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춘송 홀스앤영농조합법인 대표 & 소무근 태영영농조합법인 대표

소춘송 홀스앤영농조합법인 대표는 건축사로서 서울과 경기도에 건설업체와 건설사무소, 감리전문회사를 경영하고 있다. 지인의 소개로 마주가 된 그는 이를 계기로 제주도에 종마목장을 설립하기에 이른다.

2009년에는 미국에서 종마산업을 공부한 아들, 소무근 태영영농조합법인 대표가 제주도로 오면서 소춘송 대표의 꿈에 합류하게 됐다. 그는 현재 서울과 제주를 오가며 명문 종마목장의 꿈을 키우고 있다.
말은 수태부터 생산, 육성, 경주까지 4단계를 거친다. 그 과정에서 시행착오를 거치게 마련인데 그 위기를 잘 넘겨야 성공이 가능하다. 마주로 출발해 종마목장의 주인이 된 소춘송 대표. 그의 꿈은 아들 소무근 대표에게 되물림 돼 부자가 종마목장을 운영하고 있다.
말은 수태부터 생산, 육성, 경주까지 4단계를 거친다. 그 과정에서 시행착오를 거치게 마련인데 그 위기를 잘 넘겨야 성공이 가능하다. 마주로 출발해 종마목장의 주인이 된 소춘송 대표. 그의 꿈은 아들 소무근 대표에게 되물림 돼 부자가 종마목장을 운영하고 있다.
제주시 조천읍에 있는 홀스앤영농조합법인에 들어서자 잘 생긴 경주마들이 눈길을 끌었다. 기름기름한 다리를 가진 근육질의 말들은 제주도에서 흔히 마주치는 조랑말과 달랐다.

몸 전체를 타고 흐르는 윤기가 잘 관리된 말임을 보여주었다. 어느새 곁에 다가선 소 대표는 “새 풀을 뜯고 나면 윤기가 더합니다”라며 흐뭇하게 종마를 바라봤다.

“우리가 열심히 한다고는 합니다만 아직 국내 종마산업은 초보 단계입니다. 제가 여기서 목장을 시작한 것도 몇 해가 되지 않습니다. 2006년 8월에야 공사를 시작했거든요. 그 사이 시행착오도 많았고 사연도 많았습니다.”

선친의 영향으로 어린 시절부터 말에 관심 가져

소 대표은 어려서부터 말에 관심이 많았다. 선친이 일제강점기에 일본에서 말과 관련된 일을 했고, 귀국 후에는 소를 많이 키웠다. 그 덕에 어린 시절부터 가축과 친숙했다. 성장 후 설계사로 건설 관련 사업을 하던 그는 우연한 기회에 지인의 소개로 마주가 됐다. 2004년에는 아내가 과천 경마장의 마주가 됐고, 2005년에는 그가 과천과 부산 경마장의 마주가 됐다.

당시는 마주의 진입장벽이 조금씩 낮아질 때였다. 이전까지만 해도 아무나 마주가 될 수 없었다. 초기 마주를 뽑을 때 심사기준이 엄격했기 때문이다. 귀족의 반열에 올라야만 마주가 되는 경마 선진국 미국과 영국의 영향이 컸다. 하지만 지금은 문턱이 많이 낮아져 말을 좋아하는 사람이면 어렵지 않게 마주가 될 수 있다는 게 소 대표의 설명이다.

지금도 그는 마주다. 과천경마장에 1군 2마리와 3군 1마리 등 10두가 있고, 부산에도 1군 2마리를 비롯해 10마리의 경주마가 있다. 인터뷰를 하는 동안에도 주말 경주에 대비해 어떤 기수를 세울지를 두고 조교사와 긴 통화를 했다. 어려운 퍼즐을 풀듯 그는 경주마의 성격과 기수의 스타일을 요리조리 꿰맞추는 듯했다.

“경마산업은 말이죠, 시행처(한국마사회)와 마주, 말 생산 농가, 조교사, 기수, 관리사 등이 톱니바퀴처럼 얽혀있습니다. 가장 이상적인 조합이 이뤄질 때 톱니바퀴가 잘 굴러갑니다. 이렇게 했을 때 우승마가 탄생하는 겁니다. 그때의 쾌감은 이루 말로 할 수가 없죠. 단지 돈을 벌기 위해 마주가 되고 종마목장을 해서는 좋은 결과를 볼 수 없습니다.”

