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태원 시화담
서울 이태원 필리핀대사관 건너편에 자리한 한식당 ‘시화담’은 음식 맛에 버금가는 ‘맛’이 있는 공간이다. 파인 다이닝 한식을 즐기는 동안 이름처럼 시와 그림, 이야기에 빠지는 맛 또한 쏠쏠하기 때문. ‘신선설농탕’으로 유명한 ㈜쿠드가 한식의 세계화를 위해 지난 10년간 준비했다는 시화담을 찾았다.

시화담은 층별 콘셉트를 설명하는 말이기도 하다. 마티스, 모딜리아니, 피카소 등 화가의 이름을 딴 룸이 있는 공간인 2층은 ‘화(畵)’요, 우리 시 한 구절을 감상할 수 있는 3층은 ‘시(詩)’요, 그림과 시가 묘하게 접목된 음식은 끊임없는 화두를 끌어내주니 이는 ‘담(談)’이다.
박경원 시화담 대표는 “10년의 세월 동안 열정과 자금을 쏟아 부었다”고 말했다. 외국에 나가 한식당을 찾을 때마다 받았던 실망감이 시화담을 착안하게 된 배경이라고. 콘셉트를 잡은 지는 10년, 본격적으로 메뉴 개발에 착수한 것은 4년 전. 스토리텔링을 기반으로 한 각각의 메뉴에는 건강식이라는 기저 위에 ‘예술’적 감각이 채색됐다. 그러다 보니 메뉴 하나하나가 서브될 때마다 손님들은 다른 화제를 꺼낼 짬이 없다. 가히 ‘작품’이라고 할 만한 접시 위 예술적인 프레젠테이션에 감탄하고, 거기에 얽힌 이야기를 하다 보면 시간과 분위기는 절로 무르익을 수밖에.
장장 10여 년의 준비 기간을 거쳐 지난 8월 오픈했다지만 시화담은 떠들썩한 광고 한 번 한 적 없다. 조용히, 그리고 서서히 손님들을 모셨지만 손님은 또 다른 손님을 모시게 했고, 지금은 재계 인사, 정치인, 외국인, 국빈 등이 최고로 모셔야 할 손님을 대접하는 장소로 입소문이 났다. 특히 중2층에 마련된 룸에는 국악공연 무대를 마련해 요청 시에는 공연과 함께 식사를 즐길 수 있어 한국의 전통예술까지도 경험할 수 있다.


시화담의 모든 메뉴는 코스 요리다. 점심 메뉴인 ‘한국의 시’를 비롯해 ‘그림 한 폭’, ‘즐거운 이야기’, ‘미식가들의 만찬’ 등을 선택할 수 있는데, 12단계에서 22단계 코스로 최장 코스인 ‘미식가들의 만찬’은 시작부터 끝나기까지 2시간 30분 정도가 소요된다. 시화담의 모든 식기는 이연정, 김희종, 임의석 등 유명 도예가들의 작품으로 ‘미식가들의 만찬’ 시 한 사람에게 서브되는 도기만 해도 1500만 원 상당이다.


손톱같이 작은 조약돌 위에 싱싱한 전복과 해삼, 멍게를 얹어낸 ‘겨울 바닷가’는 먹는 내내 조약돌 아래 숨겨진 mp3를 통해 흘러나오는 갈매기와 파도 소리에 취할 지경이다. 이어 내어온 조선시대 임금의 초조반상(初朝飯床). 몸에 좋기론 더 이상의 설명이 필요 없는 백봉령죽과 어찌나 가늘게 찢었는지 보푸라기같이 부드러운 북어 찬에 입이 쩍 벌어진다. ‘음식이 예술’이라 함은, 바로 이 만드는 사람의 ‘치성(致誠)’ 때문이리라. 1월 중 서울 인사동에 가격을 조금 낮춘 시화담이 문을 연다고 하니 미식가들이 반길 소식이다


위치 서울시 용산구 이태원동 5-5(필리핀대사관 건너편)
영업시간 점심 정오~오후 3시, 저녁 오후 6~10시
(예약에 따라 시간 조절 가능)
가격대 10만~35만 원(1인 기준 코스 요리·VAT 별도)
주차 발레파킹 가능
기타 3일 전 예약, 케이터링 서비스 제공
문의 02-798-3311
글 장헌주 기자 chj@hankyung.com 사진 김기남 기자
© 매거진한경,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