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8 대 22

유대인의 중심 사상 중에 ‘78 대 22의 법칙’이란 것이 있다. 이것은 공기 중 질소와 기타 원소의 비율이 78 대 22 정도가 되며, 정사각형 안에 내접하는 원의 면적과 나머지의 비율이 78 대 22 정도가 되고, 우리 몸에서 수분과 기타 성분의 비율도 78 대 22 정도가 된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 세상에 두 가지 이상의 요소로 구성된 집단에는 가장 많은 구성 요소가 78% 정도가 되고 기타 요소가 22% 정도로 크게 나누어진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인간사의 여러 측면에서도 이러한 비율로 나타난다고 유추하는 것이다. 이를테면 돈을 빌려주려는 사람과 빌리려는 사람은 78 대 22의 비율로 구성돼 있고, 보통사람과 부자의 수도 78 대 22가 되며, 소수인 부자가 소유한 부의 크기와 보통 사람 모두가 소유한 부의 크기의 비율도 대체로 78 대 22 정도가 된다는 것이다.

자연의 구성이 그렇고, 수학적 도형의 원리가 그렇고, 인간의 구성 요소의 원리가 그렇기 때문에 이것은 자연스러운 세상 구성의 원리라고 믿는 것이다.

이 원리를 적용하면 세계 자원의 78%를 22%의 소수 인구가 소비하고, 매출액의 78%는 22%의 고객에게서 나오며, 생산량 중 78%는 22%의 생산라인에서 만들어지고, 78%의 가치는 22%의 직원에 의해 창출된다는 것이다.



80 대 20

이와 비슷한 구성의 원리를 제시한 사람으로 이탈리아 경제학자 빌프레도 파레토(Vilfredo Pareto)를 들 수 있다. 파레토는 인간의 만족을 나타내는 ‘효용’의 개념을 양적 측면보다 선호 측면을 강조했고, 무차별 곡선을 바탕으로 두 사람 이상의 수요자가 유한한 자원을 나누어 가질 때 다른 사람의 효용을 감소시키지 않는 상태에서 또 다른 사람의 효용을 최대로 해 결과적으로 구성원의 효용을 최대로 하는 분배 상태를 추적해 ‘파레토 최적(Pareto Optimal)’이라는 배분을 도출해냈다.

이 파레토 최적은 그 뒤에 케네스 애로(Knneth Arrow)가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공리를 근거로 성립된 이론이기 때문에 ‘불가능의 정리’라고 비판하면서 재정리했지만, 지금도 여전히 후생경제학의 이상적 배분 상태를 제시한다.

또한 파레토는 사회적 부의 분포에도 매우 관심이 많았다. 1895년 수많은 나라에서 수집한 소득 데이터를 분석한 결과 소위 ‘파레토 분포(Pareto Distribution)’라는 특이한 분포를 발견했다. 이 파레토 분포는 소위 ‘80 대 20’의 규칙이라고 불리는 것으로, 전체 부의 80% 정도를 20%의 사람들이 소유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분포는 여러 나라에서 여러 시기에 비슷하게 나타난다는 것으로 앞에 언급된 유대인의 사상과 흡사하다.

놀라운 사실은 80%의 부를 차지하고 있는 20%의 소수 구성원을 따로 분리해 시간을 두고 관찰하면 그 속에서도 다시 80 대 20으로 구성이 나누어진다는 사실이다.



중요한 것은 구성원 간의 소통과 신뢰다

에릭 바인하커(Eric Beinhocker)가 쓴 <부의 기원>(The Origin of Wealth)에 다음과 같은 내용이 있다.

요약하면 우파는 이렇게 주장한다는 것이다. 사람들은 의사결정을 할 자유가 있으며 시장은 경쟁적이기 때문에 자유로운 사람과 경쟁적인 시장에서 만들어지는 결과는 도덕적으로 건전한 것이다. 시장은 도덕적으로 선한 행위, 예를 들어 노동, 책임, 절약, 혁신, 위험 감수 등을 보상한다. 사람이 불운한 사람에 대해서 동정심을 가질 수 있고, 온정을 표할 수도 있지만 자원을 배분하는 데 시장보다 더 효율적인 방법은 없다. 시장이 경제를 조직하는 가장 좋은 방식이라는 것을 받아들인다면 시장의 결과도 받아들여야 한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좌파는 이렇게 주장한다고 한다. 시장은 사회적 산물로서 인간이 자기들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서 만든 사회적 기술의 산물이다. 시장경제가 사회적으로 만들어진 시스템이라면, 시장이 만들어낸 결과에 대해서는 사회 구성원이 책임을 져야 한다. 더욱이 그러한 시스템 안에서 만들어지는 결과가 반드시 선한 것이라고만 할 수 없다.

