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전국인민대표대회가 시작되면서 전 세계 이목이 중국에 집중되고 있다. 이번 전인대는 후진타오(胡錦濤) 시대를 마감하고 향후 10년간 중국을 이끌 시진핑(習近平) 시대의 개막을 알린다는 데 큰 의미가 있다.


중국 지도부에는 후진타오를 중심으로 한 공산주의청년단(團派·퇀파이), 후진타오 이전의 주석이었던 장쩌민(江澤民)을 좌장으로 하는 상하이방(上海幇), 그리고 혁명원로 자녀를 중심으로 한 태자당(太子黨) 등 3대 계파가 존재한다.

우선 공청단은 2000년 이후 후진타오 주석과 함께 정치적으로 성장하면서 그 전까지 정·관·재계를 주름잡았던 상하이방의 견제 세력으로 등장한 계파다. 공청단은 조직 자체가 공산당에서 어떤 역할을 한다기보다 향후 공산당을 이끌 지도자를 양성하는, 바꿔 말하면 공산당의 기반을 확고히 하기 위해 만들어진 공산당의 하위 조직이다. 18세부터 입당하는 공산당과 달리 14세 감수성이 예민한 어릴 때부터 입당해 보통 28세까지 중국 특유의 사회주의를 배우는 것을 목표로 중국 각지 평범한 집안의 수재들을 모아 양성한다.

공청단은 전통적으로 태자당과 상하이방보다 평등, 분배와 조화, 사회통합과 농민, 농민공 문제를 강조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공청단의 대표적 인물로 후진타오 외에 부총리 리커창(李克强), 광둥성 당서기 왕양(汪洋)이 있다. 차기 상무위원 후보로 리커창 외에 공산당 조직부장 리위안차오(李源潮), 선전부장 류윈산(劉雲山) 등이 거론된다.
[In China] 새로운 시진핑 시대를 준비하고 있는 중국
장쩌민 전 주석을 필두로 한 상하이방

장쩌민 전 주석은 1985년 상하이 시장, 1987년 상하이 당 서기장 겸 중앙정치국 위원을 거쳐 주석에 오른 인물이다. 그만큼 상하이가 그의 정치 기반이었다. 그가 주석에 취임한 이후 상하이 출신들이 대거 중앙권부로 모여 들었는데, 우리에게 익숙한 주룽지(朱鎔基) 총리도 상하이 시장을 지낸 상하이방이다.

상하이방은 1980년대 중반 이후 중국의 개혁·개방을 주장하면서 정치 이념보다 경제를 중시하고 중국 전체를 개혁·개방의 거점, 상하이처럼 만들겠다는 야심 찬 계획을 추진해왔다. 경쟁관계인 공청단에 비해 성장과 효율을 강조한다. 보기에 따라서는 자본주의와 별 차이 없을 정도로 중국을 급변하게 만든 주역으로 리카싱(李嘉誠) 등 화교자본과도 연결돼 있다. 유학파가 많고 외국어에 능통해 외교 협상 능력이 뛰어나다.

실제 개혁·개방 과정에서 중국 외교를 담당해온 대표적 지역 인맥이다. 장쩌민의 퇴임으로 영향력이 줄긴 했지만 사람에 따라서는 시진핑을 광의의 상하이방으로 분류할 만큼 상하이방의 정치 파워는 여전하다. 우방궈(吳邦國) 전인대 상무위원장, 자칭린(賈慶林) 정협주석, 리장춘(李長春) 선전담당 상무위원, 차기 상무위원 후보인 장더장(張德江) 부총리, 장가오리(張高麗) 톈진 당서기 등이 핵심 인물이다.

중국에서 콴시(關係)가 얼마나 중요한지는 새삼 말할 필요도 없다. 태자당은 혁명원로의 자녀, 고위 공산당 간부의 자녀들이 혈연, 학교, 직장 등을 통해 그물망처럼 촘촘한 콴시를 맺으며, 중국의 당·정·군·재계를 주름잡고 있으며, 중국의 핵심 요직에 4000여 명 포진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마오쩌둥(毛澤東)은 “권력은 총구에서 나온다”고 했지만 현재 중국의 정치, 경제 파워는 “혈연 중심의 콴시에서 나온다”는 얘기도 있다. 덩샤오핑(鄧小平)의 죽음으로 덩샤오핑의 자녀들이 태자당을 대표하던 시절은 끝나고 지금은 청칭홍 전 부주석을 중심으로 새로운 인물들이 전면에 나서고 있다. 경제계에서 활동하고 있는 인물로는 보수파의 거두 천원의 아들 천위안(陳元), 양상쿤 전 주석의 아들 양사오밍(楊紹明), 보이보의 아들이면서 이번에 정치적 파문을 일으킨 보시라이(薄熙來) 등이 있다.

정치권에서는 주은래의 양아들 리펑(李鵬), 중앙군사위원회 부주석을 지낸 예젠잉의 아들 예시엔핑(葉選平) 등이 태자당에 해당한다. 차기 상무위원 후보로 시진핑 부주석 외에 왕치산(王岐山) 부총리, 위징성 상하이 당서기 등도 여기에 속한다.

태자당은 혁명원로 자녀라 해도 노선에 따라 그 성격이 다양할 수 있다. 하지만 이번 시진핑 부주석이 차기 리더로 부상함에 있어 태자당과 상하이방이 협력한 데서 알 수 있듯 대체로 상하이방과 같이 성장과 효율을 좀 더 중시한다고 할 수 있다.



