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자교육 활동을 하면서 자주 받는 질문이 있다. “제가 머지않아 환갑이 되는데, 그동안 먹고 살면서 자식들 교육시키는 데 돈을 쓰다 보니 모아 놓은 돈이 얼마 안 됩니다. 어떻게 이 돈으로 재테크를 잘해서 노후자금을 마련할 방법이 없을까요.”
노후생활비가 부족하다면 상황에 맞게 사는 노력이 필요하고, 자금이 풍족하다면 재산을 아름답게 쓰는 방법을 생각해야 한다.
노후생활비가 부족하다면 상황에 맞게 사는 노력이 필요하고, 자금이 풍족하다면 재산을 아름답게 쓰는 방법을 생각해야 한다.
통계상으로만 보면 한국인이 노후를 위해 준비한 자금이 턱없이 부족함을 알 수 있다. 지난해 미래에셋 투자교육연구소가 수도권에 거주하고 있는 베이비부머 세대(1955~63년 사이의 출생자) 500명을 대상으로 앙케이트 조사를 한 일이 있다.

이분들의 평균 총 자산은 5억4000만 원 정도였고, 은행이나 신용금고 등에서 빌린 돈 즉, 차입금이 평균 6000만 원 정도였다. 5억4000만 원에서 6000만 원을 뺀 4억8000만 원이 순자산 즉, 자기자본인 셈이다.

50대 후반에 4억8000만 원 정도의 재산이 있으면 그럭저럭 노후자금을 충당할 수 있지 않겠는가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그런데 문제는 자기자본 4억8000만 원 중에서 주거용 주택의 평가액이 4억6000만 원이라는 점이다.

다시 말하면 가용 금융자산은 2000만 원 정도밖에 안 된다는 뜻이다. 우리나라 전국 평균을 계산해 봐도 가용 금융자산은 거의 비슷할 것이다. 다른 게 있다면 지역에 따라 달라지는 주택가격의 차이 정도일 것이다.

노후자금에 대해 잘못 알려진 허상

그렇다면 2000만 원 정도로 어떻게 퇴직 후 30~40년 동안의 생활비를 충당할 수 있겠는가. 무리하게 재테크를 해서 늘려보려 했다가 그나마도 날려 버리기 십상이다. 아니면 거주용 주택을 팔아서 생활비를 마련하지 않으면 안 되는데 베이비부머 세대가 생활비 마련을 위해 살고 있는 집을 일제히 팔려고 내놓는다면 우리나라의 주택가격은 또 어떻게 되겠는가.

최근의 우리나라 주택가격 급락 현상은 근본적으로 이런 상황을 반영하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퇴직을 했거나 퇴직을 앞둔 세대들의 형편이 대부분 이런데 신문이나 TV에서는 ‘노후가 편하려면 10억 원은 있어야 한다, 최소한 7억 원은 있어야 된다’는 식으로 보도를 하고 있다.

10억 원이 누구 이름인가. 필자는 언론인을 만날 때마다 제발 그런 식의 보도하지 말아 달라고 부탁하곤 한다. 퇴직을 앞둔 세대의 대부분이 이런 보도를 보고 도움을 얻기보다는, 오히려 복통이 터지고 초조해지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주위를 보면 우리 사회의 이런 분위기를 반영하고 있기 때문인지, 부동산기획 사기와 같은 퇴직자들을 노린 사기 사건들을 자주 접하게 된다. 또한 서점에 가보면 재산을 두 배로 늘리는 법, 세 배로 늘리는 법과 같은 황당한 내용의 재테크 서적이 범람하고 있다.

책 한 권 읽고 재산을 두 배로 늘릴 수 있는 방법을 찾을 수 있다면 얼마나 좋겠는가. 유감스럽게도 그런 방법은 없다고 봐야 할 것이다. 단기간에 재산을 두 배로 늘려 보려 했다가 원금마저 날렸다는 이야기만 들려올 뿐이다.

서울에서 특파원으로 4년 동안 근무하고 귀국한 한 일본 언론인이 필자에게 남기고 간 말이 있다. “한국에 와서 4년 동안 근무하면서 보니 한국 사람들은 돈을 버는 방법 즉, 입구 관리에 대해서는 쌍불을 키고 열심인 것 같다. 그런데 나이가 60이 됐는데도 노후생활비를 충분히 마련하지 못했다면 그 사람은 주어진 형편에 맞추어 사는 노력을 해야 할 것이다. 또한 젊은 시절에 열심히 노력한 덕분에 노후생활비에 쓰고도 남을 만한 재산을 모은 사람이라면 그 사람은 그 재산을 아름답게 쓰는 방법을 생각해야 할 것이다. 다시 말하면 출구 관리에 대해 더 많은 공부를 해야 하는 것이다. 그런데 내가 본 한국 사람들은 입구 관리에 대해서는 정말 열심인데 출구 관리에 대해서는 너무나 공부가 돼 있지 않은 것 같다. 가정에서도, 학교에서도, 사회에서도 이런 교육을 하고 있지 않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노령화를 일찍 경험한 일본이 던지는 교훈

