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yuni, Bolivia

소금, 세상에서 가장 하얀 것. 융프라우(Jungfrau)에서 보았던 눈이 이만큼 하얄까. 여기는 볼리비아의 우유니(Uyuni). 까마득한 옛날 바다였던 곳이 지금은 물이 말라 소금만 남았는데, 1년에 비 한 번 올까 말까 한 날씨 때문에 소금이 모래처럼 사막을 이루었단다.
[The Explorer] 눈보다 흰 소금 사막의 붉은 일출, 우유니
1만2000㎡, 이 가없는 소금 사막이 하늘과 만나 빛나는 염평선(鹽平線)을 이룬다. 하얗게 살아나는 소금 사막의 끝자락, 빛나는 염평선 위로 떠오르는 아침 해가 보는 이의 가슴까지 붉게 물들였다.
우유니 투어의 두 번째 주인공, 녹색 호수
우유니 투어의 두 번째 주인공, 녹색 호수
어떤 여행지가 기억에 남는 건, 도무지 예상치 못했던 장면과 감동을 주었기 때문이다. 그래서일까. 나는 사람들이 이구동성으로 칭송(?)하는 관광지보다는 별 기대 없이 찾았던 한적한 시골 동네가 더 기억에 남곤 했다. 하지만 아주 가끔, 뭇사람들이 엄지 손가락을 추켜드는 여행지에서 기대를 뛰어넘는 감동을 안고 돌아오는 일이 있다.

예를 들어 요르단의 페트라 같은 곳이 그랬다. 영화 <인디아나 존스 3-최후의 성배>에 나온 페트라의 모습은 실제의 수백 분의 일에 불과했기 때문이다. 영화를 통해 유명해진 절벽 사이 자그마한 바위산 하나를 깎아 만든 신전은 페트라의 시작일 뿐이었다. 거기서부터 도저히 그 옛날 인간의 손으로 만들었다고는 믿기 어려운 ‘작품’들이 2km 가까이 이어져 있었다.
석양을 받은 붉은 호수는 피 같은 선홍색을 띠었다.
석양을 받은 붉은 호수는 피 같은 선홍색을 띠었다.
페트라가 인간의 손으로 만든 감동의 극치를 보여줬다면 자연이 빚어낸 최고의 장면은 우유니에서 보았다. 내가 그곳을 찾기 전에도 볼리비아의 소금 사막 우유니는 이미 여행자 사이에서 꽤 유명한 이름이었다. 사방천지가 하얀 소금 밭에, 고지대의 영향으로 늘 눈과 안개가 끼어 평생 잊지 못할 장관을 연출한다는 이야기를 듣고 있었다.

이를 증명하는 ‘인증 샷’들도 여럿 인터넷에 떠돌았다. 그러기에 설레는 마음으로 우유니 투어에 올랐다. 당시 나는 칠레를 여행하고 있었으므로 볼리비아와 인접한 도시 아카타마에서 우유니로 올라가는 루트를 택했다.

우유니 투어의 감동은 우유니에 도착하기도 전에 시작됐다. 아침에 오른 도요타 랜드크루저로 1시간 정도 달리니 사방에 나무 하나 보이지 않는 안데스 고원이 펼쳐진다. 바람과 바위, 모래만이 가득하다. 그렇게 다시 1시간 정도 달렸을까.

호수가 하나 나타났는데 신기하게도 물빛이 하얗다. 음, 이것도 소금 사막의 영향일까. 하지만 이게 다가 아니었다. 거기서 2~3km쯤 떨어진 곳에는 물감을 풀어놓은 듯 녹색이 선명한 호수가 있었다. 압권은 마지막에 이른, 선홍 빛 물이 피처럼 가득 담겨 있는 붉은 호수였다. 여기에는 분홍 날개를 펄럭이는 플라멩코들이 군무를 선보였다.

우유니로 가는 길은 눈만 즐거운 것이 아니었다. 거기에는 사방이 툭 트인 고원에 천연 온천탕 하나가 덩그러니 여행자들을 맞고 있었다. 이쯤 되면 그럴듯한 리조트 하나쯤은 벌써 세워졌을 법한데 주변을 눈 씻고 봐도 탈의실로 쓰는 자그마한 간이 건물 하나뿐이다. 그러기에 산과 호수를 보며 바람을 즐기는 온천욕은 일본의 어느 고급 료칸(旅館)에서도 맛볼 수 없는 장쾌한 기분을 선사했다.
이것이 진정한 ‘노천온천’이다.
이것이 진정한 ‘노천온천’이다.
소금 사막의 소금 호텔, 선인장 섬

투어의 화룡점정은 우유니 사막에서 찍었다. 침대며 의자까지 소금으로 만든 ‘소금 호텔’에서 묵은 다음날 아침, 아직 어둑한 하늘을 배경으로 차를 달리니 저 멀리 붉은 기운이 천지를 물들였다. 눈처럼, 아니 눈보다 하얀 소금 밭 위로 떠오르는 붉은 태양은 보는 이의 가슴까지 붉게 스며들었다.

