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활 공장장’. 한물 지난 줄 알았던 선수들이

재기에 성공할 수 있도록 지도한 김인식 전(前) 한화 이글스 감독에게 팬들이 지어준 별명이다. 김 전 감독은 재활공장장답게 선수들을 부활시키는 데도 일가견이 있지만, 본인 스스로도 병과 싸우고 기적같이 일어나 그라운드로 돌아온 ‘부활의 아이콘’이다.
뇌경색 극복한 ‘부활의 아이콘’ 김인식 전 한화 이글스 감독
2004년 12월 4일 김인식 전 한화 이글스 감독은 뇌경색으로 쓰러졌다. 중학교 2학년 때 야구를 시작해 50년 넘게 야구를 해온 강인한 사나이도 병마 앞에서는 무력할 수밖에 없었다. 술자리에선 폭탄주 20잔을 거뜬히 마시고 하루 담배 3갑을 피웠지만, 매년 건강검진도 받았고 특별히 안 좋은 곳도 없었다. 그는 “병이라는 것이 잠깐 전에도 괜찮았다가 갑자기 쌓이면서 한번에 올 수도 있는 모양이에요”라며 특유의 느릿한 말투로 이야기를 풀어놨다.



뇌경색 후유증 이겨내고
한 달 만에 그라운드 복귀

건강하셨는데 뇌경색은 갑자기 왜 걸리신 겁니까.

“과로하면서 쌓인 게 폭발한 거지. 당시 일본서 전지훈련을 마무리하고 한국에 들어와서 공항에 도착하자마자 상가(喪家)에 갔어요. 그때는 몸이 괜찮았으니까 술도 먹고 새벽에 올라왔다가 그날 바로 다시 대전으로 내려갔다고.

선수들 결혼식이 있었거든요. 대전서 결혼식 끝나고 숙소에서 자고 이튿날 청주에서 또 선수 결혼식이 있어서 갔어요. 그런데 그날 유독 추웠어요. 12월 초인데 여름 양복을 입고 겉에 코트 하나 걸쳤는데 그렇게 춥더라고. 버스에서 내려 예식장으로 올라가는데 찬바람이 확 느껴지는 게, 그때는 몰랐지만 나중에 생각해보니까 그게 다 이유가 있었던 거죠.

아무튼 예식장 올라가서 뷔페에서 밥을 먹는데 잡채가 엄청 짠 거예요. 지금은 세상을 떠난 최동원 감독이 옆에 같이 있었는데, 동원이 보고 ‘왜 이렇게 잡채가 짜냐’ 했더니 ‘전 안 짠데요’라고 하더라고요. 나한테만 짜게 느껴졌던 거죠. 이상하다 생각하고 있는데 예식장에 온 사람들이 사인을 해달라고 왔어요.

사인하려는데 갑자기 손이 말을 안 듣는 거야. 그때 빨리 조치를 취했어야 하는데 그때만 해도 병에 대한 상식이 없었어요. 서울에 있는 병원으로 안 가고 우리 본거지가 대전이니까 대전으로 넘어온 거죠. 결국 대전서 다시 서울로 넘어와서 이튿날 병원에 입원했지. 그땐 이미 많은 시간이 지나버렸어요. 알고 보니까 이건 3시간 안에 병원에 가서 치료받으면 큰 문제가 없대요. 그런 것을 사전에 몰라서 이 고생을 한 셈이죠.”

당시 병세가 얼마나 심각했습니까.

“이미 마비가 와서 움직이질 못했어요. 오른쪽 팔다리가 전부 마비됐어요. 손가락 하나 까딱 할 수 없을 정도였으니까.”

그런데 어떻게 한 달 만에 그라운드에 복귀하신 겁니까.

“이 악물고 재활을 했죠. 병원에 입원하고 열흘이 지난 뒤부터 하루 6시간씩 재활을 했어요. 아침 먹고 2시간, 점심에 2시간, 저녁에 2시간씩. 그런데 그게 말이 운동이지 옆에서 보는 사람한테는 완전히 달밤에 체조하는 걸로 보였을 거예요.