그런 이상적인 조합은 물론 쉽지 않다. 산업의 주체들이 많다 보니 어디 하나 톱니바퀴가 맞지 않으면 바로 문제가 생긴다. 마주이던 그가 종마목장 운영을 결심한 것도 그런 데서 출발했다.

초기 말의 가치와 혈통을 몰라 치러야 했던 수험료

마주로 첫발을 내디딘 2004년, 조교사가 잘 뛰던 말의 제주도 휴양을 권했다. 그해 우승까지 하며 승승장구하던 말이라 의아했지만, 당시만 해도 말에 대해 잘 모르던 때라 조교사의 말을 따랐다. 사단은 거기서 생겼다.

휴식을 위해 제주도로 떠났던 말은 2개월 후 비루한 몰골로 돌아왔다. 자세히 살폈더니 엉덩이에 유리조각까지 박혀있었다. 그 뒤 그 말은 한번도 뛰지 못하고 폐사하고 말았다. 눈앞에 벌어진 일에 어처구니가 없었다.

소 대표가 말이 쉴 수 있는 휴양목장 건설을 계획한 계기다. 2006년 8월 목장의 첫 삽을 떴다. 그리고 종마를 사들였다. 이 과정에서도 그는 적지 않은 시행착오를 거쳤다. 말의 가치나 혈통에 문외한인 상태에서 사업에 뛰어든 것이 실수였다.

말에 관한 한 전문가라고 믿었던 조교사들의 터무니없는 말에 속기도 하고, 말 수입업자의 농간에 큰 곤욕을 치르기도 했다. 좋은 말이라고 소개받아 2년여를 키워 경매에 내놨지만 한 마리도 팔지 못한 적도 있다. 그때 겪은 마음고생은 이루 말할 수가 없다.

“말 산업과 관련해 주변에 부도덕한 이들이 의외로 많았습니다. 생산자 중에서도 믿지 못할 사람이 많았고요. 그들이 돈 냄새를 맡으니까 부나방처럼 달려드는 거죠. 혈통이 좋지 않은, 수준 미달의 말을 우수마라고 속여 팔고, 좋은 말을 구해주겠다고 하고선 다른 말로 바꿔치는 일까지 있었어요. 마음고생은 그렇다 치고, 금전적으로만 5억 원 이상 손해를 봤습니다. 그들을 전문가로 믿고 오판한 제 잘못이죠.”
종마목장은 끊임없는 투자와 축적된 기술력이 있어야 성공한다.
종마목장은 끊임없는 투자와 축적된 기술력이 있어야 성공한다.
아들에게 건설회사보다 종마목장 물려주기로 결심

이런 시행착오를 겪으면서 그는 말과 그 혈통에 대해 조금씩 알아갔다. 아무리 좋은 말도 육성과 관리가 제대로 되지 않으면 명마가 되기 어렵다는 사실도 깨달았다. 경마 선진국들의 사례도 찾고, 현지 방문도 마다하지 않았다. 그러다 알게 된 것이 호스 매니저(horse manager)라는 직업이다.

“집사람하고 미국 목장 견학을 간 적이 있어요. 로스앤젤레스(LA) 근교 트레이닝센터에 들렀는데, 거기서 호스 매니저를 만났어요. 그 모습이 참 여유롭고 보기 좋았어요. 한국에는 아직도 호스 매니저라는 말을 쓰지 않지만, 미국에서는 말을 전문적으로 관리하는 사람을 호스 매니저라고 부릅니다.”

그는 아들 소무근 대표가 호스 매니저가 되기를 바랐다. 당시 소무근 대표는 아버지의 건설회사에서 현장관리를 맡고 있었다. 한때 그는 아들에게 건설업체를 물려줄 생각도 했다.

하지만 대형 건설사의 틈바구니에서 중소 건설사가 살아남기는 쉽지 않은 게 현실이다. 불확실한 건설업에 미래를 맡기기보다 이제 걸음마 단계인 경주마 사업이 전망이 더 밝다고 판단했다.

오랜 경륜을 가진 사업가답게 그는 결심이 서자 곧장 실행에 옮겼다. 건설현장에 있던 아들을 가타부타 설명도 없이 미국 시애틀에 있는 친척집으로 보냈다. 어학연수를 마친 아들은 그의 뜻대로 2007년 뉴욕대에 들어가 호스 매니지먼트를 전공했다.

