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호에서 ‘명화 속 바람피우는 신들’이란 주제로 신들의 자유분방한 연애를 다루었는데, 사실 식상하긴 해도 고전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불륜만큼 다양한 소재로 쓰인 것이 없다. 더구나 아침 TV 드라마에서 울고불고 소리치는 그 장면과 달리 명화 속 불륜 장면들은 얼마나 섬세하게 예술로 승화해 표현됐는지. 오늘은 아침 드라마보다 더 노골적이고 리얼한 불륜의 이야기를 보여주는 그림들을 소개한다.
아침 드라마보다 더 리얼한 명화 속 불륜 이야기
야코포 틴토레토(Jacopo Tintoretto), <비너스와 마르스를 놀라게 하는 불카누스>
(Vulcan surprising Venus and Mars), 1555년, 뮌헨 알테피나코텍 소장

그림 속 침대에 누워 있는 비너스의 주변을 샅샅이 뒤지고 있는 남자는 대장간의 신 불카누스다. 이 주제는 지난달에 소개한 적이 있다. 추남 대장장이인 불카누스가 어머니 헤라를 협박한 끝에 미의 여신 비너스와 결혼하지만, 불카누스에게 만족하지 못한 비너스는 잘생기고 늠름한 전쟁의 신 마르스와 바람을 피운다는 이야기였다.

비너스와 마르스는 막 침대 위에서 밀회를 즐기고 있었다. 그런데 갑자기 남편인 불카누스가 들이닥치자, 당황한 마르스는 탁자 밑으로 숨어 들어간다. 그림 오른편에 삐죽 나온 마르스의 머리가 보이시는지. 머리에 쓴 투구로 그가 군신 마르스라는 것을 알 수는 있지만, 바닥에 납작 엎드려 개와 눈이 마주치자 혹시라도 개가 짖는 바람에 숨어 있는 곳이 들통 나 불카누스에게 봉변을 당할까 봐 전전긍긍하고 있는 마르스라니. 군신이라는 타이틀에 전혀 걸맞지 않는 장면이다.

시치미를 떼고 누워 있는 비너스는 이불을 번쩍 들어 보이며 “자, 보세요. 아무것도 없죠”라고 말한다. 그러나 남편 불카누스는 의심을 거두지 않고 불륜의 무대가 된 침대에서 마르스의 머리카락 한 올이라도 찾아낼 요량으로 계속 뒤져보고 있다. 비너스의 은밀한 곳까지 뒤져보는 불카누스의 캐릭터가 아침 드라마에 자주 등장하는 의심과 복수로 뭉친 남편의 캐릭터와 닮지 않았나. 갑자기 들이닥친 남편과 시치미를 떼고 누워 있는 아내, 침대 밑에 숨은 정부라니 그야말로 스릴만점의 시청률 최고조 장면이다. 그들 뒤로 누워 있는 큐피트는 비몽사몽 거의 잠이 들어 제대로 망을 봐주지 못했나 보다.

이 그림을 그린 야코포 틴토레토는 베네치아 화파의 대표적인 화가였다. 그림 속 화려한 실내 인테리어의 표현이 멋진 배경을 완성한다. 바닥 타일이나 침대의 무늬, 창가에 놓인 유리병 등의 표현이 거장답게 예사롭지 않다. 불카누스의 등 뒤에 비친 거울 속 그들의 뒷모습도 재미있다. 비너스와 불카누스, 그리고 큐피트의 몸을 보면 유난히 길어 보이는데, 인체를 길어보이게 표현하는 것은 틴토레토의 전형적인 기법이기도 했다. 그는 대가 베첼리오 티치아노의 제자였으나 일찍 스승과 결별했고, 위 그림에서 보듯 다소 거친 느낌의 표현으로 드라마틱한 구성을 즐겼다.



신화 속 인물들의 불륜은 화가들에게 현실 세계에서의 사랑과 욕망에 관한 영감을 제공했다.

아침 드라마보다 더 리얼한 명화 속 불륜 이야기
안토니오 코레조(Antonio Correggio), <제우스와 이오>(Jupiter and Io),
1530년, 빈 미술사박물관 소장

이처럼 관능적이면서도 아름다운 그림이 또 있을까. 마치 솜털같이 부드러워 보이는 검은 구름이 여인의 몸을 부드럽게 감싸고 돈다. 여인의 흰 피부와 검은 구름의 대비가 그림을 더욱 매력적으로 보이게 한다. 눈을 감고 고개를 뒤로 젖힌 여인의 표정은 황홀경에 빠진 듯하다. 그런데 이 아름다운 장면은 사실은 아름답지 못한 불륜의 장면이다.

신들의 왕이었던 제우스는 어느 날 강의 신 이나코스의 딸 이오를 보고 첫눈에 반한다. 그는 이오에게 사랑을 속삭이지만 이오는 달아나고, 욕망을 주체할 수 없었던 제우스는 이오를 쫓아 땅으로 내려와 검은 구름으로 변신해 이오를 감싸고 그녀와 관계를 맺는다.

그림을 자세히 보면 이오의 얼굴 바로 위의 구름 속에서 그녀에게 입을 맞추고 있는 제우스의 얼굴이 보인다. 그러나 질투심 많은 제우스의 아내 헤라는 뭔가 이상한 낌새를 알아채고 만다. 한낮에 갑자기 낀 먹구름이 수상해 살펴보니 제우스가 이오와 바람을 피우고 있는 것이었다. 헤라에게 들킨 제우스는 이오를 흰 암소로 둔갑시켜 위기를 모면케 하지만, 헤라는 시치미를 떼고 그 암소를 자신에게 달라고 요구한다. 할 수 없이 제우스는 헤라에게 암소로 변한 이오를 넘기고 헤라는 눈이 백 개 달린 거인 아르고스에게 이오를 지키라는 명령을 내린다.

사랑하는 여인이 고통받는 것이 괴로웠던 제우스는 아들인 헤르메스를 보내 아르고스를 잠재워 죽이고 이오를 풀어주게 한다. 죽은 아르고스가 불쌍했던 헤라는 아르고스의 눈을 공작의 꼬리에 붙여주었고, 그 후 공작의 꼬리에 달린 눈들은 항상 제우스를 감시하며 그가 바람을 피우는지 살폈다고 한다.

그러나 헤라의 질투심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헤라는 도망친 이오를 괴롭히기 위해 한 마리의 등에를 보냈고, 이오는 이를 피해 전 세계를 도망 다녀야 했다. 이오가 헤엄쳐 건넌 바다는 이로 인해 ‘이오니아 해’라는 이름이 붙기도 했다. 상황이 이에 이르자 제우스는 헤라에게 앞으로 이오와의 관계를 끊을 테니 그녀를 용서해 달라고 애걸했고, 헤라는 제우스의 요청을 받아들여 이윽고 이오를 원래의 모습으로 돌아오게 해주었다. 이혼법정을 다룬 TV 드라마 <사랑과 전쟁>도 이처럼 드라마틱하진 못했으리라.

불륜 이야기가 재미있는 이유는 우리가 늘 일상적이지 않은 일탈을 마음속으로 꿈꾸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마음속의 일탈이 현실이 된다면 그림 속 마르스나 이오처럼 매우 피곤한 신세가 되고 만다. 그림 속 이야기로 흥미를 달래고 2012년은 각자의 가정에, 배우자에게 더욱 충실한 한 해가 되시길 바란다.




강지연 _ 교사. <명화 속 비밀이야기>, <명화 읽어주는 엄마> 저자‘귀차니스트의 삶(http://blog.naver.com/oilfree07)’ 운영. oilfree07@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