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택
전문가들은 하반기 주택 시장이 상반기와 크게 다르지 않을 것으로 전망한다.시장침체기 때 다음해 전망을 하면, 십중팔구 “하반기엔 회복이 기대된다”는 말이 나온다. 연말에 이런 전망을 하다 보면, 상반기는 너무 코 앞이어서 ‘회복’을 논하기 이르다. 그러나 하반기에 점차 개선될 것이란 단서를 달아두면 싫어할 사람이 없다.
그런 하반기가 목전에 다가왔다. 회복을 얘기할 수 있을 거라 생각했던 하반기는 아직 미동도 없다. 시장 상황이 개선될 계기가 있거나 규제 완화 등 정부의 지원사격이 본격화될 움직임도 감지되지 않는다. 좀 더 인내가 필요해 보이는 하반기 주택 시장의 상승·하락 요인부터 점검하고 전문가 전망을 들어본다.
전세가 상승에 추가 대책 가능성
많은 전문가들이 전세가 상승에서 주택경기 회복 가능성을 점친다. 집값 대비 전셋값 비율이 지난 5월 전국 평균 59%로 60% 돌파를 앞두고 있어 소형 아파트 중심으로 이런 전망이 부쩍 많이 나온다.
정부의 거래 활성화 대책이 추가로 나올 가능성도 높다. 올 들어 이미 네 차례 부동산 대책을 발표했으나 시장은 ‘아직 목마르다’는 분위기이기 때문. 그동안의 대책은 투기 조장 등 부작용을 의식해 지역이나 대상을 좁혀 ‘정밀 폭격’ 하는 식이어서 그 효과가 실상 크지 않았다.
내년 두 차례 선거를 앞둔 정부가 부동산 경기 회복에 어느 정도 의욕을 보일 수 있지만 집값 불안을 야기해선 안 된다는 부담도 동시에 안고 있다. 인플레이션 등으로 실물자산인 부동산을 사들일 가능성도 있다.
하지만 증시가 비교적 양호해 부동산 시장으로 자금이 빠르게 유입되는 움직임은 덜하다. 수익형 부동산 선호로 오피스텔과 상가 건물 쪽으로만 이른바 ‘입질’이 늘고 있을 뿐이다.
길게 보면, 공급 부족으로 인한 주택수급 불균형이 가격 상승을 촉발할 것이란 관측도 많다. 2008~2010년 3년간 주택건설 인·허가 건수는 당초 50만 가구 목표에 36만~38만 가구 수준으로 급감했다.
건축기간 3년 정도를 더하면 입주시기가 되기 때문에 2011~2013년에는 입주 물량이 부족해진다는 계산법이 나온다. 지방에선 이 메카니즘이 현실화되며 집값이 많이 올랐다. 재개발·재건축에 따른 주택 멸실 등은 수도권에서 더욱 주택 수급을 악화시킬 가능성이 크다. 회복 기대감 없고, 금리 인상 겹쳐
모두들 집값 상승에 기대를 걸지 않는 점이 가장 큰 악재다. 시장이 회복될 것이란 믿음이 시장에서 사라졌고 부활할 조짐도 없다. 특히 수도권에선 이런 이유로 주택매수세가 자취를 감췄다.
금리 상승세도 집값 상승을 억제하는 역할을 할 전망이다. 올 들어 한국은행은 기준금리를 세 차례에 걸쳐 총 0.75%포인트 올렸다. 담보대출을 쓰고 있는 사람들은 뾰족한 대책이 없다. 주택대출 중 변동금리 대출이 90%를 웃돌고 있어서다.
대출을 받아 집을 사려던 사람들도 매수 의욕이 꺾여 전세에 안주하려는 성향이 강해진다. 늘어나는 가계부채와 집을 가진 가난한 사람들이란 의미의 하우스 푸어(house poor) 등장으로 경제심리가 크게 위축될 수 있다. 800조 원이 넘는 가계부채 문제가 시장을 상당히 짓누를 수 있다. 빚을 내서 집을 살 수 있는 계층도 갈수록 줄고 있다.
