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스칼 라피 보베 대표 겸 회장

전설적인 시계 브랜드 보베(BOVET)의 대표 겸 오너 ‘파스칼 라피(Pascal Raffy)’가 지난 5월 중순 방한했다. 보베는 럭셔리의 기본 원칙인 수작업, 희귀성, 최고급 소재를 지키는 것은 물론 디자인과 기술력을 겸비한 예술품 같은 시계를 선보이는 최고급 시계 브랜드로 190년의 역사를 자랑한다.

‘브랜드’, ‘마케팅’이란 단어를 싫어하는 라피 대표는 솔직하고 체계적이고 엄격한 사람이다. 시계 하우스의 대표 겸 오너이자 369개의 시계 컬렉터이기도 한 그가 이끄는 시계 하우스는 어떤 비전을 갖고 있을까. 남산의 아름다운 카페에서 그를 만났다.
[CEO Interview] “1년에 2000개 소량생산 고집”
파스칼 라피 대표는 세계적 하이엔드 타임피스 브랜드인 ‘보베’의 대표이기도 하지만, 개인적으로 시계 컬렉터이기도 하다. 시계 컬렉팅은 할아버지대부터 이어져 온 것. 시계에 대한 애정과 관심, 그리고 현재 시계 비즈니스를 이끄는 최고경영자로서의 열정 모두 어쩌면 ‘라피가(家)’의 전통일지도 모른다. 그가 ‘보베’를 인수한 것은 10년 전인 2001년이다.

“우리는 맛있는 음식이나 좋은 와인을 레스토랑에서 즐길 수 있지만, 그것은 주방에서 일하는 것과는 전혀 다릅니다.”

맛있는 음식이 무엇인지 알고 있다는 그가 어떤 재료로 또 어떤 놀랄 만한 음식을 선보일지, 그의 모험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자연스러운 미소와 눈빛이 인상적이었던 라피 회장과의 일문일답 인터뷰다.

두 번째 내한이라고 들었다. 소감이 어떤가.

“내 인생에서 가장 소중한 친구 중 한 명이 한국인이다. 파리의 한 법대 유학시절 때 만나 같이 열심히 공부하고, 요리도 하고, 여행도 다니고, 인생에서 중요한 얘기들을 같이 많이 나눴던 친구다.

한 번도 가본 적 없는 내게 한국에 대해 많은 것을 가르쳐 준 소중한 친구였다. 졸업 후 나는 유럽에 남고 그 친구는 한국으로 돌아갔다. 한국은 그 친구를 보기 위해 8년 전에 방문한 이후로 처음이다.

한국은 나에게 많은 추억을 주는 따뜻하고 근면한 친구의 나라이기 때문에 보베를 소개하기에 앞서 이번 방문은 특별히 감회가 새롭다.”

“앞으로 선보일 시계에 대한 10년 계획은 이미 머릿속에 있다. 내년은 보베 하우스의 190주년을 기념해 19개의 특별한 시계를 선보일 예정이다.”
“앞으로 선보일 시계에 대한 10년 계획은 이미 머릿속에 있다. 내년은 보베 하우스의 190주년을 기념해 19개의 특별한 시계를 선보일 예정이다.”
그중에서도 특히 좋은 점은.


“현재 남산 그랜드 하얏트 호텔 위층에 묵고 있는데, 창에서 내려다보이는 한옥과 자연의 경치가 너무나 아름답다. 사람들의 미소 역시 그렇다(웃음). 그 밖에도 예의, 문화 모든 것이 발달돼 있다고 생각한다.”

2001년 시계 하우스를 인수하게 된 계기는 무엇인가.

“시계에 대한 내 열정을 알고 있던 은행가의 한 친구가 여러 명품 시계 브랜드들이 투자자를 찾고 있다는 연락을 수시로 주었다. 그때 즈음 나는 시계 수집가로서 흥미를 잃고 있었다. 세계화가 되면서 많은 명품 브랜드들이 대량 생산의 유혹에 빠져 있었기 때문이다. 그때 보베가 내게 특별하게 다가왔고 인수를 결심하게 됐다.”

보베를 선택한 기준은.

“보베를 선택한 기준과 수집가로서의 내 기준은 일치한다. 나는 시계에 관심이 많은 사람이기 때문에 언제 어디서나 옆 테이블에 앉은 사람의 손목에 자연스레 눈이 가곤 한다. 대부분 어느 브랜드인지 고민하게 되지만 보베는 멀리서도 보베 시계인 것을 한번에 알 수 있다.

