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퇴자들은 자신의 노후설계와 함께 자녀에게 자산을 이전 할 계획을 세운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증여 이전에 노후에 대한 확실한 계획을 세우라고 당부한다. 노후설계에 간과해서는 안 될 10가지 체크 포인트를 살펴본다.

얼마 전 65세 된 고객이 34세 된 결혼한 외동아들에게 증여를 하고자 한다며 상담을 신청했다. 필자는 의례적으로 어떤 형태의 자산을, 얼마나, 언제 증여하고자 하는가에 대한 정보를 파악했다. 물론 상담은 피상적으로 진행됐다.

하지만 왜 증여하려 하는가에 대한 질문을 하자 고객의 하소연은 끝이 없었다. 고객은 얼마 전 운영하던 사업체를 처분하고 충분한 여유자금으로 남부럽지 않은 노후생활을 하고 있었다.

할 일 없이 하루하루를 보내는 것도 무료하고 아들과 손자가 보고 싶어도 직장생활을 하고 있는 아들이 너무 바빠 한 달에 한 번도 얼굴 보기가 힘들다고 했다. 결국 고객은 자산 중에서 10억 정도 되는 돈을 증여해 아들의 생활을 좀 편하게 만들어주면 자주 볼 수 있지 않겠나 하는 이유에서 증여를 계획하고 있다고 했다. 이렇게 한꺼번에 사전증여를 해주면 아들을 자주 볼 수 있을까.

생각이 여기에 미치자 필자는 “병풍 뒤 금고 속에 돌멩이가 효자, 효부 만든다는 이야기 들어보셨죠”라고 말하고 차라리 매주 한 번씩 방문할 때마다 현금으로 100만 원씩 주는 방법을 제안했다. 10억이면 1년을 대략 50주로 잡아도 20년은 꾸준히 매주 한 번은 자식과 손자를 볼 수 있을 것이다. 물론 고객은 웃으며 크게 만족해하셨다.

목표가 분명하다면 아주 단순히 해결책을 찾을 수 있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목표를 간과한 채 복잡하기만 한 방법을 찾고 있는 경우를 너무나 많이 볼 수 있다. 노후를 위한 은퇴설계도 마찬가지다.

대부분의 금융권에서 제안하는 은퇴설계가 노후생활에 필요한 자금이 얼마이고 이를 마련하려면 어떠한 플랜이 필요한가에 집중돼 있지만, 은퇴설계에 있어 가장 우선적으로 고려돼야 할 것은 재무적인 요소보다 비재무적인 요소라고 생각된다.

비재무적인 요소의 이해를 통해 재무적인 플랜을 훨씬 더 구체적이고 실천 가능하게 만들 수 있다. 은퇴설계에 있어 비재무적인 요소에는 어떠한 것들이 있고 어떠한 측면이 고려돼야 하는지 살펴보자.
[Risk Care] 은퇴설계, 돈보다 우선 돼야 하는 것들
1. 꿈 : 평균수명이 80세를 넘어 90, 100세까지 바라보는 오늘날 노후의 개념은 정해진 객관적 기준에 의한 것이 아니라 스스로 노후라고 생각하는 시점부터가 노후다. 수명이 길어지면서 노후도 길어지고 있다.

젊었던 30~40대 또는 50대의 꿈이 가족 또는 생계 중심의 꿈이었다면 인생의 후반기인 노후에는 자기 중심의 꿈을 가져야 한다. 세상에서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가치가 무엇인지, 나의 열정과 에너지를 쏟아 붓고 싶은 것은 무엇인지를 생각해 진정으로 원하는 꿈 2~3가지를 정하고 우선순위를 정한다.

긴 은퇴생활 동안 꿈 하나로는 부족하기 때문이다. 꿈은 일을 통해서 이루어진다. 노후의 꿈을 실천하기 위해 어떤 일을 할 것인지 정한다. 잘하는 일, 재미있는 일을 찾는 것이 중요하다. 단조로운 인생보다 생동적이고 활동적인 인생이 더 가치가 있으므로 현재와 다른 인생을 살아가는 것도 고려해볼 필요가 있다.

2. 일 : 은퇴를 여가만으로 채우기에는 기간이 너무 길 뿐만 아니라 한계가 있기 때문에 은퇴 후에도 일은 있어야 한다. 은퇴 후의 일은 소망을 이룰 수 있는 천직이어야 한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천직은 찾기 어렵다.

