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남선 이대여성암전문병원장은 국제적인 암 전문의다. 그가 암이라는 질병에 관심을 가진 것은 1980년대 중반이었다. 선진국에서는 암환자가 폭발적으로 증가할 때였지만, 국내에서는 암환자가 지금처럼 많지 않던 초기였다. 그런데 미국 등 학회를 가면 폐암과 유방암 등에 대한 관심이 지대했다. 거기서 그는 한국도 앞으로 암환자가 늘 거라고 예상했다. 아내 수술을 직접 집도한 욕심 많은 의사
“암을 전공하게 된 보다 직접적인 계기는 백혈병에 걸린 소녀를 만나고 나서입니다. 인턴 시절에 백혈병에 걸린 여고생을 치료하게 됐는데, 그 모습이 너무 애처로워서 암을 전공해야 겠다고 결심하게 됐죠.”
남보다 일찍 암을 전공한 덕에 그는 의료계에 크고 작은 기록을 보유하고 있다. 한국 최초의 유방보존술 기록도 그중 하나다. 그는 학문을 하건, 사업을 하건 해외에 많이 다녀보라고 조언한다. 그가 한국 최초로 유방보존술을 시행한 것도 해외를 자주 다녔기 때문이다.
일찍이 암이라는 질병에 관심이 많았던 그는 미국 암학회에 갈 때면 늘 폐암과 유방암 이야기만 들었다. 그는 한국도 곧 그런 시대가 될 거라고 예상하고 유방암학회를 만들었다. 이탈리아 국립암센터 의사의 유방보존술을 보고 1986년 처음으로 한국에서 유방보존술을 시도한 것도 비슷한 맥락이었다. 처음 그가 유방보존술을 시도했을 때 선배들은 “어린놈이 뭐 그런 수술을 하느냐”고 질타했지만 지금은 유방보존술이 보편적인 수술이 됐다.
아내의 위암 수술을 직접 집도한 것도 세계에서 유래를 찾아볼 수 없는 진기록이다. 다행히 내시경을 통해 초기에 위암을 발견한 아내에게 그는 두 명의 의사를 추천했다. 위암 수술 권위자이자 그에게 박사 학위를 준 김진복 교수와 백 병원장 본인이었다. 남편의 말을 들은 아내는 그 자리에서 망설임 없이 그를 지목했다.
“처음에는 걱정도 됐죠. 의학계에는 VIP 신드롬이라는 게 있어요. 수술을 잘 하려다가 오히려 합병증 같은 부작용을 초래하는 것을 VIP 신드롬이라고 하는데, 주변에서 그런 사태가 벌어질까 봐 걱정을 많이 했어요. 당장, 수술을 잘못 해봐요. 처가에서 가만히 있겠어요?(웃음) 초기라지만 암이잖아요. 제 아내도 딸들에게 유언을 하고 수술실에 들어갔어요. 수술이 잘 돼서 천만다행이죠. 지금은 수영장을 가도 수술자국도 못 찾아요.”
팝송을 배우며 다진 실력으로 다섯 차례 무대에 오르기도
백 병원장이 건강관리에 있어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마음가짐이다. 생각에 따라 모든 것이 달라질 수 있다고 믿는 그는 좋은 생각을 많이 하고 즐겁게 생활하는 것이 건강관리에 중요하다고 말한다.
긍정적인 삶을 위해 백 병원장이 선택한 방법은 노래다. 그가 집도하는 암수술은 대부분 생사를 가르는 위험한 수술일 때가 많다. 의사로서 보람도 크지만 그만큼 위험부담도 크다. 백 병원장은 수술에서 받는 이 같은 스트레스를 노래를 통해 푼다.
세계적인 암 전문의인 그는 의료계에서 노래하는 의사로도 유명하다. 어려서부터 노래 부르기를 즐겼던 그가 노래의 매력에 흠뻑 빠져든 계기는 중학교 시절, 캐나다 선교사 출신의 영어 선생님을 만나면서부터다.
“그때는 노래로 영어를 배웠어요. ‘새드 무비’ 같은 팝송과 당시에 유행하던 재즈를 통해 영어와 문학을 배웠어요. 그때부터 재즈가 좋았어요. 미국 남북전쟁 이후 흑인들의 애환을 담은 재즈가 제 마음에 와 닿았다고 할까요.”
