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자를 결정할 때 중요한 것 중 하나가 물건을 되팔 2차 시장(유통시장)의 존재 유무다. 와인 투자에 있어서도 이는 유효하다. 다행스럽게도 와인은 경매를 통해서 되팔 수 있는 길이 열려 있다. 이번 호에는 와인 경매의 변천사에 대해 알아본다.

경매를 뜻하는 영어 단어 ‘Auction’은 라틴어 ‘Aucio’에서 유래됐는데 ‘a gradual increasing’ 즉, 점진적인 상승을 뜻한다. 이는 두 가지로 해석될 수 있다. 경매에 내놓는 물건이나 재화의 가치가 점진적으로 상승한다는 뜻도 되고, 실제 경매에 있어 경매가가 점진적으로 상승한다는 뜻으로도 풀이된다.
경매에 출품된 특급 와인 샤토 라투르
경매에 출품된 특급 와인 샤토 라투르
고대 최고가 경매 물품은 ‘결혼적령기 처녀’

고대의 경매 물품은 땅이나 동물, 농산물 등이었다. 역사상 최초의 경매는 로마시대보다 더 오랜 바빌로니아 시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기원전 500년경 경매는 연례행사로 개최됐는데 최고가 경매물품은 ‘결혼적령기의 처녀’였다.

그리스의 역사가 헤로도토스는 가장 아름다운 처녀가 얼마나 큰돈에 팔려 가는지, 그리고 덜 매력적인 아가씨는 어떻게 가격을 깎는지에 대해서 자세히 묘사하고 있다. 사실 못생긴 처녀는 오히려 응찰자에게 뒷돈을 주고 데려가게 했다고 한다.

로마시대에는 경매가 이전보다 훨씬 성행했는데, 로마제국의 경계선에서 새로 약탈해온 물건들이 경매를 통해 팔려나갔다. 약탈된 물건 중에는 보석과 예술품, 와인 등이 포함돼 있었다. 이처럼 와인은 고대 로마시대부터 경매의 중요한 물품이었다.

건강에 좋고, 무성하게 잘 자라는 포도원이 로마제국 전역에 걸쳐 분포했는데 그중에서도 지중해 연안은 기후가 포도재배에 적합해 항상 와인이 넘쳐났다. 넘쳐난 와인은 커다란 나무로 만든 통(편의상 이후 ‘오크통’이라 함)에 실려 지형적으로 와인 생산에 적합하지 않은 로마제국의 다른 영토로 이동됐는데 그런 곳마다 경매시장이 열리곤 했다.

와인의 이동 및 보관 수단은 2000년 이상 오크통이었는데 17세기에 들어 입으로 불어서 만든 유리병이 보급되면서 와인업계에는 혁명적인 변화가 일어나게 된다. 유리병은 와인의 시음 및 이동, 보관을 편리하게 해주었을 뿐만 아니라 이를 투자의 대상으로 격상시키는 역할을 하게 된다.

요즘 우리가 흔히 볼 수 있는 와인 병의 형태가 완성된 것은 18세기 말이다. 이때부터는 와인 교역의 단위도 ‘캐스크(cask)’에서 ‘케이스(case)’로 바뀌게 된다. 그렇다면 1케이스의 와인은 왜 12병으로 결정됐을까. 아마도 12병은 나누기에도 적당하고 한 사람이 운반하기에도 적당한 무게였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이때쯤 해서 와인시음 전문가들은 어떤 특별한 와인들은 와인셀러에 오랫동안 놔두면 훨씬 더 맛이 좋아진다는 것을 발견하게 된다. 이 특별한 와인에는 클라레(claret), 포트와인(port wine)이 포함돼 있다. 당시에는 보르도 레드와인을 클라레라고 불렀다.

크리스티 와인 경매의 역사를 다시 쓴 ‘마이클 브로드벤트’

여기서 영국 와인 경매의 역사에 대해서도 알아보기로 하자. 영국 와인 경매의 역사는 크리스티로부터 시작된다. 1766년 제임스 크리스티가 설립한 크리스티 경매사는 젠틀맨스 클럽이 많은 팔 몰에 자리 잡고 있다가 1823년에 킹스 스트리트로 이전해 현재에 이르고 있다. 1766년 개업해 처음 시행한 경매에서도 와인이 포함돼 있었다. 첫 경매물품이었던 와인에 대한 설명은 아래와 같다.

‘많은 양의 마데이라주와 향기 좋은 클라레, 최근 작고한 귀족이 가지고 있던 소장품.’

와인만을 위한 경매 행사는 3년 후인 1769년에 열렸다. 그 이후 크리스티는 200년간 와인을 위한 특별한 경매를 수도 없이 개최했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전후 복구 시기의 사회적 분위기로 인해 일시적으로 와인 경매를 금했지만 1953년부터 와인 경매가 재개됐다.