지금까지 자신의 인생에서 정말 소중히 해온 것이 무엇이었던가를 확인하는 과정에서 천직을 발견할 수 있다. 평소 소망에서 일거리를 찾으면 된다. 소망은 보통 막연하고 뚜렷한 형태를 가지고 있지 않으므로 소망을 명확히 하면 천직을 찾을 수 있다.

은퇴 후에 돈이 부족할 위험이 있으므로 천직이면서 돈도 되는 일을 찾는 것이 좋다. 노년기 은퇴생활에 바람직한 일거리에는 몇 가지 고려해야 할 조건이 있다.

첫째, 체력적인 한계를 벗어날 수 있는 일거리. 둘째, 필요 이상의 책임이 부과되지 않는 일거리. 셋째, 예상 외의 자본이 많이 들어가지 않는 일거리. 넷째, 유행을 타지 않는 일거리. 다섯째, 보수에 대응하는 부가가치가 있는 일거리. 여섯째, 정년 전까지 충분한 준비할 수 있는 일거리. 일곱째, 삶의 보람과 실익의 조화를 이룬 천직.

3. 건강 : 은퇴 계획도 완벽하게 세워놓고 돈도 충분하지만 정작 건강이 나빠 은퇴생활을 제대로 즐기지 못한다면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반대로 건강하지만 은퇴생활을 즐길 돈이 부족하면 이것도 문제가 있다. 따라서 행복한 은퇴생활을 위해서는 건강과 돈은 기본적으로 갖추어야 할 요소다.

4. 인간관계 : 직장생활을 하다가 은퇴할 경우 가장 고통스럽게 느끼는 것 중 하나가 소속감의 박탈이다. 은퇴생활에서는 직장의 소속감을 가족, 친구, 사회지인들 속에서 찾아야 한다. 따라서 은퇴 전 경제활동기 때와 다른 새로운 가족관계, 사회관계를 정립해야 한다.

은퇴 후 노년기는 부부 간의 관계, 자녀와의 관계를 되돌아보고 새로운 국면으로 승화할 수 있는 시기다. 또한 과거보다 열심히 노력해 기존의 친구는 물론 새로운 친구도 사귀어야 하는 과제에 직면하게 되는데 이를 얼마나 잘 수행하느냐에 따라 노년의 모습이 결정된다.

5. 취미 : 나이가 들수록 적극적인 취미활동이 필요하다. 취미활동을 통해 스트레스를 해소하고 활기를 찾을 수 있기 때문에 취미활동을 적극적으로 할수록 노화 속도는 느려진다. 좋은 취미활동은 새로운 생활리듬을 찾게 해준다.

6. 봉사활동 : 은퇴생활 기간의 자원봉사는 무료한 생활에 활력을 불어넣어 주며 그 활동을 통해 삶의 보람과 만족감, 나아가 마음의 평화를 얻을 수 있다. 또한 본인이 사회에 유익한 존재라는 긍정적인 느낌과 더불어 잃어버렸던 사회적 지위와 역할을 되찾는 효과가 있다.

권위와 체면을 중시하는 유교주의적 사고, 남보다 가족을 우선하는 가족주의적 성향, 보수적이고 자식 의존적 노후생활과 사회적 역할 상실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해 만들어진 수동적 성향 때문에 한국의 고령자들은 봉사활동을 하는 비율이 낮다.

노후에 봉사활동을 하는 가장 큰 이유는 자신이 중요한 존재로서 사회에 참여하고 있다는 느낌을 가질 수 있고, 자신의 경험과 지혜, 그리고 열정의 가치를 인정하는 사람들에게 헌신함으로써 희열을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7. 평생학습 : 노후의 학습은 새로운 노후 목표를 설정하고 도전하는 과정에서 삶에 대한 애착을 가지고 활기찬 생활을 유지할 수 있도록 해준다. 최근 들어 산업이 고도화되고 수명이 길어지고 고학력 사회가 도래하면서, 늘어난 자유 시간을 여러 일에 종사하려는 희망을 가진 사람들이 증가하면서 다양한 학습 니즈가 발생했다.

따라서 평생학습이 중시되고 있다. 젊게 살려면 배움을 멈추어서는 안 된다. 배움을 통해 자신의 세계를 넓힐 수 있다. 은퇴는 직장에서 물러난 것이지 인생에서 물러난 것이 아니다. 따라서 학습은 평생 지속해야 한다. 나이가 들어도 자기계발을 위해 즐겁게 공부해야 한다.