그때 배운 노래들은 먼저 외국 암학회에서 빛을 발했다. 딱딱한 주제 발표가 끝난 자리를 그의 노래가 채웠다. 그렇게 노래는 그의 중요한 취미가 됐다. 백 병원장은 지금도 이력서 취미란에 ‘외국어 배우기’, ‘시 쓰거나 읽기’와 함께 ‘노래하기’를 빠뜨리지 않는다.
오랫동안 갈고 닦은 그의 노래는 아마추어 수준을 넘어 공연으로 이어졌다. 그는 한국 1세대 재즈가수인 윤희정, 임백천, 최정원, 유열, 독일의 재즈그룹 살타첼로 팀과 다섯 차례 재즈 공연을 가진 재즈 뮤지션이다. 채소·과일 중심 식단과 다양한 비타민 섭취가 중요
“중요한 것은 긍정적인 마음입니다. 노래를 부르면 즐거워지고 웃게 됩니다. 자주 웃으며 긍정적인 마음을 갖게 돼요. 제게 긍정적인 마음은 건강한 삶과 젊음을 유지하는 비결입니다.”
즐거움과 행복은 과거나 미래에 있지 않고 바로 현재에 있다. 긍정적인 마음으로 지금 이 순간에 최선을 다하는 사람만이 즐거움과 행복을 누릴 수 있다. 그런 의미에서 그는 프랭클린 루스벨트 전 미국 대통령의 아내 엘리너 여사의 “Yesterday is a history, tomorrow is a mystery. Today is a gift, that is, present(어제는 역사고, 내일은 알 수 없고, 오늘은 선물이라는 거죠. 우리가 사는 날 중에서 오늘이 가장 아름다운 날입니다)”라는 말을 금과옥조로 여긴다.
병원장은 두 가지를 다 충족시켜야 한다. 의사로서 환자를 만족시켜야 하고, 병원을 경영하는 경영자의 역할도 간과해서는 안 된다. 그는 위신만 따지는 권위주의적인 병원장이 되고 싶지는 않다.
특히 병원의 경영인으로서 병원 구성원들과 관계에 있어 노래는 큰 도움이 된다. 그런 점에서 노래는 두 가지 일을 할 수 있도록 힘과 여유를 안겨준다. 특히 의사, 간호사 등 병원 식구들과 벽을 허무는 데 노래만큼 좋은 소통의 도구도 없다.
긍정적인 마음과 함께 그가 건강을 위해 신경 쓰는 것이 음식이다. 유방암 분야에서 세계적인 명의인 그는 일본 국립암센터에서 1년간 음식과 식습관을 연구한 독특한 이력을 가지고 있다.
그가 음식을 강조하는 데는 이유가 있다. “음식이 약”이라는 의성(醫聖) 히포크라테스의 말처럼 무엇을 어떻게 먹느냐에 따라서 건강한 삶을 유지할 수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음식도 암 연구의 일환이었습니다. 암환자들이 수술 후에 가장 힘겨워하는 것이 먹는 겁니다. 그러다 보니 자연 음식에 관심이 갔죠. 음식을 통해 섭취하는 것 중 중요한 게 항산화물질과 비타민 등입니다. 저도 항산화비타민, 종합비타민, 칼슘제 등을 30년 이상 먹고 있어요.
암환자들에게도 이 두 가지 음식을 권합니다. 한식은 이 두 가지를 모두 충족시키는 좋은 식단입니다. 비빔밥이 세계 5대 건강식이라고 하잖아요. 비빔밥에 들어가는 제철 나물이나 채소는 정말 좋은 식품입니다.”
고루 잘 먹는 편인 백 병원장은 대신 짜고 딱딱한 음식은 가급적 피한다. 짜고 딱딱한 음식은 맵고 뜨거운 음식보다 위에 안 좋기 때문이다. 또한 매일 과일과 채소를 챙긴다. 과일과 채소에는 섬유질이 풍부한데 이론적으로 하루 29g의 섬유질을 먹으면 대장암을 예방할 수 있다고 한다.
“건강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섭생도 중요하고 운동이나 숙면도 중요하죠. 하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긍정적인 마음입니다. 앞서도 말했지만 지금 이 순간에 최선을 다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어제는 역사고, 내일은 알 수 없고, 오늘은 선물이다.’ 이 말을 꼭 명심하기 바랍니다.”
백남선
현 이대여성암전문병원장
대한임상암예방학회 이사장
대한암협회 부회장
서울대 의과대학 졸업
서울대 의대대학원 석사·박사
건국대병원장
원자력병원장
아시아 유방암협회 회장
글 신규섭·사진 이승재 기자 wawoo@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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