tower)가 완공됐는데, 그즈음 미국은 오일쇼크와 경제위기로 고통을 받았다.
[스토리 경제학] 대규모 건설사업에 대한 ‘불편한 진실’
시각을 아시아로 돌려보면 1997년 아시아 금융위기(한국에서는 흔히 IMF 위기라고 표현한다)가 동남아를 시작으로 한국에까지 퍼질 무렵 말레이시아의 수도 쿠알라룸푸르에는 페트로나스 타워(Petronas Tower)라는 고층 빌딩이 완공됐다. 최근에는 세계 최고 높이를 자랑하는 두바이의 부르즈 할리파 타워가 대표적인데, 이 건물이 완공될 즈음 두바이는 금융 공황 상태에 빠지면서 주요한 자산을 해외에 매각하고 유령 도시화되는 아픔을 겪고 있다.

이 같은 연관성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고층 빌딩을 건설하기 위해서는 엄청난 공사비가 들게 마련이고 당연히 자금이 필요한데 은행을 포함한 금융권을 통해 조달한다. 또한 거대한 건물의 완공 후 임대 및 운영에 대한 과도한 낙관론이 있어야 이 같은 대규모 건설이 가능하다. 그런데 이런 건물이 완공될 무렵에는 시장의 과도한 금융 팽창이 버블로 이어져 금융 시장이 수축기조로 돌아서고, 실물경기가 얼어붙게 된다.

결국 건물의 층수가 높아질수록 시장의 경기낙관론과 유동성 증대의 스피드가 최고조에 달하게 된다. 따라서 시장에 초고층 건물 건설 붐이 일고 있을 때는 시장이 정말 그 건물의 많은 공간을 필요로 하고 있는지에 대한 정확한 판단이 필요하다. 더더욱 그런 건물이 서로 경쟁적으로 지어지고 있다면 과도한 금융 팽창의 징조는 아닌지 살펴볼 필요가 있다.

현재로서는 중국과 인도가 향후 세계 톱 5의 경제대국으로 올라설 거라는 데 이견을 다는 이는 없다. 그렇다면 중국과 인도에서는 초고층 빌딩이 얼마나 지어지고 있을까. 현재 전 세계에 건설 중인 초고층 빌딩은 약 120개에 이르는데, 그중 절반 이상이 중국의 도시에서 지어지고 있다. 초고층 빌딩 건설은 베이징과 상하이 등의 티어 1(tier 1) 도시를 벗어나 이미 티어 2(tier 2) 도시에서 티어 3(tier 3) 도시로까지 그 범위가 확장되고 있다. 인도 역시 현재 세계에서 두 번째로 높은 빌딩을 포함해서 총 14개의 초고층 건물이 건설되고 있다. 실로 걱정스러운 수준의 초고층 건물이 중국과 인도에 몰려있다는 점은 지난 100년간 반복돼온 ‘불편한 진실’을 떠올리게 한다.



과도한 장성 축조로 백성들을 도탄에 빠뜨려서 결국에는 패망하게 된 진나라와 명나라. 수많은 초고층 빌딩 건설과 SOC 투자에 열을 올리는 중국은 과거 국가들이 남긴 경험을 곱씹어봐야 할 것이다.





중국 지방정부의 과도한 SOC 투자에 대한 우려

중국을 조금 더 들여다보자. 지금 중국은 거대한 현대판 만리장성을 건설 중이다. 중국 곳곳이 빌딩과 아파트, 공항, 항만, 도로 등 SOC 시설로 꽉 차 있다. 다시 말해 무차별적인 고정자산 투자가 이뤄지고 있는 것이다. 그러한 투자는 지방정부의 드라이브와 이를 뒷받침하는 지방 은행의 과도한 신용 집행 속에서 수년간 계속되고 있다.

여기에는 중국 부모세대들의 자녀 사랑도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지금은 이전과 달리 인민이 직접 주거공간을 마련해야 한다. 이런 현실 앞에서‘한 가정 한 자녀’를 둔 부모들은 자녀들의 주거공간을 마련해주기 위해 헌신적인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따라서 일단 아파트는 사놓고 보는 게 대세가 됐다. 그야말로 아파트 광풍이 일고 있는 것이다. 중국의 지방 중소도시에 가보면 수십 층 높이의 주상복합 아파트가 건설되고 어렵지 않게 분양된다. 거기에는 이러한 문화적 배경이 있다.

거기다 지방정부는 각종 클러스터를 만든다는 명분하에 온갖 SOC 시설을 무분별하게 건설하고 있다. 중국의 아홉 번째 도시인 우한(武漢)의 사례를 보자. 우한 지방정부는 투자목적회사를 설립하고 은행으로부터 자금을 차입해 세수총액의 5배에 달하는 220억 달러를 SOC에 투자하고 있으며 20만 명을 수용할 수 있는 대규모 아파트 단지를 건설하고 있다. 그런데 우한의 연평균 소득은 3000달러로 상하이의 60% 수준에 불과하다.

일본이 1990년대 장기 불황을 겪기 바로 직전 고정자산 투자가 가장 활발했는데 그때의 고정자산 투자 규모는 전체 국내총생산(GDP) 대비 35% 수준까지 육박했다. 미국은 1980년대부터 90년대 이후까지 고정자산 투자 규모를 20% 수준에서 유지하고 있다. 그런데 지금 중국은 GDP 대비 70%에 육박하는 투자를 진행하고 있다. 그야말로 전 인민이 만리장성 축조에 여념이 없는 모습이다.

달도 차면 기우는 법인데 무모한 장성 건립의 후유증은 여러 곳에서 나타나고 있는 듯하다. 특히 과도한 사업 집행으로 지방정부의 부채 규모는 천문학적 숫자에 이르고 있다. 지방정부는 채권을 발행한다든가 직접 차입할 수 있는 금액에 한계가 있으므로 별도의 프로젝트 회사를 설립한 후, 간접적으로 프로젝트파이낸싱(PF) 형태로 자금을 조달하고 있는데, PF 목적의 특수법인이 9000개에 달하고 금액은 1조5000억 달러에 이른다. 중국이 공식적으로 발표하는 국가 부채는 GDP 대비 18% 수준으로 알려져 있으나, 이런 어마어마한 지방정부의 부채를 감안하면 GDP 대비 부채 규모는 70%에 육박할 것으로 보인다.

중국 중앙정부는 지방정부의 재정 위험을 인식하고 중국의 4대 은행인 중국은행(中國銀行·Bank of China), 중국공상은행(ICBC), 중국건설은행, 중국농업은행 등에 지방정부의 부채를 인수하게 하거나 시장에서 매각하는 절차를 진행하고자 하고 있다. 결국 중국의 대형 은행은 눈에 보이지 않는 잠재 부실을 떠안을 수도 있는 위험에 노출돼 있는 것이다.

싱가포르 국부펀드인 테마섹(Temasek)은 지난 여름 중국은행과 중국건설은행의 지분을 시장에 매각했다. 규모는 각각 118억 홍콩달러와 94억 홍콩달러에 이르는데 이미 테마섹은 중국 지방정부의 부채가 가져다줄 중국 은행들의 부담을 예측하고 발 빠르게 지분을 팔고 있는 것이다.

중국의 지방정부 부채가 향후 재정위기로부터 유럽이 살짝 회복돼 침대에서 일어나려는 무렵 발목을 잡는 일이 없었으면 하는 바람뿐이다.


일러스트·추덕영


이동훈 삼정투자자문 전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