더딘 소득 증가로 구매력도 현저히 약화돼 있다. 비정규직 문제 등으로 인한 소득 양극화로 내 집 마련에 어려움을 겪는 계층이 늘었다. 반면 주택 가격은 글로벌 경제위기 이후 종전 가격의 80~90%까지 회복했다. 보금자리주택 대기 수요도 문제다. 과천, 강동구 등에 5차 보금자리주택지구가 지정되면서 다시 보금자리주택 대기 수요가 늘 태세다. 지루한 박스권 장세 예상
전문가들은 하반기 주택 시장이 상반기와 크게 다르지 않을 것으로 내다본다. 김덕례 주택산업연구원 연구위원은 상반기에 비해 달라질 시장 요인을 크게 찾아볼 수 없다며 이같이 전망했다.
김덕례 연구위원은 “수도권 주택 시장의 불확실성으로 인해 전셋값 상승이 매매 수요로 연결되기 쉽지 않을 것”이라며 “주택 매매가는 상반기처럼 약보합세가 불가피할 전망”이라고 말했다.
박원갑 부동산1번지 연구소장도 “수도권에선 하락 요인이 좀 더 강하게 작용할 것”이라고 요약했다. 정부가 추가 부양책으로 꺼내 들 정책수단이 별로 없는 데다 전세난이 일어도 매매 수요 전환은 소형 주택 등 일부에 그칠 것이란 판단 때문이다.
박원갑 소장은 “주택을 자산으로 생각하는 수요가 많이 줄었고 가격 상승에 대한 기대도 크지 않은 현실”이라고 말했다. 이 때문에 도시형 생활주택이나 오피스텔, 고시텔 등 주택 대체재로 수요가 옮겨가고 저가 급매물에만 수요가 붙는 현상이 일반화될 것으로 내다봤다.
가을 이사철 소형 주택 거래가 조금 늘고 취득세 감면이 예정대로 연말까지 끝나면 그전에 절세를 위한 매입 수요가 반짝 나타날 수 있다고 했다. 박원갑 소장은 “밭고랑과 이랑처럼 하반기 주택 시장이 오르락내리락하며 박스권 조정 장세를 보일 가능성이 높다”고 강조했다.
전셋값은 상승 폭이 조금 둔화될 것이란 의견이 있었다. 김 연구위원은 “2009년 상반기에 입주물량이 많아 전셋값이 하락한 뒤, 그 해 하반기 전셋값이 상승했다”며 “2년이 지난 올 하반기부터 급격한 상승세는 조금 꺾일 것”이라고 주장했다.
수도권과 지방은 따로 봐야
수도권과 지방 간 지역별 온도차도 여전히 클 전망이다. 국민은행 시장동향 조사자료에 의하면 올 들어 5월 중순까지 전국 주택 가격은 3.8% 상승했다. 수도권은 0.8% 상승에 그쳤고 지방은 평균 6%를 넘는 양극화 모습을 보였다.
박합수 국민은행 부동산팀장은 지방의 주택 가격 상승 폭이 상반기에 비해 다소 둔화될 수 있으나 추세는 유지될 것으로 예상했다. 그는 “지방 주택 시장은 지역별 편차가 있으나 상반기 상승 지역인 경남, 부산, 광주, 대전 지역 등을 중심으로 여세가 이어질 것”이라며 “상승 폭이 상대적으로 작았던 경북, 충남, 전남, 대구 등지에서도 가격 상승 움직임이 나타날 것”이라고 말했다.
김호철 단국대 도시계획·부동산학과 교수는 지방의 전셋값 상승세가 매매가보다 훨씬 가파르다고 지적했다. 그는 “2001~2003년 매매가·전셋값 그래프와 거의 똑같은 모양이 다시 나타나고 있다”며 “다만, 펀더멘털의 개선 없이 주택 가격만 올라가면 거품 형성과 급격한 붕괴도 나타날 수 있다”고 우려했다.
장규호 건설부동산부 기자 danielc@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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