일본 언론인으로부터 이런 말을 들으면서 한편으로는 불쾌하면서도 또 한편으로는 얼마나 부끄러운 생각이 들었는지 모른다. 30수 년 전 일본 연수시절에 목격했던 광경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개인적인 경험이지만 1975년 신입사원 시절에 일본 도쿄의 증권업계에 파견돼 업무연수를 받은 일이 있다. 연수 스케줄 중에 증권거래소 지하에 있는 증권보관창고를 견학하는 코스가 있었다. 창고 안에 들어가 보고 깜짝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70세 정도는 됐을 것 같은 할아버지들 수십 명이 둘러앉아서 증권을 세고 있었기 때문이다. 젊을 때는 다들 한 자리씩 했던 분들이라는데, 당시 시간당 500엔(약 6000원) 정도의 아르바이트 수당을 받으며 일을 한다는 것이었다.

이뿐만 아니라 필자가 머물던 숙소가 비즈니스호텔이었는데 프런트 데스크 근무자가 오후 5시까지는 젊은 아가씨들이었다가 5시를 넘어서면 나이든 할아버지들로 교대를 하는 것이었다.

30여 년 전에 그 광경을 목격하고 필자가 생각했던 것은 ‘나이가 들면 화려하고 권위 있는 일은 젊은이에게 양보하고, 어떻게 보면 시시한 일이라고 여겨질지도 모르는 저런 일들을 해야 하는구나’ 하는 것이었다.

당시 일본 전체 인구 중에서 차지하는 노인의 비율은 8% 정도로 현재 우리나라의 노인 비율 11%보다 훨씬 낮았다. 그런데도 당시의 일본 노인들은 체면을 버리고 허드렛일이라도 할 준비가 돼 있었구나 하는 것이었다.

한 달 50만 원 수입은 2억 정기예금 버금가는 효과

우리나라의 경우는 어떤가. 지금까지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노후생활비가 모자라는 데도 퇴직 후에 할 수 있는 일도 없거니와, 일이 있다고 하더라도 나이든 사람이 일을 하기가 참으로 어려운 사회 분위기였다. 주위에서, 어떤 일을 하고 싶은데 자기 부인이 창피하게 생각할까 봐 못하겠다는 퇴직자들을 자주 볼 수 있었다.

다행인 것은 최근에 들어서 우리 사회의 분위기도 급속하게 바뀌고 있다는 점이다. 아직 일부이기는 하지만 체면을 버리고 허드렛일에 가까운 일이라도 기꺼이 하겠다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는 것이다.

미래에셋 투자교육연구소는 ‘은퇴와 투자’라는 간행물을 통해 이런 분들의 사례를 소개하고 있다. 예를 들면 71세의 전직 교장이 남이섬에서 미화원으로 일하고 있는 사례를 소개한 일도 있다.

남이섬에는 하루 1만 명 정도의 관광객이 드나든다고 한다. 이들이 버린 쓰레기를 4명의 미화원이 치운다고 하니 얼마나 힘들겠는가. 그런데도 교장에 비해 청소부가 하찮아 보이는 직업일지 모르지만 이분이 느끼는 자부심은 똑같다는 것이다. 전직 사장을 했던 어떤 분은 리서치회사의 전문 설문조사원으로, 또 어떤 분은 지하철 택배원으로 일하고 있는 사례가 소개된 일도 있다.

주위에서 보면 비슷한 금액의 노후자금을 마련해 놓은 경우라도, 퇴직 후에도 규칙적으로 일을 하고 있는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 사이에 관리 방법이 크게 다름을 알 수 있다. 규칙적으로 일을 하는 사람은 자산관리 원칙에 흔들림이 없다. 그러나 놀면서 관리하는 사람의 경우에는 쓸데없이 욕심을 내기도 하고 겁을 먹기도 하는 사례를 자주 볼 수 있다.

노후자금과 관련해서 꼭 알아두어야 할 점은 무슨 일을 하든지 한 달에 50만 원을 벌면 이것은 2억 원의 정기예금을 보유하고 있는 것과 동일한 효과가 있다는 것이다.

인생 100세 시대에는 언제 어떤 일이 생길지 알 수 없다. 따라서 여차하면 부부가 체면을 버리고 허드렛일이라도 하겠다는 각오를 하고 사는 것이 재테크보다 훨씬 중요하다는 생각을 가져야 한다. 자산 관리는 입구보다 출구 관리가 훨씬 더 중요하다.

강창희 미래에셋 투자교육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