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광희 (사)희망고 대표 겸 패션 디자이너
아프리카의 메마른 땅에서도 견딜 수 있는 자생력을 가진 기특한 식물 망고나무. 비조차 내리지 않는 건기(乾期)에는 망고열매 하나가 작은 아이의 배를 불릴 수 있는 소중한 식량이 된다. 대한민국 ‘상위 0.1%’ 디자이너로 알져진 디자이너 이광희 씨가 이태 전부터 ‘망고나무 전도사’라는 별명을 얻었다. 수단 남부 톤즈(Tonj)에 심고 온 건 비단 망고나무만은 아니었다.
![[Noblesse Oblige]‘망고나무 전도사’가 부르는 아프리카 사랑歌](https://img.hankyung.com/photo/202101/AD.25103826.1.jpg)
“아, 안녕하세요? 굉장히 밝은 기자님이 오셨네요.”
소녀처럼 웃는 이광희 대표의 얼굴은 예순을 바라보는 나이도, 아티스트 특유의 그 까칠함도 잊게 만들었다. 하지만 한창 더웠던 8월, 그리고 지난달 비행시간만도 20시간에 달하는 아프리카 수단 톤즈를 다녀온 강행군 때문일까. 그는 이야기 중간 중간 오른손을 올려 턱을 잡았다.
“톤즈에 다녀온 것 때문만은 아니고, 이래저래 무리를 했나 봐요. 입이 돌아갔었어요. 치료를 한 덕에 지금은 그래도 거의 정상에 가까워졌는데, 말하는 데는 아직 조금 부담이 가서요….”
의사소통이 살짝 불편해도 양해해 달라는 말을 시작으로 아프리카 수단 남부 톤즈와 톤즈 사람들, 그리고 망고나무에 대한 이야기는 시작됐다.

‘수단의 슈바이처’라 불리던 고(故) 이태섭 신부의 감동적인 이야기로 잘 알려진 톤즈와 이 대표가 연을 맺게 된 데는 부티크의 오래된 지인인 연기자 김혜자 씨가 있었다. 월드비전 홍보대사로 아프리카를 내 집 드나들듯 하는 김 씨를 보며 이 대표는 도대체 아프리카에 무엇이 있는지 궁금했었다.
“3년 전이었죠. 정말 우연찮게 따라갔었는데 결과적으로는 일이 커져 버렸어요.(웃음) 수단이라는 곳이 세계에서 가장 가난한 나라 아닙니까. 그야말로 아무것도 없더라고요. 물과 전기가 없는 것은 기본이고, 봉사를 하러 가는 저희도 잘 곳이 없어서 텐트를 치고 잤을 정도로 기본적인 인프라가 없는 곳이에요.”
수단 남쪽에 위치한 톤즈는 ‘열악하다’는 표현만으로는 부족한 곳이었다. 건기에 방문했던 터라 사정은 최악이었다고. 그나마 괜찮은 먹을거리가 망고였고, 질병과 굶주림으로 고통받는 아프리카의 문제를 해결하는 데 가장 기본적인 것이 일단은 ‘먹는 문제’해결이라는 결론이 섰다.
먹는 것이 해결이 된다면 다른 문제들도 순차적으로 개선될 것이란 기대가 생겼기 때문이다. 결심이 서자 사단법인부터 발족했다. 이름은 ‘희망고(Himango)’. 보는 사람에 따라 ‘희망의 망고나무’이기도 하고, 희망을 먼 곳까지 전달하는 ‘북’이기도 하고, ‘하이 망고’가 되기도 한다. 쉽고도 많은 의미를 함축하고 있는 재단의 작명은 이 대표 남편인 홍성태 한양대 교수가 했다.

고민 끝에 아프리카 땅에서도 별 탈 없이 잘 자라는 망고나무가 먹을거리로 제격이라는 결론이 섰고, 그는 수중에 있는 돈을 털어 망고나무 100그루를 심었다. 망고나무 하나를 심는 데 드는 비용은 15달러. 망고는 심은 지 5년 정도 지나면 열매를 맺기 시작해 100년 동안 1년에 두 차례 열매를 선사하는 생명력과 생산력이 긴 식물이다. 100그루로 시작한 망고나무는 재단 설립 만 2년을 바라보는 지금 3만 그루로 늘어났고, 망고나무 묘목을 받은 가구도 그만큼 늘어났다.

