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호 송호 골프디자인그룹 대표


송호 골프디자인그룹 송호 대표는 국내에서 첫손가락에 꼽히는 골프장 설계자다. 싱글 골퍼이기도 한 그는 전 세계 골프장을 다니며 기념할 만한 모든 것은 수집했다. 골프장 설계의 대가가 털어놓는 골프코스에 숨겨진 비밀을 공개한다.
“나중에 제 손자가 플레이를 하고, ‘우리 할아버지가 설계한 코스’라고 자랑할 만한 골프장을 만들고 싶습니다. 그러자면 아직 갈 길이 멉니다.”
“나중에 제 손자가 플레이를 하고, ‘우리 할아버지가 설계한 코스’라고 자랑할 만한 골프장을 만들고 싶습니다. 그러자면 아직 갈 길이 멉니다.”
송호 송호 골프디자인그룹 대표는 골프코스 설계만 21년째 해온 한국을 대표하는 설계자다. 첫 작품인 송추CC를 시작으로 프리스틴밸리, 백암비스타, 비젼힐스, 남촌, 엘리시안 등이 그의 손을 거쳐 탄생했다. 최근에는 세인트포CC, 드비치GC 등을 선보이며 장인의 실력을 과시했다.

성남시 분당에 있는 그의 사무실에는 그가 설계한 대표 골프장들이 한쪽 벽면을 가득 채우고 있었다. 반대편 책장에는 그동안 사 모은 골프 관련 책과 볼, 마크, 연필 등이 어지럽게 진열돼 있었다. 서가 아래에는 10여 개의 서류철이 있었는데, 거기에는 지금까지 가본 전 세계 골프장의 야드지와 스코어카드가 빼곡했다.



페블비치와 세인트앤드루스가 남긴 긴 여운

골프코스를 설계하며 골프에 입문한 그는 지금까지 전 세계 골프장을 두루 섭렵했다. 그중 골퍼로서, 또 코스 설계자로서 최고로 치는 골프장이 미국 몬트레이 반도에 있는 페블비치CC다. 미국에서도 최고의 입지를 자랑하는 몬트레이 반도에는 골프장만 8개다. 페블비치는 그중 왕 중 왕이다.

“1994년을 시작으로 페블비치에서 3번의 플레이를 했어요. 저는 골프장을 곧잘 여자에 비유하는데, 첫 느낌이 ‘야, 이런 여자도 있구나’였어요. 여자가 갖추어야 할 모든 조건을 다 갖춘 듯한 느낌이랄까요. 로케이션(입지)과 자연 지형, 레이아웃 등이 모두 완벽했어요.”

코스를 돌면서 그런 느낌이 더 강하게 들었다. 바다에 접한 페블비치지만 1번 홀에서 3번 홀까지는 바다가 보이지 않는다. 4번 홀부터 바다가 보이는데 그 절정이 7번 홀이다. 파도가 높을 때면 그린까지 파도가 치는데, 그 모습이 장관이다. 골프코스도 소설처럼 기승전결이 있는데, 페블비치에서 클라이막스에 해당하는 곳이 7번 홀이다.

“동양인이 플레이를 한다니까 골프장 보안관이 구경을 왔더군요. 7번 홀이 파3, 107야드로 짧은 홀이거든요. 맞바람을 생각해서 5번 아이언을 잡았습니다. 보통 때는 제가 5번 아이언이 170야드는 나가는데, 맞바람이 너무 셌어요. 다행히 그린에 올리고, 파를 했어요. 보안관이 그걸 보고 놀라더군요.”

페블비치에 이어 인상적인 골프장이 세인트앤드루스 올드 코스다. 세인트앤드루스 올드 코스는 현대 골프장의 원조 격으로 2006년에야 플레이 기회를 잡았다. 전반 9홀까지는 38타로 성적이 좋았다. 그런데 욕심이 화근이었다. 올드 코스에서 싱글을 하겠다는 욕심이 생기자 어깨에 힘이 들어갔다. 결국 후반 9홀에서 44타를 기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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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프는 ‘Far & Sure’의 게임

벙커가 많은 세인트앤드루스만 해도 ‘올드 코스’의 전형이다. 이후 골프코스는 한 단계 나아가 ‘클래식 코스’로, 현재는 ‘모던’한 코스로 진화해왔다는 게 송 대표의 설명이다.

페블비치만 하더라도 1919년 문을 연 골프장으로, 현대적인 골프장은 아니다. 골프코스를 설계할 때는 당시 골퍼들의 스타일과 골프 장비의 수준 등을 전체적으로 고려한다. 달리 말해 페블비치 같은 곳은 골프 클럽과 골프공 등 진일보한 현대 장비에 맞는 골프장은 아니라는 말이다.