시장경제 신봉자이자 개방주의자인 시진핑

중국의 정치 시스템은 주석이 되면 특별한 사유가 없는 한 연임 포함, 주석직을 10년 수행한다. 또 중국 공산당 최고 의사결정기구인 정치국 상무위원회의 상무위원은 총 9명, 임기 5년으로 외교, 국방, 경제, 인사 등 거의 모든 국가 중대사를 결정하는데, 만장일치 원칙이며 서열 1위에서 9위까지 동등한 발언권을 갖는다. 따라서 차기 주석과 총리가 사실상 결정된 상태에서 각 계파는 서로 많은 상무위원을 확보하려 경쟁할 수밖에 없다. 이번 충칭(重慶) 시 보시라이 당서기 사건도 어떤 결과로 끝날지 아직 예단할 순 없지만 그 일례로 판단된다.

하지만 우리의 눈에 권력 투쟁, 공청단의 반격, 정적 제거 등으로 비춰질 뿐이지, 중국 정치 시스템상에서는 서구 민주주의의 정당 간 경쟁과 본질적으로 다를 바 없다. 보시라이가 태자당이기 때문에 앞으로 보시라이 대신 어느 계파가 상무위원 후보로 들어오는지에 따라 이번 사건과 정치 역학관계에 대한 해석이 달라질 수 있다. 하지만 현재로서는 보시라이가 너무 대중적이고 튀는 정치 행태를 보여 서열, 절제, 타협을 중시하는 중국 지도부에 부담이 됐고, 결국 계파에 관계없이 배제하기로 합의됐다는 해석이 지배적이다.

보시라이는 공산당의 혁명가요를 부르는 등 문화대혁명을 연상케 하는 홍색 캠페인을 벌여왔다. 최근 전인대 공개석상에서 원자바오(溫家寶) 총리가 정치 개혁을 하지 않으면 문화대혁명 같은 일이 또 일어날 수 있다고 경고한 후 바로 보시라이가 면직된 것은 사전 계파 간 합의가 있었음을 보여준다.

아무튼 보시라이의 실추로 태자당의 상임위원 후보는 셋으로 줄고 상하이방 둘, 공청단이 현재 셋에서 넷으로 늘 수 있을지가 향후 유동적이며 관전 포인트의 하나다.

그러나 앞서 얘기했듯이 추구하는 것이 비슷한 태자당과 상하이방이 주석직을 두고 상무위원 인원이 많다 해서 시진핑 시대의 중국이 태자당, 상하이방이 중시하는 성장과 효율 우선으로 갈 것이라고 판단한다면 오산이다.

중국 공산당은 계파 간 투쟁과 경쟁을 하더라도 국가 이익과 상황에 따라 타협, 협력, 분열을 피하는 것이 몸에 배어 있다. 이번 전인대에서 지난 5년간의 바오바(保八) 정책 성장률 8%를 포기하고 7.5%로 낮춘 것도 각 계파의 성향이 무엇인가보다 현실적 상황 인식이 중요함을 보여준다.

그동안 수출 중심의 두 자릿수 고속 성장은 중국을 외환보유고 세계 최대의 국가, 주요 2개국(G2)으로 끌어올리는 원동력이 됐지만, 그대가로 빈부 격차가 극심해졌고 권력자들의 부정부패에 대한 인민의 의구심도 커져서 최근엔 개혁 시발점이었던 광둥성 우칸촌에서 시위가 발생하고 티베트 분규가 계속되는 등 지도부는 계파에 관계없이 내부 안정이 최우선 과제라고 판단하고 있는 듯하다. 양적 성장에서 질적 성장으로, 수출과 투자 중심에서 내수와 삶의 질 향상으로 정책 방향이 바뀌고 있는 셈이다.

적어도 향후 몇 년간은 상무위원회에서 시진핑과 리커창이 서열 1, 2위를 차지해도 신인 정치인이라 경험 많은 노장파들의 의견이 많이 반영될 공산이 크다. 따라서 급격한 변화보다 합의에 의한 배분을 고려한 안정적 성장정책으로의 점진적 변화가 예상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차기 지도자인 시진핑 시대 10년이 우리나라에 미칠 엄청난 영향력을 생각하면 적극적인 시진핑 이해와 연구 노력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시진핑은 누구인가. 마오쩌둥이 국민당에 전멸 직전, 예안까지 쫓겨 갔을 때 공산당을 대대적으로 환영하고 보살펴준 시중쉰(習仲勳)의 아들이다. 아버지 시중쉰은 공산당 부활의 일등공신으로 혁명 1세대, 철저한 공산주의자였다. 이러한 혁명원로의 아들이면서도 문화혁명의 탄압으로 지방에 쫓겨 가 살면서 민중의 애환을 이해하는 지도자로 부각됐다. 그 덕분에 보수와 진보의 지지를 모두 받고 있다.

시진핑은 태자당이면서 대중적으로 인기가 높은 인물이다. 경제관은 국가가 부를 독점하면 부패가 생기며, 빈부 격차가 커지므로 국부를 점차 민부(民富)로 돌려야 한다는 인식에서 알 수 있듯 다분 시장경제주의적이며 개방적이다. 우리나라로서 문제라면 시진핑, 리커창 등 차기 지도부가 현 지도부보다 반미·반한·친북 경향을 보인다는 점이다.

작년 1월 로버트 게이츠 전 미국 국방장관이 방중 시 J-20 스탤스 전투기를 시험 비행한다든지, 중국 어선의 우리나라 해역 침범 시 중국이 보인 반한적 태도라든지, 최근 탈북자 북송 등이 그 예다. 중국 경제, 주식시장만 신경 쓸 게 아니라 앞으로 차기 중국 지도자에 대한 이해, 교류 및 네트워크 형성에 적극적인 노력을 기울여야 할 때다.


향후 몇 년간은 상무위원회에서 시진핑과 리커창이 서열 1, 2위를 차지해도 신인 정치인이라 경험 많은 노장파들의 의견이 많이 반영될 공산이 크다.




정유신 한국벤처투자 사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