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30년 사이 비약적인 발전을 이룬 호주 와인. 호주 와인의 비약적인 발전 뒤에는 묵묵히 포도밭을 지켜온 소유주와 훌륭한 와인 메이커들이 있다.

‘로버트 파커의 장학생’으로 불리는 토브렉(Torbreck)의 데이비드 파월(David Powell)도 그중 한 사람이다.
[Wine Story] 로버트 파커 장학생이 만든 호주 명품 와인 토브렉
와인업계에서 가장 큰 이슈가 됐던 사건을 꼽자면 열에 아홉은 1976년 있었던 ‘파리의 심판’을 꼽는다. 와인 평론가인 스티븐 스퍼리어는 1976년 파리에서 샤토 무통 로트칠드(Chateau Mouton-Rothschild), 샤토 오브리옹(Ch. Haut-Brion), 바타르 몽라셰(Batard Montrachet) 등 프랑스 최고급 와인과 미국 캘리포니아 와인들을 비교 시음하는 자리를 마련했다. 심사위원으로는 로마네 콩티 오너를 비롯한 프랑스 최고 와인 전문가 9명을 초청했다.

평가 방식은 모든 와인 레이블을 가리고 맛보는 블라인드 테이스팅. 모든 참석자는 당연히 프랑스 와인들이 월등히 좋을 것이라고 예상했지만 결과는 의외였다. 레드와 화이트 와인 모두 캘리포니아 와인이 1위를 차지했다. 이 시음회는 미국 타임지 기자에 의해 ‘파리의 심판’이란 기사로 세상에 알려졌고, 미국 와인의 위상도 높아졌다. 당시 화이트 와인 중 1위를 차지한 샤토 몽탈레나(Ch. Montalena)의 성공 스토리는 최근 미국 할리우드 영화로도 제작됐다.

지난해 5월, 국내에서 파리의 심판과 유사한 시음회가 열렸다. 국내 와인 전문가 30여 명을 초청한 이날 행사에는 샤토 코스데스투르넬(Ch. Cos-d’Estournel), 클로 드 부조(Clos de Vougeot) 등 프랑스 최고급 와인 3종과 진 호주 와인 3종이 블라인드 테이스팅 테이블에 올랐다. 결과는 예상을 깨고 호주 와인의 압승이었다.
[Wine Story] 로버트 파커 장학생이 만든 호주 명품 와인 토브렉
호주를 대표하는 품종 시라즈의 역사

호주 와인은 이렇듯 불과 20~30년 사이에 프리미엄 품종 재배가 확대되면서 품질에 있어서 비약적인 발전을 했다. 그 중심에 호주를 대표하는 품종인 시라즈(Shiraz)가 있다. 프랑스 론(Rhone) 지방이 고향인 시라즈는 호주의 대자연에서 새로운 테루아와 훌륭한 와인 메이커를 만나 질 좋은 와인으로 다시 태어났다. 글로벌 시장에서 호주를 대표하는 품종 또한 단연 시라즈이며, 호주의 정상급 명품 와인들은 오랜 수령의 시라즈 품종에서 나온 와인들이다. 그러나 호주 시라즈가 처음부터 이렇게 호주에서 대우를 받았던 것은 아니다.

1980년대 호주 정부는 시라즈 품종의 포도가 질이 떨어지는 포도라고 규정하고, 이들 포도나무를 뽑아낼 것을 적극 권장했다. 포도재배 재정비 정책(Vine Pull Scheme)이라는 이름하에 시라즈 외에 다른 품종의 포도나무를 심으면 정부 자금을 지원해 주는 정책이었다. 시라즈 다음으로 그르나슈(Grenache), 마타로(Mataro) 등의 포도나무가 뽑혀 나갔다.
[Wine Story] 로버트 파커 장학생이 만든 호주 명품 와인 토브렉
하지만 정부 정책에도 불구하고 비전과 신념을 지닌 일부 포도밭 소유주들은 오래된 나무를 지켜냈다. 이런 시련을 버티어 낸 포도나무에서 탄생한 포도들은 향후 훌륭한 와인 메이커들을 만나 호주 정상급 명품 와인으로 재탄생하게 됐다.

국내에서 ‘정몽구 와인’으로 불리는 토브렉도 이런 시련을 겪은 후 명품 와인으로 거듭났다. 정몽구 현대자동차그룹 회장이 전경련 회장단 만찬장에 ‘토브렉 런릭(Torbreck Runric)’을 올리기 전, 이미 토브렉은 로버트 파커로부터 4년 연속 99점을 받으며 전 세계적인 관심을 받았다. 이를 계기로 토브렉은 호주의 부티크 와이너리로 급부상했으며, ‘로버트 파커의 장학생’이라는 별칭으로 불리게 됐다.

