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때 부동산 전문 변호사였던 제스 잭슨(Jess Jackson)은 캘리포니아 와인의 혁신가로 불리며 와인 명가 ‘켄달 잭슨(Kendal Jackson)’을 일구었다. 잭슨, 그의 인생 테루아르는 이단아의 열정과 먼 거리를 내다볼 줄 아는 통찰력이었다.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즐겨 마신다는 켄달 잭슨의 오늘을 있게 한 창업자 잭슨, 와인업계의 아웃사이더에서 캘리포니아에서 가장 성공적인 와이너리를 만들기까지 스토리를 담았다.

미국 와인 시장에 ‘샤도네이 와인 붐’을 일으키고 캘리포니아 와인의 혁신가로 불리며 ‘켄달 잭슨’이라는 레이블을 와인 명가의 반열에 올린 제스 잭슨. 그는 원래 샌프란시스코에서 성공한 변호사였다.

1980년대 초 와인 사업에 뛰어든 것도 변호사 일을 하면서 취미로 농장을 매입하다 우연히 발을 들인 것이다. 어릴 적 이탈리아계 출신인 이웃집에서 와인을 만들던 것이 떠올라 매입한 과수원을 포도밭으로 개조해 포도를 생산했다. 정작 재배한 포도를 살 와인회사가 없자 직접 와인을 만들기 시작했고 와인 사업에 흥미를 느끼기 시작한다. 잭슨의 와인 사업은 누구와도 달랐다.

그는 역사나 전통의 나파밸리 와인업계 사람들과 전혀 다른 시각을 갖고 20년이 채 안 되는 기간에 켄달 잭슨을 미국 내 1위 레이블 와인으로 만든다. 처음부터 잭슨은 쉬운 길을 택하지 않았다. 쉽게 만들어 저렴한 가격의 와인을 팔았다면 지금의 켄달 잭슨은 없었을 것이다.

와인을 연구하고 당시 와인업계의 맹점을 찾아 최고급 와인과 실용적인 저가 와인의 간극을 줄일 수 있는 뉴 럭셔리 와인을 탄생시켰다. 이것이 켄달 잭슨의 시작이자 명실상부한 와인명가 자리의 반석이 됐다.
[Wine Story] 제스 잭슨, 캘리포니아 와인의 New Wave를 일구다
프리미엄 와인, 매스티지 전략은 통(通)했다

처음부터 잭슨은 품질 개발과 차별화된 맛을 가진 와인을 만드는 초심을 잃지 않았다. 일반적으로 구대륙 와인처럼 포도원의 지리적 위치를 기준으로 와인을 평가하는 분위기보다는 오로지 와인의 맛과 특징을 중요시했다.

나파밸리 최고급 와인에 버금갈 복합적이고 풍부하며 미묘한 맛의 조화를 이루는 와인을 만들겠다는 꿈을 키운 것. 잭슨은 미리 정해 둔 맛과 일치하는 와인을 블렌딩하기 위해 다양한 실험적 시도를 멈추지 않았다. 이렇게 잭슨이 사용한 방법은 프리미엄 와인제조의 새로운 물결을 낳았다.

정해진 비율에 따라 블렌딩해 나오는 값싼 와인과는 달리 그는 와인제조 전문가와 와인양조학의 원리를 적용해 와인 블렌딩을 한 단계 업그레이드시켰다. 결국 소비자들이 와인을 평가할 때 와인을 제조한 포도원이 어디인지보다는 와인 맛이 어떤지에 더 높은 가치를 둔다는 것을 잊지 않았다.

잭슨식 와인 제조방법의 핵심은 당도와 산도의 적절한 조화로 독특한 끝 맛을 이루는 블렌딩에 있는데 이러한 과학적 접근은 소비자들의 혀를 정확히 매혹시켰다. 이렇듯 생산량이 늘어도 와인 품질의 일관성은 지키는 프리미엄 와인의 대규모 생산은 켄달 잭슨 성공의 첫 열쇠가 됐다.