지난 8월, 이 대표의 톤즈행에는 큰아들 홍준기 씨가 동행했다. 여름휴가를 맞춰 모자가 함께 톤즈를 찾은 것. 혹자는 아프리카 문제를 해결하겠다고 달려드는 것이 바위에 계란치기라고 말하기도 하지만, 이 대표의 생각은 다르다. 투자 대비 확실한 효과를 가시적으로 볼 수 있는 프로젝트라는 것. 이는 한 번 심으면 100년 가는 망고나무를 떠올려 보면 쉽게 이해된다. 지속적이고 장기적인 후원은 분명 그 가치를 가시적으로 보여줄 것이고, 후원자들 입장에서는 아이들에게 확실하게 보여줄 결과물이 있으니 교육적 효과 또한 톡톡하기 때문이다.
“제가 톤즈에 처음 찾을 때만 해도 아프리카가 지금처럼 지원에 대한 관심을 받지 못했어요. 지금은 아프리카를 돕는 것이 무슨 유행처럼 돼 버렸지만요. 희망고의 나눔도 그렇게 식상하게 여겨질까 우려가 되지만, 저희가 하는 나눔은 후원자와 수혜자가 함께 나눔의 즐거움을 느낄 수 있어서 좋은 것 같아요. 일방적으로 주고받는 것이 아니라 서로가 공유할 수 있는 새로운 문화를 만들어 가는 셈이죠. 희망고에 동참하면 좋은 일도 하지만, 재미있고 기쁜 일들이 함께 할 것이란 메시지도요. 실제로 묘목을 나눠주고 함께 심을 때 깔깔거리며 웃기도 하는데, 얼마나 즐겁고 행복한지 몰라요.(웃음)”

“직원들한테 ‘지금 톤즈가 꼭 예전 해남 같다’는 말을 했어요. 너무 없었으니까, 잘사는 것이 얼마나 잘사는 것인지를 모르니 불행하다고 생각할 이유가 없었어요. 빈곤은 상대적인 것이거든요. 비교할 대상이 없으면 빈곤하다는 것도 알 수가 없죠. 마찬가지로 톤즈 사람들도 빈곤하지만 얼마든지 행복할 수도 있는 거잖아요. 8월에 톤즈에 갈 때 KBS 방송국 팀이 함께 갔는데, 저희들이 톤즈 사람들하고 나무 심으며 장난치고 웃기만 하니까 그림이 안 된다고 하더라고요. 하하하. 나눔도 얼마든지 재미있게 할 수 있는 거잖아요.”
상위 0.1%의 사회지도층을 상대하는 디자이너가 내뱉는 ‘빈곤’이라는 말이, 즐거운 나눔이라는 말이 이상하리만치 자연스럽다. 고객의 눈높이와 톤즈 사람들의 눈높이 사이에는 문자 그대로 하늘과 땅만큼의 차이가 있다지만, 그는 누구를 만나도 금세 친구가 될 수 있다고 한다.
아마도 어린 시절 아버지와 어머니가 운영했던 ‘해남등대원’ 때문이리라. 해남등대원은 선친인 고 이준목 목사가 해남에 설립한 곳으로, 월드비전과 함께 50여 년 동안 전쟁고아 수천 명을 돌봤던 공간이다. 어머니이자 우리나라 1세대 간호사인 고 김수덕 여사 또한 남편과 함께 전쟁고아들을 거두고 보살폈다. 그곳에서는 고아와 친자식이 따로 없었고, 가난도 행복도 함께 나눠야 했다고.
‘희망고 빌리지’, 100년 생명력의 나무 하나
남편이 지어준 재단의 이름처럼 이 대표가 퍼뜨리고 싶은 것은 ‘희망’이다. 톤즈 사람들도 ‘호프(hope)’란 영어 단어 대신 한국어로 ‘희망’을 얘기한다고 한다. 희망의 ‘북’을 둥둥 울린 지 2여 년. 이 대표는 희망고가 “기네스북에 오를 만한 신기록”이라며 지난달에 있었던 굿 뉴스를 전했다.

그의 말대로 정말 일이 ‘커졌다’. 희망고 빌리지는 내년 7월경에 오픈할 예정이다. 그런데 이 희망고 빌리지 역시 누가 억지로 계획을 짠 것이 아니라 자연스럽게 도달한 결론이었다. 톤즈 아이들의 미래를 바꾸려면 그들의 엄마들에 대한 교육이 절실하다는 생각에 이르렀고, 엄마들이 교육을 받으려면 그 시간 동안 아이들을 대신 보살펴 줄 탁아소와 학교가 함께 있는 것이 효율적일 것이란 생각이 뒤따랐다. 그렇게 밑그림에 하나둘씩 채색을 하다 보니 ‘희망고 빌리지’라는 청사진이 완성된 것이다.
디자이너로서도 워낙에 바쁜 그였지만, 희망고를 설립한 이후 양쪽 일에 신경을 쓰다 보니 하루가 절반으로 줄기도 했다. 하지만 희망고 일에 빠져들면 들수록 부티크 일에도 악착같이 매달렸다. 희망고 재단의 ‘얼굴’이 된 이상, 작품 하나라도 더욱 소홀히 할 수 없었다는 고백이다. 규모가 큰 만큼 희망고 빌리지 건립에는 지금껏보다 훨씬 큰 규모의 자본이 필요할 터. 요즘 희망고 가족들은 재원 마련에 더욱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다.
![[Noblesse Oblige]‘망고나무 전도사’가 부르는 아프리카 사랑歌](https://img.hankyung.com/photo/202101/AD.25103832.1.jpg)
‘희망고 더 바자회’는 12월 6~7일 이틀간 남산 이광희 부티크에서 마련된다. 희망고 재단 후원 및 바자회 문의 02-792-6812.
글 장헌주 기자 chj@hankyung.com 사진 이승재 기자·(사)희망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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