호주 고급 와인을 대표하는 이름이 된 토브렉은 사실 설립된 지 20년도 채 되지 않는다. 토브렉 와이너리의 오너인 데이비드 파월은 벌목꾼 출신의 와인을 진심으로 사랑하는 소탈한 와인 메이커다.
로버트 파커 장학생으로 불리는 데이비드 파월
로버트 파커 장학생으로 불리는 데이비드 파월
올해 쉰한 살이 된 파월은 회계사인 아버지의 영향을 받아 호주 애들레이드대에서 경제학을 전공했다. 그러나 졸업 후 숫자보다 와인에 흥미를 느끼고 바로사 밸리(Barossa Valley)를 비롯해 유럽, 캘리포니아, 이탈리아에서 포도 수확 등의 경험을 쌓았다. 그는 한때 벌목꾼으로 일한 경험이 있으며 그때 일했던 스코틀랜드의 숲 이름이 ‘토브렉’이었다. 그가 벌목꾼으로 일했던 것은 ‘사랑’ 때문이었다. 스코틀랜드 여자와 사랑에 빠져 3년간 스코틀랜드에 산 일이 있었는데 그때 위험하지만 보수를 많이 받을 수 있는 벌목에 뛰어들었던 것이다.

이후 1994년도부터 호주 바로사 밸리에서 ‘토브렉’이란 브랜드로 와인을 만들기 시작했다. 파월이 토브렉 와이너리를 설립한 바로사 밸리는 19세기 전 세계 포도밭에 필록세라(Phylloxera: 포도나무를 죽이는 병충해로 19세기 프랑스 포도원의 4분의 3을 파괴시킨 후 전 세계로 퍼져나갔다. 이로 인해 전 세계 와인업계에 큰 파장이 일었던 바 있다)가 몰아쳤을 때 살아남은 지역 중 하나로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포도나무들이 남아 있는 지역이다.
토브렉 와이너리가 있는 바로사 밸리는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포도나무가 남아 있는 지역이다.
토브렉 와이너리가 있는 바로사 밸리는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포도나무가 남아 있는 지역이다.
그는 와이너리를 설립하면서 크게 네 가지 원칙을 세웠다. 첫째, 명품 와인을 만든다. 둘째, 프랑스산 오크통에만 와인을 담는다. 셋째, 프랑스 론 지방 특유의 재배 방식을 따른다. 마지막으로 호주 특유의 테루아를 적극 반영한다.



호주 특유의 테루아를 반영한 명품 와인의 탄생

파월은 기후와 토양 조건에 가장 어울리는 와인을 만드는 것을 원칙으로 한다. 이 때문에 그는 레드 와인으로는 시라즈와 그르나슈, 마타로를, 화이트 와인에는 세미용을 사용한다. 이들 품종이 바로사 밸리의 기후와 토양 조건에 가장 잘 맞는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앞으로도 그는 이 품종만으로 와인을 만들 생각이다.

오크통은 초기 원칙대로 프랑스산 오크통만 쓴다. 미국산 오크가 강렬하고 달콤한 맛을 제공해 주는 반면 프랑스산 오크는 미묘하고 감칠맛 나는 느낌을 제공해주기 때문이다. 크기는 작은 것보다 큰 것을 선호하는데 이는 와인이 오크 향보다는 토양을 더욱 잘 반영하기를 원하기 때문이다.

이렇게 만들어진 토브렉은 호주의 풍미에 전형적인 프랑스 론 밸리의 질감을 인상적으로 표현한다. 프랑스 론 지역의 와인을 사랑했던 파월은 바로사와 론 지역 모두에서 널리 재배되는 클래식한 품종인 시라즈, 그르나슈, 마타로 등을 이용해 와인을 생산한다. 특히 그는 바로사의 오래된 시라즈와 그르나슈를 이용한 강렬하면서도 풍부한 론 스타일의 와인을 만들어내는 데 탁월한 재능을 발휘했다. 또한 북부 론 지역의 최고급 와인 스타일로 시라즈 품종에 소량의 비오니에를 블렌딩해 뛰어난 와인을 만들어냈다.

로버트 파커는 이런 토브렉을 프랑스 론 지역의 와인명가인 이기갈(E. Guigal)의 ‘코트 로티 라 물린(Cote Rotie La Mounline)’에 버금가는 와인을 만드는 와이너리라고 극찬했다. ‘코트 로티 라 물린’은 로버트 파커로부터 100점 만점을 가장 많이 받은 와인이다.




글 신규섭 기자 wawoo@hankyung.com
사진 제공 신동와인 www.shindongwin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