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성주 성주그룹 회장
김성주 성주그룹 회장
MCM 은 독일을 대표하는 가죽제품 브랜드로서 성주그룹이 라이선스를 가지고 시작했지만, 2005년 독일 본사를 인수하면서 한국의 자랑스러운 브랜드가 됐다. 양쪽 어깨에 맬 수 있는 검정 자카드 소재의 MCM 백팩은 가벼우면서도 넉넉한 수납공간이 있어 세미 정장을 자주 입는 여대생들에게는 한때 머스트해브 아이템이었다.

이 백팩이 여대생들의 잇(it) 아이템이 된 배경에는 김성주 성주그룹 회장의 공로가 컸다. 라이선스를 받는 상황에서 가죽가방만 팔던 본사에 실용적인 소재의 자카드 백팩을 제안했을 때만 해도 본사의 반응은 반신반의했다고 한다.

하지만 문제(?)의 백팩은 100만 개나 팔리는 성공을 거뒀다. 그의 열정은 결국 성주그룹이 MCM 브랜드와 경영권을 인수할 수 있게 한 원동력이 됐고, 그는 연매출 650억 원이던 브랜드를 4년 만에 연매출 2200억 원의 명품 브랜드로 키워냈다.

‘비한국적’ 여성 패션

큰 키에 짧은 커트 머리, 진한 립스틱과 세미 스모키 아이로 포인트를 주는 김 회장의 패션은 ‘한국적’으로 보이지 않는다. 세계 어디에서도 한국인, 특히 한국 여성을 알아보는 건 쉽다. 남성에게 강하게 보이지 않도록 화장도 옅게, 옷도 수수하게, 보호 본능을 일으키는 스타일이 대부분이다. 이는 ‘천생 여자’임을 간접적으로 표시하는 신호이기도 하다.

하지만 김 회장에게서는 그런 모습을 찾을 수 없다. ‘여성도 군대를 가야 한다’, ‘여성들이여! 야망을 가져라’, ‘여성도 남성들 못지않게 당당하고 똑똑하고 자신의 능력을 마음껏 발휘해야 한다’고 외치는 그의 패션은 ‘한국의 칼리 피오리나(전 휴렛팩커드 회장)’를 보는 듯하다.

패션은 내가 어떤 사람인지, 어떤 사람이고 싶은지에 대한 공식적인 표현이다. 움직임, 자세, 그리고 손짓 하나까지 ‘에너지’가 느껴지는 김회장. 남성 의존적인 한국적 여성 패션에서 벗어나 ‘여성 해방, 현대적 시크함’이 느껴지는 패션은 흡입력이 있다.

나이란 함정에 빠지지 않다

[Fashion of Celeb] 패션기업 CEO 패션의 키워드는 현대적 시크함
패션회사 대표이지만 김 회장은 명품을 잘 사지 않는다고 알려져 있다. 차도 중형 국산차에, 중간 가격대인 막스앤스펜서의 납작한 구두는 몇 년째 신고 있다고 한다.

하지만 공식석상에서 그의 패션은 남다르다. 나이라는 함정에 빠지지 않고 과감하다. 빨강 재킷과 빨강 립스틱, 그리고 반짝이는 페이톤 검정 부츠, 네크라인 전체를 덮는 볼드한 액세서리의 매칭은 50이 넘은 여성으로 보기 힘들다.

MCM 컬렉션은 마치 김 회장을 닮은 듯 나날이 새롭고, 도전적이며, 창의적이다. 패션은 늘 변화를 갈급하는 분야이고, 사람들은 참신한 디자인에 매력을 느낄 수밖에 없다.

MCM도 김 회장을 만남으로써 패트리샤 필드와 손을 잡고 패트리샤 필드 컬렉션, 팝아티스트 크랙 레드만 컬렉션, 일본의 패션 브랜드인 페노메논과 협업해 호피무늬가 돋보이는 과감한 레오파드 소재의 페노메논 컬렉션 등을 선보였다. 이제 대한민국은 루이비통 월드가 아닌 ‘ MCM 월드’가 됐다.

매스큘린 페미닌 스타일

남성복에만 쓰였던 저지 같은 소재를 사용해 자신의 디자인에 남성복의 분위기를 가미한 코코 샤넬의 시도는 김 회장의 정장 룩에서 재탄생되는 듯하다. 여성 정장 슈트도 이상하게 그가 입으면 다르다. 그는 패션계의 ‘잔다르크’ 같다.

그는 패션 유통업계에서 오랫동안 외로운 ‘부패와의 전쟁’을 치르며 결국 성공을 이뤄냈다. 록스타 같은 짧은 쇼트 커트에 클래식한 빨강 립스틱, 그리고 넓은 프릴 장식이 정장 네크라인 밖으로 빠져 나와 만개한 꽃처럼 포인트를 주는 셔츠 패션은 어떤 여성 CEO도 시도하기 힘든 섹시함과 특별한 강렬함이 느껴진다. 빨강, 파랑, 노랑 등 자신감 있어 보이는 원색의 정장은 무채색이나 모노 톤의 옷과 매치해 하이 콘트라스트를 주면서 정리된 느낌을 준다.

포인트는 레드, 하이라이트는 네크라인

가능한 한 일하기 편한 바지와 셔츠를 선호하고 치렁치렁한 귀걸이를 하지 않는다고 해 그의 패션이 밋밋하다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그는 큰 키와 쇼트 커트로 자칫 허전해 보일 수 있는 목에 항상 포인트를 준다.

네크라인에 러플이 풍성한 블라우스를 선택하고 주로 볼드한 초크 목걸이, 브로치나 스카프로 네크라인에 하이라이트를 주어 실루엣상 큰 키의 허전함을 상쇄시킨다. 대신 나머지 주얼리는 단순하게 간다. 그리고 마무리는 빨강 혹은 진한 핑크 립스틱이다.

여기서 ‘옥의 티’를 하나 꼽자면 진한 립스틱을 바를 때의 ‘원 포인트 메이크업’ 룰을 지키지 않은 것. 아이 메이크업을 노메이크업 또는 누드로 했다면 더 정돈돼 보이지 않았을까.

글 김사랑 전 명지대 패션디자인 강사. 현 엘시티 프로젝트 마케팅 스페셜리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