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영우 삼성생명 한양브랜치 SA

권영우 삼성생명 한양브랜치 SA는 자동차 영업 분야에서만 20여 년을 근무하며 영업·마케팅담당 상무까지 승진했다. 그렇게 승승장구했던 그가 2008년 50의 나이에 삼성생명 컨설 턴트로 제2의 성공가도를 달리고 있다.
보험을 열정으로 끌어안은 사나이
처음 보험업에 뛰어들겠다고 선언했을 때 주변 사람들은 평생 자동차만 바라보고 살던 사람이 어떻게 전혀 다른 보험 영업을 하느냐며 만류했다. 하지만 같은 영업이라 어렵지 않게 자리를 잡을 줄 알았다. 그러나 보험 영업은 생각만큼 쉬운 일이 아니었다. 첫 1년 수입이 1000만 원이 안 됐다.

기나긴 침체의 시간을 그는 스스로에 대한 확신과 끈기로 견뎠다. 고민 끝에 1년 동안 지점 회의실에서 숙식을 해결하며 늘 고객만 생각했다. 드디어 2011년 4월. 18개월이라는 길었던 침체의 터널에서 벗어나 TOT를 달성했다. 보험 영업에 있어서 최고의 영광인 MDRT(Million Dollar Round Table·백만불원탁회의)는 연간 판매 실적이 100만 달러 이상인 국제적 모임이다. COT는 MDRT 실적의 3배, TOT는 MDRT 실적의 6배로 MDRT 회원 중 상위 0.1%에게만 주어진다.


38억짜리 자동차를 팔던 페라리의 임원

권영우 삼성생명 SA의 첫 직장은 대우자동차였다.대우자동차에서 영업의 맛을 본 그는 메르세데스-벤츠의 국내 공식딜러사인 한성자동차의 부산지점 창립 멤버로 참여했다. 자리를 옮긴 후 VIP에 대한 신뢰감을 바탕으로 승승장구한 그는 마침내 1995년 대리점의 영업이사가 됐다.

어떠한 장애물에도 굴복하지 않는 남다른 추진력으로 그는 업계에서 스카우트 대상 1호가 된다. 페라리사의 국내 공식수입원에 영업·마케팅담당 상무로 스카우트된 뒤에는 매년 67%의 성장을 기록했다. 38억 원짜리 차도 팔아 보고, 나름 잘나가는 인생을 살았다. 하지만 그는 남들보다 이른 성공에도 불구하고 알 수 없는 공허함에 시달렸다. 자동차 영업에서는 더 이상 올라갈 곳이 없다는 생각이 그를 불안하게 했다.


회의실에서 1년을 보내며 배운 인내

“평소에도 영업인은 지식보다는 상식이라는 생각으로 경제지와 일간지를 꼼꼼히 봤는데 금융 영업이 엄청난 기회와 비전이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VIP 고객들 에게 물어봤더니 10명 중 8~9명은 삼성생명을 추천하더군요.”

앞으로의 대세는 금융이며 그 중심은 생명보험일 것이라는 확신을 가진 그는 그 길로 삼성생명에 몸을 담았다. 활동을 시작한 후에는 휴대전화 번호도 ‘3333’으로 바꿔가며 머리부터 발끝까지 고객 중심의 마인드로 무장했다. 하지만 모든 준비에도 불구하고 2008년 그의 소득은 실망스러웠다. 하늘이 무너지는 것 같았다.

고난은 18개월 동안 지속됐다. 그러나 좌절 대신 인내를 선택한 그는 1년간 지점 회의실에서 잠을 자며 필요한 지식과 스킬을 익혀 나갔다.

“벤츠도 레벨이 있습니다. 처음부터 상대적으로 팔기 쉬운 소형 C-클래스만 팔면 가장 고가인 S-클래스를 팔기가 어렵습니다. 18개월간 고군분투하면서 자산가 시장을 포기하지 않은 건 그 프로세스를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매일 새로운 각오를 다지며 꾸준히 활동하자 서서히 고객들이 먼저 그를 찾기 시작했다. 평소 그를 주의 깊게 지켜보던 구로공단의 한 최고경영자(CEO)가 380만 원짜리 연금보험을 계약했다. 그건 시작에 불과했다. 30억 원짜리 종신보험, 일시납 즉시연금 126억 원, 종신보험 199억 원 등의 계약이 이어졌다.

그 결과 2008년 1000만 원도 안 되던 소득이 매년 5배 성장해 2011년에는 TOT가 됐다. 4월에 TOT를 달성한 그는 매년 소득을 5배씩 증가시키겠다는 자신과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노력 중이다.
보험을 열정으로 끌어안은 사나이
자동차는 충동구매가 가능하지만 보험은 그래서는 안된다. 권영우 SA는 보험 영업에 적응 하느라 한동안 고난의 시기를 보냈다.


“수첩에 2008년부터 지금까지의 소득을 프린트해서 붙이고 다닙니다. 과거를 상기하며 고삐를 늦추지 말자고 다음 목표를 잊지 말자고 다짐합니다.”

컨설턴트에게 가장 필요한 덕목으로 집요함과 인내를 꼽는 권 SA. 그는 성공을 간절하게 바랐기 때문에 모든 것을 견딜 수 있었다고 말한다.



보험의 의미를 종신보험에 담아

권 SA는 종신보험이 보험의 의미를 가장 잘 담고 있다며, 고객에게 종신보험을 권유하는 것을 주저하지 않는다. 아무래도 연금에 비해 고객의 니즈가 낮기 때문에 훨씬 많은 시간이 필요하지만 보험의 의미를 가장 잘 담고 있는 상품이기 때문이다.

“종신보험은 단순히 금융상품이 아니라 한 가정을 지켜주는 마지막 보루입니다. 가장의 부재를 메울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지만, 종신보험은 경제적인 부분을 지켜서 결국 한 가정을 살리는 역할을 하게 됩니다.”

최근에는 일시납 즉시연금 상품도 주력하고 있다. 자산가들을 만나 보니 의외로 노후 준비가 제대로 돼 있지 않은 걸 발견했기 때문이다. 자산의 대부분이 부동산에 몰려 있다 보니 노후에 안정적인 노후 자금을 만들어 내기가 어려운 것이다. 즉시연금은 노후의 이런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 안성맞춤’인 상품이다.

“저에게 성공 비법에 대해 묻는 SA가 많습니다. 그럴 때마다 저는 ‘자신부터 살펴보라’고 말하죠. 현재 나의 상황과 비전을 분석하고 그것을 어떻게 하면 ‘고객만족’의 도구로 쓸까 생각해 봐야 합니다.”

실패를 통해 자신만의 방법을 터득한 그의 목표는 ‘돈’이 아니라 ‘리커버리(recovery) 프로그램’이다. 삼성생명에 들어 올 때 87명이었던 동기가 현재 6명밖에 남지 않았다며 정형외과의 재활 프로그램처럼 ‘그만두려고 하는 사람’과 ‘그만둔 사람’까지 끌어안고 싶다는 것이다.

“그만둔 사람들이 회사 밖에서 보험에 대해 좋은 이야기를 할까요. 전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그런 사람이 늘어날수록 보험에 대한 안티는 늘어나고 장기적으로는 굉장한 손실입니다. 그런 사람들이 떠나지 않고 업계에 남을 수 있도록 도울 생각입니다. 보험이 더욱 사랑받게 하는 것이 저의 의무라고 생각합니다.”

스스로 희망의 증거가 돼 많은 사람에게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전하고 싶다는 권 SA. 그의 성공 스토리는 아직 진행형이다.


신규섭 기자 wawo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