햇살이 좋으면 좋은 대로, 촉촉하게 비가 내리는 날엔 또 그런대로 찾고 싶은 창가 하나를 발견했다. 80년 된 한옥이 주는, 그 어떤 세련된 인테리어보다 편안한 느낌의 공간 안에서는 커다란 창을 통해서도, 천장을 통해서도 자연광을 맞이할 수 있다. 서울 통의동 한옥 이탈리안 레스토랑 ‘라 포르타(La Porta)’에서다.
라 포르타식 ‘닭한마리’. 다리 살과 가슴살을 스테이크처럼 붙여 68도로 저온 조리한다. 접시에는 여러 가지 콩을 끓여 만든 스튜를 깔고 쪽파도 함께 얹어낸다.
라 포르타식 ‘닭한마리’. 다리 살과 가슴살을 스테이크처럼 붙여 68도로 저온 조리한다. 접시에는 여러 가지 콩을 끓여 만든 스튜를 깔고 쪽파도 함께 얹어낸다.
최근에 알게 된 취재원 한 명이 있다. 전문직에 종사하는 그는 와인과 음식에 관한 열정과 관심이 넘치는 미식가 타입. 통의동의 이탈리안 레스토랑 ‘라 포르타’는 그가 기자를 처음 만나던 순간부터 칭찬을 아끼지 않았던 곳이다.

그런데 식당이 한옥이란다. 이탈리아에서 수학한 셰프에다, 한옥에다, 손님이 메뉴를 고를 수도 없고 그저 나오는 순서대로 먹어야 한다는 그곳은 기자의 ‘촉’을 한껏 세워 올리고야 말았다.
[Gourmet Report] 한옥에서 만나는 이탈리아의 ‘맛’ La Porta
가려 받는 게 아니라 ‘제대로’ 받는 손님

털털한 이탈리아노 같은 민윤석 오너셰프는 영업을 하지 않는 월요일을 통째로 기자에게 내주었다. 메뉴판도 없는 레스토랑의 주인은 어떤 요리를 사진으로 담아갔으면 하느냐고 물었다. 글쎄…. 장을 보며 그날의 메뉴를 정한다는 그에게 별달리 할 말이 없었다. 만들어 주는 대로 진행하는 수밖에.

사실 민 셰프에게 요리는 인생에 있어서 두 번째 도전이다. 컴퓨터 프로그래머로 12년을 일하다 더 이상은 미룰 수 없다며 남몰래 이탈리아의 유명한 요리학교인 알마(ALMA) 서울분교를 다녔단다.

그러다 결국 가방 하나 들고 무작정 이탈리아로 건너갔고, 중부 에밀리아 루마냐에 있는 알마 본교에서 정통 이탈리아 요리를 배운 뒤 이탈리아 식당 주방에서 허드렛일을 시작했다.
[Gourmet Report] 한옥에서 만나는 이탈리아의 ‘맛’ La Porta
그 일이 손에 익을 즈음부터는 이탈리아 방방곡곡을 여행하며 요리란 요리는 다 먹어봤다. 본토 요리를 공부하는 유학생에게도 기름기 많고 짠 이탈리아의 정통 요리는 힘든 음식이었다고.

귀국 후에는 한옥부터 찾아 헤맸다. 운이 좋게도 80년 된 통의동 한옥 건물주가 실내 개조를 허락했고, 2년 전 라 포르타(이탈리아어로 ‘문’이라는 뜻)라는 이름으로 문을 열었다.

이탈리아 정통 요리에 그는 한국인 특유의 손맛을 곁들였다. 짠맛 대신 삼삼함을, 느끼함 대신 기름기 쏙 빼 야들야들한 고기를, 이탈리아 정통 소스 대신 한결 가벼워진 한국적 소스를 연구하고 구현하는 민 셰프의 솜씨에 사람들은 절로 입소문을 내 주었다.

“돈 많이 벌고 싶은 욕심 없다”는 그의 식당에는 테이블 4개가 고작이다. 점심 때 4테이블, 저녁에 4테이블. 다 합해봐야 하루 최대 24명 손님이 전부다. 예약은 필수지만 메뉴를 고를 수도 없다. 민 셰프가 장을 보고 나야 그날의 메뉴가 정해지기 때문. 간혹 “손님을 가려 받느냐”는 오해 아닌 오해를 받지만, 사실 알고 보면 손님을 ‘제대로’ 받고 있는 셈이다.

매일 받아도 같지 않은 상차림

라 포르타를 찾는 사람들은 크게 두 가지를 칭찬한다. 첫째는 강남 지역의 레스토랑에 비해 착한 가격이요, 둘째는 가격에 비해 감동을 주는 요리의 퀄리티다. 점심은 5단계, 저녁은 7단계로 서브되는 코스요리는 접시가 떠난 자리마다 다음 접시를 기다리는 설렘이 대체된다.

접시가 테이블에 닿는 순간, 셰프가 들인 정성을 짐작하고도 남겠다. 그래서일까. 라 포르타는 주한 이탈리아 대사관 직원들, 금융인, 청와대 공무원, 방송인 등이 자주 찾는‘아는 사람만 아는’ 레스토랑이다.
[Gourmet Report] 한옥에서 만나는 이탈리아의 ‘맛’ La Porta
민 셰프가 기자를 위해 제일 먼저 준비한 요리는 이탈리아 북부 피에몬테 지역의 전통 요리인 ‘비텔로 토나토(Vitello Tonnato)’. 날이 더울 때 차갑게 먹는 송아지 고기 요리로 육수를 붓고 오븐에서 64도로 푹 삶아 낸 엉덩이 살을 얇게 저며 돌돌 말아 낸다.

멸치젓을 넣은 소스는 부담스럽지 않게 짭조름해 담백한 고깃살과 조화를 이루는데, 맨 아래 깔린 당근을 함께 잘라 먹으면 식감 200%. 와인 한 잔 생각이 절로 난다.

라 포르타 소믈리에가 추천한 와인은 오크 숙성으로 산도가 높은 ‘키안티 클라시코 리세르바(Chianti Classico Riserva)’. 쇠고기 요리는 산도 높은 레드 와인과 궁합이 잘 맞는다는 귀띔이다.

육류 요리의 바통을 이어받는 것은 한치 샐러드. 제주산 생물만 고집한다는 셰프의 말을 들어서일까 쫄깃쫄깃한 한치 한 점에 펜넬, 오렌지, 아스파라거스를 고루 집어서 한 입에 넣고 씹으니 새콤달콤한 맛이 지친 마음을 위로한다.

다이어트 중인 여성이라면 셰프가 작명했다는 ‘닭한마리’를 추천한다. 다리와 가슴살 모두 먹을 수 있으니 ‘닭한마리’라고. 콩을 끓여 만든 스튜에 닭고기를 찍어 쪽파와 함께 먹으니 영양식이 따로 없다.

다섯 접시, 여섯 접시 어느 하나 같지 않고, 매일 가도 같은 메뉴 하나 없는 라 포르타의 요리는 민 셰프의 다이내믹한 삶을 닮은 듯하다.

위치 서울시 종로구 통의동 27번지
전화 02-733-2023, www.laporta.co.kr
영업시간 점심 11시 30분부터, 저녁 6시부터(월요일 휴무)
가격 런치코스 4만5000원, 디너코스 6만8000원,
특별주문 시 8만8000원(부가가치세 포함). 이탈리아 와인 50여 종
기타 코스요리라 사전 예약은 필수. 주차는 150m 거리에 위치한 유료 주차장 이용


글 장헌주·사진 이승재 기자 chj@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