아니 손가락 하나도 못 움직이는 사람이 운동을 하면 어떻게 하겠어요. 완전 슬로비디오예요. 정상적인 사람이 보면 운동 같지 않았겠지만 본인은 힘들지. 나 자신은 무지하게 힘들었어요. 맘대로 안 되니까. 오른팔은 가만 두면 떨어지니까 묶어서 왼팔에 걸어놓고 운동을 해요. 손가락 하나 까딱하려고 무진장 애를 쓰는 거예요. 그런 걸 6시간씩 20일을 했어요. 그러고 나니까 손은 다 안 펴져도 움직일 수 있게 됐고, 쩔뚝거리며 걸을 수 있는 정도가 돼서 퇴원했죠. 빠른 속도라고 병원에서도 놀라긴 했어요.”

뇌경색의 주요 원인이 스트레스입니다. 스트레스가 많은 프로 야구 감독 자리가 위험할 수도 있었을 텐데 감독을 그만둘 생각은 안하셨습니까.

“나는 이미 안 하려고 했죠. 그런데 한화의 김승연 회장님이 나를 믿고 계속 감독을 하라고 지시를 내렸더라고요. 뇌경색이 온 것이 한화랑 계약한 지 한 달 만에 일어난 일이라, 일단 맡아서 하게 된 거지. 어떻게 보면 형편없는 몸으로 한 거예요.

이왕이면 감독이 정상적인 몸을 가진 사람이면 좋겠죠. 그런데 역시 야구 감독은 머리, 눈, 가슴, 이 세 가지로 하는 것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야구 감독은 힘을 쓰고 뛰어다니지 않아도 되니까 팔다리가 불편해도 상관없잖아요. 그렇게 했는데 성적도 나쁘지 않으니까 계속할 수도 있었던 거고.”

김 전 감독은 그 해 불편한 몸으로 꼴찌 후보였던 한화 이글스를 플레이오프까지 진출시켰다. 이듬해인 2006년에는 야구 국가대표팀 감독으로 1회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에 출전해 3위, 2009년 2회 대회에서는 준우승을 기록했다.
“이왕이면 감독이 정상적인 몸을 가진 사람이면 좋겠죠. 그런데 역시 야구 감독은 머리, 눈, 가슴, 이 세 가지로 하는 것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이왕이면 감독이 정상적인 몸을 가진 사람이면 좋겠죠. 그런데 역시 야구 감독은 머리, 눈, 가슴, 이 세 가지로 하는 것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운동선수들 은퇴 후 자기 몸 과신이 문제”

아무리 그래도 불편한 몸으로 감독을 하기에 어려운 점도 있었을 텐데요.

“불편한 점은 있죠. 아무래도 절룩거리니까. 하지만 그러면서 서서히 나아졌어요. 운동하고 침도 맞고 치료도 받으면서 노력한 결과죠. 지금은 내가 볼 때 97% 회복된 것 같아요.”

원래는 없어지지 않는 뇌경색 흔적이 없어졌다면서요.

“2006년까지만 해도 흔적이 있었어요. 1회 WBC에 가기 바로 전에도 교통사고가 났어요. 차가 다리를 넘어갔죠. 다행히도 큰 부상이 없었는데, 넘어지면서 혹시 다쳤을지 모르니까 뇌까지 사진을 찍었지. 그때만 해도 흔적이 나오더라고요. 그런데 그 후에 다시 정기검진을 계속 받으면서 보니까 흔적이 점점 없어지더라고요. 나는 잘 모르지만 병원에선 없어질 수 없는 게 없어졌다고, 흔치 않은 일이라고 합디다.”

지금은 건강관리를 어떻게 하고 계십니까.

“지금도 매일 1시간씩 걸어요. 식단도 따로 관리한다기보다는 좋다고 하는 것들을 많이 먹으려고 해요. 아침에는 식사를 안 하고 주로 콩이나 선식, 과일을 먹고요. 뭐 꼭 억지로 먹는다기보다는 그걸 먹다 보면 배가 불러서 아침엔 밥을 못 먹지. 그렇게 7년째 하다 보니 습관이 되기도 했고. 결국 그런 게 다 몸에 좋게 작용한 것 같아요.