출생이라는 복권제도, 특히 유전적으로 물려받은 지적 능력, 사회적으로 물려받은 부, 외모, 인종, 출생지 등은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한다. 이러한 요소들과 같이 그것이 그 자신의 행위의 결과라면 받아들일 수 있지만, 그것이 운 또는 한 개인의 통제할 수없는 외적 요소에 의한 것이라면 그러한 결과를 사람들은 받아들이지 않을 것이다. 그러므로 시장의 결과가 도덕적으로 반드시 옳다고 추정하는 것은 옳지 않은 것이다.

이 두 주장에는 모두 이유가 있다. 여기서 말하는 ‘좌와 우’라는 말은 1789년 혁명 와중에 만들어진 프랑스 국회의 의석 배치에서 유래된 것이다. 제3계급(평민)인 혁명 세력은 왼쪽에 앉았고, 제1계급인 보수 세력은 오른쪽에 앉았다. 당초 ‘좌’라는 말은 사회 진보를 위해 투쟁하고 사회적 약자를 보호하며 사회를 개혁해야 한다는 의미가 있었으며 유토피아적 냄새를 풍겼다.

마찬가지로 ‘우’라는 말은 개인의 자유와 책임을 중시하고 사회 안정과 자연적, 점진적 발전을 신봉한다는 의미를 가지고 있으나, 은연중에 사회의 기득권과 권력층을 비호하는 것으로 비치고 있다. 이러한 좌우 이분법은 마르크스와 엥겔스의 이론에 의해 구체화됐고 1세기 이상 긴 투쟁이 지속되다가 지금은 진보와 보수라는 가면 속에 얼굴을 가리고 사라졌다.

지금도 우리 사회에는 이러한 대립 개념이 없어지지 않고 있다. 좌우대결의 철학적, 역사적 내용 속에는 인간 본성의 두 가지 모순된 측면, 즉 이기적 본성과 이타적 본성이 깔려 있다. 그러나 최근에는 좌파에 대한 비판과 우파에 대한 비판이 차례로 나타나서 이제 인간은 본성적으로 이타적이지도 이기적이지도 않다고 결론내리고 있다. 인간이란 ‘조건부 협력자’이자 ‘이타적인 응징자’라고 할 수 있다는 것이다.

중요한 것은 구성원 간의 소통과 신뢰라는 것이다. 국민의 65%가 서로 신뢰한다고 답한 노르웨이, 60%가 서로 신뢰한다고 대답한 스웨덴처럼 신뢰도가 매우 높은 나라가 있는가 하면, 반대로 페루는 국민의 5%만이, 브라질은 국민의 3%만이 서로 신뢰한다고 대답했다. 신뢰와 경제적 성과 사이에는 중요한 상관관계가 있다. 이점을 주목해야 한다.
[Book & Life] 1%를 향한 99%의 분노, ‘월가를 점령하라’
99 대 1

지난해 9월 17일 뉴욕 월스트리트에서 ‘월가를 점령하라(Occupy Wall Street)’는 구호 아래 수백 명이 모여 시작한 시위는 워싱턴DC, 로스앤젤레스(LA), 시카고, 보스턴 등과 유럽 및 아시아, 우리나라로까지 확산됐다.

이 분노의 뿌리는 매우 오래 됐겠지만, 가까운 원인은 2008년 리먼브러더스 파산 이후 월스트리트의 은행과 기업들은 수조 달러의 구제금융으로 가까스로 위기를 넘겼지만, 그 혜택은 1%의 부자들에게 돌아가고, 실업은 계속 늘어만 갔다. 지난 30년간 미국 상위 1% 부자의 소득은 3배 오른 데 비해 최하위 계층은 18%, 중위 계층은 40% 증가하는 데 그쳤다는 통계가 나오자 드디어 99% 다수의 분노가 터지고 만 것이다. 종전에 20% 속에 있던 19%조차 돌아서서 이제 99 대 1이 된 것이다.

단일 지도부도, 통일된 요구사항도 없는 이번 99%의 시위는 이 때문에 성공하기는 어려울 것이란 분석도 있지만, 억눌린 다수의 무서운 저항은 쉽게 사라지지 않을 것임을 깊이 인식해야 한다. 특히 20%에 속해 있던 19%의 등 돌림을 유의해야 한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양극화를 해소할 수 있는 구조적 변화와 1% 소수 부자들의 자발적 반성과 함께 구성원 간의 소통과 신뢰를 쌓아가야 할 것이다.



좌우대결의 철학적, 역사적 내용

속에는 인간 본성의 두 가지

모순된 측면, 즉 이기적 본성과

이타적 본성이 깔려 있다.



일러스트·추덕영

전진문 영남대 경영학부 겸임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