잭슨의 첫 와인은 1982년 ‘켄달 잭슨 빈트너스 리저브 샤도네이(Kendal-Jackson Vintner’s Reserve Chardonnay)’로 대성공을 이룬다. 세계 유수의 발명품들이 실수와 우연이 결과물이듯 이 와인도 재미있는 비하인드 스토리로 탄생됐다.

부부의 성을 따서 ‘켄달 잭슨’이라고 회사명을 짓고 샤도네이 포도를 수확해 화이트 와인 양조를 시작했지만 예상치 못한 사고가 발생했다. 일부 발효 탱크에서 발효가 되지 않아 첫 와인 생산을 망쳐 버린 것.

전문가들조차 모두 버리라고 한 이 와인을 잭슨은 정상적으로 발효된 와인과 섞어 만들었고 이렇게 탄생한 것이 바로 약간의 단맛이 나게 된 빈트너스 리저브 샤도네이였다. 가벼운 단맛과 과일향이 풍부한 샤도네이 와인은 순식간에 소비자들의 입맛을 매혹시켰고 그해 겨울 전미 와인대회에서 미국 와인 가운데 최초로 플래티넘 메달을 수상하기에 이른다.
첫 와인‘켄달 잭슨 빈트너스 리저브 샤도네이’의 성공 이래 모험과 도전으로 세계적인 명가 와이너리를 만들어낸 제스 잭슨
첫 와인‘켄달 잭슨 빈트너스 리저브 샤도네이’의 성공 이래 모험과 도전으로 세계적인 명가 와이너리를 만들어낸 제스 잭슨
매스 부티크 와인으로 불리기까지

“두려움이 나를 움직이게 했다”고 말하는 잭슨은 변화를 두려워하지 않고 성공 모델을 늘 수정, 확장해 나갔다. 그의 타고난 비즈니스맨의 역량은 와인 사업으로 자수성가할 수 있게 한 원동력이 됐다.

2002년 1만3000에이커에 이르는 포도 재배지와 15개 와이너리 소유권과 지배권을 확보한 뒤로도 로버트 몬다비를 비롯한 유수의 와인 제조업자들이 저가 와인으로 브랜드를 확장했지만 잭슨은 최근까지 매스티지 와인 이하 가격대의 와인에는 눈길도 주지 않고 있다. 와인의 맛과 품질을 보는 소비자들의 눈높이는 갈수록 높아질 것이라는 그의 고집 때문이다.

켄달 잭슨은 품질에 따라 세 등급의 와인을 만드는데 그랑 크뤼에 해당하는 마이크로 크뤼(micro-cru), 30달러 정도의 슈퍼 프리미엄급의 두 번째 등급, 세 번째 등급은 프리미엄 와인이다. 켄달 잭슨 빈트너스 리저브가 여기에 속한다.

“가격대와 상관없이 켄달 잭슨 와인은 같은 가격대의 다른 와인들 중 품질과 맛이 가장 우수하다”고 잭슨은 자신 있게 설명한다. 켄달 잭슨 와인을 두고 ‘매스 부티크(mass boutique)’ 와인이라 표현한다.

“소비자들이 중요합니다. 보통 사람도 쉽게 마실 수 있는 훌륭한 와인을 지향하고 있습니다. 프랑스 와인을 우리 힘으로 미국화했고 여러 포도원에서 나는 포도로 수제작 와인을 대규모 생산하고 있습니다.”

와인업계의 아웃사이더로 출발한 잭슨은 켄달 잭슨의 성공 요인을 이러한 ‘삐딱한 시각’에서 찾는다. 남들과는 다른 방식, 창의성, 그리고 그로 인해 얻는 자유가 전통 와인 제조방식의 탈피를 가져왔던 것이다.

잭슨은 지난 4월 21일 캘리포니아 주 기셔빌 와이너리에 있는 자택에서 암으로 숨졌다고 미 언론이 전했다. 미 경제전문지 포브스에 따르면 잭슨은 작년 기준으로 재산이 18억 달러가 넘는 것으로 추산돼 ‘미국 400대 부호’에 포함됐다. 미국의 와인 거장이 세상을 떠난 이날 켄달 잭슨의 모든 직원은 자신의 친구이자 멘토였던 그를 기리며 추모 휴일을 가졌다고 한다.

이지혜 기자 wisdom@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