교육을 받고 자신에 대한 확신이 강한 사람일수록 뚜렷한 본인만의 개성이 있는 것처럼 시계 하우스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한다. 처음 접한 보베는 디자인부터 특별했고 역사와 전통이 그대로 느껴졌다.”

시계 하우스의 회장이 되고 달라진 점이 있다면.

“크게 달라진 점은 없지만 하나 달라진 게 있다면 내 열정과 좀 더 많은 시간을 보내고 있다는 것이다.”

시계 수집가로서 시계를 볼 때와 시계 하우스의 회장으로서 시계를 볼 때 어떻게 다른가.

“크게 다른 것은 없다. 나의 가족은 3대에 걸쳐 시계를 수집하고 있다. 이 때문에 어렸을 때부터 자연스럽게 할아버지에게서 시계에 대해 배웠다. 시계는 스위스의 위대한 유산 중 하나다.

시계를 만든다는 것은 역사, 문화, 예술, 교육의 가치를 이해하지 못 하면 구현해 낼 수 없는 작업이다. 우리는 결국 다음 세대인 우리의 자손을 위해서 시계를 구입한다고 생각한다. 나는 보베를 통해 그들을 위해 전통과 유산을 지키는 일을 직접 할 수 있게 돼 영광일 따름이다.”

시계란 무엇이라 생각하는가.

“감사하게도 시계와 평생 함께 할 수 있었던 나는 현재 369개의 시계를 소장하고 있다. 소유하고 싶은 시계는 가끔 내게 대화를 해 오며, 내 마음을 움직인다. 세계화가 되면서 날이 갈수록 삶은 기계화되고 편리해지고 있다.

공항에서, 자동차에서, 휴대전화에서 우리는 원하면 시간을 쉽고 편리하게 알 수 있다. 하지만 이런 시계(watch or clock)들은 단순히 시간만을 알려 준다. 예술 작품이 감성을 일으키듯 진정한 소장가치가 있는 시계(timepiece)는 감성을 불러일으키는 오브제다.”

시계를 볼 때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점은 무엇인가.

“기술적, 디자인적으로 완벽하고, 고급 소재를 사용하고, 장인들의 손길로 제작되며 독특한 정체성을 갖고 소량 생산으로 탄생한 시계만이 수집가에게 ‘대화’를 해온다. 수집가의 시각에서 시계는 이기적인 물건이다. 아름다우면서도 소장자의 라이프스타일에 맞춰 사용할 수 있도록 유용해야 한다.”

보베의 오탄타 투르비옹 (Ottanta Tourbillon) 아름다운 외관에 스포티함까지 묻어나는 최고급 워치로 전 세계에 80피스 생산되는 리미티드 에디션
보베의 오탄타 투르비옹 (Ottanta Tourbillon) 아름다운 외관에 스포티함까지 묻어나는 최고급 워치로 전 세계에 80피스 생산되는 리미티드 에디션
보베 시계 중 가장 주목할 만한 제품은.

“하나의 시계를 이야기하기는 어렵다. 시계는 기술성과 디자인성이 함께 표현돼야 하는 하나의 예술품인데 사람들은 두 가지 중 하나로 결정지으려는 경향이 있다. 시계의 가치는 예술품의 소장가치처럼 개인적인 취향이나 감성에 따라 다르기 때문에 사람마다 다를 것이라고 생각한다.”

여러 스타일로 변형이 가능한 ‘아마데오’ 컬렉션에 대해 소개해 달라.

“2010년에 완성된 아마데오의 콘셉트는 ‘획기적인 변화’다. 앞서 나는 시계는 이기적인 오브제라고 말했다.

나는 항상 시계와 함께 하기 때문에 시계에 대한 열정을 충족시킬 수 있는 편리하고 통합적인 아이디어가 필요했다. 보베는 손목시계에서 여러 형태로 변형을 구현할 수 있는 유일무이한 컨버터블 시스템을 개발하는 데 30개의 프로토 타입을 거쳐 10년의 긴 연구 끝에 성공했다.

평소 착용하는 손목시계에서 블랙타이 디너 때는 회중시계로, 여성은 목걸이 시계로, 미팅 때는 탁상시계로, 양면 시계로도 사용할 수 있는 세계 최초의 유일무이한 시스템을 완성한 것이다.”

보베의 가장 큰 장점은.

“보베 하우스는 수집가의 기대를 뛰어넘는 고급 시계를 만든다. 보베 하우스의 172명 팀원들 모두 보베의 가치관을 믿고 실현시키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보베는 명품의 ‘기본’인 우수한 재료 사용에서부터 차별화된다.

