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쩌면 은밀한 사랑이라는 것은 이제 진부하게 느껴질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이 고전적인 테마는 아직도 영화와 드라마, 소설 속에서 변함없이 등장해 점점 희미해져가는 아날로그적 감성에 대한 향수를 불러일으킨다. 은밀한 사랑의 드라마는 그림 속에서도 만나볼 수 있다.
[강지연의 그림일기] 사랑, 그 은밀함에 관하여
장 오노레 프라고나르(Jean-Honore Fragonard), <은밀한 입맞춤>(The Stolen Kiss), 1765~1770년, 상트페테르부르크 에르미타주 미술관 소장

마치 연극 무대와도 같은 한 장면이다. 핑크색 커튼으로 가려진 발코니 문 뒤에 숨어있던 한 청년이 여인의 손목을 잡아 재빠르게 끌어당기며 그녀에게 입술을 갖다 대고 있다. 너무나도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라 청년의 입술은 그녀의 입술이 아닌 바로 그 옆에 닿고 말았다.

깜짝 놀라 눈이 커진 그녀는 청년에게 손목을 잡혀 마치 끌려가는 듯한 자세로 한쪽 발을 딛고 서 있지만 그녀의 표정으로 미루어보아 청년이 싫지는 않은 것 같다. 다만 그녀가 걱정하는 것은 자신이 떠나온 자리, 즉 문 뒤쪽에 모여앉아 카드놀이를 하고 있는 귀부인들이 이 상황을 눈치 챌까 겁이 나는 것이리라.

사실 좀 더 자세히 살펴보면, 그들이 은밀하게 만날 수밖에 없는 상황이 이해가 간다. 발코니로 숨어들어온 청년의 옷차림은 수수하지만 그가 입 맞추고 있는 여인은 부유한 귀족가문의 딸처럼 보인다.

여인의 뒤로 보이는 문 안쪽에서 사교의 장을 나누고 있는 귀부인들이 속한 세계야말로 그녀가 태어날 때부터 속해있는 세계인 것이다. 여인은 갈등한다. 그 세계에 계속 남아 편안하고 안락한 삶을 꾸릴 것인지, 아니면 이 청년을 따라 사랑에 몸을 던질 것인지.

고뇌하는 증거로 그녀의 몸은 청년에게 기울어졌으되 아직 한쪽 발은 저쪽 문을 향해 들려있다. 그녀가 손끝으로 잡고 있는 천 역시 저쪽 세계의 것이다. 그녀는 아직 떠날 준비가 되지 않았다. 과연 이 드라마의 결말은 어느 쪽일까.

화가인 장 오노레 프라고나르는 이 시대 일상의 드라마를 매우 우아하면서도 재치 있는 느낌으로 나타내고 있다. 청년이 숨어있는 발코니의 핑크색 커튼이나 그가 밟고 있는 여인의 드레스 자락은 이미 그녀의 마음속에 청년이 들어와 있음을 말해준다.

반면 여인이 속한 세계의 우아함을 상징하는 아름다운 가구, 얇고 부드러운 장식 천, 화려한 카펫, 그리고 문 뒤의 귀부인들은 그녀가 이 세계를 완전히 놓지 못하고 갈등하게 하는 요인이다.

그녀가 입고 있는 실크 드레스의 풍성한 볼륨과 부드러운 주름들, 그리고 방 안의 화려한 물건들의 정확하고도 섬세한 표현은 프라고나르가 당시 정물의 정확한 묘사를 중요시했던 네덜란드의 전통회화에 많은 영향을 받았다는 것을 알려주고 있다.
[강지연의 그림일기] 사랑, 그 은밀함에 관하여
요하네스 베르메르(Johannes Vermeer), <연애편지>(The Love Letter), 1669년, 암스테르담 국립미술관 소장

‘연애편지’는 요하네스 베르메르의 여러 작품에서 나타난 주요 테마다. 이 그림은 프라고나르의 그림과 마찬가지로 커튼과 문이 등장해 마치 연극 무대를 보는 듯한 효과를 준다.

방 안에는 두 명의 여인이 있다. 모피로 단을 덧댄 화려한 금색 옷을 입고 목걸이와 귀걸이 등으로 한껏 치장한 여인은 이 저택의 여주인일 것이다. 그녀는 류트를 연주하던 중에 하녀가 가져다준 편지를 막 받아들었다.

여주인과 대비되는 푸른색 치마를 입은 하녀는 편지를 전하며 여주인에게 무언가 이야기하고 있다. 하녀의 얼굴에 살짝 미소가 어려 있는 반면, 여주인의 얼굴에는 약간의 실망감이 나타나는 듯하다.

아마 그녀는 오늘 오기로 한 누군가가 오지 못하게 됐다는 소식을 들었을 것이다. 그 사람에게 보여주기 위해 한껏 치장하고 앉아 류트를 연주하며 기다리고 있었던 것일까.

그러나 편지를 전해주는 하녀의 웃음 띤 얼굴로 보아, 편지에는 곧 그녀를 만나러 오겠다는 약속과 그녀를 사랑하는 마음이 드러난 내용이 적혀 있을 것으로 추측된다. 베르메르는 그림 속에서 여러 장치를 이용해 이 상황에 대한 암시를 주었다.

여주인이 들고 있는 류트는 보통 사랑을 상징하는 악기다. 그녀가 앉아있는 뒤쪽 벽에 걸린 그림에는 항해를 떠난 배가 그려져 있는데 이는 당시 배(남자)가 돌아오기를 기다리는 여자의 마음을 나타낸 것으로 베르메르의 다른 그림에도 자주 등장하던 암시다. 그 위에 걸린 그림에는 길을 떠나는 누군가의 모습이 그려져 있다. 역시 지금 여기에 없는 연인의 존재를 암시하는 그림이다.

그 밖에 벗어놓은 슬리퍼나 악보 역시 여인의 마음을 대변해주고 있다. 슬리퍼를 벗어놓는 것은 성적인 관계를 암시한다. 악보는 그녀가 류트 연주를 누군가에게 들려줄 것으로 즉 여인이 함께 류트를 연주할 누군가를 기다리고 있다는 의미다.

류트는 사랑을 상징하는데 흔히 여성의 몸에 비유되는 악기로 플라토닉 러브보다는 에로스에 가까운 사랑의 상징이다. 그녀는 아마 오늘 기다리고 있었던 연인과의 달콤한 밀회를 갖지 못해 실망했겠지만 하녀가 가져다준 편지로 다시 비밀스럽고도 은밀한 만남을 꿈꾸게 될 것이다.

그림 속 인물들의 은밀한 사랑 이야기를 보며 관객들은 마치 그들의 비밀을 훔쳐보고 있는 기분이 든다. 한편의 드라마를 보는 듯한 그림 속 인물들처럼 사랑이란 남몰래 비밀스럽게 이루어질 때 더욱 불타오르는 속성을 가지고 있다.

강지연 _ 교사. <명화 속 비밀이야기>, <명화 읽어주는 엄마> 저자.네이버 블로그 ‘귀차니스트의 삶(http://blog.naver.com/oilfree07)’ 운영. oilfree07@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