8. 주거 : 노년기에는 생활 영역의 축소, 환경에 대한 적응능력 약화로 인해 주거환경의 중요성이 더욱 높아진다. 고령자는 대부분 원래 살던 곳에서 계속 살기를 원한다. 떠난다 하더라고 가까운 거리 내에서 살고자 한다.

전혀 낯선 곳에서 살 경우 적응하는 과정에 많은 스트레스를 받을 수 있으며 신체적으로나 심리적으로 갖가지 부작용을 겪을 수 있으므로 가능하면 원래 살던 곳에서 노년을 보내는 것이 좋다.

현재 살고 있는 곳은 사회적, 문화적, 물리적으로 익숙한 환경이므로 노화 과정을 겪더라도 쉽게 적응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경제적 이유가 아님에도 은퇴 후에 과거와 다른 새로운 삶을 살기 위해 살던 곳을 떠나 새로운 환경에서 새로운 경험을 하면서 새롭게 시작하려는 사람도 있다.

아름다운 자연환경, 기후가 좋은 곳에서 살고자 하는 욕구, 고향이나 가족과 가까운 곳에서 살고자 하는 욕구로 인해 현 거주지를 떠나 이주를 하기도 한다. 주거환경은 인간에게 가장 필수적인 생활환경이며 삶의 질을 결정하는 중요한 요인이다.

9. 웰다잉(well-dying) : 노인들의 가장 큰 관심사 역시 건강하게 잘 사는 것뿐만 아니라 편안히 잘 죽는 것이다. 2006년 100세 이상 노인 796명을 대상으로 직접 조사한 통계청 자료에 의하면 이들의 가장 큰 소망은 ‘편안히 빨리 죽는 것(23.8%)’이었다.

그 다음으로 자손 잘되기(21.8%)와 건강 회복(16.8%) 순이었다. 의식주 개선과 의료기술의 발달로 연장된 수명은 죽음을 염두에 두고 살아가는 기간을 길게 만들었다. 그러다 보니 편안히 잘 죽는 법인 ‘웰다잉’에 대한 관심이 커지고 있다.

‘웰다잉’이란 인생의 마무리를 밝고 아름다우며 품위 있게 한다는 의미다. 앞으로 살아가야 할 삶에 대한 생각만으로도 머리가 아픈데 굳이 죽음을 심각하게 생각할 필요가 있을까라고 반문할지 모르겠지만 죽음을 인지한다는 것은 곧 삶을 인지한다는 것이므로 충분히 생각할 필요가 있다.

존엄하고 평화로운 죽음을 맞이하려면 참된 삶을 살아야 한다는 것은 자명하다. 죽음을 진지하게 생각할수록 삶도 진지해진다. 다음은 웰다잉을 위한 자신의 삶 되돌아보기 실천 방법이다.

첫째, 자신의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것 10가지를 적는다. 예를 들어 돈, 가족, 건강, 재미, 영성, 권력, 우정, 일, 미모 등을 적는다. 둘째, 위에서 적은 항목 중에서 가장 잃어버리기 싫은 것을 순서대로 나열한다. 셋째, 실제로 자신의 삶에서 가장 우선하는 것이 무엇인지 순서대로 적는다. 넷째, 둘째와 셋째를 비교한다.

둘째와 셋째 양쪽이 동일한 항목에 똑같은 순서라면 지금 충분히 조화로운 생활을 하고 있는 것이다. 만일 둘째 항목에서 제일 먼저 가족을 택했다면 지금 가족과 단란한 시간을 보내기 위해 필요한 생각 또는 행동을 하고 있는지 되돌아보고 그렇게 하지 않고 있다면, 후회 없는 삶을 살기 위해 현재의 생활을 어떻게 바꿔야 할 것인지 고민해 봐야 한다.

은퇴 설계의 재무적인 설계에 앞서 앞에서 살펴본 9가지 비재무적인 요소들을 먼저 고려한다면 훨씬 구체적이고 현실적인 재무 설계가 가능하고 실천 가능성도 높아질 것이다. 많은 아마추어 골퍼들은 홀인을 하기 위해 샷을 하지만 에이밍이 잘못됐는지 인지하지 못하고 홀이 있는 위치와 무관하게 공을 날린다.

김해인 _ 삼성화재 FP센터 FP팀장 haein.kim@sams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