보베는 시계 케이스 속을 비우지 않기 때문에 금의 중량이 보통 시계들보다 2~3배 정도 더 크다. 이는 시계의 착용감과 명품의 기본에 충실하기 위해서다.

또, 케이스의 금 중량이 부족하면 나중에 고객에 원할 때 인그레이빙(engraving) 이나 다이아 세팅 등을 할 수 없다. 보베 시계는 소장자의 요구에 따라 주문제작을 할 수 있도록 이 점을 감안했다. 기술적으로 우수한 아마데오 시스템과 모든 부품의 완벽한 피니싱을 자랑하는 인하우스 무브먼트는 1만 번 이상의 품질 테스트를 거쳐 탄생한다.”

시계 제작을 위한 보베의 원칙은.

“보베 시계는 장인들을 통해 미니어처 페인팅, 인그레이빙 등 예술작품으로 탄생해 세상에 단 하나밖에 없는 귀중한 소장품이 된다. 특별하고 희귀한 시계가 내 것이 될 때는 특별한 구성원이 된 듯한 느낌을 받는다.

보베 하우스에서는 시계의 수요를 맞추기 위해 더 많은 시계를 만들기보다는 시계 하나에 들어가는 시간을 늘리는 것이 원칙이다. 따라서 1년 총 생산량이 2000개밖에 되지 않는다. 수집가의 기대 이상의 시계를 만들어내는 것이 보베 하우스의 원칙이다.”

지금까지 내·외부적으로 업그레이드된 점은 무엇인가.

“시계를 만든다는 것은 디자인적인 면과 기술적인 면, 둘 중 하나로 치우칠 수 없는 작업이다. 보베는 역사상 최초로 시계 뒷면을 개봉해 시계의 내부를 공개한 하우스다. 보이지 않는 시계 안 모든 부품의 제작, 마무리, 조립까지의 완벽한 모습은 초창기 때부터 지금까지 큰 자부심이다.

내부적으로는 다이얼에서부터 투르비옹, 스프링 휠까지 인하우스로 제작할 수 있도록 무브먼트 회사를 더욱 보강했다. 다른 업체에 제공하는 무브먼트의 생산량을 줄여 보베 시계 하나에 쏟는 정성과 마무리에 투자하는 시간을 늘렸고, 과잉 생산의 추세와 반대로 명품의 근본에 더욱 충실하고 있다.”

[CEO Interview] “1년에 2000개 소량생산 고집”
앞으로 어떤 시계를 선보일 계획인가.

“앞으로 선보일 시계에 대한 10년 계획은 이미 머릿속에 있다. 지금도 보베 팀원들은 아이디어를 현실화시키기 위해 나와 같이 끊임없는 노력을 하고 있다. 무브먼트 하나가 탄생하기까지는 평균 5~6년이 걸린다.

내년은 보베 하우스의 190주년으로 특별히 신경을 많이 쓰고 있는데 10년 주기로 19개의 특별한 시계를 준비 중이다. 시계 하나당 보베 하우스 역사의 10주년을 상징하는 의미 있는 시계가 탄생할 예정이다. 소장가치를 뛰어넘을 수 있는 작품이 될 것이다.”

아시아 시장이 차지하는 비중은 어느 정도이며, 앞으로 한국 시장에서 어떤 마케팅 전략을 펼칠 계획인가.

“아시아 시장의 비중은 30~40%다. 나는 ‘마케팅’이란 단어를 싫어한다. 현대에 들어 광고에 많이 나오면 명품이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는 것 같다. 하지만 패션이란 것은 일시적이다.

다음 시즌에는 없어지고 영원하지는 못하다. 시계를 만든다는 것은 아름다운 미술작품, 좋은 음악과 같이 평생 함께 할 수 있는 영원한 작품을 탄생시키는 것이다.”

보베는 왜 지금 한국 시장에 들어왔는가.

“보베는 시장에 빠르게 진출하는 것보다는 뜻을 함께 하는 파트너를 찾는 것이 더 중요했다. 하지만 우리가 원하는 감성을 불러일으키는 파트너를 찾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었다. 파트너를 찾는데 5~6년의 시간이 걸렸다. 소량 생산이라는 명품의 약속을 보베는 그대로 지켜낼 것이고 그런 의미에서 시장에 빠르게 진출하고 느리게 진출하고는 그렇게 중요하지 않다.”