제일 신경 써야 할 것이 뇌경색으로 인해서 운동 부족이 되는 거예요. 나는 열심히 한다고 해도 몸이 따라주지 않으니까 절대적인 운동량에 한계가 있죠. 그렇게 운동량이 떨어지면 당뇨가 문제가 된다고 해요. 병원에서도 조심해야 한다고 하고, 나도 처음에는 당뇨가 오더라고요. 근데 꾸준히 운동을 하니까 정상으로 돌아왔죠.”

일반적으로 운동선수는 튼튼하리라고 생각하는데 의외로 병에 걸리는 경우가 많은 것 같습니다.

“병에 걸리는 것이야 유전일 수도 있고, 혈압이나 스트레스 등 여러 이유가 있겠죠. 다만 야구 선수뿐 아니라 운동선수는 자기 몸을 과신하는 경우가 있어요. 평소 선수 때는 운동을 많이 해. 그런데 선수가 끝나고 나면 몸에 자신이 있으니까 운동을 안 해요. 일반인은 자꾸 운동을 조금씩 더 하려고 애쓰는데 선수들은 ‘난 안 해도 된다’라고 생각하는 거지. 그게 제일 문제예요. 그래서 선수들도 은퇴하고 나서 적당량의 운동을 항상 해야 돼요.”

부상 때문에 20대 중반 비교적 이른 나이에 선수 생활을 접으셨는데, 감독님도 은퇴 이후 운동을 많이 안 하신 건가요.

“그런 것도 있죠. 그런데 조금씩 하긴 했어요. 뇌경색은 아마 당시 과로랑 스트레스 때문에 온 것 같아요.”
“지금도 매일 1시간씩 걸어요. 식단도 따로 관리한다기 보다는 좋다고 하는 것들을 많이 먹으려고 해요.”
“지금도 매일 1시간씩 걸어요. 식단도 따로 관리한다기 보다는 좋다고 하는 것들을 많이 먹으려고 해요.”
1000승 고지, “준비는 돼있다”

프로 야구 감독의 스트레스가 어느 정도인가요.

“아무래도 성적 때문에 스트레스를 많이 받죠. 감독 시절 경기에 지는 날이면 아무도 없는 집에 들어와서 불도 안 켜고 주저앉아요. 멍하니 앉아 있다가 자연스레 그날 경기를 복기하죠. ‘왜 그때 그렇게 했을까’, ‘이때 이 선택을 했으면’ 하면서. 그렇게 ‘잠깐’ 생각했다 싶어서 자야지 하고 시계를 보면 새벽 4시예요. 경기가 머리에 꽉 차있는 거죠.

사람을 믿고 쓰지만, 자신의 선택에 책임을 져야 하는 자리니까 외로움도 있어요. 한번은 김승연 회장님을 뵈었는데 나보고 ‘외롭지는 않느냐’고 하시더라고요. 그분도 리더라서 느낄 수 있는, 같은 뭔가가 있었던 거겠죠.”

요새 근황은 어떠십니까.

“한화 이글스 고문은 이제 끝났는데, 한국야구위원회(KBO) 일이 있어서 자주 나와요. 인터뷰도 많이 하고.”

프로 야구 1000승이라는 기록에 겨우 20승이 남아 있습니다. 다시 감독으로 돌아오실 생각은 없으신가요.

“욕심은 없는데 기회가 주어진다면야. 몸도 다 나았으니까 준비는 돼있어요. 근데 아직 다들 내가 아프다고 생각하는지 연락은 안 오더라고요. 이제 여기저기 돌아다니는 걸 보면 괜찮다는 것도 다 알려지겠죠.”

앞으로 특별한 계획이 있습니까.

“글쎄요. 야구계에 계속 있겠죠. 아무래도 야구를 중학교 2학년 때부터 시작해서 52년간 하고 있으니까. 어디로 갈지 몰라도 야구 외의 일은 전혀 생소한 거 아닌가요.”



글 함승민 기자 hamquixote@hankyung.com 사진 이승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