수만 년 전 바다였던 이곳은 지각의 융기작용으로 지금은 안데스 고원의 일부분이 됐다. 이곳이 바다였음을 말해주는 것은 사방의 소금, 그리고 그 소금 사막 한가운데 떠 있는 산호섬이다.
소금 사막 한가운데 산호섬을 가득 메운 비석 같은 선인장들
소금 사막 한가운데 산호섬을 가득 메운 비석 같은 선인장들

‘물고기 섬’이라는 이름을 가진 이곳에는 수천 수백의 선인장들이 산호 화석에 뿌리를 내린 채 살아가고 있었다. 그것은 마치 그 옛날 이곳을 가득 메웠을 무수한 생명을 추념하는 공동묘지의 비석같이 보였다. 이 비석들은 1년에 딱 1mm씩 자란다고 한다. 그러니 이곳에서 가장 큰 1203mm짜리 선인장의 나이는 1203세라 했다.
소금 사막 한가운데 산호섬을 가득 메운 비석 같은 선인장들
소금 사막 한가운데 산호섬을 가득 메운 비석 같은 선인장들
물고기 섬 앞에서 따뜻한 커피와 빵, 과일로 간단한 아침을 먹는데, 누군가 ‘여우(Fox)!’라고 외쳤다. 소리 나는 쪽으로 황급히 눈을 돌리니 여우처럼 보이는 동물이 활처럼 휜 등 위로 한가득 햇살을 받으며 쏜살같이 섬 안으로 뛰어 들어가고 있었다.

하긴, 첫날에 본 초록 호수에서도 여우를 보았다. 사막은, 모래든 소금이든, 언제나 여우의 차지였던 것이다. 사람이란 잠시 와서 저들을 방해하고 돌아가는 나그네에 지나지 않았다.

이미 해는 하늘로 오르고, 사방에는 붉은 기운 대신 하얀 구름이 가득했다. 랜드크루저 창 밖으로는 온통 하얀 기운뿐인데, 가이드 겸 기사 아저씨는 잘도 길을 찾아 달린다. 그렇게 한참을 달리니 도무지 끝날 것 같지 않았던 소금 사막의 하얀 길을 벗어나 다시 안데스 고원의 붉은 모랫길이 나왔다.

투어의 마지막 기착지는 소금 사막 옆의 ‘기차 무덤’이었다. 말 그대로 볼리비아의 낡은 기차들이 모여 붉게 녹슬어 사라져가는 곳. 낡고 오랜 기차들 사이를 다니다 보니 어디선가 옛날 즐겨보던 만화영화 <은하철도 999>의 차장 아저씨라도 튀어나올 것만 같았다. 열차의 화물칸에 앉아 있으니 멀리 보이는 신기루가 이곳도 사막임을 증명하고 있었다.
곡예하듯 선인장에 앉아 있는 새
곡예하듯 선인장에 앉아 있는 새
하얀 호수에서 시작한 투어는 소금 사막의 붉은 일출을 거쳐 기차의 무덤에서 끝을 맺었다. 신기루는 여기가 끝이 아니라 새로운 시작이라 말해주는 듯도 했다. 여행은 언제나 그랬다. 하나의 여행이 끝나면 늘 새로운 여행이 시작됐다.

하지만 다음 여행은 언제나 신기루처럼 희미하게 보였다. 신기루의 본래 모습이 어떤지는 아무도 모른다. 오직 떠나는 자만이 그 모습을 제대로 보고 느낄 수 있을 뿐.
달리의 ‘시간의 기억’을 닮은 안데스 고원의 풍경
달리의 ‘시간의 기억’을 닮은 안데스 고원의 풍경

Uyuni Tip

How to Get There

대부분의 여행자들은 우유니를 보기 위해 우유니 투어에 참여한다. 투어는 칠레의 아카타마에서 출발해 우유니로 들어가거나, 볼리비아의 우유니에서 출발해 다시 우유니로 들어가는 두 가지 루트로 나뉜다.

둘 다 동일한 코스를 돈다. 아카타마로 가기 위해서는 칠레의 수도 산티아고로, 우유니로 가기 위해서는 볼리비아의 수도 라파즈로 가야 한다. 이곳들은 인천국제공항에서 바로 가는 직항이 없어 주로 미국 로스앤젤레스(LA)와 마이애미를 경유하는 노선을 이용한다.
[The Explorer] 눈보다 흰 소금 사막의 붉은 일출, 우유니
Where to Stay

우유니 투어를 판매하는 현지 여행사들은 대부분 ‘소금 호텔’에 묵는다고 선전한다. 하지만 ‘진정한’ 소금 호텔은 우유니 소금 사막 한가운데 있다. 그러니 투어를 선택하기에 앞서 소금 호텔의 위치를 확인해야 한다. 진짜 소금 호텔을 이용하는 투어는 다른 것보다 조금 더 비싸다.
모래 사막에도, 소금 사막에도 여우는 있었다.
모래 사막에도, 소금 사막에도 여우는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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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우유니는 인천에서 가는 데만 이틀 이상이 걸리기 때문에 단순히 우유니 투어만을 다녀오는 일정은 바람직하지 않다. 적어도 2주일 정도의 시간을 내어 칠레 와이너리 투어나, 볼리비아 고원 투어를 함께 하는 것이 좋다. 개인적으로는 볼리비아의 매력에 빠져보는(?) 것을 추천한다.

글·사진 구완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