“2006년 연말에 미국에 갔더니 그동안 군말이 없던 아들이 ‘저를 미국에서 영어 공부를 시킨 이유가 뭡니까’ 하고 묻더라고요. 그때서야 뉴욕대나 켄터키대에 보내 말 관리를 전공시키려고 했다고 털어놨죠. 다행히 아들이 제 의견을 잘 따랐어요.”

호스 매니저 아들 덕에 목장이 제 궤도에 올라

그의 바람대로 호스 매니지먼트를 전공한 아들은 대학 졸업 후 2009년 켄터키에서 6개월간 인턴 과정을 거쳤다. 그해 10월 한국으로 돌아와 아버지와 함께 홀스앤영농조합법인과 태영영농조합법인을 경영하고 있다.

소 대표는 아들이 돌아온 후 목장이 자리를 잡았다고 흡족해했다. 선진국에서 말 관리를 체계적으로 배운 게 큰 도움이 된다고 했다. 또 하나, 외국에서 쌓은 인맥도 무시할 수 없다.

지난해 11월 그 인맥을 통해 컬러즈 플라잉이라는 씨수말을 들여왔다. 아들의 뉴욕대 은사를 통해 상대적으로 싼 가격에 들여왔는데, 한국마사회나 어떤 개인 목장에서 들여온 지금까지의 말보다 혈통이 좋다.

컬러즈 플라잉은 세계적인 종마 A.P.앤디(A.P.ANDY)의 적자다. A.P.앤디는 1회 교배로 15만 달러를 받는 세계적인 종마다. 리먼 사태로 인한 금융위기 이전에는 1회 교배비가 30만 달러에 달했다.

경주마는 모계 혈통이 부계 혈통보다 더 중요한데, 컬러즈 프라잉은 이처럼 세계적인 종마가 낳은 씨수말이다. 홀스앤목장은 현재 1회 교배에 100만 원을 받는다. 국내 우수 씨수말의 1회 최고 교배비는 500만 원이지만, 씨수말로서 컬러즈 플라잉이 아직 검증단계이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싸게 교배비를 책정했다.

“보통 씨수말들은 1년에 70~80두 정도 교배가 가능합니다. 그렇게 난 자손의 성적을 평가하기까지는 또 3년여가 걸리고요. 다행히 자손이 경기에서 좋은 성적을 내면 그 가치는 더 높아지는 거죠. 우리는 컬러즈 플라잉에게 기대가 큽니다. 문제는 관리죠. 명마를 낳기 위해서는 체계적이고 철저한 건강관리가 필수겠죠.”

아들이 합류한 후 종마사업도 안정권에 들었다. 홀스앤목장과 태영영농조합법인에는 현재 씨암말 50두와 1세마 34두가 있다. 종마사업은 어미 말이 새끼를 낳고, 2년 동안을 기른 후 경매를 통해 판매되는 구조다.

한해 씨암말들의 출산율은 50~60% 안팎. 홀스앤목장과 태영영농조합법인에서는 한 해에 30여 두의 말이 생산된다. 그런 말들을 잘 관리해서 2년 후 경매에 내놓으면 3000만~5000만 원에 팔려나간다. 소 같은 가축에 비하면 부가가치가 월등하지만 그만큼 위험 부담도 크다.

2년여를 키우는 과정에서 발목이 부러질 수도 있고, 관리 소홀로 경마로서 가치가 떨어질 수도 있기 때문이다. 경마로서 가치가 떨어지면 식용이나 관광용으로밖에 쓸 수 없다. 식용으로 쓰는 말의 가격이 100만 원 이하인 점을 감안하면, 사육에 따른 리스크가 너무 큰 셈이다.

“말은 수태부터 생산, 육성, 경주마로 활동하기까지 4단계를 거칩니다. 아무리 잘해도 그 과정에서 시행착오를 겪게 마련입니다. 그 와중에 포기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말을 통해 적정이윤을 얻기 위해서는 두 가지가 선행돼야 합니다. 말을 자식처럼 사랑하는 마음, 그리고 끊임없는 투자와 노력입니다. 사실 자본력이 부족하면 처음부터 손을 안대는 게 맞습니다.”

그가 말하는 최소 자본력은 20억 원 내외다. 돈만 있다고 성공하는 것은 아니다. 말에 대한 사랑과 장기적인 비전이 없다면 종마산업에서 성공하기란 녹록지가 않다. 하지만 소 대표 부자처럼 끊임없는 투자로 노하우가 쌓이면 종마산업이 새로운 블루오션으로 자리 잡을 가능성은 높아 보인다.

제주=글 신규섭·사진 이승재 기자 wawoo@hankyung.com