장비가 발전하면서 비거리가 늘어난 것도 현대 골프의 큰 특징이지만, 현대 골프를 한 마디로 정의하자면 ‘이지(Easy)’라는 말로 설명할 수 있다. 지금보다 시간적인 여유가 있던 예전에는 골퍼들이 경쟁을 하며 골프를 쳤다. 아이러니하게도 현대로 오면서 골퍼들이 경쟁보다는 즐기는 골프를 선호한다는 점이다. 골프장에 와서까지 경쟁하며 시간에 쫓기는 게 싫은 것이다.

“무조건 쉽다고 골퍼들이 좋아하는 것도 아닙니다. 여자로 치면 만나면 만날수록 보고 싶은 여자가 매력적이잖아요. 골프장도 마찬가집니다. 보기에 아름답고 스트레스를 덜 받으면서도, 칠 때마다 새로운 느낌을 주는 골프장이 좋은 골프장이죠.”

골프코스를 설계할 때는 이런 골퍼들의 변화된 요구를 잘 반영하려고 노력한다. 제 멋대로 쳐도 아웃 오브 바운드(OB)가 안 나게, 페어웨이를 넓게 설계하는 게 최근 트렌드다. 일주일에 한 번, 혹은 한 달에 한두 번 찾는 골프장에서까지 스트레스를 줄 수는 없다. 벙커나 해저드가 예전 골프장보다 훨씬 줄어든 게 그 증거다. 올드 코스인 세인트앤드루스의 경우 벙커가 무려 112개다. 이에 비해 요즘 오픈하는 골프장은 벙커가 50~60개 정도에 지나지 않는다.

그렇다고 골프장이 너무 만만해도 플레이할 맛이 안 난다. 골프도 스포츠인지라 경쟁이 있어야 묘미가 있는 법이다. 전략적인 홀에서는 위험을 무릅쓰고 플레이를 해야 보상이 주어진다. 코스 매니지먼트가 그만큼 중요하다.

송 대표는 다른 골퍼들보다 조금이라도 나으려면 숏 게임에서 변별력이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골프는 2번 띄우고, 2번 굴리는, ‘Far(멀리) & Sure(정확히)’의 게임이다. 앞서 이야기했듯이 현대 골프에서 티 샷은 그리 큰 차이가 없다. 문제는 ‘세컨드 샷에서 얼마나 붙이고, 마지막에 얼마나 잘 굴리느냐’에 달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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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자가 자랑할 만한 골프코스 설계할 것

송 대표는, 골프 스코어는 코스 공략법에서 나타난다고 했다. 스코어가 좋은 골퍼들은 티 샷을 할 때 챌린지를 할 것인지, 아니면 쉬었다 갈지 결정을 내릴 줄 안다. 벙커와 해저드 앞에서 과감하게 도전할지 현명하게 판단할 수 있어야 하는 것이다.

“골프의 승패는 거기서 나뉩니다. 개인적으로 티 샷보다 세컨드 샷이 중요하다고 말하는 이유가 거기에 있습니다. 보통 18홀을 돌면 드라이버는 14번을, 퍼터는 36번을 쓰게 됩니다. 그런데 아이언은 13개의 채를 가지고 22번을 씁니다. 그만큼 어렵고 중요한 게 아이언 샷입니다.”

송 대표는 숏 게임의 중요성을 여러 차례 강조했다. 그러면서 벙커와 해저드에는 코스 설계자의 의도가 담겨 있다고 말했다. ‘넘기겠습니까. 아니면 피해가시겠습니까’ 하는 짓궂은 질문을 숨겨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그의 의도를 가장 많이 반영한 골프장이 세인트포와 거제의 드비치GC다. 물론 제일 처음 설계한 송추CC와 다른 골프장에도 그의 의도가 어느 정도 반영돼 있다. 하지만 그와 함께 오너의 의도도 어느 정도 반영됐다. 이에 비해 세인트포와 드비치는 송 대표의 의도를 고스란히 반영한 곳이다.

“제 모든 영감이 투여됐다고 보시면 됩니다. 작가가 글을 쓸 때도 잘 써질 때가 있잖아요. 1년 뒤에 봐도 ‘내가 이렇게 잘 썼나’ 하고 감탄할 만한 글이 있잖아요. 설계자도 마찬가집니다. 제 경우에는 세인트포와 드비치가 그런 곳입니다.”

현재 그는 충주와 이촌 두 곳의 골프장 설계를 마치고 공사를 서두르고 있다. 40여 곳이 넘는 골프장을 설계한 지금도 그는 자신이 설계한 골프장에 쉽게 만족하지 못한다.

“나중에 제 손자가 플레이를 하고, ‘우리 할아버지가 설계한 코스’라고 자랑할 만한 골프장을 만들고 싶습니다. 그러자면 아직 갈 길이 멉니다.”

한국에도 페블비치에 버금가는 명문 골프장이 나올 날도 머지않은 듯하다.



글 신규섭 기자 wawoo@hankyung.com 사진 이승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