크리스티에서 와인 경매가 본격화된 것은 1966년 크리스티가 탄생한 지 200년 되던 해에 마이클 브로드벤트가 입사하면서다. 브로드벤트는 원래 건축학을 전공한 사람이다. 하지만 1952년 25세의 나이에 런던의 소매상 토미 레이턴에 입사했다가 3년 후 하비스 비스트롤 런던사무소에 입사하게 되는데 이때부터 와인을 담당하게 된다.

1960년 마스터 오브 와인(MW) 자격증을 취득한 그는 이때부터 자기 이름 뒤에 MW을 붙여서 사용했다. 이후 그는 1966년 W&T 러스텔 경매사에 입사하게 되는데 이 회사가 크리스티에 합병되면서 크리스티의 일원이 됐다.

그는 와인 경매에서 최초로 ‘누출 차트(Ullage Chart)’를 사용했다. 와인은 시간이 오래 지나면 자연적으로 증발해 용량이 줄어들게 되는데 그 정도를 누구나 알기 쉬운 용어로 개발해 경매에 활용했다. 이 차트는 브로드벤트가 고안해 1967년부터 크리스티 경매에서 사용했다. 누출 정도를 ‘Bottom Neck, Top-Shoulder, Upper-Shoulder, Mid-Shoulder, Low-Shoulder’ 등으로 구분해 경매 차트에 기재했다.

그는 50년간 시음한 와인을 전부 기록으로 남겼는데 그가 기록한 시음 노트는 대략 10년 간격으로 The Great Vintage Wine Book(1980), The Great Vintage Wine BookⅡ(1991), Vintage Wine: 50 Years of Tasting Three Centuries of Wine(2002) 등의 책으로 출간됐다.

소더비 와인 경매를 이끈 ‘세레나 서클리프’

크리스티에 브로드벤트가 있다면 소더비에는 세레나 서클리프가 있다. 사실 와인이 아닌 일반 물품의 경매로 치면 크리스티보다 소더비의 역사가 더 길다. 크리스티보다 22년 이른 1744년에 사무엘 베이커가 책 경매회사를 운영하며 시작된 소더비는 1778년 창업자의 조카인 존 소더비가 사업을 물려받으면서 책뿐 아니라 인쇄물, 지도, 메달, 동전 등으로 경매 영역을 넓혀나갔다.

하지만 이후 200년 이상 소더비는 와인 경매를 취급하지 않았고, 이는 온전히 크리스티의 영역이었다. 하지만 1991년 서클리프가 소더비에 들어오면서 소더비에도 새로운 역사가 시작됐다.

프랑스에서 통역 일을 하던 서클리프는 1971년 영국으로 돌아와 와인유통업에 몸을 담았다. 서클리프는 1976년 MW 자격을 획득했는데, 이는 여자로서는 두 번째 MW였다. 이후 그녀는 (1981), (1987) 등 두 권의 와인 관련 책을 집필하기도 했다.

소더비 와인 경매에서는 다른 사람의 자료는 참고하지 않고 온전히 서클리프의 와인 시음 노트만을 사용한다. 서클리프는 소더비에 입사하기 전에 이미 와인 전문가로 정평이 나있던 인물이었다.

소더비에서는 와인을 취급하기 위해서 크리스티에서 일하는 브로드벤트만한 인물이 필요했는데 그녀가 적임자였다. 소더비에 입사한 이후 그녀는 크리스티의 브로드벤트와 경쟁하면서 소더비의 와인 경매를 발전시켜 왔다.

이후로 크리스티와 소더비는 경쟁적으로 신세계인 미국의 여러 주와 호주에 진출하면서 세계 와인산업의 발전을 이끌어왔다. 최근에는 홍콩에도 진출해 많은 진기록을 세우고 있는데 이는 중국의 비약적인 경제발전도 한 원인이지만 와인 경매 활성화가 근본적으로 불가능한 국내 사정도 홍콩의 와인 경매 산업을 부추기는 요인이 되고 있다.

국내에서는 주세법상 개인이 주류를 판매할 수 없다. 주류 매출을 위해서는 반드시 국세청의 허가가 필요하다. 주세는 대한민국 역사상 가장 중요한 세원의 하나이기 때문에 어떠한 주류 거래도 주세를 피할 수 없다.

경매 역시 마찬가지다. 경매에서 와인을 팔려면 개인도 주류 매출허가가 있어야 한다. 이런 이유로 대한민국에서의 와인 경매는 사실상 불가능하다. 이 때문에 한국의 많은 와인 컬렉터들이 홍콩에서 열리는 크리스티나 소더비의 와인 경매를 이용하고 있는 실정이다.

김재현 하나은행 WM본부 이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