머니 독자들에게 한 마디 한다면.

“보베는 사람들의 문화적인 감수성을 풍요롭게 해줄 수 있는 시계다. 경쟁하기 위해 선보이는 시계가 아닌 소장가치가 있는 예술작품이다. 예술품을 모으기 위해서는 단순히 돈만 있어서는 불가능하다. 안목, 관심, 감성, 노력, 의지 등 모든 것이 동반돼야 한다.

아시아 지역에서 특히 한국 고객들은 문화, 교육, 역사, 전통 등 많은 소중한 가치관을 중요시하기 때문에 보베 시계와 같은 예술품에 많은 관심을 갖고 있다. 세심하고 정교한 디테일을 알아보는 섬세함과 감수성도 갖고 있다. 보베 하우스의 최고급 시계가 한국의 시계 수집가들에게 많은 즐거움과 기쁨을 주기 바란다.”


아마데오 컬렉션

손목 위의 회중시계

보베의 ‘아마데오 컬렉션(Amadeo Collection)’은 현존하는 시계 가운데 손목시계에서 회중시계로 변형이 가능한 유일한 모델이다. 보베는 오래전부터 손목시계를 다시 한 번 예전의 독특한 회중시계 형태로 변형시키려는 노력을 기울여왔다.

보베는 특별한 가치의 유산을 현대적으로 개발해 소장자의 라이프스타일에 어울리는 시계를 만들고자 독창적인 아이디어 실현에 전념했으며, 그 결과 세계 최초로 완벽히 변형 가능한 특허 기능이 있는 아마데오 컬렉션이 탄생하게 됐다.

양면으로 사용할 수 있는 보베 손목시계는 회중시계, 펜던트, 소형 탁상시계로 사용할 수 있다. 더 놀라운 사실은, 이러한 변형이 어떠한 도구나 전문가의 손길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는 것.

일상생활에서 언제든지 직접 쉽게 변형할 수 있다. 특허등록이 된 이 유일무이한 시스템은 보베 하우스, 더 나아가 시계업계 역사에 중대한 전환점으로 기록될 놀라운 업적이다. 변형이 가능하다는 것은 그만큼 스타일링과 사용 방법에 더 많은 자유를 준다는 것이다.

이 포켓워치는 손바닥 안에서 심플하고 품격 있게 시간을 자유로이 다룰 수 있게 한다. 포켓워치 체인 대신 목걸이에 연결하면 펜던트 또는 소트와르(sautoir) 시계가 돼 하나의 주얼리로 스타일링을 품격 있게 마무리해 준다. 아마데오의 유용한 탁상시계 변형 기능을 통해 책상 위, 또는 미팅 중에도 멋스럽게 시간을 즐길 수 있다.

진정한 주문제작과 특별한 서비스

예전부터 유럽에서는 시계 다이얼에 장인의 도움으로 자화상 또는 종교적 심볼을 넣었다. 바쁜 일상에서도 상위 1%는 가족에 대한 남다른 애정과 자부심을 느끼기 때문에 다이얼 페인팅에 많은 관심을 갖고 있다. 보베는 세계 최고의 에나멜 페인팅, 자개 다이얼 페인팅 기술을 갖고 있는 장인들이 직접 시계 다이얼 아트를 실현한다.

예술로 승화되는 보베의 모든 시계들은 리미티드 에디션뿐만 아니라 자체적으로 소량 생산 및 주문제작을 고수하기 때문에 소장가치와 고객만족도가 상당히 높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판매 방법도 남다른데 고객이 구매를 문의하면 전담 컨설턴트가 제품에 대해 직접 프레젠테이션을 하는 것은 물론, 고객의 취향과 라이프스타일에 맞는 고급 시계를 고르는 데 도움을 준다.

사후관리(AS)는 더 유별나서 한국 본사에서 일단 상태를 본 뒤, 스위스 전문가가 비행기를 타고 방한해 직접 확인, 상담 후 스위스로 가지고 가 시계를 제작한 장인들이 직접 검정을 거쳐 수리한다.

또한, VVIP고객들은 파스칼 라피 회장이 소유하고 있는 유서 깊고 아름다운 보베 사토 모티에 성을 휴양 목적으로 방문할 수 있는 특권이 주어지기도 한다. 조용하고 아름다운 스위스 풍경 속에서 시계 제작과정을 눈으로 직접 확인하고, 워치메이커와 직접 상담도 하며 다양한 컬렉션을 경험할 수 있다.


글 박진아·사진 이승재 기자 pja@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